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갈등’ 국정원 파벌 막전막후

막 휘두른 ‘원장님 오른팔’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정원에 피바람이 불고 있다. 전례 없는 ‘인사 전횡’으로 내부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즉각 진상조사에 나섰고 김규현 국정원장이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 원장의 ‘오른팔’이 이번 갈등의 중심에 서면서 국정원의 어수선함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1급 간부 7명에 대한 보직 인사를 취소하고 직무 대기발령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특정 간부가 인사에 부적절하게 관여한 사실을 보고받은 뒤 조처한 일이기에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국정원 안팎서 대통령 재가를 거친 정보당국의 간부급 인사가 번복된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보고 있다.

최측근이…
실세의 난?

국정원은 이달 초, 전 국·처장인 1급 간부 7명에 관해 새 보직 인사를 공지했다가 돌연 발령을 취소했다. 김규현 국정원장의 ‘오른팔’로 알려진 A씨는 지난해 9월 1급, 같은 해 11월 2·3급 간부 100여명의 인사 때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A씨에 관한 투서가 인사 번복의 배경이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투서를 받은 적이 없다”며 “투서를 받아 인사를 하거나 인사를 안 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언급된 윤석열정부 국정원의 인사 파동은 처음이 아니다. 1차 인사 파동은 윤정부 출범 4개월 만인 지난해 9월 1급 간부 27명이 퇴직한 것이다. 이전 정권인 문재인정부의 인적 청산과 연계된 퇴직이었다. 이어 10월에는 조상준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돌연 사퇴하면서 내부 갈등설이 제기됐다.


2차 파동은 12월 2·3급 간부 130여명이 직무서 배제되거나 한직으로 발령을 받은 것을 가리킨다.

최근 불거진 3차 파동은 1차 파동에 따른 1급 보직인사 건이다. 이 여파는 해외 정보 파트까지 번졌고 미국, 일본 같은 주요 국가의 거점장들까지 소환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파동의 중심에 선 A씨는 김 원장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윤정부가 들어선 이후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하면서 요직을 꿰차기도 했다. A씨는 1차 파동 때 조 전 실장과도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인물을 주요 직에 발탁하고 승진시키려 하면서 배제된 인사들과 다툼이 있었다는 게 골자다.

A씨는 김 원장의 최측근이기 전 방첩센터장을 역임했다. 그는 외무고시를 패스한 정통 외교관 출신인 김 원장의 선택을 받아 ‘국정원 정상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국정원장의 직속기관인 방첩센터는 본래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에 둔다. 그러나 김 원장은 국정원장 직할 부서로 만들어 주도권을 가져가려 했다. 실제 방첩센터는 지난해 말부터 창원·진주·전주·제주 민주노총 간첩 사건을 주도해 성과를 올려왔다.

‘윤 사단’ 조상준 밀어낸 A씨 그림자 지목
‘나만의 리그’ 갈등…전례 없는 인사 번복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 파동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원장이 A씨에게만 의지했다거나 A씨가 공작을 주도하면서 우파 중용을 막으려 했다는 등의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정원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때 적폐청산 TF서 활동하던 인물이 인사기획관이 됐다. 그가 A씨의 공작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도 존재한다”며 “최근 언론서 언급된 투서로 대통령실이 진상조사에 나섰다는 건 가능성이 크지 않다. 현 단계에선 쌓인 불만들이 표면화된 건 사실이라고만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A씨 외에도 B씨도 요주의 인물로 언급되고 있다. 2018년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세 번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능라도 경기장서 평양시민에게 연설했다. 초유의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여러 부처가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는데, 국정원 버전 연설문을 쓰는 데 B씨가 참여했다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A씨와 친분이 있는 B씨가 윤석열정부 들어서도 주요 보고서에 접근할 수 있는 보직에 보임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B씨 외에 내부 감찰을 맡고 있는 C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박근혜정부 청와대에 파견갔던 C씨는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직보했다는 의혹으로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서도 거론됐던 인물이다.

김 원장은 대북 강경파인 매파로 손꼽힌다. 국정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정체성 교육’을 도입한 만큼 선명성을 강조한다. 국정원 직원이라면 하루 8시간씩 3일간 모두 24시간의 이념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터질 게
터졌다

특히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신원검증센터를 신설해 국정원 외부 공직자의 정체성까지 들여다보려 했다. 이를 반대했던 게 조 전 실장이다. 정체성과 선명성을 강조한 김 원장은 문제가 있는 인물일지라도 국가관이 투철하다면 중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조 전 실장은 그렇지 않았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국정원 관계자는 “김 원장과 논의가 끝나지 않은 조 전 실장 중심의 인사가 윤 대통령에게 보고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통령의 선택을 받지 못한 조 전 실장이 아웃된 이유”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취임 초부터 과거 정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인사 물갈이’에 들어갔다. 지난해 6월 1급 보직국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한 데 이어, 같은 해 말 2·3급 간부 인사를 통해 100여명을 또다시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번 1급 간부 인사 후에도 추가로 100여명을 직무 배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과감한 인적 청산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던 인물은 또 있다. 해외 파트를 총괄하는 권춘택 1차장이다. 권 차장은 속도감이 없더라도 외부가 아닌 내부 인사를 중심으로 조직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권 차장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인 1986년 공채로 들어와 30여년간 국정원에 몸담았다. 박근혜정부 당시 2013년 미 워싱턴DC 주미 대사관서 정무2공사로 근무하며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협력을 담당했다. 김 원장이 임명되기 전 윤정부 국정원장에 물망이 오르기도 했다.

국정원 출신 한 관계자는 “A씨가 권 차장까지 몰아내려 했다는 소식이 파다하다. 다행이게도 대통령실이 제대로 된 상황 파악에 나섰고 A씨는 면직 처리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김 원장에게 프랑스·베트남 순방 직전 “조직·인사서 손을 떼고 기다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더십 제로
안정화 실패

정치권에서는 최근 국정원의 인사 파동과 관련해 정보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정보위 출신의 한 의원은 “이례적 갈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갈등이 표면화된 건 처음”이라며 “김 원장의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조직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내부 갈등은 과거 정부 때도 있었다. 박지원 국정원장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노은채 전 실장도 기조실장을 역임했을 당시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파벌싸움’이란 국정원의 오래된 적폐가 곪을 대로 곪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박지원 전 원장은 “(당시)인사 전횡은 없었다”며 “있었으면 파동이 났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번 인사 파동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면서 대통령실 내부서조차 김 원장이 책임지고 자리서 물러나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면직된 A씨를 제외하고 대기 발령됐던 2·3급 간부들은 김 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신뢰를 얻어온 김 원장이 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조직 안정화에 실패했다고 본다”며 “여러 책임이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리더십이 제로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서도 김 원장의 책임을 물어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국정원 인사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가 김 원장의 거취 문제로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국정원 간부 일부가 대통령실에 문제를 제기했고 공직기강비서관이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역대급 태풍’이 불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직기강실 바삐 움직여”
대통령실서 진상조사 착수

일각에선 김 원장 후임 후보군의 이름도 언급되고 있다. 정보당국 출신 관계자는 “김 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가 바닥나지 않았겠냐”며 “검찰 출신이 새롭게 자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 새로운 국정원장 인선 움직임은 없다”면서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바쁘다. 진상조사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우선 대통령실은 지난 16일 “일단 진상조사를 통한 실체 파악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정보기관 내 특정 인사의 인사 전횡 의혹이 외부로 드러난 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그 내용부터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19일부터 해외에 있는 만큼 국정원장 교체 문제 등을 검토하기엔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국정원 내부의 인사 잡음에 대한 문제가 지난해부터 수차례 제기됐던 만큼 이번 조사 결과에 A씨의 전횡 의혹 등의 문제가 분명히 밝혀질 경우 김 원장 교체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거듭된 인사 파동과 관련해 김 원장의 책임도 가볍지 않음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김 원장에 대한 문책으로 이어질지 신중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김 원장을 향한 윤 대통령의 신임이 작지 않다”며 “A씨 등에 대한 징계나 문책 수준으로 일단락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간첩단 수사 등 정부 출범 뒤 국정원의 공도 적지 않은 만큼 김 원장을 내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김규현
사퇴하나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김 원장을 교체할 생각이었다면 A씨의 인사 전횡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을 찾아온 김 원장을 만났을 때 교체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때 윤 대통령이 “불신임하려는 건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건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에 무게를 뒀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순방서 돌아온 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 김 원장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할지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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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