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주만 죽이는 ‘배민1플러스’ 해부

매출 오를수록 통장은 마이너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새로 도입한 배민1플러스 요금제가 자영업자들을격분하게 하고 있다. 매출이 높아질수록 배민의 배만 불린다는 것이다. 배민은 가게 운영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항변 중이지만 관련 업계에선 수익 극대화를 위한 모델이라는 말도 나온다. 쿠팡이츠도 동일한 방식의 요금제를 시행할 예정이라 애꿎은 업주들만 고통받고 있다.

배달업계 1위인 배민이 새로운 정률 수수료 기반의 ‘배민1플러스’에 외식 자영업자들에게 논란이 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면서 점주 부담은 늘어나 결국 배민만 배가 불러오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배민은 지난달 17일, 요금제를 개편하면서 자체 배달은 ‘배민배달’로, 대행사를 이용한 배달은 ‘가게배달’로 각각 이름을 바꿨다. 배민배달은 배민1플러스로 주문부터 배달까지 모두 배민이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배민배달
가게배달

배민1플러스는 기존 배민1서 제공하던 한집배달과 알뜰배달을 묶은 서비스 상품이다. 배달은 배민 자체 배달시스템인 배민라이더가 진행하는 구조다. 가게배달은 업주가 울트라콜(깃발 광고비)이나 오픈 리스트 상품에 가입해 광고로 가게를 노출한다.

배민1플러스는 배민이 부가세를 제외하고 매출의 6.8% 정률 수수료(부가세 포함 7.48%)를 가게로부터 받아 간다. 점주들은 결제수수료 1.5%~최대 3%(부가세 별도)도 부담해야 한다. 


점주들은 배민1플러스 서비스에 대해 광고비를 받으면서 중개수수료까지 높은 비율로 가져가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점주들이 가장 불만을 느끼는 것은 배달요금 선정이다. 배민1플러스는 배달료 중 2500~3300원을 지역에 따라 점주 부담액으로 나머지를 고객이 부담하도록 설정했다. 기존에 점주들은 총 배달비 6000원 중 자체적으로 배달부담 비율(가게부담과 소비자부담 비율)을 책정해 왔으나 배민1플러스 서비스 이후 배민 측에서 배달부담 비율을 선정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1만원짜리 주문에 중개이용료 680원, 배달요금 3300원(서울 기준), 결제수수료 300원 등을 합한 4280원에 부가가치세 10%를 더해 4708원이 배민배달을 이용하는 업주가 배민에 지불해야 하는 최대 요금인 셈이다.

배민1플러스 적용 이전에는 상황에 따라 총 배달비 중 일부의 배달비를 부담해 다른 가게와 차이점을 두고 고객을 모으고 배달앱 광고비용 등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이를 두고 배민 측은 “배민1플러스는 새로운 요금제가 아니다”라며 “기존 출시된 배민1의 한집배달, 알뜰배달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해 업주들이 보다 가게 운영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서비스”라고 주장했다.

정률수수료·가게 배달비 고정
외식 자영업자들 강제로 가입

이어 “해당 서비스의 중개수수료 6.8%은 론칭 이후 변경된 바 없고, 인상 없이 유지해 오고 있다”며 “수취된 배달비는 라이더들의 기본배달비와 더불어 기상 및 배달 건수 등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에 사용하고 있고 결제수수료 중 일부도 카드사에 지급되는 것이라 회사가 가져가는 이익이 많아진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6.8%라는 중개수수료율은 국내 배달 플랫폼 중 가장 저렴한 수준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자영업자는 “요기요의 수수료 12.5%와 일반적인 쿠팡이츠의 수수료 9.8%에 비해 배민의 수수료가 적은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요기요의 배달비(500~1000원)와 쿠팡이츠 기본 배달비 1764원에 비해 배민의 배달료 3300원은 과한 배달비”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배달업체를 통해 1만원짜리 음식 100그릇을 팔았다고 치면 수수료와 배달비를 다 합친 금액은 배민이 가장 비싸다”며 “수수료를 그대로 두고 가게 부담 배달비를 올린 전형적인 ‘조삼모사’”라고 반발했다.

전문가도 배민1플러스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허준영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YTN <굿모닝경제>에 출연해 “정률제는 본사 입장에서는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렇기에 정률제에 관련된 광고를 더 위쪽에 노출하는 등 유도를 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배달앱은 독점적인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독점력을 가진 기업이 정률제를 도입했을 때 결국은 아무래도 그 피해가 소비자 및 중간에 유통하는 자영업자분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민은 배민배달 외에 가게배달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가게배달은 기존의 이른바 깃발 광고로 불리는 울트라콜과 사장 직접 배달 등의 서비스다.

어떻게 
다른가?

울트라콜은 고객이 식당을 카테고리별로 찾을 때 가까운 가게로 노출될 수 있는 상품이다. 주문 수와 상관없이 월 8만원(부가세 별도) 정액제로 운영된다. 광고부터 주문까지 배민이 책임지고 가게서 배달대행을 맡기거나 가게서 직접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배달부담 비율도 가게서 정한다.

통상 가게들은 울트라콜을 5개 정도 이용한다. 달마다 부가세를 포함한 44만원의 광고비를, 하루 평균 1만4666원의 광고비를 배민에 내는 셈이다. 울트라콜의 평균 점주 부담 배달료는 1500원이다(서울 외곽 기준). 1만원짜리 음식 10건을 하루에 팔았다고 치면 10만원 매출 중 약 3만2000원을 배민에 주는 것이다.

배민1으로 같은 음식을 같은 양 팔았을 때보다 약 1만5000원정도 덜 부담하게 된다.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 등에서는 배민이 현재 가게배달을 축소하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배민서 진행 중인 프로모션이 배민1플러스를 저격해서 나온 것이며 앱 내에서 가게배달의 크기가 축소됐다는 것이다.

앞서의 자영업자는 “배민1플러스가 출시된 후 기존에 일명 깃발 광고로 사용했던 울트라콜의 비중이 확 줄었다”며 “현재 배민서 진행하는 프로모션이 배민1플러스 서비스 위주인 것과 앱 내 가게배달이 축소되면서 생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가게 배달 매출 중 60% 이상이 배민으로 들어온 배달이며 그중 배민1이 적게는 70%~90%를 차지하고 있다”며 “과거엔 20개 넘는 깃발을 꽂아둔 적도 있지만 지금은 단 4개의 깃발만 꽂아도 매출과 광고비가 비슷하게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낚시성
서비스

서울 은평구서 피자집을 운영 중이라는 한 점주도 “배민1플러스 서비스를 시행한 후 배민1의 주문 수는 울트라콜의 6배에 달한다”며 “현재 배민 앱에서 가게배달을 시키려면 배민1보다 클릭하는 횟수도 많고 잘 보이지도 않아 소비자가 이용하지 못하게 배민이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배민 측은 “가게배달과 배민배달의 비율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현재 배민배달보다 가게배달의 주문비율이 크게 높은 편”이라며 “배민이 배민배달서 배달부담 비율을 책정하는 방식은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 최적의 비율로 저희가 업주분과 소비자분들을 위해 책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배달비 책정 과정서 소비자 부담 배달비를 절감하고, 업주분들 또한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조정하고 있다”며 “가게별 상황에 맞게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다양화해 제공 중일 뿐”이라고 답했다.

배민의 정률 수수료와 깃발 광고는 이전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배민은 지난 2020년 자금력이 있는 업체가 여러 개의 울트라콜을 사용하면서 앱 화면 노출을 늘리는 이른바 깃발 꽂기 문제에 휩싸였다.


배민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20년 4월에 ‘오픈 서비스’를 도입해 시행했다. 오픈 서비스는 매출 1건당 5.8%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정률제 방식이다.

당시 배민 관계자는 “이번에 도입한 오픈 서비스 제도는 특정 업체가 주문을 독식하는 깃발꽂기가 합리적이냐, 주문 생길 때만 세계 최저 요율을 내는 수수료 체계가 합리적이냐는 고민의 결과”라며 “전 세계 주요 플랫폼들이 수수료 중심 체계로 운용되는 것은 그 체계가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공평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 절반이 넘는 52%가 광고비를 덜 내게 되고, 주로 영세업주가 이 혜택을 더 누리게 된다”고 부연했다.

깃발 광고 축소도 논란
결국 배민만 배 불리기

그러나 배민 입점 업주들이 오픈 서비스는 ‘꼼수 인상’이라며 반발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기존에는 매출 규모와 관계없이 일정 금액만 냈으나, 정률제가 적용되면 매출이 높은 가게일수록 수수료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소상공인연합회는 논평을 통해 “배달의민족이 수수료 제도를 정액제서 정률제로 바꿨다”며 “금액에 제한이 있는 정액제와 비교해 매출 규모에 따라 수수료가 기하급수로 증가하는 정률제는 소상공인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과 업주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배민은 오픈 서비스 도입 엿새 만에 새로운 요금 체계를 만들겠다며 사과의 뜻을 내비쳤다.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2020년 4월6일 입장문을 통해 “일부 업소가 광고 노출을 독식하는 깃발 꽂기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새 요금 체계를 도입했지만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진 상황 변화를 두루 살피지 못했다”며 “영세 업소와 신규 사업자일수록 비용 부담이 줄어든다는 개편 효과에만 주목하다 보니(비용 부담이) 갑자기 늘어나는 분들의 입장은 세심히 배려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즉각 (새 요금제인)오픈 서비스 개선책 마련에 나서겠다”며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분들에 대한 보호 대책을 포함해 여러 측면으로 보완할 방법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배민은 오픈 서비스를 내며 깃발 개수를 3개로 제한하는 정책도 폈지만 엿새 만에 재개했다. 배민 측은 깃발을 많이 이용했던 가게 주인들로부터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무제한 깃발 광고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쿠팡이츠도 다음 달 7일부터 출시하는 ‘스마트 요금제’도 배민1플러스와 동일한 방식이다. 스마트 요금제는 수수료 9.8%와 배달요금 2900원, 결제 수수료 3%, 부가가치세 10%를 낸다. 양사의 새 요금제는 ‘점주 부담 배달비를 낮추기 위함’이라는 공통된 목적이 있다.

계속되는 
논란들

이를 두고 한 배달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극심했을 때 배민과 쿠팡이츠가 라이더를 두고 프로모션 경쟁을 벌였다면 엔데믹으로 수요가 감소한 지금은 점주로 대상을 바꿔 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새로운 경쟁을 하는 것”이라며 “겉으로는 점주들과의 상생으로 보일 수 있지만 회사 수익 극대화에 치중한 요금제 출시”라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진짜 점주와 소비자의 부담을 완화하려고 했다면 수수료율을 인하하거나 배달수수료를 인하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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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