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정조준’ 금감원 3대 펀드 재조사 내막

‘금융검찰원’ 용산 향한 충성 경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금융당국이 3대 펀드 사태에 관한 재조사에 나섰다. 문재인정부 때 이미 조사가 끝났던 사안이다. 정권이 바뀌자 결론이 뒤집힌 것이다. 그만큼 이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먼저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와 민주당 간 유착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재조사 과정서 불법성이 확인되면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남부지검이 금융감독원의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재조사 결론을 받아낼 채비를 마쳤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해당 펀드를 재수사해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폐지돼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까지 나서 검찰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민주당 유착 의혹을 제외한 타 의혹은 관심 밖인 분위기다.

이례적
뒤집기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3대 펀드 운용사 재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같은 날 금감원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수사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에 관한 ‘특혜성 환매’와 펀드 투자자금 횡령과 관련된 자금이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흘러간 의혹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제기된 라임 핵심 관계자인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해외 수배) 측이 투자한 필리핀 리조트 사업을 둘러싼 소문도 확인할 계획이다. 옵티머스나 디스커버리 펀드도 투자회사들의 횡령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펀드 사태 피해자들을 위한 진상규명보다는 문재인정부 시절의 비리와 불법성을 확인하는 게 먼저인 셈이다.


남부지검 관계자는 “금감원이 발표한 내용은 원래 알고 있던 내용서 한층 더 깊어진 것”이라며 “의혹 전반에 관해 재수사 중이고 조치도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환매가 중단된 사모펀드 판매 잔액은 5조159억원에 달한다. 이 중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3개 펀드를 제외한 환매중단액도 2조7083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펀드 사건 수사는 사실상 멈춰있다.

이의환 전국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검찰과 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3개 펀드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다른 펀드 피해에 관한 구제나 수사는 진척이 없다”며 “젠투 펀드 피해액은 수천억원이 넘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됐고 피델리스 펀드, 독일헤리티지 펀드, 트랜스아시아무역금융 펀드 등도 고소·고발을 했는데 기소도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독일헤리티지 환매중단액은 4772억원, 피델리스 펀드 3445억원, 트랜스아시아무역금융 펀드는 3302억원에 달한다. 피해자만 해도 수천명이다. 헤리티지 펀드는 2021년 4월 검찰에 고소 접수한 뒤 수사 진척이 없다. UK 펀드도 투자자들이 2021년 1월 펀드 관계자들을 사기와 부정거래 등 혐의로 고소했지만 수사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예상 못한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재검
조사 결과 합수단에 통보…물적증거는 아직

2020년 7월 고소가 접수된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 사건은 올해 1월에야 펀드 판매를 주도한 전직 은행원 1명이 해외 도피 중에 붙잡혀 구속되자 재판이 시작됐을 뿐이다.

이들 펀드뿐 아니라 지난 3월 남부지검에 고소장이 접수된 포트코리아 그린에너지 펀드 사건은 고발인 조사만 하고 아직 진척이 없다.


사모펀드 한 피해자는 “당국 발표 내용을 보면 새로 알게 된 내용도 있지만 이미 대부분 우리들이 이야기했던 것들”이라고 토로했다. 당국과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으로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유독 3대 펀드에 관해서만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해당 펀드 모두가 야권과 정치적으로 얽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서 당국이 민주당과 펀드 사태의 연결고리를 찾으면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카드로 쓰일 것이라는 해석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라임 사태는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기업들의 전환사채(CB) 불법거래를 통해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펀드런 위기에 몰렸고, 2019년 10월 환매가 중단됐다. 투자자들이 본 피해만 1조6000억원 규모다.

검찰은 수사 결과 민주당 기동민·이수진(비례) 의원, 김영춘 전 의원, 열린우리당 김갑수 전 부대변인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봉현 라임 대표는 이들 4명에게 1억6000만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금감원은 이번 추가 검사에서 김 회장이 라임 펀드 자금 300억원을 메트로폴리탄 임원에게 대여금 형태로 인출한 뒤 276억원으로 필리핀 이슬라 리조트를 차명으로 사는 등 총 299억원을 유용한 혐의를 발견했다. 이 과정서 일종의 사업 파트너였던 장모씨와 전모씨 등에게 매각대금 명목으로 펀드 자금 일부가 건네진 정황을 확인했다.

3대 펀드
뭐길래?

문제는 장씨와 전씨가 정치권과 일부 인연이 있다는 점이다. 장씨는 지난 대선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지 모임인 민주평화광장 산하 금융혁신위원회와 기본경제특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전씨는 민주당 지역 도당 후원회장과 강원도 민주당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다만 아직 민주당과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라임 펀드 자금이 이들을 통해 정치권으로 건네졌다는 증거와 정황이 확인된 바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윤갑근 전 고검장은 자문료 명목의 돈을 받고 은행에 로비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가 2심서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이 사건은 합수단서 수사를 맡았으나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합수단을 폐지하면서 사실상 수사가 좌초됐다. 당시 송삼현 남부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옵티머스 사건은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한다면 3200여명으로부터 1조3500억원 모아, 부실 채권이나 돌려막기에 사용해 1000여명에게 5600억원의 피해를 끼친 사건이다.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사기 혐의로 징역 40년에 벌금 5억원, 추징금 751억7500만원이 확정됐다.

서울중앙지검은 2020년 수사에 착수해 ‘펀드하자치유’라는 문건을 확보했다. 문건에는 민주당, 법조계 20여명의 실명이 거론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고문으로 활동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검찰은 2021년 8월 문건에 적힌 각종 의혹 모두를 무혐의 처리했다.

하지만 문건에는 “채동욱 전 총장이 추진하던 경기 광주 봉현물류단지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2020년 5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만났다”는 내용도 있다. 검찰은 당시 “두 사람이 식사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청탁은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정권
인사 겨냥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 장하원 대표가 만든 디스커버리 펀드의 ‘펀드 돌려 막기’ 의혹도 금감원이 일부 정황을 확인됐다. 장 대표는 환매 중단 책임을 놓고 기소됐지만, 1심서 무죄를 받았다.

금감원은 디스커버리 펀드를 판매한 기업은행에 관해서도 추가 조치를 검토 중이다. ‘투자자에 100% 배상’(투자원금 전액 반환) 결정을 기업은행 측에 내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다. 금감원은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US핀테크 글로벌 채권펀드’를 운용하는 과정서 환매가 되지 않자 동일한 구조의 다른 펀드를 만들어 돌려 막았다고 결론냈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은 이 과정서 투자 대상을 거짓 기재한 투자제안서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존에 환매가 되지 않은 펀드를 상환할 목적으로 새로운 펀드를 만들었음에도 새 펀드의 투자제안서엔 이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해외의 다른 투자처에 투자한다는 거짓정보를 넣었다고 판단했다.

금감원은 향후 디스커버리 펀드에 관한 분쟁조정과 관련해 신중한 입장이다. 이번 자산운용 검사 결과는 물론 미국 당국으로부터 확보한 자료 분석, 기업은행에 관한 추가 검사 결과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 검사국 관계자는 “9월 초에 기업은행 검사가 예정돼있다. 주로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기재한 투자제안서의 거짓된 내용을 알면서도 판매했는지가 핵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 내에서는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통해 100% 손해배상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의 거짓 투자제안서를 기업은행이 그대로 인용했다면 이것만으로도 불완전 판매에 해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옵티머스 펀드를 판매한 NH투자증권에 100% 배상을 결정한 전례가 있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NH투자증권은 라임 펀드를 판매한 신한금융투자와 달리, 옵티머스 펀드 부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자금 흐름 파악…정치자금으로 의심
피해 진상 규명 아닌 조사만 논란도

민법(제109조)에 따른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는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착오를 일으킬 정도로 중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을 경우 내릴 수 있다. 앞서 금감원 분조위는 2021년 5월 디스커버리펀드와 관련해 기업은행에 원금의 40~80%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했다.

금감원이 범죄 혐의를 통보한 이후 검찰이 풀어야 할 매듭은 자금흐름이다. 펀드 사태 핵심 피의자들이 왜 자금을 주고받았는지와 어느 용도로 사용됐는지를 밝혀내지 못하면 정치적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재경지검 한 검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투자금을 수표나 코인으로 전환한 정황도 있어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정치자금으로 활용됐는지가 핵심일 것 같은데 의심만 될 뿐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반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금감원이 아니라 금융 정치원"이라며 "이복현 금감원장은 엄중한 책임을 반드시 지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라임 펀드 자금 중 일부가 이 대표 대선캠프의 외곽조직 인사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보도에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9월 정기국회에서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권한 남용’ 의혹을 집중적으로 다루겠다고 예고했다.

이 원장이 권한을 넘어 통화 정책에 관여하거나, 해외 투자설명회(IR) 출장비용 내역을 제출하라는 국회 요구에 불응하고, 내달에도 유럽 IR 출장길에 오르는 등의 행보를 주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년 총선을 고려한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민주당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이복현 원장이 금감원장 권한을 넘어서 통화정책에 관여한 것과 IR 참여, 정치적인 금융감독 행태에 관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하고 바로잡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러다 말면…
역풍 주의보

민주당이 주목하는 건 이 원장의 이력이다. 검사 출신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 원장이 지휘한 ‘라임 사태 재검사’ 결과가 문재인정부 유력 인사들을 정조준하는 수사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민주당은 보고 있다.

이로써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전선도 넓어졌다. 검찰, 감사원에 이어 금감원이 세 번째 적이 된 셈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확실한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할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로 5번째 소환을 앞두고 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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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