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도?’ 역대급 단식투쟁 괴담

YS 23일 대기록에 붙은 빵과 우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협상 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이자 최후의 수단은 단식투쟁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은 막판 뒤집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만큼 온갖 설왕설래가 단식 농성장을 뚫고 나온다. 단식투쟁의 역사 속 생긴 웃지 못할 사건들을 짚어본다.

단식투쟁은 물과 소금을 제외한 음식물은 일절 섭취하지 않는 형태의 시위를 말한다. 대개 특정한 사안에 관한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계속해서 진행된다. 노동자는 물론 일반인과 정치인까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단식투쟁을 선언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최초 정치인의 단식투쟁 역사는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YS와
보름달 빵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은 신민당 총재 시절인 1983년 5월18일 대통령 직선제와 언론 자유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가택 연금 상태서 단식투쟁을 진행했다. 당시 전두환정권은 해당 사건(YS 단식투쟁)이 외부로 새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려 했다.

YS는 23일간 단식을 진행했다. 대부분 인간은 물 없이 3일, 음식 없이 3주밖에 살지 못한다. YS의 기록은 인간의 생존 한계에 가까웠다. 이는 정치인 단식 역사상 최장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YS의 단식투쟁이 거론될 때마다 ‘보름달 빵 사건’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해당 사건은 단식투쟁 중인 YS의 상태를 걱정하던 문익환 목사가 사전 연락 없이 자택을 방문했는데, 방 문을 여는 순간 보름달 빵과 우유를 목격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각종 라디오나 프로그램 방송 등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렸다.


40년 전부터 정확한 출처 없이 내려오는 소문인 만큼 비판 목적으로 생긴 ‘도시 괴담’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단식 중 몰래 식사했다는 것 자체로 민주 진영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식의 배턴을 이어받은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다. 1990년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이던 DJ는 내각제 개헌 포기와 지방자치제 도입 실시 등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에 나섰다. 이는 여야가 극한으로 대치하던 상황서 정치협상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지방자치제 시행에 관해 최종 합의하는 성과를 얻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를 30년 만에 소생한 것이다.

두 인물은 단식투쟁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불린다. 목적을 달성한 것은 물론 당내 분열을 봉합하고 호소력 있는 모습으로 여론의 지지까지 얻었다는 평이 이어지면서다. 최근 단식투쟁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뜻을 이어받아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달 31일 이 대표는 취임 1년 기자회견 도중 돌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9월 정기국회 개회를 하루 앞두고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 항쟁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대표는 “윤석열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는 ▲민생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표명 및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국정 쇄신 및 개각 등 세 가지를 요구했다.


농성장 뚫고 나오는 설왕설래
‘밥심’ 못 버린 정치인들?

뜬금없이 단식을 선언한 만큼 세간이 이목이 쏠렸다.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 대표가 단식에 나설지 그 누구도 몰랐다”며 “이야기가 새어나가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자신과 최측근 등 몇 명만 알도록 입단속을 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입단속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 역시 단식 괴담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단식에는 세 가지 물건이 주목됐는데 바로 보온병과 숟가락, 그리고 소금 통이다.

이 대표는 단식을 선언한 날부터 국회 정문 앞 텐트서 투쟁을 시작했다. 다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진행되고 나머지 12시간가량은 국회 본청 당 대표실서 휴식을 취하며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출퇴근 단식” “웰빙 단식”이라고 비판했다.

내용물을 파악할 수 없는 보온병을 사용하고 티스푼으로 무언가를 떠먹는 모습을 두고 일부 여당 지지자는 “보온병에 곰탕 같은 게 든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평소 당뇨를 앓는 것으로 전해졌다. 식습관이 중요한 당뇨 환자가 일주일가량 단식하면서 국회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것을 두고 몰래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 영상서 기자에게 “마셔보라”며 보온병을 건네기도 했다. 그는 티스푼으로 섭취한 것은 음식이 아닌 소금이라고 해명했다.

민주당 측 역시 오해의 소지를 잠재우기 위해 이 대표가 사용 중인 식품 용기를 공개했다. 용기에는 와인 소금과 마늘 소금이라는 라벨이 붙어있었다. 이번에는 소금의 종류를 두고 또다시 여론에 불씨가 붙었다.

단식 시에는 물과 소금만 섭취하는데 통상적으로는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천일염 등을 사용한다. 마늘 소금처럼 맛을 가미한 소금을 섭취해도 되는지를 두고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것. 게다가 멀리서 보면 소금통이 후추통과 고춧가루통으로 보이는 탓에 “이 대표가 보온병에 든 곰탕에 소금 후추를 넣고 고춧가루까지 뿌려서 야무지게 먹었다”는 소문도 한동안 온라인서 떠돌았다.

맹물일까
곰탕일까

최근에는 이 대표가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표는 단식을 진행한 지 약 일주일 정도 되는 날 텐트에 놓인 탁자 밑에서 약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꺼내더니 손바닥에 덜어내고 뒤를 돌아 입 안에 털어 넣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이 대표는 약을 입에 머금은 채 다시 앞으로 돌아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어 기침하기도 했다.


해당 의혹에 대해 이 대표 측은 단식 초기엔 변비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 변비약을 복용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를 두고 여당과 지지자들 측에서는 “변비약이라면 저렇게 뒤돌아서서 몰래 먹을 일이 아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나올 게 있느냐”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대표의 단식투쟁이 성공할지는 여론의 공감 정도에 달려 있다. 단식 종료 조건이 뚜렷하지 않은 것을 두고 검찰 조사를 피하기 위한 ‘방탄 단식’이라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YS·DJ의 단식투쟁은 소수 세력의 정치인으로서 소리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거대 야당으로 불리는 이 대표가 단식에 돌입한 것을 두고 국민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에서는 이 대표의 단식이 등 떠밀리듯 끝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을 칭하는 ‘개딸’(개혁의 딸) 성원에 못 이겨 슬쩍 단식을 중단하거나 구급차를 타고 퇴장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만큼 본인의 체면은 살리고 건강 악화라는 명분도 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식투쟁에 나선 이들 중 구급차 퇴장으로 유명한 인물이 있다. 바로 자유한국당 황교안 전 대표다. 황 전 대표는 2019년 11월20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유지와 공수처 반대, 선거법 합의 등을 조건으로 단식에 돌입했다.

하지만 당시 제1야당 대표가 단식에 나서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면서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다. 당시 황 전 대표는 단식 8일 차에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이송됐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 몸을 혹사한 만큼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다. 링겔을 맞고 조치를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단식도 중단됐다.


갑자기
맛집 투어?

당시 ‘맞짱 농성’을 하던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회원과 진보 성향 유튜버는 황 전 대표의 병원 이송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일부는 “황 대표가 구급차 안에서 국밥을 먹고 있다” “김밥을 먹다 급체한 것”이라는 등 비꼬기도 했다.

단식투쟁이 발생할 때마다 크고 작은 설화들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중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단식은 가장 많은 소문이 만들어진 것으로 꼽힌다. 뒤에서 몰래 음식을 먹었다는 주장이 나오거나 일부 커뮤니티 회원들이 조롱식 ‘폭식 투쟁’을 하면서다.

여기에 폭식 투쟁의 배후가 대기업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파문은 일파만파 커졌다.

2014년 7월 ‘유민이 아빠’로 알려진 김영오씨를 비롯한 유가족 20여명은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여야와 함께 가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해달라며 광화문광장 농성에 돌입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별위원회 구성도 함께 요구했다.

약 한 달이 지난 8월18일 김씨는 취재진 앞에서 앙상해진 갈비뼈와 헐거워진 바지를 보여줬다. 그다음 날인 19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씨의 무리한 단식 중단을 촉구하는 동조 단식에 나섰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한 각종 SNS에는 문 전 대통령이 단식 중에 감자탕과 커피를 사 먹었다는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식 기간 동안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보면 감자탕집을 비롯한 커피전문점, 빵집, 빈대떡 집 등이 기록됐다는 것이다.

당시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은 ‘단식 중에도 식비는 계속 지출한 문재인 후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논평을 내고 이같이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세월호특별법에 대처하는 민주당의 무능함을 덮기 위한 가짜 단식은 아니었는지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의혹이 커지자 문 전 대통령 측은 해당 비용은 보좌관들이 사용한 내역이라고 해명했다. 동조 단식을 진행하는 문 전 대통령의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대기 중이던 당직자나 보좌진들이 사용한 경비라는 설명이었다.

현장에 배달된 피자 100판
일베 ‘폭식 투쟁’ 배후는?

문 전 대통령이 동조 단식을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날 무렵,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단식 중인 유가족들이 효소 음료와 초콜릿바를 몰래 먹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이를 두고 일베를 비롯한 유사한 성향의 커뮤니티 회원들은 광화문광장 앞에서 시민에게 초콜릿바를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2014년 8월31일부터 9월7일까지 일주일간 ‘폭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자유청년연합, 엄마부대, 어버이부대 등 다수의 보수 단체도 동참했다.

가장 대표적인 일례로 유가족 농성장과 100m 남짓 떨어진 곳에서 ‘피자 파티’를 벌인 사건이 있다. 자신을 개인 사업자라고 밝힌 50대 일베 회원 A씨는 직접 피자 100여판을 주문해 회원들에게 나눠줬다. A씨는 “세월호특별법이 통과되면 유가족에게 너무 많은 혜택이 가게 된다”며 “세월호서 죽은 이들은 안타깝지만 이들을 이용하는 불순세력이 분탕을 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는 일베가 폭식 투쟁을 예고하자 성명을 통해 “광화문광장은 누구나 자유롭게 음식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농성장 앞에 취식 공간처럼 ‘일베 회원을 위한 식탁’까지 마련했다.

폭식 투쟁 첫날 농성장에 모인 일베와 커뮤니티 회원들은 피자를 받아 들고 유가족이 마련한 식탁서 음식을 먹었다. 일부러 단식 농성장을 오가며 치킨과 햄버거 등을 먹고 유가족을 배경으로 ‘인증샷’까지 남겼다.

4년 후 폭식 투쟁의 후원자가 대기업이라는 의혹이 일면서 해당 사건은 다시 수면으로 드러났다. 2018년 MBC 시사 프로그램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이하 <스트레이트>)가 “삼성과 전국경제인연합(이하 전경련)이 폭식 투쟁을 후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당시 주최 측은 음식과 주류 등을 구입한 경로에 관해 “후원금으로 마련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를 두고 <스트레이트>는 2013년 삼성이 자유청년연합에 ‘경제자유화 확산운동 지원’을 명목으로 1500만원을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2014년에는 1000만원, 2015년에는 6000만원이 지원됐다. 해당 자금은 전경련을 통해 우회 입금한 것으로 해석했다.

쉰내 나는
밥그릇

단식투쟁에는 절박함이 드러나는 만큼 작은 행동도 확대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투쟁의 의미를 잊은 채 꼬투리 잡기에만 열을 올린다는 주장이 제시됐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게 이 대표의 케이스”라고 말했다. 여야를 떠나서 처음 이 대표가 단식을 시작할 때 어떤 요구를 내걸었는지 기억하는 의원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단식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스럽다”며 “가진 게 없는 자들의 투쟁 수단마저 권력에게 뺏기는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제 안 먹히는 단식투쟁?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단식에 대해 꼬집고 나섰다.

이 대표가 단식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빌미로 검찰 조사에 영향을 줄 것이란 의혹이 나오면서다.

이에 한 장관은 “단식투쟁이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주는 선례가 남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탄 단식’이 성공한다면 잡범을 비롯한 범죄자들이 소환 통보는 즉시 단식을 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한 장관은 “단식을 하느냐 마느냐,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는 개인 자유의 문제”라면서도 “그게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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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