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국회의장님 도마 위 자질론

안으로 밖으로…팔 뻗기 바쁜 ‘진표살’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김진표 국회의장이 최근 ‘가장 욕먹는 사람’으로 전락했다는 소문이 국회에 파다하다. <일요시사>가 소문을 추적해보니 실제로 김 의장은 양당 모두에게 불만을 사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자니 야당에서 불만이 나오고 저러자니 여당에서 불만이 나온다.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서열 2위의 의전을 받는 입법부의 수장이다. 이 자리는 보통 최고 의석수를 차지한 정당에서 배출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부가 스스로 투표를 통해 의장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의석이 많은 정당일수록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덕분에 역대 국회의장은 늘 국회 제1당 출신이었다.

역할이…
중재자?

21대 국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0년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자연스럽게 국회의장 자리를 가져왔고, 6선의 박병석 의원을 당에서 추대했다. 대전 서구갑에서 내리 6선을 해온 박 의원은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인물이다.

처음 박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당선됐을 때, 여의도 정가 사람들은 국회의원 수첩을 뒤적거려야 했다. 비록 선수가 높은 사람이긴 했으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의원은 그동안 지독히도 ‘중립적’ 역할을 자처해왔다. 이 때문에 지난 24년의 의정생활 동안 박 의원은 뉴스 전면에 등장한 적이 많지 않았다. 민주당이 많은 풍파를 겪는 시절에도 그는 늘 순리대로 정치 생활을 이어나갔다.

박 의원이 초선 의원이던 시절, 민주당은 분당 위기에 처해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대다수 민주당 의원이 ‘반노’ 전선을 선택하며 맞섰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던 새천년민주당의 소장파는 결국 당을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2004년 총선에서 독자 후보를 내며 여권의 분열을 일으켰다.

이때 열린우리당에 참여한 의원들 중에는 박 의원도 섞여 있었다. 많은 우려 속에서도 그는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제17대 총선에 출마해 당당히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등에 업은 한나라당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그만의 선거전략과 유권자들의 지지가 맞물리며 당선에 성공했다.

이후 통합민주당으로 3선, 민주통합당으로 4선, 민주당으로 5선, 6선에 내리 당선됐다. 오랜 시간 국회에 머무른 그는 민주당 현역에서 최다선이라는 명예와 함께 21대 국회의원 중 여의도 경력이 가장 긴 정치인이 됐다.

그가 이처럼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어온 정치 커리어 덕분이었다. 박 의원은 이후 이후 정치 행보에서 계파색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계파 간 갈등 때마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고, 입장을 취해야 할 때는 본인의 소신을 따라갔다.

국가서열 2위 김진표 국회의장 실익이?
자타공인 ‘중재의 달인’도 욕먹은 자리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첨예하게 대립했던 안철수-문재인 간의 갈등에서도 끝까지 민주당 잔류를 선택하며 양 계파의 싸움을 말리려 애썼고, 각종 논란에 대해서도 최대한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이런 기질은 국회의장을 맡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국회의장은 통상 당적과 상관없이 중립성을 요구받는다. 입법부 전체의 수장인만큼 정치적인 선택에 있어 여야를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의장으로 당선된 의원은 당적 보유와 상임위원회 활동을 제한받게 된다.

민주당 내에서도 계파색을 드러내지 않던 인물이기에 국회의장도 제격일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고 박 의원은 그 기대에 나름 부응했다.

역사상 최고로 대립하던 제21대 국회를 ‘무난하게’ 이끌어가더니 임기 막바지에 있었던 이른바 '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이하 검수완박) 시즌에는 맹활약하며 의장 임기의 대미를 장식했다.

검수완박이란 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해 검찰청 자체의 힘을 완전히 줄이려한 법안이다. 당시 법안에 극렬히 반대했던 국민의힘 측은 끝까지 협상을 이어나가지 않았고, 국회는 ‘강대강’ 충돌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의사봉을 쥐고 있던 박 의장은 갈등이 심하게 불거진 시점에 미국과 캐나다 등지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법안 중재를 위해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밤새 여야 의원들을 만났다.

결국 여당과 야당은 ‘박병석표’ 중재안에 합의하기에 이르렀고, 이때 박 의장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사흘 후 국민의힘 측에서 해당 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대치를 이어갔지만,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때 박 의장의 활약이 강인하게 박혔다.

이처럼 국회의장 자리는 두 당의 중재를 최대한 장려해야 하는 위치다. 그러나 검수완박 사태를 보듯,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비록 중재를 잘한다고 해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고, 중재를 잘하지 못하면 양쪽 모두에서 욕을 들어먹어야 하는 자리다. 박 의원 같은 중재의 달인도 이 딜레마를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최연장자
통큰 양보

현재 국회의장을 맡고 있는 김진표 의장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여소야대 형국에서 연일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21대 국회의 후반기에 취임한 김 의장은 현재 진퇴양난의 기로에 빠져 있다. 친정인 민주당 편을 들어줬더니 사퇴 요구가 빗발치고, 그렇다고 중재를 하자니 불만이 속출 중인 탓이다.

사실 김 의장은 전반기에 이미 박 의원과 함께 국회의장 후보로 떠올랐었다. 최다선과 최연장자의 싸움에서 승부는 연장자의 양보로 마무리됐다. 김 의장은 오랜 고심 끝에 의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사실상 박 의원을 전반기 의장으로 만들어줬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김진표 의원이 양보했다는 느낌이 강했다”며 “원래 김 의원이 박 의원보다 의장 당선에 더 유력해보였지만, 그의 뜻에 따라 의장직이 박 의원에게 돌아간 것으로 안다”고 <일요시사>에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의장직 양보 건에서 보듯 김 의장은 타인과의 대립을 극도로 피하는 성격이 강하다. 여의도에서는 이미 그에게 ‘진표살(보살)’이라는 별칭을 붙여 부르는 게 오랜 유행이었다.

전반기 의장 임기 후 후반기 의회가 시작되면서 김 의원은 의장에 취임했다. 계파색이 옅고 중도적이라는 평가에 따라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김 의장의 취임을 반기는 분위기였고, 무난히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의장직에 앉았다.

민주당은 가장 중립적인 인물이 의장직에 앉았다고 평가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에서 그나마 보수적인 인물이 의장에 앉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의구심은 후보 시절부터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김 의장은 첫 일성에서 “제 몸에는 민주당 피가 흐른다. 폭주하는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을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의장직에 전면으로 반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평소 온화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알려진 김 의장 발언을 두고 국민의힘은 거세게 반발했고, 민주당도 적잖이 놀랐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날 발언이 그냥 나온 실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 김 의장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친명(친 이재명)계가 득세한 분위기에서 민주당은 강한 정치색을 띄고 있었다. 김 의장은 그에 반해 상당히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고 친명 팬덤의 눈에는 그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즉, 의장 당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김 의장이 정치적인 계산을 하고 해당 발언을 던졌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김 의장으로선 마땅한 경쟁 후보가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민주당 주류로 자리 잡은 친명계 의원들의 지지가 없으면 의장 당선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민주당 피? 

취임 일성처럼 김 의장의 이후 행보는 상당히 ‘민주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몇몇 현안에 대해 민주당에 유리한 결정들을 해왔고, 의장의 최대 권한이라 할 수 있는 입법 상정에서 대부분 민주당 강성 의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이 같은 행보를 보일 때마다 국민의힘은 김 의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 의장을 가장 크게 비판한 사건은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을 때다. 민주당은 외교참사의 원흉으로 박 장관을 지목하며 정부에 해임을 요구하던 중이었다.

민주당에서 말한 외교참사란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 뱉었던 실언이 전국에 생중계된 것을 말한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행사에서 만난 후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이 새끼들” “쪽팔려서”라는 단어를 뱉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후 해당 발언은 전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보도되며 대한민국의 위상은 크게 추락했다.

해당 발언 당시 윤 대통령 옆에 있었던 박 장관은 “바로 직전 바이든 대통령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오던 길이었는데, 상식적으로 비난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라며 “대통령 발언의 취지는 다른 나라들이 기여한 10억달러 안팎 이상의 기여 규모를 볼 때 우리도 경제 규모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햐지 않겠나 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시 발언을 ‘외교참사’라고 지적하며 대통령 사과와 박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박 장관에 대한 해임 요구를 말로만 그치지 않고 요구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시키려 했다.

설사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더라도 민주당 자력으로 해임안을 가결시킬 수 있던 상황이었기에, 본회의 상정만 이뤄지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때 민주당은 김 의장의 도움이 필요했다. 의장 권한으로 해당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시키지 않는다면 투표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그런 민주당의 바람을 잘 알고 있었고, 박 장관 해임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켜줬다. 결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역 의원 신분인 장관 해임 건의안은 가결 처리됐다.

당시 김 의장은 국민의힘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아야 했다. 김 의장이 안건을 상정해줌으로써 의장의 최대 기치인 중립성을 훼손했으니, 국회의장직을 내려놓으라는 주장이었다. 국민의힘은 급기야 사퇴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박진 장관 해임건의안…여당 불만
예산안·이상민 해임안…야당 반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결의안 제출 당시 “어제 본회의서 당초 의사 일정에 없던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의사 일정 변경의 건을 다루면서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항의한다”며 “국회법상 국회의장은 당적을 보유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파에 편중되지 말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국회를 잘 이끌어달라는 취지”라고 꼬집었다.

김 의장은 국민의힘으로부터는 거센 반발을 받았으나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는 열띤 지지를 받았다.

한 비명계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가 9월, 10월 이때 쯤이었는데, 당시 김 의장의 신망이 매우 높았다”며 “비록 중립을 지켜야 하는 위치였지만 민주당에 매우 도움을 줬던 것은 사실”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토록 안으로 굽던 팔이 최근에는 다시 꺾이는 모양새다. 김 의장이 박 장관 해임안을 처리할 때와 달리 최근에는 민주당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사안은 새해 예산안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 처리다. 내년도 국정운영을 앞두고 국회는 올해 말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는 이 숙제를 서로 다르게 풀려 하고 있다.

예산 편성에서 적지 않은 의견 충돌을 일으켜온 여당과 야당은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내심 단독으로 마련한 ‘삭감 수정 예산안’을 본회의에 단독으로 상정시킬 심산이었다.

이 장관 해임안도 마찬가지다. 지난 이태원 참사 당시 이 장관은 잇따른 막말과 거짓말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어차피 알았어도 못 막았다”는 취지의 발언은 매스컴을 통해 전국에 공개됐고 “희생자 명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발언은 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유족들은 이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그를 끝까지 챙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그를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이들은 김 의장이 예산안과 해임 건의안 모두 본회의에 상정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이번만큼은 여야 합의를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박 장관 사태 때와는 달리 양측이 모두 합의해야만 해임안을 상정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이번엔 민주당 지지자들이 반발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이른바 ‘민주당 배신자’들에게 했던 문자·팩스 폭탄 등을 국회의장에 가했고, 의장실은 한동안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됐다.

민주당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야권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팔이 안으로 굽던, 밖으로 굽든 국회의장은 그렇게 욕먹는 자리”라며 “김진표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대로 문제고, 중립을 지키면 또 그것대로 문제다. 최근 여러 사태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갑툭튀
골머리

한 정치 평론가는 “중립을 지키는 일과 기회주의자로 오해받는 일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평가했다. 김 의장 몸속에 흐르던 피가 민주당에서 중립의 피로 바뀌었는지, 혹은 조금 더 나은 여론 조성을 위해 일부러 ‘보여주기식’ 합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민주당 의원들은 궁금하기만 하다.


<ingyu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