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몸통’ 김영홍 검찰 놔두는 이유

“필리핀서 대포폰 쥐고 호의호식”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역대급 펀드 사기로 불린 ‘라임 사태’ 이슈가 다시 등장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재조사를 언급하면서부터다. 아직 잡히지 않은 ‘진짜 몸통’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에 관한 검찰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필리핀으로 도주한 그는 호화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포폰 여러 대로 측근들과 소통하다 보니 추적도 쉽지 않다. 제보자와 피해자들은 김 회장을 잡지 못하면 라임 사태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은 1조6000억원대 환매 중단 사건인 라임 펀드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사건 핵심 인물이던 청와대 전 행정관과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등은 김영홍 회장의 ‘일꾼’에 불과했다. 검찰은 필리핀 당국과 김영홍 회장의 행방을 쫓고 있으나 구체적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최측근들과
소통 이어가

라임의 돈은 2018년부터 움직였다. 수조원대 자금으로 리스크가 큰 투자가 시작된 것이다. 먼저 라임은 ‘플루토 FI D-1호’를 통해 메트로폴리탄 계열에 투자했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당시 투자가 이뤄진 규모는 약 3000억원에 달한다.

이 돈은 김영홍 회장의 메트로폴리탄 관계사 14곳과 필리핀 리조트, 파주 프로방스마을 인수, 서울 서초구 오피스텔 개발, 맥주 수입 사업, 라임이 투자한 회사들의 전환사채(CB)를 다시 매입하는 데도 쓰였다. 투자금 중 80%에 해당하는 2300억원이 회수 불가 상태가 됐다.

부실이 확정되자 이 펀드는 5500억원이라는 라임 펀드 중 가장 큰 손실을 냈다. 그러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영홍 회장은 라임 투자금 수천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60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 회장의 정체가 뭐였길래 수많은 사람이 믿고 투자를 진행했을까?

김영홍 회장은 경남종합건설 사주이자 과거 <동남일보> 회장, 마산 지역 성안백화점 실질 사주, 경남종합금융 대주주였던 김인태 회장의 장남이다. 김인태 회장은 문민정부의 정치 자금과 관련해 여러 차례 도마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1999년 2월 국회 IMF 환란특위 청문회서 자민련 김칠환 의원은 “경남종금 대주주인 김 회장이 1992년 대선 자금 수백억원을 지원했다”고 했다. 5년간 도피생활을 하던 김인태 회장은 2년형을 살고 2004년 출소했다. 수배 중이던 당시 미국 애틀랜타에서는 장남의 명의로 고급 한식당을 매입한 전력도 있다.

김인태 회장의 셋째 아들이자, 김영홍 회장의 동생인 김모씨는 최근까지 국회의원의 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이처럼 김영홍 회장은 금융권과는 동떨어진 건설업계 출신이었다. 배우 신은경의 전 남편인 김모 전 테트라 사장과의 연으로 2017년 말에 테트라 건설의 시행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사무실을 서울 역삼동의 라움아트센터 바로 옆에 두고, 라움 부회장을 겸했다.

김영홍 회장은 2018년 김 사장의 소개로 라임 이 전 부사장을 만났다. 같은 해 메트로폴리탄을 설립하고 사무실은 라임자산운용이 있는 IFC 건물에 냈다.

해외 곳곳으로 이동한 자금…리조트 인수에 활용
한국 지우고 중국 국적 획득? “추적 더 어려워”


메트로폴리탄은 3000억원 운용을 위해 앞서 말한 관계사 14개를 만들었다. 이 전 부사장은 이 시기에 대신증권 1년 후배인 채모씨를 김 회장에게 소개했다. 이후 채씨는 메트로폴리탄 관계사 중 8개사의 대표이사 명함을 팠다. 김영홍 회장은 증권업계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이 전 부사장을 통해 인맥을 넓혀갔다.

이후 김영홍 회장은 메트로폴리탄의 관계사에 모두 지인을 앉혔다. 이 전 부사장과 김 전 회장이 구속되면서 김영홍 회장도 잡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그러나 그는 메트로폴리탄이 운영했던 금액 3000억원 중 300억원으로 필리핀 세부 막탄 섬에 위치한 이슬라리조트를 인수했다.

현재 이슬라리조트와 카지노 업장은 휴업 중이지만 ‘아바타 온라인 카지노’를 통해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7년 기준, 이 리조트의 온라인 카지노 매출은 2400억원이다.

검찰은 온라인 카지노 매출 중 일부가 김영홍 회장의 생활비로 쓰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세부서 마닐라, 클락 등 여러 지역서 봤다는 소문만 무성하다”며 “지난해까지 본인이 인수한 이슬라리조트에 머물렀던 건 확실하지만 지금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6월 말부터 이 카지노와 계약한 국내 코인업체에 관한 수사에 들어갔다. 코인업체는 발행한 코인을 카지노서 운영하는 온라인 도박사이트서 칩으로 쓸 수 있도록 환전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인은 이 코인업체가 “라임 사태 주범인 김영홍과 공모해 이슬라 리조트의 온라인 카지노를 통해 한국서 코인을 발행하고 투자금을 편취했다”며 “CCC 코인이 불법 자금을 세탁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됐을 수 있다”고 했다. 코인을 통해 칩을 구매할 경우 도박 자금 거래 추적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김영홍 회장의 불법 아바타 카지노 운영 사실은 측근 A씨가 수사기관에 붙잡히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김영홍 회장과 함께 이 카지노를 운영했던 A씨는 지난해 도박공간개설죄로 서울남부지법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건설업 출신
금융 발 들여

검찰 수사 결과 2018년부터 2022년 초까지 카지노서 불법 도박사이트를 통해 벌어들인 범죄수익은 775억원에 달한다. 김영홍 회장 역시 도박 공간을 개설한 혐의를 받았지만 현재 해외 도피 중인 상태라 기소 중지 처분을 받았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계약서에 따르면 해당 코인업체는 2021년 7월 설립 직후 이슬라카지노와 계약을 맺었다. 업체가 발행한 코인 10억개를 이슬라카지노가 운영하는 온라인 도박사이트서 칩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CCC 코인 백서에 따르면 회사 재무담당자(CFO)는 2015년 이슬라카지노 개발을 담당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고 회사의 고문 역시 카지노를 운영하는 법인의 대표로 등록됐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라임 사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영홍 회장은 현재도 그의 측근들과 대포폰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이슬라 리조트 인수 과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의 전화가 오는 번호가 다 다르다. 검찰과 인터폴도 그래서 추적이 불가하다”며 “하루에 여러 대의 핸드폰을 쓰고 버리고 새로 사기를 반복하니 연락을 취할 방법은 무한하다”고 주장했다.


김영홍 회장의 최측근인 한 관계자도 “번호가 다 달랐다는 건 사실이다. 지난해 말에 텔레그램으로 연락이 온 게 전부”라며 “그 이후로는 ‘잘 지내냐’는 연락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영홍 회장을 출국 전 잡을 수 없었던 이유로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폐지된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라임 사태 수사 이전인 금융당국 조사에서부터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라임 펀드 대규모 환매 중단 시기는 2019년 10월이다. 회계법인에 부실 관련 실사를 의뢰한 라임은 4개월 후 구체적인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계획 범죄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국회를 통해 공개된 보고서는 요약본이다. 원본 소유권은 라임에게 있어 공식적으로 공개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은 라임 실사 보고서 원본을 수사 과정서 입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에 따르면 라임의 자(子)펀드 173개 중 실사가 진행된 펀드는 157개뿐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자금 흐름 감지와 라임 사태를 촉발한 ‘IIG펀드 거래 손실’ 배경은 누락됐다. 이 밖에도 라임의 아바타운용사인 라움자산운용과 자금 운반 조직도에 속해 있는 쌍방울, 필룩스 등 코스닥 기업 등에 관한 실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라임 사태에 밝은 한 회계사는 “구조부터 불법적이다. 환매 불가능 구조로 설정돼있는데 펀드 판매가 가능해질 수 있게 방치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크다.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펀드가 아닌 특정 단체나 인물에게 자금이 이동하게 되는 기이한 펀드”라고 분석했다.

금감원은 지난 8월24일 라임이 투자한 5개 회사에서 2000억원 규모의 횡령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처음 발표했다. 이 중 약 300억원은 김영홍 회장이 유용했다고 밝혔다. 유용자금 중 276억원은 2018년 12월 필리핀 이슬라리조트를 차명으로 매입하는 데 썼고, 25억원은 각각 장모씨와 전모씨에게 건네진 정황이 있다고 했다.

장씨는 민노총 출신으로, 이재명의 외곽 조직인 ‘기본경제특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고 전씨는 민주당 강원도당 후원회장을 지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2000억원의 횡령 정황을 발견하고 검찰에 통보했다”며 “해당 자금이 어떻게 악용됐는지는 수사당국이 확인해야 할 수사의 영역”이라고 했다.

검찰은 금감원 발표 이전인 3년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20년 1월부터 고소가 접수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슬라리조트와 채권 추심을 벌이던 고소인은 당시 김영홍 회장을 특경법상 횡령·배임과 자본시장법 위반, 도박개장죄, 범죄수익은닉죄 등으로, 장씨와 전씨는 강제집행면탈죄로 수차례 고소했다.

행방 묘연? ‘아바타 카지노’ 수천억 생활비 마련
수사 4년 “현금화하고도 남을 시간…진상규명 끝”

고소인은 “라임 돈 300억원이 김영홍 개인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 자금이 민노총 장씨, 민주당 강원도당 후원회장 전씨 등에게 건네진 정황과 이들의 인적사항, 자금흐름도 및 차명계좌 등 증거자료를 모두 제출했지만 전혀 수사가 되지 않았다”면서 “이 정부 들어 이제야 계좌를 들여다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영홍 사건의 경우 2020년 11월 남부지검으로 이관됐는데, 3년간 손을 대지 않아 지난해 5월 참고인 중지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영홍 회장은 2015년 한국 국적이 말소됐다. 그의 최측근들에 따르면 현재 그의 국적은 중국이다. 그러나 당시 남부지검은 그가 외국인 신분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캄보디아 해외 은닉 자산은 인지하고 있었다.

금감원서 처음 발표한 횡령 금액에는 캄보디아 리조트 개발사업에 투자된 1억달러(1279억원)도 포함돼있다. 라임은 2018년 10월 상장사 S사와 공동으로 캄보디아 리조트 개발사업을 진행했는데, S사 임원 등이 투자금을 조세피난처 소재 법인 등에 이체해 횡령한 정황이 확인됐다.

라임은 이때 자신의 아바타운용사이자, 김영홍 회장이 대주주인 라움자산운용에 주문자위탁생산(OEM) 펀드 설정을 맡겼다.

검찰은 이 자료도 3년 전부터 확보하고 있었다. 2020년 10월 해당 사업의 이해관계자가 라임이 캄보디아 부동산 투자 명목으로 홍콩 소재 특별목적회사(SPV)인 위 탈렌트(We Talent)에 1억달러를 송금한 기록 등 횡령 내역을 제보했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20쪽에 달하는 ‘해외 은닉자산 제보서’에 김영홍 회장, S사 대표이사 등 피제보인 11명의 인적사항과 횡령·배임 혐의에 대한 S사 공시자료 및 위 탈렌트 홍콩 주주명부 등 20개 증거자료도 함께 첨부하며 “위 탈렌트로부터 제3국으로 빠져나간 돈의 흐름을 쫓아가며 조사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적었다.

김영홍 회장의 측근들과 제보자들은 금감원의 발표가 “뒷북”이라고 강조한다.

한 제보자는 “이미 검찰이 다 입수한 자료고 직접적이지도 않은 ‘이재명 라인’을 부각해 총선 직전 이목을 끌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고소인도 “굳이 저렇게 발표해야 하나 싶다. 금감원 발표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에 명분이 만들어졌지만 또 정치권에 대한 수사만 할 것 같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봐주기?
의지 제로

라임 수사팀 멤버였던 한 법조계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당시 라임 사태를 검찰이 덮어줬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 금융당국으로부터 넘겨받은 모든 자료를 수사했다”며 “‘김봉현 편지’와 정치권 등 여러 의혹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놓쳤을 수는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1조6000억원대 환매 중단과 관련된 모든 계좌가 파나마, 동남아 지역서 끊긴다. 4년이면 이미 돈이 현금화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며 “현재의 합수단이 모든 자금흐름을 추적할 수 있다? 말도 안 된다. 솔직히 말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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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