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줄 타는’ 박범계 민주당 의원 속사정

끈 떨어지고 허둥지둥 헛발질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교체되며, 당내 의원들의 입지도 대부분 달라졌다. 과거 입지를 공고히 해놨던 ‘친문’ 의원들은 본인 자리를 새로운 주류인 ‘친명’계 의원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중에는 현실을 깨닫고 흔쾌히 양보하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상황이 달라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욕심을 부리는 의원들도 있다.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지만, 요즘 한국 정치는 심할 정도로 급격히 바뀐다. 한 달 전에 죽일 듯이 싸우던 둘이 어느 날 만나 웃으며 악수하는 일은 예삿일이고, 불과 일주일 전에 당 대표였던 인물이 징계를 받아 하루아침에 당 밖으로 쫓겨나기도 한다. 또 당내 권력 이동에 따라 ‘실세’였던 의원이 비주류로 전락하는 일도 다반사다.

화려한 데뷔
시작된 시련

실세에서 비주류로 전락한 의원이 본인의 위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세였던 기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더욱 그렇다. 비주류가 된 의원이 과거에 ‘쉽게’ 했던 일들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여러 차례 겪게 되면, 그제서야 본인의 위치를 깨닫는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박범계 의원이 요즘에서야 본인의 위치를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전한다. 과거 친문(친  문재인)계 핵심으로 활동했던 박 의원은 정계 데뷔 후 줄곧 굵직한 활약을 펼쳤다.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그는 판사로 부임해 약 10년간 일했다. 사법연수생 시절 자치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사법연수>라는 잡지의 편집장 자리를 맡기도 했다. 박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정계 데뷔가 이때 정해졌다고들 일컫는다.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1992년 초 사법연수생원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으로 뽑힌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때의 인터뷰가 박 의원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형편, 평탄치 않았던 사회생활에 박 의원은 동질감을 느꼈고, 이후 노 전 대통령에게 매료돼 판사 생활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잊지 않았다.

그 존경심은 2002년 정계 진출로 이어졌다. 2002년 당시 김민석 전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배신하고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하자 박 의원은 매우 분개하며 법원에 사표를 제출한 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노 전 대통령을 도울 뜻을 전했다.

‘노무현 후보 대선캠프’에 전격적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박범계 정치’의 시작이었다.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기적적으로 승리하며 박 의원도 자연스럽게 승승장구하게 됐다.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참여정부 초기 민정 제2비서관, 법무비서관 등으로 등용되며 청와대의 알토란 같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때 그는 여·야당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약 2년간 청와대에서 일한 박 의원은 여의도 정치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그러나 여의도 입성은 청와대 입성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열린우리당 공천 경선에 참여했으나 당시 지역에서 잔뼈가 굵던 고 구논회 전 의원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06년, 구 전 의원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해당 지역구가 공석이 됐다. 이 자리에 박 의원은 다시 공천받고자 했으나 이마저도 금방 포기해야 했다.

여의도 입성 후 승승장구 장관까지 
친문 입지 줄자 덩달아 비주류로

당시 국민중심당의 심대평 후보를 위해 그가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시련을 겪은 박 의원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통합민주당 인기 부진 등의 이유로 낙선했다.

또 다시 4년이 흐른 2012년, 박 의원은 제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며 드디어 여의도에 입성하게 된다. 

4수 끝에 여의도 데뷔에 성공한 박 의원은 이후 맹활약하며 ‘역대급 초선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민주당 법률위원장,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간사 등 굵직한 자리들을 꿰차며 ‘실세’로 거듭나더니, 2014년 배우 송혜교의 탈세 사건을 밝혀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스타덤에 오른 박 의원은 재선이라는 시험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인지도와 인기 면에서 상대당 후보였던 이재선 후보를 크게 압도하고 있었고, 선거에서 15%p 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여유 있게 국회에 재입성했다.

이때 그는 친노(친 노무현)에서 친문으로 계파 이동을 완료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친노 인사들이 친문으로 분류되던 흐름에 박 의원 또한 탑승한 것이다.

당시 친문 세력은 친노 세력보다 더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다. 당내에서조차 제대로 입지를 세우지 못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친문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국회 내 의석 수도 크게 증가했는데 민주당은 제20대 총선에서 123석을 차지하며 원내 1당으로 발돋움했다. 당의 영향력이 커지자 ‘실세’인 박 의원의 영향력도 덩달아 커졌다. 박 의원은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모든 의원이 원하는 법사위원회에 들어가 간사 자리를 차지했다.

보통 법사위 간사는 중진 의원들 맡는 중책이었지만, 친문계에서 입지가 두터웠던 박 의원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재선 때 박 의원의 활약은 더 빛이 났다. 태광그룹의 황제 보석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것도, 국정 농단 사태 당시 최고위원으로서 민주당 의원들의 전략을 진두지휘했던 것도 그의 재선 시절이었다.


제7회 지방선거 당시, 당 안팎에서 대전시장 출마설이 돌았지만, 그는 당을 지키겠다며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다. 당시 분위기상 충분히 대전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음에도 여의도 정치를 계속 이어나간 것이다.

잊지 못하는
과거의 영광

민주당이 여당으로 바뀐 후인 제21대 총선에 앞서 그는 3선 도전을 선언했다. 이때 박 의원은 단수공천을 받으며 무경선으로 무난하게 3선에 성공했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이 원내 1당이자 여당으로 바뀐 만큼, 그가 맡을 수 있는 역할도 늘었다. 국회 전반기부터 박 의원은 조용히 활동하며 민주당 의원들의 활동을 측면해서 지원하다가 문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에 시동을 걸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측면 공격수로 등장했다.

그는 이른바 추-윤 갈등이 시작됐던 때 국정감사에서 연일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며 그의 실수를 유도했고, 추 전 장관의 입장을 국회 차원에서 전달하며 검찰 조직을 견제했다.

검찰개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던 박 의원은 이후 추 전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며 직접 칼자루를 쥐었다. 박 의원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대립각을 세웠다.


갈등은 주로 검찰 인사에서 일어났다. 지난해 초, 박 의원은 검찰인사를 검찰총장 측이 모르게 기습적으로 처리했다. 인사에 앞서 검찰총장과 검사 인사 논의 차 만난 박 의원은 경청하는 자세를 국민들에게 보여줬으나 정작 정기 검찰인사는 검찰총장 측을 건너뛰었다.

사실상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문정부에 유리한 검찰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성윤·심재철 등 ‘추미애 라인’이라고 불리는 인사는 모두 살아남았고, 이들은 인사 후 자연스레 ‘박범계 라인’이 됐다.

그는 인사 단행 후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한명숙 구하기’에 뛰어들었다. 그가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에 관련한 의혹에 대해 대검 부장회의서 심의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기존 검찰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박범계표 한명숙 구하기’는 수포로 돌아갔다. 박 의원은 임기 내내 문정부의 검찰개혁 의지를 이어나가려 애쓰다가 올해 5월 퇴임해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이처럼 박 의원은 여의도 데뷔 이래 꾸준히 정치력을 늘려나갔고 친노·친문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승승장구했다. 12년 동안 굵직한 일들을 밝혀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후에는 권력의 요직에 서며 국정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시절은 모두 지나갔다. 지난 3월 20대 대선에서 정권이 국민의힘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거대 여당 의원이었던 박 의원은 이제 야당 의원이 됐다. 바뀐 것은 정권만이 아니다. 그의 영향력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뛰었던 이재명 대표가 당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친문서
친명으로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는 친문계 후보로 나왔던 이낙연 전 총리를 큰 표차로 따돌리며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발돋움했다. 이때부터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는 과거와 매우 달라졌다. 친노·친문이 주류를 차지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신흥 세력인 ‘친명계’와 젊은 의원들이 민주당의 주류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패배했음에도 이 기류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친명계가 더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당 내부 투표 결과가 그 기류를 잘 보여준다.

첫 번째 투표는 대선 직후 치러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는 친명계 박홍근 의원이 당선됐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박 원내대표가 친문계 박광온 의원을 제치고 당선되자 내부 분위기가 친명쪽으로 확실히 넘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대선 패배의 책임을 후보 본인에게 있다기보다 문재인정권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전당대회까지 영향을 미쳤다.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는 70%가 넘는 득표를 하며 당선됐고 선출직 최고위원 대부분은 친명계가 밀었던 인물들로 당선됐다. 친명계가 민주당을 완전히 장악한 셈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자 친노·친문계였던 인물들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다. 당초 이낙연 후보를 밀었던 강성 친문계 의원들은 당내에서 입지를 전혀 세우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주류가 비주류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비주류가 된 의원들 사이에는 박 의원도 포함돼있었다. 친문 핵심으로 활동한 세월이 긴 박 의원이 최근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지만, 당 내부에선 이미 그가 ‘끈 떨어진’ 상태로 평가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박 의원과 친명계 사이는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면서도 “그러나 전 정권에 몸담았던 인물인 만큼 이쪽(친명계) 사람들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이걸 스스로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가 만든 논란들이 그래서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로 돌아온 박 의원이 장관 임명 전의 국회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고 함께 전했다. 박 의원이 당내 권력, 더 나아가 다음 총선에서의 입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한동훈 스타 만들기 일등공신? 
감사원 앞 1인 시위 중 굴욕도

그런 걱정 때문일까. 박 의원은 요즘 과거에 하지 않았던 ‘헛발질’을 매일 하는 중이다. 이것이 관계자가 말한 ‘논란’이다.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헛발질은 지난 7월 있었던 한동훈 장관과의 설전이다. 박 의원은 법사위원으로서 국회 대정부질문에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박 의원은 과한 흥분을 여과 없이 나타내며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중과 언론은 그의 흥분된 어투를 차분히 받아치는 한 장관을 높이 평가하며 한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박 의원은 한 장관에게 “이완규 법제처장에게 검수를 받았느냐”며 “한 장관 마음에 들면 검증하지 않고 한 장관 마음에 안들면 검증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한 장관은 “과거 박 의원께서 근무했던 민정수석실에선 어떤 근거로 검증했느냐”며 “이 업무는 새로 생긴 업무가 아니라 과거 민정수석실에서 해오던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본인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면 문재인정부의 인사 모두가 잘못된 것이라며 역공을 펼친 것이다. 해당 발언이 나오자 여당 의원들 중심으로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박 의원은 흥분해 “틀린 말이고 거짓말”이라고 소리쳤다.

이날 대정부질문은 한 장관의 역량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고, 박 의원은 여당의 차기 대권후보를 다시 한번 도와줬다는 당내 비판을 들어야 했다.

헛발질은 최근에도 계속됐다. 박 의원은 최근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실시하자 이에 반발해 지속적으로 감사원을 비판했다.

그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이렇게 예의 없이 바로 시작한다는 게 맞지 않다는 것”이라며 “강제 조사할 근거가 없는데 그렇게 할 만큼 하신 분들이 왜 자꾸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직격했다.

문제는 그가 1인 시위를 단행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본인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감사원 앞으로 나가 직접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현장에 해당 사건의 ‘서해 피살 공무원’ 가족인 이래진씨가 함께 등장해 소란이 일었다. 

이씨는 박 의원을 향해 “당신들. 국가가 공무원이 적대 국가에 무참히 총살당하고 살해당했을 때 뭐했어?”라며 시위 피켓을 빼앗아들었다. 당황한 박 의원은 몇 차례 언쟁을 주고받다 분위기가 급격히 격앙되자 서둘러 자리를 뜬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건을 두고 박 의원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유족들이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는데도, 현직 의원이 이 시점에 1인 시위에 나가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빗발친 것이다.

당내 입지도
휘청휘청∼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 어떤 영광을 누렸든 정치인은 미래를 그려나가야만 한다. 최근 이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를 강하게 비판하며 ‘반전’을 도모하는 노력을 하는 중이지만 쉽지 않아보인다. 그가 헛발질을 반복한다면 그에 대한 당 내부의 시각도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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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