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국회의장님 도마 위 자질론

안으로 밖으로…팔 뻗기 바쁜 ‘진표살’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김진표 국회의장이 최근 ‘가장 욕먹는 사람’으로 전락했다는 소문이 국회에 파다하다. <일요시사>가 소문을 추적해보니 실제로 김 의장은 양당 모두에게 불만을 사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자니 야당에서 불만이 나오고 저러자니 여당에서 불만이 나온다.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서열 2위의 의전을 받는 입법부의 수장이다. 이 자리는 보통 최고 의석수를 차지한 정당에서 배출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부가 스스로 투표를 통해 의장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의석이 많은 정당일수록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덕분에 역대 국회의장은 늘 국회 제1당 출신이었다.

역할이…
중재자?

21대 국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0년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자연스럽게 국회의장 자리를 가져왔고, 6선의 박병석 의원을 당에서 추대했다. 대전 서구갑에서 내리 6선을 해온 박 의원은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인물이다.

처음 박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당선됐을 때, 여의도 정가 사람들은 국회의원 수첩을 뒤적거려야 했다. 비록 선수가 높은 사람이긴 했으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의원은 그동안 지독히도 ‘중립적’ 역할을 자처해왔다. 이 때문에 지난 24년의 의정생활 동안 박 의원은 뉴스 전면에 등장한 적이 많지 않았다. 민주당이 많은 풍파를 겪는 시절에도 그는 늘 순리대로 정치 생활을 이어나갔다.


박 의원이 초선 의원이던 시절, 민주당은 분당 위기에 처해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대다수 민주당 의원이 ‘반노’ 전선을 선택하며 맞섰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던 새천년민주당의 소장파는 결국 당을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2004년 총선에서 독자 후보를 내며 여권의 분열을 일으켰다.

이때 열린우리당에 참여한 의원들 중에는 박 의원도 섞여 있었다. 많은 우려 속에서도 그는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제17대 총선에 출마해 당당히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등에 업은 한나라당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그만의 선거전략과 유권자들의 지지가 맞물리며 당선에 성공했다.

이후 통합민주당으로 3선, 민주통합당으로 4선, 민주당으로 5선, 6선에 내리 당선됐다. 오랜 시간 국회에 머무른 그는 민주당 현역에서 최다선이라는 명예와 함께 21대 국회의원 중 여의도 경력이 가장 긴 정치인이 됐다.

그가 이처럼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어온 정치 커리어 덕분이었다. 박 의원은 이후 이후 정치 행보에서 계파색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계파 간 갈등 때마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고, 입장을 취해야 할 때는 본인의 소신을 따라갔다.

국가서열 2위 김진표 국회의장 실익이?
자타공인 ‘중재의 달인’도 욕먹은 자리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첨예하게 대립했던 안철수-문재인 간의 갈등에서도 끝까지 민주당 잔류를 선택하며 양 계파의 싸움을 말리려 애썼고, 각종 논란에 대해서도 최대한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이런 기질은 국회의장을 맡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국회의장은 통상 당적과 상관없이 중립성을 요구받는다. 입법부 전체의 수장인만큼 정치적인 선택에 있어 여야를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의장으로 당선된 의원은 당적 보유와 상임위원회 활동을 제한받게 된다.

민주당 내에서도 계파색을 드러내지 않던 인물이기에 국회의장도 제격일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고 박 의원은 그 기대에 나름 부응했다.

역사상 최고로 대립하던 제21대 국회를 ‘무난하게’ 이끌어가더니 임기 막바지에 있었던 이른바 '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이하 검수완박) 시즌에는 맹활약하며 의장 임기의 대미를 장식했다.

검수완박이란 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해 검찰청 자체의 힘을 완전히 줄이려한 법안이다. 당시 법안에 극렬히 반대했던 국민의힘 측은 끝까지 협상을 이어나가지 않았고, 국회는 ‘강대강’ 충돌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의사봉을 쥐고 있던 박 의장은 갈등이 심하게 불거진 시점에 미국과 캐나다 등지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법안 중재를 위해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밤새 여야 의원들을 만났다.

결국 여당과 야당은 ‘박병석표’ 중재안에 합의하기에 이르렀고, 이때 박 의장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사흘 후 국민의힘 측에서 해당 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대치를 이어갔지만,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때 박 의장의 활약이 강인하게 박혔다.

이처럼 국회의장 자리는 두 당의 중재를 최대한 장려해야 하는 위치다. 그러나 검수완박 사태를 보듯,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비록 중재를 잘한다고 해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고, 중재를 잘하지 못하면 양쪽 모두에서 욕을 들어먹어야 하는 자리다. 박 의원 같은 중재의 달인도 이 딜레마를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최연장자
통큰 양보

현재 국회의장을 맡고 있는 김진표 의장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여소야대 형국에서 연일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21대 국회의 후반기에 취임한 김 의장은 현재 진퇴양난의 기로에 빠져 있다. 친정인 민주당 편을 들어줬더니 사퇴 요구가 빗발치고, 그렇다고 중재를 하자니 불만이 속출 중인 탓이다.

사실 김 의장은 전반기에 이미 박 의원과 함께 국회의장 후보로 떠올랐었다. 최다선과 최연장자의 싸움에서 승부는 연장자의 양보로 마무리됐다. 김 의장은 오랜 고심 끝에 의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사실상 박 의원을 전반기 의장으로 만들어줬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김진표 의원이 양보했다는 느낌이 강했다”며 “원래 김 의원이 박 의원보다 의장 당선에 더 유력해보였지만, 그의 뜻에 따라 의장직이 박 의원에게 돌아간 것으로 안다”고 <일요시사>에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의장직 양보 건에서 보듯 김 의장은 타인과의 대립을 극도로 피하는 성격이 강하다. 여의도에서는 이미 그에게 ‘진표살(보살)’이라는 별칭을 붙여 부르는 게 오랜 유행이었다.


전반기 의장 임기 후 후반기 의회가 시작되면서 김 의원은 의장에 취임했다. 계파색이 옅고 중도적이라는 평가에 따라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김 의장의 취임을 반기는 분위기였고, 무난히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의장직에 앉았다.

민주당은 가장 중립적인 인물이 의장직에 앉았다고 평가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에서 그나마 보수적인 인물이 의장에 앉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의구심은 후보 시절부터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김 의장은 첫 일성에서 “제 몸에는 민주당 피가 흐른다. 폭주하는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을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의장직에 전면으로 반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평소 온화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알려진 김 의장 발언을 두고 국민의힘은 거세게 반발했고, 민주당도 적잖이 놀랐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날 발언이 그냥 나온 실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 김 의장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친명(친 이재명)계가 득세한 분위기에서 민주당은 강한 정치색을 띄고 있었다. 김 의장은 그에 반해 상당히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고 친명 팬덤의 눈에는 그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즉, 의장 당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김 의장이 정치적인 계산을 하고 해당 발언을 던졌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김 의장으로선 마땅한 경쟁 후보가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민주당 주류로 자리 잡은 친명계 의원들의 지지가 없으면 의장 당선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민주당 피? 

취임 일성처럼 김 의장의 이후 행보는 상당히 ‘민주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몇몇 현안에 대해 민주당에 유리한 결정들을 해왔고, 의장의 최대 권한이라 할 수 있는 입법 상정에서 대부분 민주당 강성 의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이 같은 행보를 보일 때마다 국민의힘은 김 의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 의장을 가장 크게 비판한 사건은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을 때다. 민주당은 외교참사의 원흉으로 박 장관을 지목하며 정부에 해임을 요구하던 중이었다.

민주당에서 말한 외교참사란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 뱉었던 실언이 전국에 생중계된 것을 말한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행사에서 만난 후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이 새끼들” “쪽팔려서”라는 단어를 뱉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후 해당 발언은 전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보도되며 대한민국의 위상은 크게 추락했다.

해당 발언 당시 윤 대통령 옆에 있었던 박 장관은 “바로 직전 바이든 대통령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오던 길이었는데, 상식적으로 비난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라며 “대통령 발언의 취지는 다른 나라들이 기여한 10억달러 안팎 이상의 기여 규모를 볼 때 우리도 경제 규모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햐지 않겠나 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시 발언을 ‘외교참사’라고 지적하며 대통령 사과와 박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박 장관에 대한 해임 요구를 말로만 그치지 않고 요구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시키려 했다.

설사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더라도 민주당 자력으로 해임안을 가결시킬 수 있던 상황이었기에, 본회의 상정만 이뤄지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때 민주당은 김 의장의 도움이 필요했다. 의장 권한으로 해당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시키지 않는다면 투표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그런 민주당의 바람을 잘 알고 있었고, 박 장관 해임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켜줬다. 결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역 의원 신분인 장관 해임 건의안은 가결 처리됐다.

당시 김 의장은 국민의힘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아야 했다. 김 의장이 안건을 상정해줌으로써 의장의 최대 기치인 중립성을 훼손했으니, 국회의장직을 내려놓으라는 주장이었다. 국민의힘은 급기야 사퇴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박진 장관 해임건의안…여당 불만
예산안·이상민 해임안…야당 반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결의안 제출 당시 “어제 본회의서 당초 의사 일정에 없던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의사 일정 변경의 건을 다루면서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항의한다”며 “국회법상 국회의장은 당적을 보유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파에 편중되지 말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국회를 잘 이끌어달라는 취지”라고 꼬집었다.

김 의장은 국민의힘으로부터는 거센 반발을 받았으나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는 열띤 지지를 받았다.

한 비명계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가 9월, 10월 이때 쯤이었는데, 당시 김 의장의 신망이 매우 높았다”며 “비록 중립을 지켜야 하는 위치였지만 민주당에 매우 도움을 줬던 것은 사실”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토록 안으로 굽던 팔이 최근에는 다시 꺾이는 모양새다. 김 의장이 박 장관 해임안을 처리할 때와 달리 최근에는 민주당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사안은 새해 예산안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 처리다. 내년도 국정운영을 앞두고 국회는 올해 말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는 이 숙제를 서로 다르게 풀려 하고 있다.

예산 편성에서 적지 않은 의견 충돌을 일으켜온 여당과 야당은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내심 단독으로 마련한 ‘삭감 수정 예산안’을 본회의에 단독으로 상정시킬 심산이었다.

이 장관 해임안도 마찬가지다. 지난 이태원 참사 당시 이 장관은 잇따른 막말과 거짓말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어차피 알았어도 못 막았다”는 취지의 발언은 매스컴을 통해 전국에 공개됐고 “희생자 명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발언은 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유족들은 이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그를 끝까지 챙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그를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이들은 김 의장이 예산안과 해임 건의안 모두 본회의에 상정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이번만큼은 여야 합의를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박 장관 사태 때와는 달리 양측이 모두 합의해야만 해임안을 상정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이번엔 민주당 지지자들이 반발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이른바 ‘민주당 배신자’들에게 했던 문자·팩스 폭탄 등을 국회의장에 가했고, 의장실은 한동안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됐다.

민주당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야권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팔이 안으로 굽던, 밖으로 굽든 국회의장은 그렇게 욕먹는 자리”라며 “김진표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대로 문제고, 중립을 지키면 또 그것대로 문제다. 최근 여러 사태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갑툭튀
골머리

한 정치 평론가는 “중립을 지키는 일과 기회주의자로 오해받는 일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평가했다. 김 의장 몸속에 흐르던 피가 민주당에서 중립의 피로 바뀌었는지, 혹은 조금 더 나은 여론 조성을 위해 일부러 ‘보여주기식’ 합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민주당 의원들은 궁금하기만 하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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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