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모자’ 쪼개지는 한미약품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1.25 14:43:15
  • 호수 14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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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떻게 키웠는데···골육상쟁 서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OCI그룹과 한미약품 간 통합 과정이 오너가 장남의 반발로 떠들썩하다.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양 그룹의 통합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반대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통합을 주도한 그의 모친 송영숙 회장과의 갈등은 어떤 결말을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은 각각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와 OCI홀딩스 지분 10.4%를 맞교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를 OCI홀딩스가 7703억원을 들여 취득하고, OCI홀딩스 지분 10.4%는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취득하는 방식으로 양사가 통합을 결정한 것이다. 

임 창업주
떠나자마자…

계약이 마무리되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이자 통합 지주사가 된다. 한미사이언스는 제약바이오 자회사를 거느리는 중간 지주사가 된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는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통합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이 내야 할 상속세는 약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미약품은 상속세 마련을 위해 OCI에 지분을 매각하면서도 임주현 사장의 경영권 유지를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2020년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아내 송영숙과 세 자녀(2남1녀) 등 오너 일가는 5400억원의 상속세를 안게 됐다. 송 회장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 2021년 서울 잠실세무서에 상속세 납부를 조건으로 총 12.29%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담보로 잡혔다. 


이들은 3년간 분할 납부를 해왔지만,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한미약품은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MG새마을금고가 주요 출자자인 사모 펀드 ‘라데팡스 파트너스(이하 라데팡스)’에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여파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입할 자금을 투자받지 못하면서 한미약품은 지분매각 대상을 다시 물색했다.

라데팡스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사후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한미약품에 부회장으로 추천했을 만큼 한미약품과 신뢰관계를 유지한 운용사다. 지분매입이 불발로 돌아갔으나 지분매각 자문 역할은 유지했고, 이 과정서 OCI를 한미약품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한 장남···가처분신청까지
이종 결합 실패?···경영권 분쟁

당시 라데팡스는 임주현 사장의 경영에도 힘을 실어줬다. 이번 통합이 한미그룹의 ‘집안싸움’으로 번지게 된 이유다. 통합 후 OCI홀딩스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27.03%가 될 예정이지만,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의 지분을 합하면 17.69%에 불과하다. 

임종윤 사장은 통합에 반대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는 지난 17일 한미약품과 OCI의 통합중지가처분신청을 냈다. 남동생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도 한배를 탄 형국이다. 임종윤 사장은 이날 개인회사인 코리그룹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미사이언스의 임종윤 및 임종훈은 공동으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신청서를 금일 수원지방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임종윤 사장이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서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이 형과 합류한 것은 예상 밖이라는 분위기다. 평소 송 회장 등과 사이가 원만했던 임종훈 사장은 한미약품의 우호 세력으로 평가됐다. 임종훈 사장이 임종윤 사장 편에 서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앞서 한미약품 측은 가처분신청 예정일이 지난 16일서 하루 연기된 것을 보며 임종윤 사장 측이 실제 행동에는 옮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임종훈 사장이 나서면서 판도는 바뀌었다.

임종윤 사장 측은 지난 16일 오후 가처분신청을 하려고 했다. 가처분신청은 임종윤 사장 측이 주도하되 임종훈 사장이 검토하는 방식이었다. 임종훈 사장은 당일까지도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7일에도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신청은 오후 늦은 17시께 이뤄졌다.

임종훈 사장의 결정이 늦춰지자, 임종윤 사장 측은 단독으로 가처분신청을 제출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한미약품 오너가 경영권 분쟁은 앞으로 장기화될 전망이다. 조기 종결될 수 있던 순간 임종윤과 임종훈 사장이 전격 합류하면서 장·차남 대 모녀 구도가 완성됐다.

상속세 
선택지

임종윤 사장 측 가처분신청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지난 18일 <일요시사>와 통화서 “요건상 문제가 없어 가처분 인용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우리 측 법률검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 그룹사가 합의한 동반, 상생 공동 경영의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원활한 통합 절차 진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사이언스 내 위치와 지분구조 등으로 볼 때 임종윤 사장이 이번 결정을 뒤집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한미약품-OCI 통합 발표가 임종윤 사장의 입지를 불안케 했던 것일까? 2000년대 초만 해도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의 유력 후계자였다. 

앞서 그는 매체와 인터뷰서 “내가 별도로 경영하는 코리그룹과 국내 기업을 통해 증권가 자금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임종윤 사장은 지난 2004년부터 북경한미약품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동사장(회장) 등을 거치며 입지를 다져왔다.

당시 북경한미약품의 연 매출이 600억원대로 성장하면서 임 사장의 경영 성과는 돋보였다. 이어 2009년 한미약품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가 나뉘기 전에 한미약품의 등기임원(사장)으로 선임됐다. 분할 이후에는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아버지 임성기 회장 대신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에 단독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2020년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 찬밥 신세에 놓였다. 모친 송 회장이 임 전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임종윤 사장의 동생 2명을 모두 한미약품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이다. 2021년 한미약품그룹은 임종훈 사장의 동생 임주현·임종훈 남매의 한미약품 사장 선임을 발표했다.

후계구도가 송 회장이 지시한 ‘삼남매 검증 후 결정’으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임종윤 사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임씨 집안 내에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서 물러났고 이사회서도 제외됐다.

OCI 집안과
가깝게 지내

모자간 갈등이 본격화된 계기는 임종윤 사장이 중국서 벌인 신사업의 부진과 이에 대한 모친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홍콩 소재에 한미사이언스 계열사 오브맘컴퍼니와 임종윤 사장 개인회사인 코리그룹 계열사 코리포항의 실패다.


임종윤 사장은 오브맘그룹을 통해 프리미엄 산후조리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산후조리원을 사들이기 위해 SG프라이빗에쿼티·플루터스에쿼티파트너스서 공동 조성하는 200억원대 사모펀드에 개인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브맘컴퍼니의 한국 법인인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매년 수십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2022년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34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코리포항의 2021년 기준 연 매출은 4700만원에 불과하다.

부진한 사업 결과에도 임종윤 사장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버클리음대 재즈작곡분야 석사과정을 마쳤다. 업계에선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시절에도 자유로운 행동으로 주변을 당황시켰다”고 했다.

그의 독특한 행보는 한미약품 경영에 관여해온 ‘여장부’ 송 회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 회장은 임 전 회장 생전에 가현문화재단 이사장, 한미사진미술관장 등의 자리서 문화사업을 이끌면서도 경영 일정 부분에 참여해왔다.

송 회장이 북경한미약품의 어린이 유산균정장제 ‘마미아이’를 직접 작명하기도 했고, 북경한미가 성장하는 과정서 중국 진출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직접 경영을 맡게 된 2020년부터는 안팎서 ‘저돌적으로 경영한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이번 OCI그룹과의 통합 역시 송 회장이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는 후문.

여장부 엄마-음대 출신 아들
갑자기 사이 벌어진 까닭은?


임종윤 사장도 송 회장이 자신을 배제했다고 했다.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2020년부터 한미약품 그룹서 밀실 경영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언급했다. 현재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이지만 대표이사가 아닌 ‘미래전략 담당’이다. 내부에선 그가 사내에 역할이 없는 상징적인 자리에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한미 오너 일가가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 OCI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다만, OCI가 산업재료용 화학제품 전문기업으로 제약업과 접점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지분을 인수할 상대 기업의 업종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타 국내 제약사와 비교해 협업 없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왔다”며 “한미약품이 헬스케어나 제약·바이오사업 경험이 없는 대기업 그룹사와 협업을 결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무래도 약국부터 시작한 임성기 전 회장과는 다른 송영숙 회장의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이 OCI를 통합 대상으로 수용한 배경에는 송 회장과 이우현 OCI 회장의 모친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의 친분이 깔려 있다고 한다. 송 회장은 OCI를 제안받고 “점잖고 믿을 수 있는 집안”이라며 통합 추진을 승인했다고 전해졌다.

송 회장과 김 이사장은 문화활동과 사회공헌활동을 함께하면서 가깝게 지낸 사이다. 송 회장은 국내서 유일한 사진미술관을 운영할 만큼 국내 예술사진계를 지원하고 있다. 이 회장이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점도 신뢰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OCI 측에서는 이 회장의 OCI홀딩스 지분율이 6.55%에 불과하고, 작은아버지 두 명의 지분이 15%에 육박하는 점도 한미약품과의 지분 일부 교환을 결정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양사가 상부상조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양사가 이번 지분거래를 ‘합병’이라는 경영 용어 대신 ‘통합’이라고 표현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제약업계에서는 ‘이종결합’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OCI는 제약·바이오산업 진출을 위해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했으나 인수 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부광약품 내부에서는 OCI가 제약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서 영업망 축소 등 부광약품 조직개편과 건강기능식품 진출 등을 추진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한판 붙은 
오너 일가

또, 차세대 승계를 진행하지 못한 다른 제약사들이 향후 한미약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지분을 이종 기업에 파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OCI가 이번 통합 발표 내용대로 한미약품의 경영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미약품의 신약 연구개발(R&D) 능력 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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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