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간호간병서비스’의 이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02 16:11:54
  • 호수 14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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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00만원’ 있으나마나 간병 앱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가족 중 큰 병을 가진 환자가 발생하면 가정의 삶이 무너지면서 가족의 일상은 환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가족 중 누군가의 희생으로 환자를 간병할 수 있다면 다행인 상황이다. 무서울 정도로 비싼 간병비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코로나19 환자는 2020년 1월20일에 처음 발생했다. 첫 번째 확진자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들어온 중국인 여성이었다. 이후 약 한 달여간 30명에 불과했던 확진자는 같은 해 2월18일, 신천지 대구 교회 신도인 ‘31번째 환자’가 나온 이후 급증했다. 확진자 수가 하루에 수십, 수백명 단위로 가파르게 증가해 한 달 만에 약 8000명으로 늘었다.

모친 암 말기
슬퍼할 겨를도

국내 코로나의 1차 대유행이 있었던 이 시기, 누적 확진자 수는 코로나가 시작된 중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를 기록했다. 각국은 중국과 함께 한국을 위험국으로 분류했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비상이 걸린 것은 국내 병원들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자 환자들은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가장 많이 감소한 것은 외래진료다.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동안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느껴 병원 방문을 꺼렸던 탓이다.

실제로 병원을 찾았다가 코로나에 감염된 사례가 발생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자택에 대기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하고 병원에 입원 중인 가족을 면회한 경우였다.


코로나 확진자가 30분 이상 대학병원 다인실에 머물며 입원 중인 가족과 그 동료 환자, 의료진 등 10여명을 접촉했다. 접촉자는 코로나 진단 검사에서 모두 1차 음성 반응을 보였지만, 백신 접종 후 방호복을 착용했던 의료진을 제외한 다인실 입원환자 6명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2021년 7월부터는 종합병원, 대학병원, 요양병원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의료기관 내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재원 환자의 확진으로 이어져, 병동이 폐쇄되거나 의료 종사자가 접촉자로 격리되는 등 의료 인력과 병상 운영에 부담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의료기관 감염이 백신 미접종자 위주로 발생하고 있다며, 접종하지 않은 입원환자와 간병인, 돌봄 인력 등에 대해 최대한 빠른 접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이쯤되자, 대학병원들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은 2020년 12월14일부터 입원환자의 보호자에게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받는 등 감염 여부를 확인했다.

그동안 신규 입원환자 등에 국한해 코로나 검사를 했으나 계속되는 병원 내 집단감염으로 보호자에 대한 검사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무증상 감염자가 적지 않은 탓에 병원들은 경계 태세를 높였다.

간병 일당 최소 14만원∼최고 25만원
해당 서비스는 호스피스 병동만 가능

서울성모병원은 기존 검사 대상이었던 입원환자와 간병인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코로나 검사를 의무화했다. 환자의 보호자는 코로나 음성 확인서 등을 제출해야 하고, 환자의 보호자가 교대할 경우에도 적용됐다.


특히 재활병원은 요양병원에 머물다 오는 환자가 많은 편이고 대개 입원 기간이 한 달에서 석 달 가까이 되는 편이라 환자, 보호자, 간병인 모두 코로나 확진 여부를 검사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다. 이미 일상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는 오는 3월부터 조건부 해제된다. 100% 원격 근무와 재택근무를 시행했던 기업은 다시 내근으로 지침을 바꿨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종교시설은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예배를 시작했다.

현재 바뀌지 않은 것은 병원뿐이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지만, 병원은 환자 간 집단감염이 발생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환자와 보호자가 간병인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간병인이 환자를 맡기 전 코로나 검사를 통해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음성 판정 기간이 72시간으로 짧아 지속적인 검사 비용 부담의 고충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 간병인은 12시간 등 단기 환자의 간호, 체중이 많이 나가는 환자 간호 등을 거부한다. 

간병인협회 측은 코로나 상황이라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간병인협회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간병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4개월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코로나에는 간병인 교육조차 할 수 없었다. 환자를 위한 간병인 매칭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것은 환자와 보호자다. A씨는 지난달 어머니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A씨의 어머니는 수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준비하고 있다. A씨는 어머니의 병을 알게 된 후 큰 충격을 받았지만 ‘슬픈’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A씨에게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돈이었다. 암 환자는 암 진단 시 ‘본인 일부 부담금 산정특례 제도’와 ‘본인 부담 상한제’를 지원받을 수 있다. 본인 일부 부담금 산정특례 제도는 암 산정특례로 등록된 건강보험 환자에 대해 해당 질환 진료비 중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부분의 5%만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충격적인
비용 보니…

단, 전액 본인 부담 혹은 선별 급여, 비급여 항목은 제외된다.

‘본인 부담 상한제’는 1년간 환자가 부담한 건강보험 본인 부담 진료비의 총액이 소득수준에 따라 본인 부담 상한액을 초과하는 경우 건강보험공단서 일부를 부담하는 제도다.

여기서 본인 부담 상한액은 지난해 기준 598만원으로 비급여, 선별 급여 등의 항목은 제외된다.


즉, A씨는 어머니의 병원 검사비 및 항암치료비가 아닌 간병비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가 생겼다. A씨의 어머니는 걸을 수 없는 상태로 항암치료 외 재활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이로 인해 하루 간병비는 14만원이 훌쩍 넘었는데 이마저도 가장 싼 비용이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에게 간편한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플(앱)은 A씨 어머니의 상황을 보고 3명의 간병인을 추천했다. 

이 어플은 보호자에게 ▲24시간 간병인지, 24시간 미만 간병인지 ▲간병 장소 ▲코로나 검사의 필요 여부 ▲간병 일수 ▲환자 나이 및 신체 정보 ▲환자 질환 ▲간병이 필요한 이유 ▲병실 종류 ▲전염성 질환자 여부 ▲의식 상태 ▲식사 유무 ▲대소변 해결 상태 ▲마비가 있는지 ▲거동 및 운동 상태 ▲욕창 유무 ▲석션 필요 여부 등을 물었고 바로 간병인을 추천했다.

간병 서비스 제공 어플은 ‘일급 14만3100원’ ‘일급 15만9000원’ ‘일급 26만5000원’의 금액을 제시했다. 세 명은 다른 사람이었고, 이름, 나이, 국적 정보가 함께 기재돼있었다. 이 중 가장 저렴한 일급 14만3100원은 일당 13만원, 하루 식사비 5000원, 거래 업체 수수료 6%(8100원)를 포함한 금액이다. 

이 금액으로 A씨 어머니가 4주 동안 간병을 받으려면 429만3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병원비까지 더하면 한 달 부양비는 800만원을 육박했다.

물론 A씨가 어머니 간병을 직접 해도 된다. 하지만 A씨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보살펴야 하는 입장이고, A씨의 형제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 오후 6시까지는 간병이 불가능하다. 24시간 간병 서비스가 아닌 시간제 간병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로워진다.


불가능한
통증 케어

A씨 형제가 퇴근 후 간병하려고 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필요한 시간에 따라 간병인을 고용하는 시간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체로 24시간 상주하는 종일제로만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병원은 보호자 간병 자체를 막는 경우도 많다.

결국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400만원이 넘는 간병비를 지불하거나, 대학병원이 아닌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셔서 통원치료를 받는 것이다. A씨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이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 말기 암 환자인 A씨의 어머니는 일상생활 중 심각한 암성 통증이 동반되는데, 해당 통증은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아야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요양병원에서는 마약성 진통제 처방 자체가 불가능하다. A씨 어머니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말기 암 환자의 치료는 기한을 알 수 없다. 결국 간병비 등의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었다.

A씨 어머니가 내원하는 대학병원에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이 있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병원에 상주하지 않고, 병원에 있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24시간 전문 간호(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처음부터 환자의 간병비 부담을 줄이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A씨 어머니와 같은 입장에서 환영할만한 서비스다. 해당 병원은 지난해 5월16일 일반병동 525개의 병상 중 총 344개 병상의 간호간병서비스 병상을 갖추게 됐다고 전했다. 또 부속병원 본관 61개 병동(대장암)에 45개 병상, 신관 5A 병동(혈액암)에 41개 병상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설을 완비했다.

해당 병원장은 “이번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 확대로 이제 일반 병상 대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이 3분의 2에 달하는 수준이다. 암 환자들에게 질 높은 간호간병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만큼 간호·간병 걱정 없는 암 전문 병원이 되겠다”고 밝혔다.

가족 아프면 ‘간병 실직’ ‘간병 파산’
간병인 구하려도 없는 상황까지 발생

하지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에 A씨 어머니는 입원할 수 없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말기 암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치료를 중점으로 한다. 결국 항암치료 중인 A씨의 어머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에 입원할 수 없는 것이다. 

A씨는 “현실적으로 대학병원에 어머니가 입원해 있을 수 없다. 암 치료는 얼마나 오랜 기간 치료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 않냐. 그런데 치료비보다 간병비가 너무 비싸서 통증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에 입원할 수도 없다”며 “간병비 보험이 있다고 듣긴 들었는데, 간병비가 이렇게 심각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돈 때문에 어머니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전면 확대하고 간병인력 법적 근거·관리체계를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간병은 일부 법적·제도적 범주하에서 제공되는 통합서비스를 제외하고 가족 등 민간 간병인 중심으로 제공되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의료기관 633곳(약 6만7000병상)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이는 전체 통합서비스 제공 대상 의료기관의 25.6%(병상 기준 26.8%)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인권위는 “이런 상황에서 환자 당사자의 경제적 능력이나, 가족 구성원의 돌봄 여력 등에 따라 간병 자체를 포기하거나 ‘간병 실직’ ‘간병 파산’ 등 간병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 전체의 건강과 삶의 질 저하는 물론 생존마저 위협받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권위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보편적 의료서비스로 전면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간병은 전 생애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지원체계가 적절하고 충분하게 마련돼야 한다”며 “건강 상태나 경제적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돌봄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간병 부담을 사회적 연대로 전환시키고 사적 간병을 제도권 내로 포함해 공적 형태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간병인의 자격 기준·업무 범위·인력 수급 방안 등 간병 인력에 관한 법적 근거·관리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간병이 필요한 사람의 안전과 건강권, 간병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지원체계
마련해야

이 밖에 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정책 추진 시 ▲거주지서의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요양병원의 사회적 입원을 줄이기 위한 정책 추진 ▲공공의료기관 중심의 단계적 전면 확대 방안 수립 ▲지역 간 간호 인력 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간호 인력 수급 방안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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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