‘창업주 유지 훼손?’ 유한양행 무슨 일이…

‘주인 없는 회사’ 주인 생기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유한양행이 회장직 신설을 추진하자 내부에서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주인 없는 회사를 만들고자 했던 창업주의 뜻을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차기 회장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이사회 의장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고 있다.  

유한양행은 평사원 출신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현재 사장직은 조욱제 대표이사와 지난해 외부에서 영입한 김열홍 R&D 총괄사장 등 2명이 맡고 있다. 이 가운데 조 사장의 경우 이번 주총에서 대표이사 연임이 유력한 상황이다.

변화의 기운

사장을 보좌하는 부사장은 6명이다. 유한양행은 글로벌 50대 제약사를 목표로 외부 인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부사장 인력을 확충했다. 현재 부사장으로는 ▲이병만 경영지원본부장 ▲이영래 생산본부장 ▲오세웅 중앙연구소장 ▲임효영 임상의학 본부장 ▲유재천 약품사업 본부장 ▲이영미 R&BD 본부장 등이 있다.

창업주 가문은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 운영을 맡겼다. 보유 주식 역시 모두 학교에 기증했다. 1939년에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 본인 소유 지분 52%를 사원들에게 나눠줬다.

회장직을 두지 않았던 것은 한 사람에게 힘이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런 이유로 유한양행에서 회장직을 수행한 사람은 유 창업주를 제외하면 연만희 전 회장이 유일했고, 이마저도 30년 전 일이다.


1961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던 연 전 회장은 합작투자 등으로 업무조정 필요성이 커졌던 1993년에 3년 임기 회장으로 선임됐으나, 1995년 회장직을 내려놨다. 이후 맡았던 고문 역할은 2021년 사임했다.

주요 의사결정 시에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가 관여하는 구조다. 이사회 구성원 중 사외이사 수가 사내이사보다 많으며, 감사위원회제도 등으로 경영 투명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회장직 신설이 추진되면서, 유한양행이 추구해 온 ‘주인 없는 회사’라는 가치가 흔들리게 될 거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투명 경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표면화된 것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14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 내달 15일 정기주총을 개최한다고 공시했다. 이번 주총에서는 ▲재무제표의 승인 ▲정관의 변경 ▲이사의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의 선임 ▲이사의 보수한도 승인 등이 처리될 예정이다.

이사회 향하는 눈총 
의심받는 투명 경영

가장 주목받는 안건은 ‘정관의 변경’이다. 유한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정관의 내용을 ‘이사회의 결의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변경을 꾀하고 있다.

이는 곧 30년 만에 회장직을 수행하는 이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단 회장이라는 직책이 회사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이사진에 포함된 인물 가운데 회장이 나올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내부인 중에서 가장 유력한 회장 후보로는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꼽힌다.

1951년생인 이 의장은 유한양행 평사원 출신이다. 1978년 유한양행에 입사해 마케팅홍보담당, 경영관리본부장, 전무, 부사장 등을 거쳤고, 2015년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이 의장은 이사회 의장직을 9년째 수행 중이다. 대표이사를 맡았던 시기에는 정관에 이사회 의장 선출 규정이 따로 없어 관례상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이사회 의장직이 분리되면서, 기타비상무이사로 의장직을 3년간 맡았다.

사내 일부에서는 ‘회사 사유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원했던 유 창업주의 유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심지어 지난 17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회장직 신설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사유화 논란

글을 쓴 A씨는 인터뷰 등을 통해 차기 회장 선임 가능성을 부인했던 이 의장을 지목했다. A씨는 “정관까지 변경해 사장을 역임한 후 의장이라는 자리를 만들었고 이젠 의장 자리도 모자라 회장 자리를 만든다고 한다. 개탄스럽다”며 “힘없는 직원이지만 이렇게라도 막아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어 “현재 그(의장)는 본인 투자금이 많이 들어가 있는 자회사 유한건강생활(뉴오리진) 상장을 위해 유한양행을 통해 각종 작업을 하고 있으며 퇴직금 등으로 꾸준히 유한양행 주식 등을 매입하며 본인 입지를 키우고 있다”며 “주주총회에서 이번 안건이 통과되면 직원으로서 좌절할 일이며 유일한 박사님께서 곡할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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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