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송·요 패권싸움 틈바구니서 살아난 고려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3.09.04 14:41:37
  • 호수 1443호
  • 댓글 6개

지난 10년 동안 세계는 미·중 패권싸움의 틈바구니서 어느 한쪽 편을 들거나 양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노선을 걷거나 아니면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 입장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로 나뉘었다.

대부분의 국가는 안보·경제적 지원을 받거나 동맹관계라는 이유로 어느 한쪽을 지지하거나 종교·지리적인 이유로 독자노선을 걷는 것보다는 미·중 패권싸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양국과 자유자재로 교류하는 경우를 더 선호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자기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 강국이 가진 힘의 논리에 따라 친미국가와 친중국가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친미국가는 중국으로부터, 친중국가는 미국으로부터 가해지는 피해를 감수해야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반도 같이 미·중 간섭에 따라 국운이 좌우되는 국가는 편을 들지 않은 국가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한 숙제로 남았다.

한국은 현재 친미국가다. 이웃해 있는 중국보다 태평양을 건너 멀리 있는 미국과 더 가깝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달 18일 한·미·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이 친미국가임을 전 세계에 확실히 알렸다. 앞으론 중국의 압박 강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약 1000년 전 고려도 송나라와 요나라(거란)의 동북아시아 패권싸움 틈바구니 속에 곤욕을 치렀다. 

당나라가 무너진 후 5대10국 시대를 거쳐 979년 송나라가 중국 중원을 통일할 당시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는 이미 번성해 있어 송나라와 요나라가 쌍벽을 이루며 새로운 동북아시아 질서를 잡는 주인공이 됐다. 한반도서도 당나라와 친했던 신라가 무너지고 고려가 통일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당시 강대국 송나라와 요나라의 패권싸움 틈바구니에 있던 고려는 약소국이어서 어느 한쪽과 동맹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는 송나라와 국교를 맺고 요나라를 멀리하며 발해를 멸망시키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한 요나라의 동맹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요나라의 침략을 감수해야 했다. 

그 후 중원 장악의 야망을 가졌던 요나라가 송나라를 압박할 때, 송나라는 “고려가 한동안 사신 왕래를 끊고, 아무런 외교적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려와 외교관계를 거절한 적이 있다. 

이때 고려 충신 서희가 사신으로 송나라에 가 “요나라가 육로를 막고 있어 외교 사절을 보내지 못해 외교관계가 소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서희의 당당한 태도와 확실한 설명에 감탄한 송나라가 다시 고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993년(성종 12년) 요나라가 80만 대군을 앞세워 고려를 침략했을 때도 서희는 장군으로 성종의 특명을 받고 적장 소손녕과 마주 앉아 담판외교로 80만의 요나라 군대를 철수시키고 강동 6주까지 얻는 성과를 거뒀다.

요나라의 소손녕은 서희에게 “고려는 신라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자신들의 소유인데 고려가 침범했으니 고구려의 옛 땅을 돌려 달라”며 “요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 송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니 송나라와 국교를 단절하고 요나라와 국교를 맺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서희는 “소손녕이 고구려의 영토를 요나라의 소유라고 주장한 것은 요나라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주장이나 고려가 고구려의 옛 땅에 있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으며 평양으로 수도를 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서희는 고려야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기에 옛 고구려 땅인 요나라의 동경까지도 고려의 땅이라며 이 문제가 해결돼야 국교를 맺을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맞섰다.

결론적으로 서희는 송·요 패권싸움 틈바구니서 고려가 송나라에 애매한 외교전을 펴자 당황한 송나라가 고려를 배척했을 때 지혜롭게 송나라와의 관계를 회복했고, 고려가 송나라 편을 확실히 들자 위협을 느낀 요나라가 침략했을 때도 탁월한 외교 감각으로 요나라의 침략을 막아냈던 위대한 지도자였다.

필자는 현재 미·중 패권싸움 틈바구니 속에서 미국 편에 서 있는 한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의 팁을 1000년 전 송·요 패권싸움 틈바구니 속에서 지혜를 발휘한 서희의 외교전략서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희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송나라 편을 든 고려의 외교정책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송나라 편을 든다는 이유로 고려를 침략한 요나라도 피하지 않고 담판외교를 통해 당당하게 극복했다는 점이다.

서희가 송나라에 “요나라가 진입로를 막고 있어 쉽게 접근 못한다”고 주장했듯이, 한국이 미국에 “중국의 장벽 때문에 어려움이 있으니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서희가 송나라와 동맹이라는 이유로 요나라를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담판외교전을 폈듯이, 한국이 이젠 중국과도 만나 현안문제를 놓고 담판외교전을 펴야 한다.  

최근 일본과 통 큰 담판외교를 폈던 우리가 중국과도 못할 리 없다. 우리는 1000년 전 송·요 패권싸움 속에서도 담판외교로 살아난 경험이 있다. 미·중 패권싸움서 담판외교로 한국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미·중 양국과 협력관계로 나아가야 진정한 강대국이 될 수 있다. 담판외교는 정상회담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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