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CIA 비밀요원이자 성공한 기업가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의 아버지 유기연은 사업으로 자수성가 한 인물로, 일찍이 서구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로 망해가는 고국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유기연은 자식들이 장차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근처 강대국에 자식들을 유학 보내기로 한다. 장남이었던 유일한은 1904년, 당시 9세의 나이로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더 심해지며, 유기연의 사업도 큰 타격을 받는다.

결국 유일한이 미국에 간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서, 집에서도 유학 생활에 금전적 지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 때문에 어린 나이임에 불구하도 구두 닦기, 신문 배달 등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고된 생활에도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본가로부터 ’귀국하라‘는 소식이 도착했다.

‘집안 형편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해서 함께 가족을 부양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던 시기였다.

고민이 깊어진 유일한은 은사를 찾아가 상담하기로 한다.

평소 유일한의 총명함과 성실함에 그를 기특히 여기던 은사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지금 당장 가족에게 필요한 돈은 내가 보증 서줄 테니 은행서 대출을 받고, 대학 입학은 1년 정도 미루고 지금은 필요한 자금을 벌어라.”

유일한은 그렇게 빌린 돈 전부를 가족에게 보낸다.

덕분에 그의 가족은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유일한은 이후 1년간 디트로이트의 발전소서 일을 하며 빚을 갚아 나갔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유일한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미시간 대학에 진학했다.

부족한 학비는 대학교 근처 철도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중국 관련 물품을 팔아서 충당했으며, 학업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1919년, 그해 미시간 대학은 유일한을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선정했다.

졸업 후 사업 시작

중국 관련 물품을 팔 때 꽤 좋은 이익을 남겼던 유일한은 사업에 흥미를 느꼈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중국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즐겨 먹는 중국 음식에 숙주가 많이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된다.

특성상 숙주는 보관 및 유통이 어려워 상인들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이에 유일한은 상대적으로 시장이 넓지만 경쟁자가 적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당시에 상하기 쉬운 포장 방법을 바꿔 유리병에 숙주를 담아 파는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를 홍보할 적절한 수단이 없었던 만큼 주문량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일한에게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번화가 한복판서 일부러 숙주나물이 담긴 트럭을 전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트럭이 쓰러지며 숙주를 담고 있던 유리병이 깨져 사방으로 흩어졌고, 숙주나물은 도로를 뒤덮었다.

해당 사고는 뉴스에 보도됐고, 덕분에 일한의 숙주나물 사업은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아마 한국인 최초의 노이즈마케팅이 아니었을까?

그 일로 숙주나물 주문량은 폭증하며 사업의 규모가 커졌다.

더불어 유리병서 통조림 용기로 개선하는 데 성공한다.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주문량을 소화해내기 위해서 대량생산이 필요했고, 이는 공장을 지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자금이 부족했던 유일한은 식료품 장사를 하던 대학 동기 ‘윌레스 스미스’를 찾아가 동업을 제안한다.

1922년, 그렇게 ‘La Choy 라초이’ 식품회사가 설립된다.

스미스는 사장을 유일한은 부사장을 맡았다.

(초이: 청경채를 뜻하는 불어 겸 중국 음식을 가리키는 은어)

라초이는 훗날 숙주나물 외에도 콩나물, 간장 등 아시아 식품을 통조림으로 가공해 팔며 4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한다.

고국 방문

1925년, 미국서 성공한 사업가가 된 유일한은 숙주나물에 사용될 좋은 녹두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고국 방문으로 들떴던 마음도 잠시, 당시 일제의 지배를 받던 한국의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기생충은 들끓었고 사람들은 피부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심지어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에도 마땅한 약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이 즐비했다.

이를 지켜본 유일한은 이내 곧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국서의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유일한은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중국계 미국인이자 소아과 의사인 호미리 여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단란한 신혼 생활과 성공적인 사업확장으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이었지만, 그의 머릿속 한편에서는 비참한 고국의 현실이 떠나지 않았다.

그때 때마침 한국의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에비슨 박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유일한은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의 상과(경제학과) 교수로, 아내 호미리 여사는 세브란스병원의 소아과 과장으로 일해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운명이라 생각하면서도 고민에 잠겼다.

그리곤 떠올렸다.

한국서 많은 사람이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것을.

“그래, 한국으로 돌아가 의약품 사업을 하겠어.”

그렇게 아내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이고, 자신은 사업가의 길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한다.

유한양행의 설립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위해, 유일한은 식품회사 라초이의 지분을 동업자, 스미스에게 넘긴다. 그렇게 받은 돈 25만달러. (1920년 당시 1달러는 지금의 한화 약 10만원으로 25만달러는 250억원으로 추정)

그는 25만달러로 당시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구충제, 결핵 치료제, 피부 연고 등 미국의 질 좋은 의약품을 구입한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서재필을 찾아간다.

서재필은 그에게 ‘뜨거운 여름날 사람들이 햇빛을 피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돼라’는 의미로 버드나무 그림을 선물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한양행의 상표가 된 버드나무 그림의 시초다.

1926년, 한국에 들어온 유일한은 종로로 향했고 그곳에서 의약품 유통회사를 설립한다.

이게 바로 유한양행이다. (유일한의 이름을 딴 ‘유한’과, 대양을 건넌다는 뜻의 ‘양행’)

그렇게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유일한.

그에게 첫 번째 과제가 있었다.

바로 ‘인식의 개선’이었다.

당시 국내서 사용된 의약품은 일본제품들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어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팔기 일쑤였다.

유일한은 한국인들과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병의원을 공략했다.

사장인 유일한이 직접 운전해가며 찾아가 서울 세브란스, 평양 기을병원, 전주 예수병원, 순천 미동병원 등을 거래처로 확보했다.

거래처를 뚫었으니, 이번엔 제품을 알릴 차례였다.

만병통치약인 양 파는 과대광고가 아닌 약의 효능과 인체 영양 작용 컬러 포스터를 게시하며 ‘믿을 수 있는 의약품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했다.

점차 유한양행의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불어 그는 미국 의약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의약품 개발에도 힘을 썼다.

가장 대표적인 의약품으로는 ‘안티푸라민’이 있다.

‘안티푸라민’을 개발한 이유를 살펴보면 당시 국내엔 상처와 통증을 관리하는 소염 진통 의약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제의 지배로 고통받고 상처 입는 국민은 점점 늘어났지만, 아픔을 달래줄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다.

그래서 유일한은 아내 호미리 여사와 함께 안티푸라민을 개발했고 국민 상비약으로 자리 잡았다.

안티푸라민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유일한이 나라를 위해 기업가로서만 활동한 것은 아니다.

비밀 요원 A

1942년부터 유일한은 비밀 요원으로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1945년에는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상대로 한 OSS의 비밀첩보작전에 1조 조장으로 참여해 강도 높은 훈련을 모두 소화했다.

일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거점을 확보해 일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극비로 진행된 이 작전의 이름은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였다.

이 작전은 유일한이 별세한 지 20년이 지나 기밀문서가 비밀 해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995년에 그간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다.
 

과거 한 때 국내 기업들은 정부에 정치자금을 바쳐야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한양행은 정치자금의 거부하고 오히려 그 돈으로 의약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이를 아니꼽게 본 정치인들은 유한양행을 상대로 보복성 감사를 진행했습니다.

감사관들은 쓰레기통의 영수증 한 장까지 철저하게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티끌만한 의혹 한 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품의 성분함량 검사에서는 제조 시 날아갈 분량을 생각해 표기보다 더 많이 첨가해 생산하고 있었는데요.

이를 두고 당시 감찰관 김만태는 “뭐 이런 기업이 다 있나?”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네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유일한 회장, 그런 그가 창립한 유한양행은 20년 연속으로 한국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산업 부문 1위에 선정되며, 현재도 ‘유일한 회장의 유지’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기획&구성&촬영 : 김미나
편집 : 김미나/임동균
일러스트 : 정두희


<emn20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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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