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대참사> 묵살된 79건 신고 의혹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1.07 11:57:23
  • 호수 14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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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부터 뒤엉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30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최초 신고 시각은 이날 오후 10시15분이며, 이때가 사고 발생 시점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우선 최초 신고는 4시간 전에 있었다. 최초 신고 시각인 오후 6시와 사고 발생 시각인 오후 10시 사이 이태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름과 얼굴을 모르지만 그립습니다. 삶이 이렇게 허무할 수 없습니다. 그대들이 가버린 삶을 하루하루 더 소중히 살아가겠습니다.” “언니가 쓴 블로그의 글을 보면 언니가 아직도 살아있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언니가 너무 그리워.” 

끊이지 않는
긴 추모 행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붙은 메모지의 글귀다. 모르는 사람을 추모하는 글귀도 있고, 지인을 떠나보낸 사람이 그리운 마음을 담아 적은 절절한 글귀도 있다. 이들은 추모하는 마음으로 지난달 30일 핼러윈 데이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의 골목에서 압사사고로 사망한 156명의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그날 이후 이태원역 1번 출구의 풍경이 바뀌었다. 상가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1월5일 국가 애도 기간까지 휴점합니다.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라는 문구가 붙어 있고, 출구에는 국화꽃, 소주, 초코우유, 물병, 사진, 편지 등이 놓여있다. 

종교계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오후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서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지몽 스님은 “이태원 참사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부상당한 분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사고 원인에 대한 세밀한 조사, 각계각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 가족들에게 위로금 10억원을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일요시사>에 “대체 생때같은 자식이 왜 이렇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내 자식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내 자식이 죽은 것처럼 힘들다”며 “도대체 애들이 왜 죽은 것이냐”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길거리에는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보였고, 멍하니 서서 스님들의 염불을 듣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이 추모 행렬은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최초 신고 시각은 10시15분이고, 이때를 기점으로 압사가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곧 최초 신고 시각이 잘못됐다고 발표됐다. 이후 최초 신고 시각을 정하는 발표가 나왔다. 압사사고를 최초 신고한 시각은 오후 6시34분이며, 총 79번의 신고가 있었다고 전해졌다.

오후 6시 첫 신고 “압사 위험 있다”
오후 7시부터 길 걸어 다닐 수 없어

압사 관련 신고가 마지막으로 접수된 시각은 오후 10시11분이다. 

최초 신고자는 “지금 골목에 사람이 오르고 내리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다. 나는 겨우 빠져 나왔는데, 인파가 너무 많아서 통제해달라”며 “경찰이 와서 통제 후 이태원 골목의 인구를 뺀 다음에 다시 사람들을 들어가게 해야 한다. 지금은 나오지도 못하는데 사람이 쏟아져서 들어가고 있다”고 긴급한 상황을 설명했다.

두 번째 신고에는 “인원이 너무 많고 정체가 된다. 사람들이 밀치고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가 났다”고 신고했으며, 오후 8시33분에는 “지금 길바닥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사고가 날 것 같다. 길이 완전히 막혔다”고 세 번째 신고가 들어왔다.

이후 신고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압사를 당하고 있다” “지금 인파가 너무 많아서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다. 경찰이 와서 통제해야 한다” “길에서 사람이 다 떠밀리고 있다. 사람들이 다 난리가 났다. 길을 어떻게든 해달라. 진짜 사람이 죽을 것 같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위기다” “지금 심각하다. 안쪽에 사람이 압사당하고 있다” “제발 빨리 와서 인원 통제를 해달라” “(비명소리가 들리며)이태원 뒷길로 빨리 와 달라. 압사될 것 같다” 등의 신고가 줄을 이었다.

즉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접수된 신고에는 공통적으로 ‘압사’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단순히 사람이 너무 많다거나, 교통정리가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뒤엉키고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결국 이는 잘못 발표된 최초 신고 시각처럼 압사가 시작된 시각 자체도 훨씬 이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에서 확인된다. 우선 오후 6시에는 이태원역 지하철에 내려서 이태원역 1번 출구까지 올라가는 데만 20분 넘게 걸렸다. 이 시간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버스에 내리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기도 했다.

나무처럼
엉킨 다리

오후 7시에 이태원에 도착한 A씨는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차를 세워놓고 이태원의 핼로윈 분위기를 보러 이태원역 인근으로 걸어갔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이태원역까지 거리는 1㎞ 정도로 가장 빠른 골목으로 걸으면 16분 정도다.

이태원역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싶어도 불법 주정차가 심각해서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차가 양방향으로 꽉 막혀 있었다. A씨는 아빠, 엄마, 동생, 오빠와 함께 길을 걸었다. 각 골목 코너에는 핼로윈을 기념해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식당 앞 대기줄, 식당에서 나와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등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래도 못 걸어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앞사람을 따라서 천천히 걸어가면 앞으로 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점인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은 상황이 달랐다. 오후 7시에도 골목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애당초 들어갈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특히 해밀톤 호텔 옆 골목 입구에는 코스프레한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어 길이 막히고 있었는데, 굳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많았다. 이 와중에 사람한테 밀쳐져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이태원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고 길을 둘러서 이태원역으로 내려갔다. 

A씨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고가 난 골목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마 거기를 지나갔으면 집에 더 늦게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있었던 공간에서 참사가 일어났던 것이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고 밝혔다.

오후 8시가 지나가는 시점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B씨는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에 이태원을 방문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핼러윈의 이태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파 휩쓸려
슬슬 흘러가

이태원 메인 길거리는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골목마다 사람이 많은 정도는 달랐다. 우선 ‘세계문화거리’에서 ‘와이키키 골목’으로 향하는 초입은 걸을 수 있는 정도였다. 초입을 지나자 사람이 점점 더 몰렸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구간도 있었다. 

멈췄다 섰다를 반복했고 인파에 휩쓸려서 흘러간다는 말이 정확할 정도로, 자력으로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길에서 뒤를 돌아보거나, 동행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야 할 방향으로는 절대 갈 수 없었다.

결국 B씨는 동행과 엇갈리게 됐다. 여태까지 B씨의 동행은 B씨가 다치지 않도록 감싸주고 있었는데 헤어지게 된 것이다. B씨는 떠밀리듯 해밀톤 호텔 옆 골목으로 흘러 내려갔다. 

이때부터 위험천만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내려가려는 사람, 길에서 넘어진 사람, 내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이 뒤엉켰다. 이 과정에서 키가 작은 B씨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과 나뭇가지가 엉키듯 다리가 엉켰다. B씨는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이미 넘어진 사람도 있었다.

당시 상황은 몇 명의 사람이 넘어져서, 이미 사고가 발생한 시점이었다. B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순간 사람들이 밀거나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왔고 이때 다시 일어났다. 넘어지는 것도 힘을 안 줘서 넘어지는 게 아니라,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몸만 앞으로 밀려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옆에 있던 남자의 어깨에 목이 눌려서 숨을 쉬기 힘든 상황이 됐다. 흉부 쪽 공간을 확보해도 키가 작으면 다른 사람 어깨에 목이 눌렸다. 

B씨는 바로 옆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넘어져서 못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이 겹쳐있던 상황은 아니지만,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B씨가 넘어진 여자를 부축해서 겨우 일어났다.

근처 술집 난간에 매달려서 버티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바닥에는 중간중간 장애물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B씨는 중간에 있었던 클럽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클럽에서는 사람이 많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큰 문제 없이 이태원에서 빠져나갔다. 시간은 오후 8시30분이었다.

“넘어지고, 매달리고
비명 지르는 사람들”

B씨는 “내가 있었을 때는 재미로 사람을 미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빠져나가려고 하는 사람이나 지나가려는 사람만 있었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핼러윈 파티를 구경하러 이태원에 갔는데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며 “내가 있었던 공간에서 참사가 일어난 게 너무 무섭다. 넘어진 사람들, 매달린 사람들,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사람이 조금만 많아져도 숨을 쉬기가 힘들다. 몸은 크게 다친 곳이 없다. 멍들고 어깨가 뻐근하고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한 정도다. 정말 체구가 작으면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불편한 옷이나 신발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혼잡한 출근길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A씨와 B씨의 증언에서 나오듯 오후 8시부터는 이미 인파에 밀려 사람들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확인된 상황은 아니지만, 분명히 부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오후 9시부터는 더 많은 사람이 이태원역 인근으로 몰려들었다. 이때부터는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가득 찼다. 일반적으로 길을 걷거나, 끼어있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거의 앞사람을 끌어안고 걸어가는 형국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은 내리막길이라 더 위험했다. 이때부터는 간헐적으로 밀리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이 도망치게 됐고, 다시 밀고 밀리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됐다. 골목길 안에서 사람들은 휩쓸려 다녔고 결국 도로로 나가게 됐다. 

이태원역에서 골목길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인구 밀집도가 높아지니 휴대폰 데이터도 먹통이 됐다. 이때부터는 골목뿐 아니라 이태원 전체 지역에 사람이 밀리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술을 마신 사람들이나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사람들은 사람이 밀리는 현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1시간에서 2시간 전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놀이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 몸싸움이 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이태원 압사사고 신고가 첫 번째로 들어간 오후 6시부터 마지막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까지 있었던 일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오후 10시15분 전부터 이미 사람이 넘어지고 뒤엉키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만 많이
빨리 왔어도…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한 112 신고자 변모씨는 이태원 참사가 오후 7시부터 예견됐다고 주장한다. 변씨는 “사고는 이미 오후 8시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산발적인 압사가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내가 신고한 것이 오후 9시가 넘은 시점인데, 나는 해밀톤 호텔 컨테이너 창고에 올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5분 간격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찼고, 술을 마신 청년이 모여서 밀기도 했다. 사방에 비명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발에는 옷 같은 것이 계속 밟혔다. 클럽 음악이 너무 크게 틀어져 있어서, 바로 밑에서도 상황을 몰랐다. 나도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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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