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법’ 윤석열정부 반대하는 내막

“나라에 도움 안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반대하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실상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돕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는 평가다. 정부 부처가 제출한 ‘반대’ 의견은 법 통과 논의 과정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특별법 통과가 무산된다면 검찰이 윗선을 제대로 겨누지 못했던 것처럼 추가 조사는 어려울 전망이다.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은 지난 4월20일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야당 국회의원 183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으나 국민의힘의 반대가 극심하다. 정부도 여당의 행보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별법 반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법 통과 무산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억지 주장
전부 한통속

행안부는 지난달 1일부터 12일까지 이태원 특별법과 관련이 있는 정부 부처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국회에 발의된 특별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었다. 5개 부처(행안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인사혁신처, 감사원)가 의견을 냈다. 모두 이태원 특별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행안부가 취합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이 의견들은 이태원 특별법 관련 논의에 반영될 수 있다.

행안부는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의 핵심 내용인 특조위 설치, 피해구제심의위원회와 희생자추모위원회 설치에 모두 반대했다. 국회에 낸 의견 자료서 행안부는 “특조위의 진상규명 기능은 현행 경찰 특별수사본부, 검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등과 기능이 중복된다. 별도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기능의 중복과 비효율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피해구제심의위원회와 추모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행안부 소속 ‘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단’ 등을 통해 이미 역할을 수행 중이다. 기능의 중복과 비효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노동부는 발의안 내용 중 ‘피해자 치유 휴직 관련 정부 지원’ 조항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치유 휴직의 실시 여부는 ‘노사가 알아서 정할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하거나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발의안 66조와 67조에는 ‘참사 피해자는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치료를 위한 치유 휴직을 신청할 수 있고, 사업주는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사업주의 고용유지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국가가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노동부는 국회에 낸 자료서 “치유 휴직은 노사간 원만한 협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이로 인한 노사간 고용불안에 대한 (국가 차원의)지원 실익이나 지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치유 휴직 시 고용유지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며 ‘감사원 감사 요구’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봤다. 특별법 발의안 34조에는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조사 과정서 공무원의 비위 등을 적발했을 때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고, 감사원은 3개월 내 감사 결과를 특조위에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행안·복지·노동·인사혁신처·감사원
5개 부처 공통 의견…통과 무산 계획도?

감사원은 국회에 낸 의견 자료서 “감사원의 감사 권한은 헌법이 부여한 고유 권한이다. 감사원에는 일체의 감사 운영을 독자적·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 해당 조항은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미 국회법에 따라 국회가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면 특조위가 국회에 보고하면 된다. 별도의 감사 요구 조항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사혁신처는 ‘특조위에 대한 국가기관의 공무원 파견 의무’ 조항에 반대 의견을 냈다. 특별법 발의안 24조 ‘특조위 위원장은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국가기관 등에 소속 공무원이나 직원의 파견근무 및 이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파견 요청을 받은 국가기관 등의 장은 업무 수행에 중대한 장애가 있음을 소명하지 않는 한 30일 이내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에 태클을 걸었다.

인사혁신처는 “파견은 기관 간 상호 동의를 전제로 운영돼야 한다. 일방의 파견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기관 고유의 인사 권한 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특조위의 파견 요청에 국가기관 등이 협조해야 한다’는 의무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법 발의 과정에 참여했던 변호사들은 이 같은 정부 부처의 반대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관계자는 “이미 국정조사 결과 책임 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결론 났다. 행안부가 재난통신망 기록을 없애면서 진상규명에 필요한 일부 과정이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시민단체 소속 다른 변호사도 “감사원 요구 중 ‘국회가 감사를 요청할 수 있고 특조위가 국회에 보고하면 된다’며 반대했는데 국회가 감사를 요청하기 전, 정치적 여야 대립으로 불가능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감사원 독립성 침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수월하게 감사를 진행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틀어막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대 근거가…
“황당·무책임”

특별법 외에도 비슷한 양상의 참사 재발방지대책으로 발의된 법안 중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한 법안은 단 한 건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비슷한 사고를 막고 각종 재난 관리 체계 및 교육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약 50건이 발의됐다.

특히 재난 관리의 근간이 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강화하는 개정안은 33건이 발의됐다. 핼러윈 축제처럼 명확한 주최·주관자가 없다면 개최지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난안전법 개정안에는 대규모 인원 밀집이 예상될 때 지자체장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행안부 장관이 안전관리계획의 이행 실태를 지도·점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난안전법 개정안에는 심리상담 지원 대상으로 재난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긴급구조활동과 응급대책 등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등도 포함되는 내용이 담겼다.

다중운집 시 정부가 이동통신사 데이터 등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은 지난 4월27일 본회의 문턱을 겨우 넘었다. 여야는 이 법안이 통과한 날과 참사 6개월을 맞은 날, 관련 논평조차 내지 않았다. 참사 초기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나서겠다고 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나머지 법안들은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를 두고 그동안 여야가 이태원 참사 책임 공방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 해임건의안 및 탄핵소추, 특별법 제정 등을 놓고 공방만 벌이면서 법안 통과가 늦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법적 책임이 확정됐을 때 통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에 법이 통과돼 박 청장이 무죄를 받으면 솜방망이 처벌도 하지 못할 우려가 나왔었다”고 말했다.

진상 규명,
재난 정쟁화?

특별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재난의 정쟁화’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특별법과 관련해 “특조위원 추천의 구성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며 “추천위원 9명 중 유가족과 야당이 6명을 추천하게 돼있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내년 총선 때까지 쟁점화해 정치적 이득을 얻어보겠다는 총선 전략 특별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은 이달 중으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일 계획이다. 지난달 19일, 박광온 원내대표는 국회서 열린 유가족 간담회서 “특별법 논의가 시급하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해 명명백백하게 그날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특별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 김교흥 의원은 비공개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합의로 통과돼야 특별법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6월 내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송진영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은 “양곡관리법이나 간호법처럼 정쟁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특별법에)거부권이 행사될 수 있어 여야 합의로 통과되기를 원한다”며 “여당 설득을 통해 정쟁이 아닌 합의에 의한 법안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도 “국민의힘도 법안에 동참할 수 있도록 계속 호소할 생각”이라고 했다. 다만, 민주당은 상임위 논의가 지지부진해 처리가 늦어질 경우 단독 강행 처리도 고민하고 있다. 오는 29일이 지나면 행안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가져올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상황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 의원이 맡게 되면 야당 단독 상임위 통과, 본회의 직회부로 법안을 넘기는 게 가능해진다.

발의 한 달 넘었는데 제자리
야 “6월 처리” 여 “반대”

특별법 통과에 먹구름이 끼면서 윗선에 대한 책임론도 사그라들고 있다. 이 장관과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 외에도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을 거부하면서 대부분 사법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장관은 야권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다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직무가 정지된 상태서 현직을 유지하며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윤 청장은 지난 1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법적 책임이 없다는 명분으로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김 청장은 특수본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송치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박 구청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지만 사직하지 않고 있다. 법원서 법적 책임이 있는지 끝까지 다퉈보겠다는 것이다. 박 구청장이 지난 2월 말까지 사직하지 않으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보궐선거서 새 구청장을 뽑을 수도 없었다.

한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7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이) 숙려기간을 한참 지난 오늘까지도 관련 소관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안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며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농성 돌입을 밝혔다.

이날 유족들은 “특별조사기구의 조사를 통해 참사의 진실을 마주하게 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왜 정쟁으로 간주하는지 묻고 싶다”며 “진상규명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정부의 책무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피해자의 정당한 요구이자 권리”라고 호소했다.

책임지지
않는 윗선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미 국정조사가 진행됐고, 책임자들에 대한 공판이 진행 중이니 특별법이 필요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참사의 책임자들은 국정조사에서도, 공판서도 책임을 부인하고 기록을 자의적으로 삭제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를 통해서만 진실을 규명할 수 있고, 진실이 규명돼야만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특별법 제정 촉구의 취지를 밝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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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