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61)갈수록 멀어지는 시간의 경계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12.18 08:12:47
  • 호수 14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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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배우라먼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쥬만….” 

“아짐씨야말로 착각 마시우.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는 짐짓 멋지고 낭만스레 연기를 해도, 현실에서는 얼마나 영악하고 진짜 외계인처럼 사는지 모르시는구먼.” 

“실없는 소리 그만하시라요.” 

나는 탁자 위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아까 얘기로 돌아가죠. 물론 분단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많이 달라졌겠지만… 제가 볼 땐 북한 분들이 외국인만큼이나 멀리 느껴지진 않는데, 왜 남한 사람들이 외계인 같아 보였는지요?”


공산주의 나무

내가 말했다.

“글쎄, 뭐랄까…. 한 가지 예를 들어, 자유로움은 좋지만서두 너무 지나치니까네 방종스러워 보이는 면도 있습데다. 물론 자유가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어느 정도 절제의 미덕이란 것두 있으니깐…. 거 왜 유명하신 도올 선생님두 참된 자유의 가치는 방종이 아니라 자율에 있다고 강조하시더만요.”

“그게 참 쉬운 일은 아니죠.”

“그리구 역사에 대한 견해가 너무 달라서리 머릿골 속이 뱅뱅 돈다니깐유. 내가 진짜 세상에 살고 있나, 허공 땅바닥을 딛고 서 있나 막 헷갈리기두 하구….” 

“아마 세뇌가 풀리는 과정일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시라우요.” 

피에로 씨가 우스개 투로 말했다.


“우린 어려서부터 종교는 사람을 세뇌시켜서리 잡아먹는 마귀라고 배웠는데, 이 한국 땅엔 무슨 종교가 그리두 많은지 원…. 특히나 교회는 너무 크고 너무 많아서리 배꼽이 배보다 커다란 느낌을 주더래요.” 

“나처럼 교회 안 나가고 마음속에 신을 모시는 사람도 있다우. 스트레이트로 하나님과 컨택하는 거죠. 예스 아이 캔!”

피에로씨의 너스레에 탈북 여인이 말했다. 

“보시라요, 꼭 외계인 말 같아서리 알아묵질 못 헌다니까네. 웬 꼬부랑 영어는 그리도 많이 쓰는지 몰러. 우리말로 해도 겨우 알아챌둥 말둥 한데….” 

“고향 떠난 덕분에 말 고생 좀 하시겠네요.” 

“그러게 말예요. 이젠 죽도 밥도 아닌 짬뽕 말투가 됐당게요.”

“하하.”

“호호.”

“하나원에서 나온 후엔 어떻게 되나요?”

“새 사회에 적응키 위한 홀로서기가 시작되는 거이쥬. 공산주의 나무에서 자본주의 나무로!”

“나무는 어디에 심어도 생명의 나무로 자라겠죠.” 

“사람은 나무가 아니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슴메.” 


“그렇겠죠. 나무 또한 토양이 바뀌면 말라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낙오해서리 고향 땅으루 되돌아가고파 하는 사람도 있다우.” 

분단 이후 오랜 세월 흘러 사상 달라져 
탈북민 바라보는 대한민국 색안경 벗어야

“지옥에서 탈출해 내려왔다가 다시 지옥으로 가겠다는 건 여기가 지옥보다 더 어렵다는 얘긴가? 하기사 여기서 태어나 자란 사람도 괴로운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세상이니까.” 

피에로씨가 한 마디 하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슴다. 본인 자신에게 해로운 결함을 못 고치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네.” 


“여러 가지 지원도 해주죠?”

“네. 일단 대한민국 국민으로 주민등록이 되고 나면 공공임대 주택을 알선해 주고 직업훈련을 시켜 취업도 주선해 줍네다. 정착 지원금이라구 해서 몇 천만원을 받고, 사회 배출금 6개월간은 생계비가 지원됩네다. 그 이후엔 자활사업 같은 일에 참여해야 되지우. 청소년인 경우엔 한겨레 학교라는 곳에서 공부하게 된다우. 우리 아들내미두 거길 다닙네다. 그런데 고맙긴 하면서리 좀 획일적으루 대충대충 때워 넘긴다는 불만도 없잖아 있수다레.”

“그건 꿀꺽 삼겨 버리슈. 한국 학교 학생들도 개판 오분 전이라고들 하니깐요.” 

피에로씨의 비평이었다.

“그런데… 북한에서 탈출해 내려오셨는데, 혹시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세요?”

“왜 없갔시요. 허지만 바로 여기 한국 사회에서 겪어 넘기는 무섬증 같은 것 땜에 북조선 간첩의 독침 따윈 저절로 잊어버리게 됨메. 호홋, 고건 농담이구 경찰 분들께서 5년 동안 신변 보호를 해주시긴 함다그레.” 

“그럼 마지막으로… 이곳 남한에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주위에서 들은 얘기까지 합쳐 두루 들려 주세요.”

“여러 가지가 있슴당만, 남한 사람의 색안경도 그 중 하나임다. 호기심이 지나쳐 사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면,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짜한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들은 가시 바늘에 마음을 콕콕 찌리는 것 같디요. 심지어 탈북민을 마치 빌어먹으려 내려온 거렁뱅이 취급하는 잘난 사람까지 있슴당. 호호, 게사니가 웃을 일이디요.”

그녀의 얼굴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게사니가 뭐죠?”

“거위를 북에선 그렇게 부름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거지 취급한다는 게 에나인가요?”

“엥? 에나가 뭠까?”

“제 고향인 경상도 진주에서만 쓰는 말인데요, 진짜 또는 참말이란 뜻이랍니다. 사실 혹은 진실이랄까요.” 

“진짜 정말 북한 사투리보다 더 희한한 말이로군. 거렁뱅이란 소리가 에나가?”

피에로 씨가 아주머니를 보며 농담조로 말했다. 

“간혹 그런 사람도 있더란 얘기디요 뭐. 그럴 때면 고향이 그리워 피울음이 나오고, 그 지옥 바닥에 남은 가족들이 걱정스러워 밤잠을 설친답네다.” 

“아, 도대체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통일이 안 된단 말인가?”

보복 두려움

피에로 씨가 영탄조로 읊조렸다.

“거의 80여년 동안 남북의 온 민중이 가슴속으로 물어 온 대답 없는 질문…. 탈북민들께서 통일의 마중물 역할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 여사가 다시 와서 배웅해 주었다.

그런데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이던 아가씨는 종내 보이지 않았다.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쉬움을 삼키며 문 밖으로 나섰다. 피에로씨 또한 헛기침이나 하며 절뚝절뚝 따라왔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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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