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OCI그룹과 한미약품 간 통합 과정이 오너가 장남의 반발로 떠들썩하다.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양 그룹의 통합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반대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통합을 주도한 그의 모친 송영숙 회장과의 갈등은 어떤 결말을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은 각각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와 OCI홀딩스 지분 10.4%를 맞교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를 OCI홀딩스가 7703억원을 들여 취득하고, OCI홀딩스 지분 10.4%는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취득하는 방식으로 양사가 통합을 결정한 것이다.
임 창업주
떠나자마자…
계약이 마무리되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이자 통합 지주사가 된다. 한미사이언스는 제약바이오 자회사를 거느리는 중간 지주사가 된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는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통합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이 내야 할 상속세는 약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미약품은 상속세 마련을 위해 OCI에 지분을 매각하면서도 임주현 사장의 경영권 유지를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2020년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아내 송영숙과 세 자녀(2남1녀) 등 오너 일가는 5400억원의 상속세를 안게 됐다. 송 회장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 2021년 서울 잠실세무서에 상속세 납부를 조건으로 총 12.29%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담보로 잡혔다.
이들은 3년간 분할 납부를 해왔지만,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한미약품은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MG새마을금고가 주요 출자자인 사모 펀드 ‘라데팡스 파트너스(이하 라데팡스)’에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여파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입할 자금을 투자받지 못하면서 한미약품은 지분매각 대상을 다시 물색했다.
라데팡스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사후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한미약품에 부회장으로 추천했을 만큼 한미약품과 신뢰관계를 유지한 운용사다. 지분매입이 불발로 돌아갔으나 지분매각 자문 역할은 유지했고, 이 과정서 OCI를 한미약품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한 장남···가처분신청까지
이종 결합 실패?···경영권 분쟁
당시 라데팡스는 임주현 사장의 경영에도 힘을 실어줬다. 이번 통합이 한미그룹의 ‘집안싸움’으로 번지게 된 이유다. 통합 후 OCI홀딩스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27.03%가 될 예정이지만,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의 지분을 합하면 17.69%에 불과하다.
임종윤 사장은 통합에 반대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는 지난 17일 한미약품과 OCI의 통합중지가처분신청을 냈다. 남동생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도 한배를 탄 형국이다. 임종윤 사장은 이날 개인회사인 코리그룹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미사이언스의 임종윤 및 임종훈은 공동으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신청서를 금일 수원지방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임종윤 사장이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서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이 형과 합류한 것은 예상 밖이라는 분위기다. 평소 송 회장 등과 사이가 원만했던 임종훈 사장은 한미약품의 우호 세력으로 평가됐다. 임종훈 사장이 임종윤 사장 편에 서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앞서 한미약품 측은 가처분신청 예정일이 지난 16일서 하루 연기된 것을 보며 임종윤 사장 측이 실제 행동에는 옮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임종훈 사장이 나서면서 판도는 바뀌었다.
임종윤 사장 측은 지난 16일 오후 가처분신청을 하려고 했다. 가처분신청은 임종윤 사장 측이 주도하되 임종훈 사장이 검토하는 방식이었다. 임종훈 사장은 당일까지도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7일에도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신청은 오후 늦은 17시께 이뤄졌다.
임종훈 사장의 결정이 늦춰지자, 임종윤 사장 측은 단독으로 가처분신청을 제출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한미약품 오너가 경영권 분쟁은 앞으로 장기화될 전망이다. 조기 종결될 수 있던 순간 임종윤과 임종훈 사장이 전격 합류하면서 장·차남 대 모녀 구도가 완성됐다.
상속세
선택지
임종윤 사장 측 가처분신청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지난 18일 <일요시사>와 통화서 “요건상 문제가 없어 가처분 인용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우리 측 법률검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 그룹사가 합의한 동반, 상생 공동 경영의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원활한 통합 절차 진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사이언스 내 위치와 지분구조 등으로 볼 때 임종윤 사장이 이번 결정을 뒤집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한미약품-OCI 통합 발표가 임종윤 사장의 입지를 불안케 했던 것일까? 2000년대 초만 해도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의 유력 후계자였다.
앞서 그는 매체와 인터뷰서 “내가 별도로 경영하는 코리그룹과 국내 기업을 통해 증권가 자금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임종윤 사장은 지난 2004년부터 북경한미약품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동사장(회장) 등을 거치며 입지를 다져왔다.
당시 북경한미약품의 연 매출이 600억원대로 성장하면서 임 사장의 경영 성과는 돋보였다. 이어 2009년 한미약품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가 나뉘기 전에 한미약품의 등기임원(사장)으로 선임됐다. 분할 이후에는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아버지 임성기 회장 대신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에 단독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2020년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 찬밥 신세에 놓였다. 모친 송 회장이 임 전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임종윤 사장의 동생 2명을 모두 한미약품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이다. 2021년 한미약품그룹은 임종훈 사장의 동생 임주현·임종훈 남매의 한미약품 사장 선임을 발표했다.
후계구도가 송 회장이 지시한 ‘삼남매 검증 후 결정’으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임종윤 사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임씨 집안 내에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서 물러났고 이사회서도 제외됐다.
OCI 집안과
가깝게 지내
모자간 갈등이 본격화된 계기는 임종윤 사장이 중국서 벌인 신사업의 부진과 이에 대한 모친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홍콩 소재에 한미사이언스 계열사 오브맘컴퍼니와 임종윤 사장 개인회사인 코리그룹 계열사 코리포항의 실패다.
임종윤 사장은 오브맘그룹을 통해 프리미엄 산후조리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산후조리원을 사들이기 위해 SG프라이빗에쿼티·플루터스에쿼티파트너스서 공동 조성하는 200억원대 사모펀드에 개인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브맘컴퍼니의 한국 법인인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매년 수십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2022년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34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코리포항의 2021년 기준 연 매출은 4700만원에 불과하다.
부진한 사업 결과에도 임종윤 사장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버클리음대 재즈작곡분야 석사과정을 마쳤다. 업계에선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시절에도 자유로운 행동으로 주변을 당황시켰다”고 했다.
그의 독특한 행보는 한미약품 경영에 관여해온 ‘여장부’ 송 회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 회장은 임 전 회장 생전에 가현문화재단 이사장, 한미사진미술관장 등의 자리서 문화사업을 이끌면서도 경영 일정 부분에 참여해왔다.
송 회장이 북경한미약품의 어린이 유산균정장제 ‘마미아이’를 직접 작명하기도 했고, 북경한미가 성장하는 과정서 중국 진출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직접 경영을 맡게 된 2020년부터는 안팎서 ‘저돌적으로 경영한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이번 OCI그룹과의 통합 역시 송 회장이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는 후문.
여장부 엄마-음대 출신 아들
갑자기 사이 벌어진 까닭은?
임종윤 사장도 송 회장이 자신을 배제했다고 했다.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2020년부터 한미약품 그룹서 밀실 경영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언급했다. 현재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이지만 대표이사가 아닌 ‘미래전략 담당’이다. 내부에선 그가 사내에 역할이 없는 상징적인 자리에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한미 오너 일가가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 OCI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다만, OCI가 산업재료용 화학제품 전문기업으로 제약업과 접점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지분을 인수할 상대 기업의 업종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타 국내 제약사와 비교해 협업 없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왔다”며 “한미약품이 헬스케어나 제약·바이오사업 경험이 없는 대기업 그룹사와 협업을 결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무래도 약국부터 시작한 임성기 전 회장과는 다른 송영숙 회장의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이 OCI를 통합 대상으로 수용한 배경에는 송 회장과 이우현 OCI 회장의 모친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의 친분이 깔려 있다고 한다. 송 회장은 OCI를 제안받고 “점잖고 믿을 수 있는 집안”이라며 통합 추진을 승인했다고 전해졌다.
송 회장과 김 이사장은 문화활동과 사회공헌활동을 함께하면서 가깝게 지낸 사이다. 송 회장은 국내서 유일한 사진미술관을 운영할 만큼 국내 예술사진계를 지원하고 있다. 이 회장이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점도 신뢰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OCI 측에서는 이 회장의 OCI홀딩스 지분율이 6.55%에 불과하고, 작은아버지 두 명의 지분이 15%에 육박하는 점도 한미약품과의 지분 일부 교환을 결정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양사가 상부상조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양사가 이번 지분거래를 ‘합병’이라는 경영 용어 대신 ‘통합’이라고 표현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제약업계에서는 ‘이종결합’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OCI는 제약·바이오산업 진출을 위해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했으나 인수 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부광약품 내부에서는 OCI가 제약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서 영업망 축소 등 부광약품 조직개편과 건강기능식품 진출 등을 추진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한판 붙은
오너 일가
또, 차세대 승계를 진행하지 못한 다른 제약사들이 향후 한미약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지분을 이종 기업에 파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OCI가 이번 통합 발표 내용대로 한미약품의 경영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미약품의 신약 연구개발(R&D) 능력 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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