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으로’ 줄섰던 판·검사 말로

알면서도 매달린 썩은 동아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특정 직군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외풍에 휘둘리지 말고 중립성을 최대한 지켜달라는 의미다. 특히 자신의 판단에 따라 타인의 인생이 좌지우지될 정도의 영향력이라면 더더욱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양쪽 모두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유혹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다 눈을 딱 감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한쪽에 줄을 대면 언젠가는 그 줄이 ‘썩은 동아줄’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심판 역할
버린 판사?

최근 한 판사의 중립성 논란이 화두로 떠올랐다. 시작은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이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정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은 벌금 500만원으로, 법조계에서는 이례적으로 과한 형량이 나왔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앞서 정 의원은 2017년 9월 자신의 SNS에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이 박연차씨로부터 수백만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적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유족이 고소한 지 5년 만인 지난해 9월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지만 법원은 11월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재판부는 “유력 정치인인 피고인의 글 내용은 거짓으로, 진실이라 믿을만한 합당한 근거도 없었다”며 “악의적이거나 매우 경솔한 공격에 해당하고 그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거칠고 단정적인 표현의 글로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당시 노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인물이라 보기 어려웠으며 공적 관심사나 정부 정책 결정과 관련된 사항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후 박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박 판사가 재직 중 작성한 정치 관련 글이 단초를 제공했다. 판사의 정치 성향이 사건 형량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박 판사가 판사에 임용된 이후 SNS에 올렸던 정치 관련 글을 모두 삭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박 판사 본인도 자신이 쓴 글이 논란이 될 것을 알았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진석 사건으로 편향성 논란
‘사법부 정치화’ 폭탄 터졌나

실제로 박 판사는 정 의원에 대한 1심 선고 다음 날인 지난 11일 휴가를 갔다. 이어 15일 오후 3시30분경 자신의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또 지난 4월에는 법조인의 프로필을 관리하는 ‘한국법조인대관’ 운영사 측에 자신의 등재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판사는 지난해 3월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낙선하자 “이틀 정도 소주 한 잔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보다 앞서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낙선했을 때에도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는 내용의 드라마 장면을 캡처해 게재했다. 

박 판사가 고교·대학 재학 때부터 판사 임용 후까지 SNS 등에 쓴 글은 주로 현 여권을 비판하고 야권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논란의 불씨가 생긴 지점은 박 판사가 임용 후에 올린 글이다. 법조계서 박 판사가 처음부터 정치 관련 사건을 맡지 말았어야 한다는 이유가 나오는 것도 이 대목 때문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와 맞물린 법원의 기류 변화다. 박 판사 논란에 대해 법원은 ‘임용 전에 쓴 글’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박 판사는 고3 때인 2003년 10월 한 인터넷 사이트에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싶으면 불법 자금으로 국회의원을 해 처먹은 대다수의 의원들이 먼저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현직 신분으로 쓴 글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상황이 변하는 모양새다. 대법원은 박 판사의 SNS 글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법원의 고심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특히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한 달가량 남은 상황서 판사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법원 내부에서도 곤혹스러워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기류 바뀐
법원 내부

정치적 중립, 사법부 독립 등 법원을 둘러싼 이슈에 불씨를 던져줄 수 있기 때문. 

일각에서는 ‘김명수 코트’의 문제점이 박 판사 논란으로 폭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윤석열 대통령(당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과 함께 문재인정부의 ‘파격 인사’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이다. 사법 농단 사건 등으로 뒤숭숭했던 사법부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는 기대를 등에 업고 임기를 시작했다. 

다음 달 24일로 임기를 마치는 김 대법원장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쪽으로 기운다. 특히 ‘법원의 정치화’를 가속했다는 지적이 많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 요직에 중용됐고 재판 소요 기간이나 판결에 있어서 현 야권 인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의혹과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정치 관련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올 때마다 법관의 성향을 문제 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공정성과 중립성을 배경으로 독립성을 지켜나가야 하는 사법부로선 뼈아픈 지적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부 정치화’의 굴레를 벗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구성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이 지명하는 차기 대법원장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사법부가 검찰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재인정부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선봉장이면서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 과정서 ‘친정부’ 검사가 크게 득세해 ‘검찰 정치화’ 논란이 불거졌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기에는 ‘추미애 라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휘둘린 검찰
인사로 명암


특히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임하던 시기 문정부와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검사의 명운이 크게 갈렸다. 이른바 친정부 라인에 섰던 검사는 요직을 꿰찼고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됐던 검사는 좌천을 피하지 못했다. 인사 때마다 유례없는 관심이 쏟아질 정도로 검찰에 대한 주목도가 높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검사 가운데 한 명이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다. 이 연구위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이다. 문정부 들어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요직 ‘빅4’ 중 3자리를 거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이 연구위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조사 과정에서 공수처장의 관용차를 이용해 ‘황제 조사’ 논란에 휘말렸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무마 의혹 사건에 연루된 상황서도 자리를 지키다가 결국 한직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밀려났다.

현재는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 무마 의혹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

박은정 광주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와 그의 남편 이종근 법무법인 계단 대표변호사는 각각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서울서부지검장을 지냈다. 이들 부부는 대표적인 친정부 ‘반 윤석열’ 인사로 손꼽혔다. 하지만 현재는 수사를 받거나 한직으로 좌천됐다가 검복을 벗을 상황에 놓였다.

박 부장검사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과 관련해 수사 무마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불거진 사건으로 박 부장검사가 이 대표를 위해 수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사건은 박하영 당시 성남지청 차장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리고 사의 표명을 하면서 확산됐다.

‘친정부’ 성향의 검사 좌천길 
조만간 대법원장 교체 물갈이?

여기에 박 부장검사는 법무부 감찰담당관 재직 때 ‘채널A 사건’과 관련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당시 검사장)을 감찰한다는 명분으로 확보한 법무부·대검 자료를 윤 대통령(당시 검찰총장) 감찰을 심의하던 법무부 감찰위원회에 무단 제공한 혐의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사의를 표명했지만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어 수리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은정 대구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는 윤 대통령과 가장 날카롭게 각을 세운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검찰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조직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아 국민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문정부 시기 조직의 수장인 윤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 모해위증 교사 사건과 관련해서는 최근까지 법정 공방을 벌였다. 임 부장검사는 해당 사건서 자신이 배제된 것을 두고 윤 대통령이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공수처가 사건을 정식 입건했고 임 부장검사는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도 받았다. 

공수처는 수개월 동안의 수사 끝에 윤 대통령을 불기소 처분했다. 임 부장검사 측은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 했지만 기각됐고 지난해 8월 대법원 역시 최종 기각했다. 재정신청은 수사기관의 처분에 불복한 고소·고발인이 다시 한번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임 부장검사는 최근에도 검찰 특수활동비 등에 대해 “검사들의 용돈”이라고 지적하는 등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파급력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정권교체 이후 친(문재인)정부 검사로 분류됐던 검사가 대거 좌천되는 등 물갈이가 진행됐다. 윤석열 라인으로 불리며 수차례 좌천됐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깜짝 발탁되는 등 자리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대법원장의
마지막 결정?

법원은 국내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꼽힌다. 정부 성향에 따라 휘둘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검찰과 비교했을 때 독립성 수준도 높은 편이다. 일각에선 ‘법원판 물갈이’에 박 판사 사건이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명수 코트’서 이른바 라인을 탔던 판사의 거취가 화두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 대법원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퇴임 직전 상태다. 줄을 댔던 판사의 운명도 한 달 남짓 남았을 수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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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