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러닝머신 타는 미국인 빈센트씨 사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2.12 13:20:59
  • 호수 14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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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겨울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러닝머신을 타는 외국인이 있다. 그의 얼굴은 사뭇 진지하다 못해 외로워 보인다. 그의 이름은 시치 잔 빈센트(Sichi John Vincent). 함께 미국에서 살던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와 사라져 버렸다. 그는 두 아이를 찾기 위해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은 2012년 12월13일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에 가입했다. 이에 앞서 이행을 위한 이틀 전인 12월11일 법률 제11529호로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 이행에 관한 법률’(이하 헤이그법)을 제정해 2013년 3월1일 발효했다. 헤이그 국제 아동탈취협약은 한쪽 부모가 일방적으로 불법 탈취한 아동을 신속히 본국으로 반환하고 면접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약으로 세계적으로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면서 만들어졌다. 

계속되는 
제자리걸음

특히 문제는 국제결혼의 파탄 때 발생한다. 이혼 시 한 명의 배우자가 아동을 해외로 탈취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한 명의 부모가 아동의 신원을 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아동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상황에 처한다.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은 이런 방식으로 불법 탈취된 아동의 신속한 반환과 면접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만 이 협약이 아동의 양육권‧면접교섭권을 결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한국은 이 협약이 적용되는 사안에 대한 아동의 소재를 발견하면 즉시 협약 적용과 관련한 국내 법률의 일반적 정보 제공을 해야 한다. 그 밖에 협약에서 규정한 지원 등 행정적 지원업무는 법무부 법무실 국제법무과에서 담당한다.


한국 헤이그법 4조에는 한국은 법무부 장관을 지정하고, 위 법률 제3조는 각 국가기관이 헤이그 아동탈취사건에 관해 신속한 처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총 65개 나라가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에 가입했다. 따라서 한국은 국제아동탈취 사건에 관해 신속히 처리해 탈취된 아동이 반환되도록 협조해야 할 국제법, 국내법상의 의무를 진다. 특히 주무 부서인 법무부는 각 국가기관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아동이 신속하게 반환되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특히 헤이그법 제14조에는 ‘법원은 아동 반환에 관한 사건의 심판 청구일 또는 조정 신청일부터 6주 이내에 결정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청구인 또는 법무부 장관의 신청에 따라 그 지연 이유를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하지만 한국은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을 지키고 있지 않다. 미국 국무성이 지난 6월 발행한 ‘헤이그 아동탈취협약 체약국 협약 이행 연례 보고서’에는 한국이 15개 불이행 국가 중 하나로 등재돼있다. 

토니 블링큰(An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6월 위 미국 국무성 연례 보고서에서 “협약국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유로 그들의 약속을 저버리는 국가가 있다. 우리는 기술지원, 훈련 및 정보 공유를 통해 이들 국가가 협약상의 의무를 준수하도록 돕고자 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증명하듯이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지서 살던 아내 두 아이 데리고 한국행
그 뒤 감감무소식…가족 찾으려 1인 시위

이날 헤이그협약 체약국 중 불이행 국가로 한국을 포함한 11개 국가인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벨리즈 ▲브라질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온두라스 ▲페루 ▲루마니아 ▲트리니다드도바가 등재됐다. 비체약국 국가 중에는 ▲요르단 ▲이집트 ▲인도 ▲아랍에미리트를 문제 국가로 등재했다.


위 연례 보고서에는 ‘지난해에도 한국은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을 불이행했다. 한국의 법 집행관은 반복적으로 탈취 건에 대한 집행에 실패했다. 이런 실패의 결과로 헤이그 아동탈취협약에 따른 탈취 아동 반환 요청의 50%가 12개월 이상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고 지적됐다.

특히 한 개의 사건은 법 집행관이 반환 명령의 집행에 실패해 12개월 이상 정체됐다. 남겨진 부모는 반환 명령의 집행을 위한 법 절차에서 몇 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럼에도 반환이 지연되고 있다. 아동을 탈취한 부모가 자발적으로 협약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는 이상 지난해에 이어 헤이그 아동 반환 사건의 판결은 전혀 집행되지 않았다. 이는 한국이 불이행 국가에 등재된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돼있다.

미 국무부 연례 보고서가 지적한 ‘12개월 이상 정체된 사건’은 바로 52세 미국인 남성 시치 잔 빈센트(Sichi John Vincent)의 사건이다. 그는 2013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로 여행 온 한국인 여성 A씨와 결혼했다. 2017년 1월29일 첫째 아이가 태어났고, 2018년 12월10일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A씨는 결혼을 통해 영주권을 얻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2019년 11월11일이다. A씨는 빈센트씨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잠시 다녀온다며 미국을 떠났다. 그 후로 A씨는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거절했다. 

당시 곧 둘째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빈센트씨는 A씨에게 “2019년 12월10일에는 미국으로 돌아와달라. 그리고 상황이 안 되면 크리스마스 전이라도 돌아와달라”고 이메일로 부탁했지만, A씨는 이를 거절했다. 

다가가고
싶어도…

빈센트씨는 형인 스티브와 함께 한국으로 향했다. A씨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둘째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함께했다. 마침내 A씨는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빈센트씨는 A씨의 약속을 믿고 2019년 12월13일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A씨가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는 2020년 3월2일자 샌프란시스코행 항공권이었다. 빈센트씨는 아이들과 A씨가 함께 미국 집으로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출국 이틀 전, A씨는 일방적으로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 

빈센트씨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법원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양육권을 얻고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A씨는 온라인으로 재판에 참여했다.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A씨에게 “미국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온다면 A씨도 양육권이 있는 것으로 판결을 내리겠다. 하지만 만약 A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오지 않으면, 양육권은 빈센트씨가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A씨는 끝내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했다. 2020년 8월4일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빈센트씨에게 아이들의 법적‧물리적 양육권을 단독으로 부여했다.


이렇게 빈센트씨는 두 아이의 법적인 보호자가 됐다. 이제는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에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빈센트씨는 바로 미국 국무부에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을 신청했고, 이 같은 사실은 한국 법무부에도 전달됐다. 동시에 아동 반환에 관한 소송이 한국 법원에서도 진행됐다.

한국 법원은 “A씨는 빈센트씨가 알코올중독자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본인과 아이들이 미국으로 반환될 경우 육체적·정신적 위험이 가해지거나 견디기 힘든 상황에 처할 거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독 양육자
만날 수 없다

그러나 법원은 “A씨가 제출한 자료는 빈센트씨가 알코올중독자라고 주장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헤이그법 제12조 제4항 제4조는 적절한 연령을 따져 아동의 의견을 고려해 반환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사건 본인의 나이는 만 4세, 만 2세로 반환 청구를 기각할만한 사유가 없다”고 답했다.

이어 “A씨는 아이들과 본인이 이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반환 예외 사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헤이그법 제12조 제4항 제1조에 따른 것인데, 심판청구가 불법적인 이동으로부터 1년이 경과한 후에 제기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판결은 지난 6월2일에 결정났다.

법원의 판결을 받은 지 6개월이 지났다. 빈센트씨는 아직도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려가지 못했고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강제적 집행을 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상황이다. 빈센트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소송 중에는 오히려 면접교섭을 할 수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10월부터 빈센트씨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6일, 서울시 지하철 영등포역 2번 출구 앞에서 시위 중인 빈센트씨를 만났다. 빈센트씨는 영등포역 2번 출구 앞 길 한복판에 가정용 러닝머신을 가져와서 타고 있었다. 러닝머신에는 서툰 글씨로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있다.

빈센트씨는 러닝머신을 타고 있었고, 러닝머신 앞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패널로 세워져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은 빈센트씨를 보고 무슨 시위인지 물었다. 

실효성 없는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
“이미 불이행 국가 낙인” 내용이 뭐길래…

몇몇 시민은 빈센트씨에게 “힘내세요” “아이들을 꼭 만날 수 있을 거예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자신이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물어보는 시민도 있었고 러닝머신을 타면서 힘을 주기도 했다.

빈센트씨는 <일요시사>에 “지금 나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가거나 아이들을 못 보는 상황”이라며 “특히 10일은 둘째 아이의 생일이다. A씨 측 변호사에게 아이의 선물을 전해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길거리에서 러닝머신을 타는 것은 ‘제자리걸음 시위’다. 나의 현실이 러닝머신을 타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것과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내가 아동 반환 청구소송에서 승소했으니, 법원 관계자가 동행해 아이들을 데려와야 한다. 보통 미국은 헤이그법에 따라 한 달 안에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며 “아이들이 빨리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서 적응해야 된다는 취지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과 나는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그렇다고 법원이 A씨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서울가정법원은 A씨가 아동 반환 의무를 불이행해서 감치로서는 최장기간인 30일의 감치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A씨는 여전히 빈센트씨와 자녀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다. 현재 빈센트씨는 A씨와 아이들의 거주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 대해 IPG Legal 법률사무소 민지원 변호사는 “한국은 유아 인도나 유아 반환 집행인이 평소 유체동산 인도, 부동산 명도‧철거‧퇴거 등을 동시에 집행한다. 그러니 집행인이 아동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어 유아 인도나 유아 반환이 실효성 있게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부모의 권리만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 변호사는 “집행관이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누구랑 살고 있니?’ 등 질문으로 함께 살 사람을 결정하도록 한다. 부모를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아동학대에 가깝다”며 “법원은 아동복지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했는데, 집행관이 아동심리에 무지해 아동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집행 자체가 
아동학대 과정”

그러면서 “그런데도 법을 개정하거나,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없어 상황이 매우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A씨 측 법률사무소에도 질문을 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원은 학계에서 정립된 법을 따르고, 강제집행은 법원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강제집행에 대해 소극적이다. 아이가 현장에서 집행을 거부하면 집행할 수 없다. 이 부분은 가족법이 바뀌어야 해결된다”고 답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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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