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순방 예산 내리는 민생 예산 대해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0.30 09:24:57
  • 호수 14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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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죽어라 하는데 국격 타령만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서민이 울고 있다. 전세 사기, 저출산, 고금리 시대를 피할 수 없지만, 그 눈물이 의미 없이 사라진다. 윤석열정부는 “민생 현장을 살피자”고 말하지만, 지갑서 나오는 돈은 다른 곳으로 들어간다. 사는 것은 결국 각자도생이라지만, 기본적으로 받았던 혜택마저 뺏기는 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민생 현장을 직접 살피라고 지시하며 “나부터 어려운 국민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고 밝혔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윤 대통령이 “용산의 비서실장부터 수석, 비서관, 그리고 행정관까지 모든 참모는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라”고 말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

김 수석은 오찬 소식을 알리면서 “지금 어려운 국민, 좌절하는 청년들이 너무 많다. 당과 대통령실은 국민의 삶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챙겨야 한다. 이를 위해 당정 간 정책 소통을 더 긴밀히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 결의 말을 했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서 한 총리는 “각 부처는 민생안정을 위해 고물가·고금리와 전쟁한다는 각오로 임해주기를 바란다”며 민생과 현장 행정을 강조했다.

그는 “나부터 늘 현장서 뛰겠다. 직급에 상관없이 모든 공직자가 현장으로 나가달라. 장차관뿐만 아니라 실‧국장, 실무자 모두가 국민을 직접 만나고 각자 위치서 무엇을 해야 할지 현장서 느끼고 고민하라”며 “위기는 공평하지 않아 사회적 약자에게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특히 2030 청년층과 서민층 국민들께서 힘든 여건 속에 있다. 이분들이 삶의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계적인 고물가·고금리, 국제유가 변동 등을 언급하며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 일상에 많은 부담을 준다. 민생을 보듬고 헤아리는 일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이제는 내용이다. 국민이 아파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 막힌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확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라며 “그간 추진해온 내용에 반성할 것은 없는지 다시 점검하는 기회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민생을 살피기 위해 전력을 다 쏟겠다는 의미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마음이 가는 곳에 돈을 쓴다는 말이 있는데, 윤정부가 돈을 쓰는 곳은 민생이 아니다.

실제로 내년도 예산안은 근래 가장 작은 폭으로 증가한 채 편성됐다. 내년 예산 총지출이 전년 대비 2.8%(18조2000억원) 증가한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이는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20년 만에 최소 증가 폭이다. 지난 6월 말, 윤 대통령이 주재한 재정전략 회의서 논의된 긴축안보다도 증가율이 낮다.

당시 4% 중반대 증가율이 반영된 예산안이 오르자,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에 내년도 예산을 다시 짜 올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는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라고 말한 윤 대통령의 회의 발언에 따라 결정된 조치다. 이 요구안으로 민생 예산이 재편성된 것이다.

“민생 살피라” 허공 속 메아리로
어린이집, 소상공인 예산 등 삭감

결국 윤정부 출범 후 계속해서 강조한 재정긴축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지는 것이다. 윤 대통령, 김 수석, 한 총리가 입 모아 외친 “민생을 살피라”는 말은 허공 속의 메아리가 된 셈이다.


대표적으로 예산이 삭감된 분야는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 예산 ▲어린이집 예산 ▲지역 소상공인 예산 ▲사회적기업 예산 ▲협동조합 예산 ▲사회서비스원 예산이다.

이 중에서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 예산은 전액 삭감돼, 중증장애인을 지원하는 187명이 당장 내년부터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해당 예산은 총 23억1000만원이었다. 이 사업은 중증장애인이 취업 의욕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대표적으로 자조 모임과 상담 활동이 있는데, 모임과 상담 활동은 동료 지원활동가로 부른다.

지난 6월30일 기준 187명의 중증장애인이 동료 지원가로 활동하고 있고, 이들은 내년부터 실직자가 될 전망이다. 이런 위기에 동료 지원가 10명이 지난달 18일 오전 7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11층 로비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가 1시간40분 만에 전원 연행됐다.

고용노동부는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예산 삭감의 이유에 대해 “다양한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연례적인 집행이 부진하고 복지부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내 동료 상담과 유사 중복해 사업 폐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두고 동료 지원가들은 “예산 부진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코로나19로 참여자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며, 동료 지원가와 동료 상담가는 이름만 비슷할 뿐 하는 업무가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서 점거 농성을 벌인 동료 지원가는 노래를 부르며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 폐지 철회와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점거 농성 1시간40분 만에 참여자들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이내 종료됐다.

요구안
재편성

저출산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 어린이집 예산이 삭감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분야 예산을 올해보다 15% 삭감된 417억원으로, 작년에 이어 두 자릿수 삭감률을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0.78명 출산율 충격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인 어린이집 예산을 삭감하는 건가”라고 직격했다.

강 대변인은 “그러면서 내놓은 변명이 공공보육시설의 이용률을 늘리겠다는 것인데, 예산을 이렇게나 칼질해놓고 이게 말이 되느냐? 특히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 맡길 어린이집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가정의 양육 부담 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어차피 아이들이 갈수록 줄어드니 국공립 어린이집을 충분히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니냐”며 “여전히 우리나라의 저출산 대응 예산과 가족 지원 예산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윤정부는 말로만 ‘국민 체감’ ‘과감한 대책’을 외치지 말고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위한 전폭적인 예산 지원에 나서라”고 덧붙였다.

윤정부는 지역 소상공인 예산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도 전액 삭감을 재추진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역사랑상품권 사업을 제외한 내년도 예산 요구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지난해 행안부는 ‘2023년 예산안’ 편성 과정서 4700억원 상당의 지역사랑 상품권 예산을 요구했고, 기재부는 이를 전액 삭감해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국회는 여야 대립 끝에 전년보다 3000억원가량 줄어든 3525억원을 최종 예산으로 편성했다.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의 전액 삭감을 재추진한다는 소식에 지역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은 우려 목소리를 제기했다. 한 지역 자영업자는 “지역화폐는 사용기간이 3개월로 한정돼있는데, 시골 노인까지도 필요한 물품을 골라 구매할 수 있고 시골 식당, 슈퍼 등 매출이 활성화되고 부가가치세는 정부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말로만 
체감 정책

지역화폐 소비자들도 반발하긴 마찬가지였다. 한 지역화폐 소비자는 “학원비나 병원비, 장보기 등에 연 200만원을 알차게 활용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진다니 걱정”이라며 “소비자 입장서 10%를 환급받을 수 있는 게 정말 클 수밖에 없는데, 이게 없어지면 혜택 좋은 신용카드를 찾아봐야 하나 고민”이라고 전했다.


사회서비스원은 공적 돌봄 강화를 목표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사회서비스의 질을 향상하는 목적으로 설치된 기관이다. 시장·도지사가 설립해 정부 지원으로 운영하는데 2021년 관련 법이 제정되면서 경북을 제외한 16개 광역시‧도에 설치돼있다.

그러나 이런 공적 돌봄 서비스가 사라질 수도 있다. 윤정부가 민간 돌봄 기관의 역할과 지원을 강조하면서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으로 이 같은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서 보건복지부가 요구한 사회서비스원 운영 예산 중 지자체보조금 148억34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복지부는 최근 ‘2023년 시도 사회서비스원 표준운영지침Ⅱ’를 개정해 사회서비스원의 공적 역할과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조항을 삭제했다.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지부장은 “보육환경 구축에 힘쓰겠다면서 서울 사회서비스원의 송파든든어린이집은 민간에 넘어갔다. 대책 없는 민영화에 공공보육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의 일터가 갑자기 사라졌고 고용불안과 사기 저하로 올해만 직원 60명 이상이 퇴사했다”고 주장했다.

사회서비스원에서 제공하는 전문성 있는 돌봄 서비스를 앞으로 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이용자도 있었다. 한 학부모는 “오랫동안 한곳에서 경험을 축적한 선생님은 어느 민간 어린이집서도 찾아 보기 힘들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안정된 고용시스템은 어린이집의 질을 높이는 핵심 기능”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년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사회적기업의 인력 구조조정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취약계층의 일자리 감소와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조직 축소 등 지역경제의 생태계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길거리 나앉게 되는 현실
증액 항목은 해외순방뿐?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사회에 공헌, 생산 및 판매 등 영업 활동을 하는 기업을 말한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에 따라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으면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기업과는 달리 대다수를 취약계층으로 채용한다.

정부는 내년도 사회적경제 지원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직원 인건비 등 지원에 쓰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정부의 판단이다.

고용노동부가 사회적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사회적기업 예산안은 786억2400만원으로, 올해 예산 2021억9400만원과 비교하면 60% 삭감된 규모다. 특히 내년부터 기업 직원 인건비 등에 대한 인건비는 0원으로 전액 삭감됐다.

협동조합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91%로 줄었다. 진선미 사회적경제 위원장은 “지난 20년 동안 정권을 떠나 사회적경제 관련법을 제정하는 등 사회적경제 육성을 위해 노력해왔다. 제도 사각지대서 사회적경제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내년도 사회적경제 예산안 원상 복구를 강력 촉구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지난 4월에 열린 유엔총회서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한 사회적경제 활성화 결의안’이 채택됐다. 사회적경제 예산을 삭감하는 일은 세계적 흐름의 역행이자 민생 예산의 삭감이다. 사회적경제 재정 지원은 단순 보조금이 아닌 사회적 투자”라고 강조했다.

예산이 삭감된 분야가 있다면 증액된 분야도 있다. 바로 윤 대통령의 순방 예산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긴축 재정’을 말하면서 순방 예산은 추가로 예비비 329억원을 가져갔다며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지난 11일 서면 논평을 내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국민을 진정 사랑한다면 선거에 지더라도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긴축 재정’을 부르짖는 윤 대통령이 올해 249억원의 순방 예산을 모두 탕진하고 지난달에 추가로 예비비 329억원을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흐름 역행”

이어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라며 각종 예산을 삭감했지만 정작 대통령은 순방 예산을 물 쓰듯이 펑펑 쓰다니 기가 막힌다. 대통령의 안일함이냐, 아니면 특권의식이냐?”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대통령 직속 기구들도 고급 음식점서 회의를 열며 식사비만 11억원을 펑펑 썼다”며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국민과 다르다는 몸에 밴 특권의식의 발로로 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맡겨 놓은 곳간을 본인 소유로 착각하고 있느냐”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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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