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6년’ 남은 상흔들

파격 발탁과 초라한 퇴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중교통으로 대법원에 입성했던 대법원장이 관용차를 타고 떠났다. 기대를 받았던 취임 때와 달리 퇴임은 비판으로 가득하다. 대법원장은 6년의 업적을 항변해보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를 <일요시사>가 되짚어봤다.

“31년5개월 동안 사실심(1·2심) 법정서 당사자와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이라며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이번에 보여드릴 것으로 기대한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이후 한 발언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김 전 대법원장의 ‘수준’에 관한 냉혹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큰 기대
더 큰 실망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법원장 지명은 ‘파격’ 그 자체였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일선 법원장의 대법원장 직행은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도 큰 파장을 낳았다. 김 전 대법원장의 발탁은 문재인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잇따라 승진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깜짝 인사’로 꼽혔다.

지난달 24일 김 전 대법원장은 6년 임기를 마치고 대법원을 떠났다. 앞서 22일에는 서울 서초구 대법원서 퇴임식을 가졌다. 이날 퇴임식서 김 전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좋은 재판의 믿음은 퇴임을 하는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변한 적이 없다”며 “좋은 재판은 국민이 이를 체감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므로 국민이 재판서 지연된 정의로 고통받는다면 우리가 추구해온 가치도 빛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법원장이 ‘지연된 정의’를 언급한 것과는 달리 ‘김명수 코트’는 6년 내내 ‘재판 지연’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지난달 21일 대법원이 발간한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민사 본안사건 1심 합의부 평균 처리 기간은 420.1일로 집계됐다. 2021년도(364.1일)과 비교하면 60일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다시 말해 민사소송 사건의 1심 판결을 받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는 의미다.

2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등법원 항소심은 332.7일, 지방법원 항소심은 324.2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각각 29일, 24일 늘어난 수치다.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이 꼽힌다. 김 전 대법원장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71년 만에 폐지했다. 법원장 투표제는 법관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선정하는 방식이다. 김 전 대법원장이 추진한 제도다. 

대법관 안 거치고 바로 대법원장
사법 농단 수습할 적임자로 기대

김 전 대법원장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후보제가 재판 지연을 야기했다는 주장에 반발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서 “법관이라는 직을 수행하는 사람이 승진이라는 제도가 있을 때는 성심을 다하고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장 후보제 역시 재판 지연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법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 코로나19 팬데믹이 재판 지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사법부 정치화’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크다. 김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으로 지명됐을 당시 가장 많이 언급된 경력이 우리법연구회 회장,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이었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5공화국서 임명된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430여명이 서명운동을 진행한 ‘제2차 사법파동’ 이후 설립된 법관 모임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우리법연구회의 후신 격인 단체로 <유엔 국제인권법 매뉴얼>의 한국어판을 발간한 바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드러나는 데 영향을 미친 단체기도 하다. 대법원장의 권한과 관련한 일선 판사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려다 행사를 축소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이후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만들어졌다. 

김 전 대법원장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두 단체의 수장을 역임한 것이다. 실제 김 전 대법원장 취임 이후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출신이 법원 요직을 장악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야심 찬 시도
안 좋은 결과

‘양승태 코트’서 불거진 사법 농단 의혹을 해소하고 사법부를 정상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코드 인사 논란도 계속됐다. 김 전 대법원장은 취임 후 첫 정기인사서 우리법연구회 출신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임명했다. 민 전 법원장은 2년 임기라는 관례를 깨고 3년 동안 재임했다.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알려진 김미리 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는 2018년 2월부터 4년간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한 법원에 3년, 한 재판부에 2년 근무하는 것이 관례로 알려져 있다. 김 부장판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입시 비리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에 재판장 또는 주심판사로 참여했다.

재판부의 판결을 두고 정치 프레임을 씌우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정 정당의 극렬 지지층이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에 반발해 판사를 공격하는 일이 수차례 발생했다. 독립성과 중립성이라는 사법부 특성이 김명수 코트 들어 색이 바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법원장이 코드 인사 등으로 사법부 편향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재판부의 판단을 불신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김 전 대법원장의 임기가 끝나고 하루 뒤인 지난달 25일 “지난 6년간 길게만 느껴졌던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는 어제 임기가 종료되면서 막을 내렸다”며 “공정과 중립이 생명인 법원은 신뢰를 잃었고 사법부 흑역사로 일컬어진 세월이었다”고 혹평했다. 

이어 “사법부 변화와 개혁의 상징이라는 호기로운 선언과는 달리 6년이 지난 지금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는 재판이 아니라 정치를 했다는 비판만 남았고 재판 지연의 상징이 됐다”며 “자신이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 판사 모임 출신을 요직에 앉히는 코드 인사, 대법관 인사 개입 논란 등 편향과 무능이 김명수 체제의 수식어였다”고 비판했였다. 


개인도
논란 많아

김 전 대법원장에 대한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 전 대법원장 개인에 대한 문제도 산적해 있다. 특히 일부 문제는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구속된 전임 대법원장처럼 ‘제2의 양승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특히 김 전 대법원장은 논란의 이면에 ‘거짓말’이 있는 터라 더욱 체면을 구긴 상태다. 

2021년 2월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사법 농단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던 임성근 전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었다. 헌정사상 처음이다. 앞서 임 전 부장판사는 2020년 5월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사표를 제출했지만 김 전 대법원장은 수리를 거부했다. 이 과정서 김 전 대법원장이 탄핵안 의결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 전 대법원장은 관련 사실을 부인했고 대법원 역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국회에 보냈다. 반전은 임 전 부장판사가 김 전 대법원장과의 대화를 녹음한 파일을 공개하면서 일어났다.

김 전 대법원장의 해명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김 전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며 “(민주당이)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표를)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대법원장이)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라는 부분도 있다.

재판 지연·코드인사·사법부 정치화
거짓말 논란으로 검찰 수사까지 가나

김 전 대법원장은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바로 사과했다. 그는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보니 지난해(2020년) 5월경 있었던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과정서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서 녹음자료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힘은 김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위계 공무집행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김 전 대법원장의 퇴임을 앞두고 검찰은 수사를 본격화했다. 김 전 대법원장은 “수사가 정당한 절차로 진행되면 당연히 성실하게 임하도록 하겠다”고 퇴임 기자간담회서 말한 바 있다. 

공관 관련 논란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김 전 대법원장 아들 부부는 2018년 1월~2019년 4월 대법원장 공관서 거주했다. 2017년 9월 서울 신반포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뒤 고가의 분양대금 마련을 위해 공간에 입주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2018년 초 당시 한진그룹 법무팀 사내 변호사였던 김 전 대법원장의 며느리가 회사 동료와 공관서 만찬을 가졌던 사실도 드러났다. 그 시기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직후라 논란이 커졌다. 검찰은 해당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국가권익위원회(권익위)서도 공관 관련 논란에 대해 ‘법령 위반, 예산 낭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한 보수단체는 지난 4월, 김 전 대법원장 공관 관련 법령 위반 의혹을 권익위에 신고했다.

아들 부부의 공관 거주, 공관 만찬 내용과 함께 김 전 대법원장 손자의 놀이터를 대법원 예산으로 설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권익위는 “(공관 리모델링은)경찰 조사 결과 이미 각하 처리됐고 감사원이 감사 후 법원행정처장에게 주의 조치했으며 놀이터는 자비로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제2의
양승태?

김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에 지명되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대법원으로 오는 파격을 ‘연출’했다. 그는 퇴임사 말미 “제 불민함과 한계로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모쪼록 모든 허물은 저의 탓으로 돌려 달라”고 말했다. 

김 전 대법원장은 31년5개월의 재판 경력을 배경으로 대법원장에 발탁됐다. 이제 김 전 대법원장이 지나온 6년을 평가받을 시간이다. 양승태 코트에 이어 또 한 번 사법부의 흑역사가 될지, 그가 꿈꿨던 ‘좋은 재판’의 사법부가 될지는 시간이 말해줄 듯하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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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