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인문학> 스코틀랜드 ‘목동 골프’의 시작

매일같이 양떼들이 지나가면서 밟고 뜯어먹었던 터라 초원은 아예 풀이 다져져서 매끄러운 들판 같았다. 토끼가 다니면서 다져놓은 자리보다는 덜했지, 풀들이 가지런히 베어져 있는 잔디밭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멀리 동쪽 나라에서 온 무역선의 상인들은 이 초원의 잔디밭을 페어웨이라고도 불렀다. 부드러운 푸른 들판은 잠시 갈대밭을 지나다가 끈질긴 뿌리를 가지고 낮게 땅바닥에 깔린 이끼 같은 잡초들을 지나 모래사장으로 이어졌고 이내 바닷가로 그 끝이 마무리됐다.

단순한 시작

헨리는 반사적으로 자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거꾸로 잡았다. 양들을 모는 기다란 나무 막대기였다. 주변에서 때리기 편한 둥근 돌도 찾았다. 바닷가 지척에 널 부러진 둥근 자갈을 찾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이내 막대기로 양들이 다져놓은 들판을 향해 그 돌을 후려쳤다. 30m 정도밖에 날라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적게 나가 오기가 발동했다.

헨리는 막대기로 다시 돌을 때렸다. 그러기를 10여 차례. 처음 시작했던 언덕 위까지는 300야드 이상의 거리가 되는 듯했다. 다시 돌아가는 게 더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차례 쳐댄 돌멩이는 지역에서 서식하던 들토끼들이 다져놓은 편편한 잔디 위에 도달했다.

당시 들토끼들이 다져놓은 편편한 잔디는 스코틀랜드에서 그린으로 불렀다. 이제 자갈돌과 헨리는 양들이 놀던 페어웨이를 지나 토끼의 영역으로 다가간 것이었다. 그린 한복판에는 조금 전 토끼가 숨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은 예나 지금이나 홀로 불렸다. 헨리는 토끼 구멍 속에다 그 돌을 집어넣을 요량이었다. 돌멩이를 십여 차례 때리고 온 행위에 목표가 생긴 것이었다. 뭔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양몰이 소년들의 호기심
구멍에 돌 넣기에서 출발

할아버지로부터 배웠던 집 마당에서의 공 때리기 놀이 하고는 뭔가 달랐다. 헨리도 그 놀이를 가끔 했지만 상대방이 있어야 했고, 장소도 비좁아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세인트앤드루스 마을의 바닷가에도 비슷한 놀이가 있었음을 헨리는 알고 있었다. 무역선을 타고 온 상인들은 정박을 하면서 모래사장에서 자갈 때리기 놀이를 하곤 했다.

상인들은 모래를 쌓아 올려 그 위에다 둥근 자갈을 올려놓고 일정한 금 안에서 때려 막대기를 맞추는 놀이를 했다. 겨울이면 특히 세인트앤드루스 바닷가의 이끼가 낀 빙판 위에서도 그들은 막대기를 얼음 위에 세워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그런 놀이를 했다.

네덜란드 상인과는 다르게 스코틀랜드의 목동끼리도 바닷가에서 이따금씩 모래판의 자갈을 후려치는 놀이는 해오던 터였다. 그것은 한 번씩 때리고는 떨어진 거리를 재서 승부를 가리는 단순한 놀이에 불과했다. 상인들과 목동들의 놀이는 같은 바닷가였지만 상인들은 막대기를 맞췄고 목동들은 나간 거리를 쟀다.

오늘 헨리가 초원서 했던 동작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둔덕이 있는 언덕 위에서 자갈을 때린 방향은 아래쪽 양들이 노는 초원, 즉 페어웨이였다. 편편한 페어웨이를 향해 돌을 날렸고 그린이 있었으며 토끼 홀이라는 집어넣을 목표물이 있었다. 헨리는 무료하게 풀피리만 불며 보내던 일상과는 달리, 뭔가 흥미거리를 찾은 것 같았다.

재차 해보았다. 하면 할수록 뭉툭한 돌이 생각대로 쉽게 맞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처럼 후려친 돌이 앞에 펼쳐진 페어웨이로만 날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바닷가 쪽의 갈대숲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덤불로도 들어가곤 했다.


다시 시도해도 단번에 돌멩이가 페어웨이로 날아가지만은 않았다. 겨우 10여 차례 만에 그린 근처에 공이 도달했고 그것도 서너 번 만에 볼을 굴려야 겨우 토끼 굴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작은 욕심서 나온 ‘룰’
골프로 발전한 ‘고프’

헨리는 휘두르는 수를 줄이면서 구멍에 집어넣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재미를 붙인 그는 치는 타수를 줄일 수 있기를 바라며 막대기로 돌을 날려 버리는 놀이로 해가 지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한적한 봄날의 오후는 새로운 놀이를 고안해내는 것으로 하루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헨리는 초원의 또래 아이들에게 흥분된 억양으로 기막힌 놀이를 찾아냈노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헨리의 주변에 모여든 목동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세웠다. 모두들 막대기와 되도록이면 둥근 자갈을 구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목동들은 어제 헨리가 최초의 샷을 날렸던 그 언덕에 모였다.

한 사람씩 페어웨이를 향해 자갈을 날리기 시작했다. 헨리는 어제 하루 종일 연습을 했던 기량으로 능숙하게 휘둘러 댔다. 헨리의 절친인 찰스는 처음 휘두르는 통에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모두들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위대한 태동

그들이 몰던 양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제멋대로 풀을 뜯고들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에딘버러의 목동들은 이제 심심하지 않아도 됐다.

양을 치며 따분하기는커녕, 어서 빨리 아침이 밝아 양들을 데리고 초원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들이 났다. 그렇게 모인 목동들은 양들은 내버려두고 놀이에만 열중하곤 했다. 고프(Goeff, 14세기 골프에 대한 영국의 어원)는 스코틀랜드의 초원서 그렇게 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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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