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갈등’ 국정원 파벌 막전막후

막 휘두른 ‘원장님 오른팔’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정원에 피바람이 불고 있다. 전례 없는 ‘인사 전횡’으로 내부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즉각 진상조사에 나섰고 김규현 국정원장이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 원장의 ‘오른팔’이 이번 갈등의 중심에 서면서 국정원의 어수선함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1급 간부 7명에 대한 보직 인사를 취소하고 직무 대기발령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특정 간부가 인사에 부적절하게 관여한 사실을 보고받은 뒤 조처한 일이기에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국정원 안팎서 대통령 재가를 거친 정보당국의 간부급 인사가 번복된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보고 있다.

최측근이…
실세의 난?

국정원은 이달 초, 전 국·처장인 1급 간부 7명에 관해 새 보직 인사를 공지했다가 돌연 발령을 취소했다. 김규현 국정원장의 ‘오른팔’로 알려진 A씨는 지난해 9월 1급, 같은 해 11월 2·3급 간부 100여명의 인사 때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A씨에 관한 투서가 인사 번복의 배경이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투서를 받은 적이 없다”며 “투서를 받아 인사를 하거나 인사를 안 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언급된 윤석열정부 국정원의 인사 파동은 처음이 아니다. 1차 인사 파동은 윤정부 출범 4개월 만인 지난해 9월 1급 간부 27명이 퇴직한 것이다. 이전 정권인 문재인정부의 인적 청산과 연계된 퇴직이었다. 이어 10월에는 조상준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돌연 사퇴하면서 내부 갈등설이 제기됐다.

2차 파동은 12월 2·3급 간부 130여명이 직무서 배제되거나 한직으로 발령을 받은 것을 가리킨다.

최근 불거진 3차 파동은 1차 파동에 따른 1급 보직인사 건이다. 이 여파는 해외 정보 파트까지 번졌고 미국, 일본 같은 주요 국가의 거점장들까지 소환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파동의 중심에 선 A씨는 김 원장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윤정부가 들어선 이후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하면서 요직을 꿰차기도 했다. A씨는 1차 파동 때 조 전 실장과도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인물을 주요 직에 발탁하고 승진시키려 하면서 배제된 인사들과 다툼이 있었다는 게 골자다.

A씨는 김 원장의 최측근이기 전 방첩센터장을 역임했다. 그는 외무고시를 패스한 정통 외교관 출신인 김 원장의 선택을 받아 ‘국정원 정상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국정원장의 직속기관인 방첩센터는 본래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에 둔다. 그러나 김 원장은 국정원장 직할 부서로 만들어 주도권을 가져가려 했다. 실제 방첩센터는 지난해 말부터 창원·진주·전주·제주 민주노총 간첩 사건을 주도해 성과를 올려왔다.

‘윤 사단’ 조상준 밀어낸 A씨 그림자 지목
‘나만의 리그’ 갈등…전례 없는 인사 번복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 파동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원장이 A씨에게만 의지했다거나 A씨가 공작을 주도하면서 우파 중용을 막으려 했다는 등의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정원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때 적폐청산 TF서 활동하던 인물이 인사기획관이 됐다. 그가 A씨의 공작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도 존재한다”며 “최근 언론서 언급된 투서로 대통령실이 진상조사에 나섰다는 건 가능성이 크지 않다. 현 단계에선 쌓인 불만들이 표면화된 건 사실이라고만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A씨 외에도 B씨도 요주의 인물로 언급되고 있다. 2018년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세 번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능라도 경기장서 평양시민에게 연설했다. 초유의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여러 부처가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는데, 국정원 버전 연설문을 쓰는 데 B씨가 참여했다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A씨와 친분이 있는 B씨가 윤석열정부 들어서도 주요 보고서에 접근할 수 있는 보직에 보임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B씨 외에 내부 감찰을 맡고 있는 C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박근혜정부 청와대에 파견갔던 C씨는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직보했다는 의혹으로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서도 거론됐던 인물이다.

김 원장은 대북 강경파인 매파로 손꼽힌다. 국정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정체성 교육’을 도입한 만큼 선명성을 강조한다. 국정원 직원이라면 하루 8시간씩 3일간 모두 24시간의 이념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터질 게
터졌다

특히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신원검증센터를 신설해 국정원 외부 공직자의 정체성까지 들여다보려 했다. 이를 반대했던 게 조 전 실장이다. 정체성과 선명성을 강조한 김 원장은 문제가 있는 인물일지라도 국가관이 투철하다면 중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조 전 실장은 그렇지 않았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국정원 관계자는 “김 원장과 논의가 끝나지 않은 조 전 실장 중심의 인사가 윤 대통령에게 보고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통령의 선택을 받지 못한 조 전 실장이 아웃된 이유”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취임 초부터 과거 정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인사 물갈이’에 들어갔다. 지난해 6월 1급 보직국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한 데 이어, 같은 해 말 2·3급 간부 인사를 통해 100여명을 또다시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번 1급 간부 인사 후에도 추가로 100여명을 직무 배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과감한 인적 청산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던 인물은 또 있다. 해외 파트를 총괄하는 권춘택 1차장이다. 권 차장은 속도감이 없더라도 외부가 아닌 내부 인사를 중심으로 조직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권 차장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인 1986년 공채로 들어와 30여년간 국정원에 몸담았다. 박근혜정부 당시 2013년 미 워싱턴DC 주미 대사관서 정무2공사로 근무하며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협력을 담당했다. 김 원장이 임명되기 전 윤정부 국정원장에 물망이 오르기도 했다.

국정원 출신 한 관계자는 “A씨가 권 차장까지 몰아내려 했다는 소식이 파다하다. 다행이게도 대통령실이 제대로 된 상황 파악에 나섰고 A씨는 면직 처리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김 원장에게 프랑스·베트남 순방 직전 “조직·인사서 손을 떼고 기다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더십 제로
안정화 실패

정치권에서는 최근 국정원의 인사 파동과 관련해 정보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정보위 출신의 한 의원은 “이례적 갈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갈등이 표면화된 건 처음”이라며 “김 원장의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조직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내부 갈등은 과거 정부 때도 있었다. 박지원 국정원장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노은채 전 실장도 기조실장을 역임했을 당시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파벌싸움’이란 국정원의 오래된 적폐가 곪을 대로 곪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박지원 전 원장은 “(당시)인사 전횡은 없었다”며 “있었으면 파동이 났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번 인사 파동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면서 대통령실 내부서조차 김 원장이 책임지고 자리서 물러나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면직된 A씨를 제외하고 대기 발령됐던 2·3급 간부들은 김 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신뢰를 얻어온 김 원장이 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조직 안정화에 실패했다고 본다”며 “여러 책임이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리더십이 제로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서도 김 원장의 책임을 물어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국정원 인사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가 김 원장의 거취 문제로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국정원 간부 일부가 대통령실에 문제를 제기했고 공직기강비서관이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역대급 태풍’이 불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직기강실 바삐 움직여”
대통령실서 진상조사 착수

일각에선 김 원장 후임 후보군의 이름도 언급되고 있다. 정보당국 출신 관계자는 “김 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가 바닥나지 않았겠냐”며 “검찰 출신이 새롭게 자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 새로운 국정원장 인선 움직임은 없다”면서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바쁘다. 진상조사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우선 대통령실은 지난 16일 “일단 진상조사를 통한 실체 파악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정보기관 내 특정 인사의 인사 전횡 의혹이 외부로 드러난 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그 내용부터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19일부터 해외에 있는 만큼 국정원장 교체 문제 등을 검토하기엔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국정원 내부의 인사 잡음에 대한 문제가 지난해부터 수차례 제기됐던 만큼 이번 조사 결과에 A씨의 전횡 의혹 등의 문제가 분명히 밝혀질 경우 김 원장 교체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거듭된 인사 파동과 관련해 김 원장의 책임도 가볍지 않음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김 원장에 대한 문책으로 이어질지 신중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김 원장을 향한 윤 대통령의 신임이 작지 않다”며 “A씨 등에 대한 징계나 문책 수준으로 일단락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간첩단 수사 등 정부 출범 뒤 국정원의 공도 적지 않은 만큼 김 원장을 내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김규현
사퇴하나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김 원장을 교체할 생각이었다면 A씨의 인사 전횡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을 찾아온 김 원장을 만났을 때 교체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때 윤 대통령이 “불신임하려는 건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건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에 무게를 뒀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순방서 돌아온 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 김 원장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할지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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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