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법’ 윤석열정부 반대하는 내막

“나라에 도움 안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반대하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실상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돕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는 평가다. 정부 부처가 제출한 ‘반대’ 의견은 법 통과 논의 과정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특별법 통과가 무산된다면 검찰이 윗선을 제대로 겨누지 못했던 것처럼 추가 조사는 어려울 전망이다.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은 지난 4월20일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야당 국회의원 183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으나 국민의힘의 반대가 극심하다. 정부도 여당의 행보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별법 반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법 통과 무산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억지 주장
전부 한통속

행안부는 지난달 1일부터 12일까지 이태원 특별법과 관련이 있는 정부 부처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국회에 발의된 특별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었다. 5개 부처(행안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인사혁신처, 감사원)가 의견을 냈다. 모두 이태원 특별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행안부가 취합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이 의견들은 이태원 특별법 관련 논의에 반영될 수 있다.

행안부는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의 핵심 내용인 특조위 설치, 피해구제심의위원회와 희생자추모위원회 설치에 모두 반대했다. 국회에 낸 의견 자료서 행안부는 “특조위의 진상규명 기능은 현행 경찰 특별수사본부, 검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등과 기능이 중복된다. 별도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기능의 중복과 비효율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피해구제심의위원회와 추모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행안부 소속 ‘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단’ 등을 통해 이미 역할을 수행 중이다. 기능의 중복과 비효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노동부는 발의안 내용 중 ‘피해자 치유 휴직 관련 정부 지원’ 조항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치유 휴직의 실시 여부는 ‘노사가 알아서 정할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하거나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발의안 66조와 67조에는 ‘참사 피해자는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치료를 위한 치유 휴직을 신청할 수 있고, 사업주는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사업주의 고용유지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국가가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노동부는 국회에 낸 자료서 “치유 휴직은 노사간 원만한 협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이로 인한 노사간 고용불안에 대한 (국가 차원의)지원 실익이나 지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치유 휴직 시 고용유지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며 ‘감사원 감사 요구’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봤다. 특별법 발의안 34조에는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조사 과정서 공무원의 비위 등을 적발했을 때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고, 감사원은 3개월 내 감사 결과를 특조위에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행안·복지·노동·인사혁신처·감사원
5개 부처 공통 의견…통과 무산 계획도?

감사원은 국회에 낸 의견 자료서 “감사원의 감사 권한은 헌법이 부여한 고유 권한이다. 감사원에는 일체의 감사 운영을 독자적·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 해당 조항은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미 국회법에 따라 국회가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면 특조위가 국회에 보고하면 된다. 별도의 감사 요구 조항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사혁신처는 ‘특조위에 대한 국가기관의 공무원 파견 의무’ 조항에 반대 의견을 냈다. 특별법 발의안 24조 ‘특조위 위원장은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국가기관 등에 소속 공무원이나 직원의 파견근무 및 이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파견 요청을 받은 국가기관 등의 장은 업무 수행에 중대한 장애가 있음을 소명하지 않는 한 30일 이내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에 태클을 걸었다.

인사혁신처는 “파견은 기관 간 상호 동의를 전제로 운영돼야 한다. 일방의 파견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기관 고유의 인사 권한 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특조위의 파견 요청에 국가기관 등이 협조해야 한다’는 의무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법 발의 과정에 참여했던 변호사들은 이 같은 정부 부처의 반대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관계자는 “이미 국정조사 결과 책임 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결론 났다. 행안부가 재난통신망 기록을 없애면서 진상규명에 필요한 일부 과정이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시민단체 소속 다른 변호사도 “감사원 요구 중 ‘국회가 감사를 요청할 수 있고 특조위가 국회에 보고하면 된다’며 반대했는데 국회가 감사를 요청하기 전, 정치적 여야 대립으로 불가능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감사원 독립성 침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수월하게 감사를 진행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틀어막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대 근거가…
“황당·무책임”

특별법 외에도 비슷한 양상의 참사 재발방지대책으로 발의된 법안 중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한 법안은 단 한 건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비슷한 사고를 막고 각종 재난 관리 체계 및 교육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약 50건이 발의됐다.

특히 재난 관리의 근간이 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강화하는 개정안은 33건이 발의됐다. 핼러윈 축제처럼 명확한 주최·주관자가 없다면 개최지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난안전법 개정안에는 대규모 인원 밀집이 예상될 때 지자체장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행안부 장관이 안전관리계획의 이행 실태를 지도·점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난안전법 개정안에는 심리상담 지원 대상으로 재난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긴급구조활동과 응급대책 등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등도 포함되는 내용이 담겼다.

다중운집 시 정부가 이동통신사 데이터 등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은 지난 4월27일 본회의 문턱을 겨우 넘었다. 여야는 이 법안이 통과한 날과 참사 6개월을 맞은 날, 관련 논평조차 내지 않았다. 참사 초기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나서겠다고 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나머지 법안들은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를 두고 그동안 여야가 이태원 참사 책임 공방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 해임건의안 및 탄핵소추, 특별법 제정 등을 놓고 공방만 벌이면서 법안 통과가 늦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법적 책임이 확정됐을 때 통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에 법이 통과돼 박 청장이 무죄를 받으면 솜방망이 처벌도 하지 못할 우려가 나왔었다”고 말했다.

진상 규명,
재난 정쟁화?

특별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재난의 정쟁화’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특별법과 관련해 “특조위원 추천의 구성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며 “추천위원 9명 중 유가족과 야당이 6명을 추천하게 돼있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내년 총선 때까지 쟁점화해 정치적 이득을 얻어보겠다는 총선 전략 특별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은 이달 중으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일 계획이다. 지난달 19일, 박광온 원내대표는 국회서 열린 유가족 간담회서 “특별법 논의가 시급하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해 명명백백하게 그날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특별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 김교흥 의원은 비공개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합의로 통과돼야 특별법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6월 내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송진영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은 “양곡관리법이나 간호법처럼 정쟁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특별법에)거부권이 행사될 수 있어 여야 합의로 통과되기를 원한다”며 “여당 설득을 통해 정쟁이 아닌 합의에 의한 법안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도 “국민의힘도 법안에 동참할 수 있도록 계속 호소할 생각”이라고 했다. 다만, 민주당은 상임위 논의가 지지부진해 처리가 늦어질 경우 단독 강행 처리도 고민하고 있다. 오는 29일이 지나면 행안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가져올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상황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 의원이 맡게 되면 야당 단독 상임위 통과, 본회의 직회부로 법안을 넘기는 게 가능해진다.

발의 한 달 넘었는데 제자리
야 “6월 처리” 여 “반대”

특별법 통과에 먹구름이 끼면서 윗선에 대한 책임론도 사그라들고 있다. 이 장관과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 외에도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을 거부하면서 대부분 사법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장관은 야권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다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직무가 정지된 상태서 현직을 유지하며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윤 청장은 지난 1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법적 책임이 없다는 명분으로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김 청장은 특수본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송치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박 구청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지만 사직하지 않고 있다. 법원서 법적 책임이 있는지 끝까지 다퉈보겠다는 것이다. 박 구청장이 지난 2월 말까지 사직하지 않으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보궐선거서 새 구청장을 뽑을 수도 없었다.

한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7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이) 숙려기간을 한참 지난 오늘까지도 관련 소관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안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며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농성 돌입을 밝혔다.

이날 유족들은 “특별조사기구의 조사를 통해 참사의 진실을 마주하게 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왜 정쟁으로 간주하는지 묻고 싶다”며 “진상규명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정부의 책무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피해자의 정당한 요구이자 권리”라고 호소했다.

책임지지
않는 윗선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미 국정조사가 진행됐고, 책임자들에 대한 공판이 진행 중이니 특별법이 필요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참사의 책임자들은 국정조사에서도, 공판서도 책임을 부인하고 기록을 자의적으로 삭제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를 통해서만 진실을 규명할 수 있고, 진실이 규명돼야만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특별법 제정 촉구의 취지를 밝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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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