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뜯어먹기?’ 세대 갈라치는 국민연금 딜레마

누가 내는데?
얼마 낸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누구를 위한 연금인가. 국민연금 재원 고갈이 예견되면서 청년층 사이 ‘국민연금 불신론’이 만연하다. “돈은 돈대로 내고, 제대로 받지는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반면, 정부는 이를 불식할만한 청사진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세대는 주택·주식시장에 이어 연금제도 아래에서도 ‘벼락거지’가 되진 않을지 연일 불안에 떨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적연금제도다. 국민연금 가입은 법적 의무다. 그 때문에 국민 대부분이 납부 대상이자 수혜 대상이다. 10년 이상 연금보험료를 낸다는 전제 아래, 만 65세 이후부터 평생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많이, 그리고 오래 낼수록 지급액이 커진다.

갈등

국가 차원의 사회복지정책인 만큼, 국민연금의 혜택은 여타 민간 연금보다 월등히 앞선다.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덕에 관리비와 운영비 지출이 적고, 지급액에는 물가상승률이 반영된다. 

하지만 이 같은 이점에도 청년층 사이에서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다. 국민연금 기금이 2050년부터 고갈된다는 전망 탓이다.

지난 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현재 국민연금 체계(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를 그대로 유지하면 2055년 수급 자격이 생기는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경연은 “지금처럼 ‘덜 내고 더 빨리 받는’ 운영방식을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기금 고갈로 미래세대가 엄청난 부담을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역시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재정수지가 2039년 적자 전환되는 데 이어 2055년 적립금을 모두 소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정적인 전망이 계속 이어지자 2030세대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들은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2055년에 이제 막 연금을 받거나, 심지어 아직 받지 못할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들 사이에선 연금 수령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없겠다는 불안감이 퍼졌다.

청년세대는 노동인구의 주축으로서 국민연금 재원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핵심 연령층이다. 이들의 불신은 국민연금 운용에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공단은 즉각 진화에 나섰다. 공단은 일각의 비관적 전망을 겨냥해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는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기금이 고갈돼도 연금은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돈 내고 못 받는다’ 우려…사실 아니다?
최소 ‘더 내고 덜 받는다’ 정설로 굳어져

하지만 국민연금에 대한 ‘회의론’은 단순한 의혹 제기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공단은 기금 소진 이후 연금 지급 방안에 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설령 공단 측 주장대로 연금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다 해도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미 “지급액 규모가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가입자의 기준소득월액에 보험료율(9%)을 곱해 책정되고, 지급액은 납부한 보험료에 비례한다. 예컨대 월 소득이 300만원인 사람은 매달 27만원을 보험료로 납부한다. 만일 이 사람이 올해 처음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해 꼬박꼬박 보험료를 낸다면 그는 20년 뒤에 월 67만6940원, 30년 뒤 월 85만9710원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최소한의 노후생활도 보장할 수 없는 액수다. 2020년 국민연금연구원이 실시한 ‘국민 노후보장패널’ 8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인이 노년에 최저 생활을 유지하는 데 드는 ‘최소 노후생활비’로는 116만6000원이 필요하다. 이마저도 특별한 질병 등이 없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생활비를 온전히 충당하기 위해서는 월 소득 500만원 이상을 유지하면서 30년간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이 경우 연금으로 월 116만2340원을 수령할 수 있다. 연봉 6000만원을 상회하는 고소득자도 최저 생계 수준을 겨우 충족하는 셈이다. 

아울러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임금직무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20~24세 노동자의 올해 평균 연봉은 2826만6000원에 불과하다. 35~39세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4941만6000원이다.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은 청년층 입장에서는 회의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연금의 실효성이 떨어진 건 지속적인 소득대체율 하락 탓이다. 소득대체율이란 연금 가입 기간 중 평균 소득에 대비해 연금 수령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인 사람이 연금으로 월 45만원을 받는다면, 소득대체율이 45%인 셈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제도 도입 때 70%에 달했지만 현재는 43%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연 0.5%p씩 하락해 2028년에는 40%까지 떨어질 예정이다. 이 가운데 지급 연령 상향·보험 요율 증가 등이 거론되다 보니, 청년층들은 기대수명이 급등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더 내고 덜 받는’ 상황을 면하기 어렵다.

주택·주식에 연금까지
“별안간 가난” 벼락거지론

세대별로 받는 혜택 수준이 다른 점이 세대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를 향한 상대적 박탈감이 큰 편이다. 사회 ‘주변인’으로 내몰린 청년세대는 ‘벼락거지’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벼락거지란 벼락부자에 대응되는 용어로, 자신의 소득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에도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을 일컫는다. 특히 국민연금은 현재 납부자(청년세대)가 과거 납부자(기성세대)의 지급액 재원 마련을 지탱하는 구조인 만큼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같은 이유로 청년층 사이에선 국민연금 지급액이 적은 것을 비꼬아 ‘국민용돈’이라고 부르거나, 강제로 납부하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세금’으로 치부하는 일이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평균수명이 길어진 만큼, 적은 액수를 받더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 역시 국민연금 지급액이 ‘푼돈’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연금 무용론·폐지론 대신 개혁론에 힘을 실을 뿐이다. 

이 가운데 정치권은 국민연금 개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특위 구성 3개월 만인 지난달 25일 첫 전체회의를 열었다. 정부는 내년 3월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토대로 국회 논의를 거쳐 내년 하반기 중 연금 개편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개편안에 현 문제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얼마나 포함될지는 미지수다. 위원회가 청년세대를 비롯한 시민 의견 반영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이날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참여와 사회적 합의 과정을 연금개혁 특위 운영에 포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7월 거대 양당이 발표한 합의안에는 특위가 민간자문위원회를 둔다는 조항만 포함했을 뿐, 그 구성안과 목적뿐만 아니라 기능조차 명시하지 않았다”며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대한 논의 없이 첫 연금특위가 열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신

전문가들은 “연금개혁에서 청년세대의 의견수렴은 필수요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은 지난달 13일 <헤럴드경제>에 기고한 글에서 “정치인들의 재원 대책 없는 복지폭주와 악화되는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방치는 풍요로운 부모 세대가 미래의 어려운 자녀 세대가 사용할 재원을 약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이를 채무자인 MZ세대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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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