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CIA 비밀요원이자 성공한 기업가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의 아버지 유기연은 사업으로 자수성가 한 인물로, 일찍이 서구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로 망해가는 고국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유기연은 자식들이 장차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근처 강대국에 자식들을 유학 보내기로 한다. 장남이었던 유일한은 1904년, 당시 9세의 나이로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더 심해지며, 유기연의 사업도 큰 타격을 받는다.

결국 유일한이 미국에 간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서, 집에서도 유학 생활에 금전적 지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 때문에 어린 나이임에 불구하도 구두 닦기, 신문 배달 등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고된 생활에도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본가로부터 ’귀국하라‘는 소식이 도착했다.

‘집안 형편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해서 함께 가족을 부양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던 시기였다.

고민이 깊어진 유일한은 은사를 찾아가 상담하기로 한다.

평소 유일한의 총명함과 성실함에 그를 기특히 여기던 은사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지금 당장 가족에게 필요한 돈은 내가 보증 서줄 테니 은행서 대출을 받고, 대학 입학은 1년 정도 미루고 지금은 필요한 자금을 벌어라.”

유일한은 그렇게 빌린 돈 전부를 가족에게 보낸다.

덕분에 그의 가족은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유일한은 이후 1년간 디트로이트의 발전소서 일을 하며 빚을 갚아 나갔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유일한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미시간 대학에 진학했다.

부족한 학비는 대학교 근처 철도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중국 관련 물품을 팔아서 충당했으며, 학업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1919년, 그해 미시간 대학은 유일한을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선정했다.

졸업 후 사업 시작

중국 관련 물품을 팔 때 꽤 좋은 이익을 남겼던 유일한은 사업에 흥미를 느꼈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중국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즐겨 먹는 중국 음식에 숙주가 많이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된다.

특성상 숙주는 보관 및 유통이 어려워 상인들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이에 유일한은 상대적으로 시장이 넓지만 경쟁자가 적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당시에 상하기 쉬운 포장 방법을 바꿔 유리병에 숙주를 담아 파는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를 홍보할 적절한 수단이 없었던 만큼 주문량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일한에게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번화가 한복판서 일부러 숙주나물이 담긴 트럭을 전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트럭이 쓰러지며 숙주를 담고 있던 유리병이 깨져 사방으로 흩어졌고, 숙주나물은 도로를 뒤덮었다.

해당 사고는 뉴스에 보도됐고, 덕분에 일한의 숙주나물 사업은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아마 한국인 최초의 노이즈마케팅이 아니었을까?

그 일로 숙주나물 주문량은 폭증하며 사업의 규모가 커졌다.

더불어 유리병서 통조림 용기로 개선하는 데 성공한다.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주문량을 소화해내기 위해서 대량생산이 필요했고, 이는 공장을 지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자금이 부족했던 유일한은 식료품 장사를 하던 대학 동기 ‘윌레스 스미스’를 찾아가 동업을 제안한다.

1922년, 그렇게 ‘La Choy 라초이’ 식품회사가 설립된다.

스미스는 사장을 유일한은 부사장을 맡았다.

(초이: 청경채를 뜻하는 불어 겸 중국 음식을 가리키는 은어)

라초이는 훗날 숙주나물 외에도 콩나물, 간장 등 아시아 식품을 통조림으로 가공해 팔며 4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한다.

고국 방문

1925년, 미국서 성공한 사업가가 된 유일한은 숙주나물에 사용될 좋은 녹두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고국 방문으로 들떴던 마음도 잠시, 당시 일제의 지배를 받던 한국의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기생충은 들끓었고 사람들은 피부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심지어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에도 마땅한 약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이 즐비했다.

이를 지켜본 유일한은 이내 곧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국서의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유일한은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중국계 미국인이자 소아과 의사인 호미리 여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단란한 신혼 생활과 성공적인 사업확장으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이었지만, 그의 머릿속 한편에서는 비참한 고국의 현실이 떠나지 않았다.

그때 때마침 한국의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에비슨 박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유일한은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의 상과(경제학과) 교수로, 아내 호미리 여사는 세브란스병원의 소아과 과장으로 일해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운명이라 생각하면서도 고민에 잠겼다.

그리곤 떠올렸다.

한국서 많은 사람이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것을.

“그래, 한국으로 돌아가 의약품 사업을 하겠어.”

그렇게 아내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이고, 자신은 사업가의 길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한다.

유한양행의 설립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위해, 유일한은 식품회사 라초이의 지분을 동업자, 스미스에게 넘긴다. 그렇게 받은 돈 25만달러. (1920년 당시 1달러는 지금의 한화 약 10만원으로 25만달러는 250억원으로 추정)

그는 25만달러로 당시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구충제, 결핵 치료제, 피부 연고 등 미국의 질 좋은 의약품을 구입한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서재필을 찾아간다.

서재필은 그에게 ‘뜨거운 여름날 사람들이 햇빛을 피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돼라’는 의미로 버드나무 그림을 선물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한양행의 상표가 된 버드나무 그림의 시초다.

1926년, 한국에 들어온 유일한은 종로로 향했고 그곳에서 의약품 유통회사를 설립한다.

이게 바로 유한양행이다. (유일한의 이름을 딴 ‘유한’과, 대양을 건넌다는 뜻의 ‘양행’)

그렇게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유일한.

그에게 첫 번째 과제가 있었다.

바로 ‘인식의 개선’이었다.

당시 국내서 사용된 의약품은 일본제품들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어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팔기 일쑤였다.

유일한은 한국인들과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병의원을 공략했다.

사장인 유일한이 직접 운전해가며 찾아가 서울 세브란스, 평양 기을병원, 전주 예수병원, 순천 미동병원 등을 거래처로 확보했다.

거래처를 뚫었으니, 이번엔 제품을 알릴 차례였다.

만병통치약인 양 파는 과대광고가 아닌 약의 효능과 인체 영양 작용 컬러 포스터를 게시하며 ‘믿을 수 있는 의약품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했다.

점차 유한양행의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불어 그는 미국 의약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의약품 개발에도 힘을 썼다.

가장 대표적인 의약품으로는 ‘안티푸라민’이 있다.

‘안티푸라민’을 개발한 이유를 살펴보면 당시 국내엔 상처와 통증을 관리하는 소염 진통 의약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제의 지배로 고통받고 상처 입는 국민은 점점 늘어났지만, 아픔을 달래줄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다.

그래서 유일한은 아내 호미리 여사와 함께 안티푸라민을 개발했고 국민 상비약으로 자리 잡았다.

안티푸라민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유일한이 나라를 위해 기업가로서만 활동한 것은 아니다.

비밀 요원 A

1942년부터 유일한은 비밀 요원으로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1945년에는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상대로 한 OSS의 비밀첩보작전에 1조 조장으로 참여해 강도 높은 훈련을 모두 소화했다.

일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거점을 확보해 일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극비로 진행된 이 작전의 이름은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였다.

이 작전은 유일한이 별세한 지 20년이 지나 기밀문서가 비밀 해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995년에 그간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다.
 

과거 한 때 국내 기업들은 정부에 정치자금을 바쳐야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한양행은 정치자금의 거부하고 오히려 그 돈으로 의약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이를 아니꼽게 본 정치인들은 유한양행을 상대로 보복성 감사를 진행했습니다.

감사관들은 쓰레기통의 영수증 한 장까지 철저하게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티끌만한 의혹 한 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품의 성분함량 검사에서는 제조 시 날아갈 분량을 생각해 표기보다 더 많이 첨가해 생산하고 있었는데요.

이를 두고 당시 감찰관 김만태는 “뭐 이런 기업이 다 있나?”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네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유일한 회장, 그런 그가 창립한 유한양행은 20년 연속으로 한국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산업 부문 1위에 선정되며, 현재도 ‘유일한 회장의 유지’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기획&구성&촬영 : 김미나
편집 : 김미나/임동균
일러스트 : 정두희


<emn202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