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잡는’ 로맨스 스캠꾼과 직접 대화해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0.05 09:24:02
  • 호수 13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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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빠지는 구애의 덫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그는 UN에 소속된 의사이기도 하고, 미군일 때도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노인일 때도 있고, 집안에서 재산을 상속받을 청년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국인이 아니며 외국에 있다. 그들은 SNS를 통해 “내가 한국에 가면 2배로 돈을 갚을게. 나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통장을 보여준다.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은 SNS에서 이성 혹은 동성에게 호감을 산 후 다양한 수단으로 돈을 빌려 갈취하는 사기 수법으로 로맨스(romance)와 스캠(scam)의 합성어다. 이들은 주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계좌 추적이 어렵고, 검거된다고 해도 ‘사기죄’만 적용받아 ‘전자금융 거래법’을 적용받는 보이스피싱에 비해 양형기준도 낮다.

결국은 돈
느는 추세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상대를 믿고 돈을 준다는 게 말이 될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가 가능한 것은 SNS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나본 적 없는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인터넷으로 쉽게 상대방에게 접근할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다.

온갖 달콤한 말로 꼬셔 상대방을 이용한다. 직접 만날 필요가 없이 메시지만 주고받는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따르면 미국 내 로맨스 스캠 피해 건수는 2018년 2만1400건, 피해 금액 1억4300만달러(약 1600억원)에서 2020년 3만2800건, 피해 금액 3억400만달러(약 3356억원)로 증가했다.


2년 만에 피해 건수는 53%, 피해 금액은 137%나 급증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언택트, 비대면 확산이 로맨스 스캠의 증가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국내에선 로맨스 스캠을 ‘기타 범죄’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정확한 범죄 발생 통계가 확인되진 않는다. 하지만 사이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이 포함된 인터넷 사기 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7년에는 10만7271건, 2018년 12만3677건이 발생했고, 2019년에는 15만1916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개인 SNS로 메시지가 왔다. 기존에 알던 사람도 아니었고 한국인도 아니었다. 말투와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부터가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사기꾼인 것이 티가 났다. 

상대방은 “안녕, 나의 친구야. 이렇게 멋진 친구와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데이비스이고 샬롯 노스 캐롤라인 미국입니다. 당신은 누구시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상대방은 프로필로 벚꽃 사진을 설정해놨고, 아이디는 중국어였다. 어설픈 한국어는 인터넷 번역기를 사용한 느낌이었다. 데이비스는 재차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아내가 없지만 딸이 있었고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두 번이나 방문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데이비스와 딸은 한국에서 부산과 제주도를 방문했다. 아름다운 나라였고,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곧 결혼과 아이의 여부를 물었고 “없다”고 답하자 “나는 혼자야. 몇 년 전에 아내를 잃었지. 그래도 나에겐 사랑스러운 딸이 있어. 미국에 온 적이 있니?”라고 물었다.


이런 식의 사적인 대화가 계속됐다. 곧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재촉했다. 이어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나는 정형외과 의사다. UN 의료팀과 함께 일한다. 지금 예멘에서 평화 유지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 중 부상당한 군인을 돌본다”고 말했다.

불쑥 SNS로 시작해 투자 사기로 진화
피해 늘지만 잡히지 않는 ‘기타 통계’

그는 정말 ‘연인’처럼 연락했다. 사랑한다며 꽃 사진을 보내기도 했고, 자신의 딸을 소개하기도 했다. 딸 이름은 ‘신디’로 8살이었다. 지금은 기숙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의사 생활 때문에 아이를 자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전했다.

이런 식의 대화가 지속됐다. 그는 로맨틱한 음악 유튜브 링크를 보내며 “친애하는 나의 아내” “허니” “아이 러브 유”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한국에서 너를 만나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정말 ‘연인’인 양 말이다. 호응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아도 데이비스는 지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대화가 이어지자 UN 의사로 일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은퇴하면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데이비스가 있는 캠프가 공격당해 본인의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고도 말했다. 

식량은 모두 약탈당했고 쉬지도 씻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밥은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나는 너무 피곤하다” “안정된 생활과 아내를 가지고 싶다” “너와 동거해서 같이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는 계속해서 연락을 했다. 연락하는 빈도만 확인해도 그가 UN 소속 의사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화에 시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친분이 쌓였다고 생각한 건지, 그는 어느 날부터 예멘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곧 예멘에서의 근로 계약이 종료돼 한국에 오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예멘 정부와 UN이 자신을 이라크에서 근무시키려고 회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라크로 갈 생각도 없고, 한국으로 무조건 갈 거라고 밝혔다. 이 계획을 바꾸려면 한국행 비행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UN 의사
달달 메시지

도와줄 수 없다고 하자 “제발 도와줘. 내가 한국에 가면 꼭 돌려 주겠다. UN 의사가 한국으로 오려면 한국에 있는 지인이나 배우자가 수수료를 지불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계속 돈이 없다고 하자 이내 연락이 끊겼다.

이것이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이다. SNS로 연인처럼 대화를 이어가다가 돈을 요구한다. 본인은 특수한 직업이라는 것을 계속 어필했다. 로맨스 스캠의 사기꾼은 대부분 의사, 변호사, 군인 등 특수직종 사람들이었다.


기혼자가 로맨스 스캠 사기에 걸리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7월27일 A씨는 SNS을 통해 알게 된 외국인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외국인은 원유 배달을 하는 사람으로, A씨에게 항상 다정하게 대화했다. 

외국인은 A씨에게 “원유 대금이 모자란다. 내 은행 사이트를 알려줄 테니, 나 대신 내 통장에 3만달러 돈을 받고 이체해달라”고 부탁했다. A씨는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계좌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상황을 물어본 A씨에게 외국인은 “송금 수수료로 500만원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돈이 필요한 것에 부담을 느끼고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계속 연락이 왔고,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은 이번에 방법을 바꿨다. 아들이 있는데 몸이 아파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00만원을 빌려주면 한국에 올 때 두 배로 갚겠다고도 했다. 통장도 보여줬다. 통장에는 35억원이 있었다. 그 뒤로 외국인은 ▲배 고장 수리비 ▲변호사 비용 ▲구조 비용 등 계속 돈을 요구했다. 벌금이 있다며 벌금도 요구했다.

A씨는 모든 돈을 주고 나서야 이것이 로맨스 스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피해 금액은 7000만원. 경찰에 신고했지만 피해 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이혼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살고 있다. 

전형적 방법
그래도 속아 


A씨는 “빌려준 돈은 모두 대출받은 돈이다. 한국에 오면 두 배로 갚아주겠다는 말을 의심 없이 믿었다. 또한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게 무섭다. 처음에는 죽을까 생각도 했다. 남편에게는 말하고 이혼하자고 해야 하는 게 아닌지…”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로맨스 스캠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이번에는 SNS로 신뢰를 쌓은 후 ‘수익률이 좋은 가상자산 투자를 함께하고 싶다’고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상대방이 의심하지 않도록 처음 몇 번은 수익을 발생시켜 주고 약간의 손실도 나도록 위장한다. 이렇게 상대방은 로맨스 스캠 사기라는 것을 감쪽같이 속는다.

B씨는 SNS로 말레이시아 사람 C씨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C씨는 곧 카카오톡 아이디를 물어봤고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카카오톡으로 넘어간 후 C씨는 자신을 블록체인 전문가라고 밝히며 “블록체인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다. 어플을 다운로드해 암호화폐를 산 뒤, 다른 코인 주소로 옮겨 어플을 통해 선물거래를 하는게 아니라 다른 해외사이트로 암호화폐를 옮기고 거기서 수익을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익이 났다. B씨는 다시 “코인 충전 이벤트가 있다. 5만 암호화폐를 충전하면 8500 암호화폐를 주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당장 돈이 없었다. 하지만 B씨는 C씨의 조언으로 수익을 얻은 적이 있기 때문에 C씨를 신뢰하고 있었다. B씨는 돈을 빌려서 코인 충전 이벤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5만 암호화폐 조건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조건이 안 되니 신용에 문제가 생겼다고 출금 거부를 해버렸다. 계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만 암호화폐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그제야 B씨는 C씨가 사기꾼인 것을 알게 됐다.

“한국 가려면 한국인이 수수료 내줘야”
“사기당해도 이혼당할까 혼자 속앓이”

돈을 찾아야 했던 B씨는 C씨에게 “너를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C씨는 “너가 몸캠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주면 나머지 묶여있는 암호화폐를 해결해주겠다”고 답했다. 이를 거절하자 C씨와의 연락은 끊겼다. B씨의 피해 금액은 1650만원이다.

지난해에는 로맨스 스캠 투자 사기로 큰 돈을 날린 사례도 있었다. 자영업을 해온 D씨는 지난해 5월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브랜드인 ‘아이 쉐어즈(iShares)’를 사칭한 신생 암호화폐 거래소에 3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지인 소개로 접속한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만난 홍콩 시민운동가가 추천한 거래소였다. 그는 텔레그램에서 투자자에게 특정 코인 종목의 매수·매도 정보를 흘렸다. D씨는 실제로 ‘승률 100%’라는 그의 지시대로 코인을 사고팔았고 매일 평균 10% 수익을 올렸다.

단체방에는 수익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100만원으로 시작한 C씨의 투자금은 350배로 늘어났다. D씨는 이내 텔레그램 단체방을 맹목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국을 맞이한 건 불과 두 달이 지난 후였다. 두 달이 지나자 거래소는 출금도 거부한 채 잠적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운영이 어려워져 D씨는 자신의 가게를 정리했고, 돈은 공중분해됐다. D씨는 “경찰에 신고하러 갔지만 잡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투자 텔레그램 방은 D씨를 비롯해 70명 이상의 피해자로부터 최소 48억여원을 편취했다. 가짜 코인 거래소였고, 로맨스 스캠 사기를 벌였던 조직이 만든 것이었다.

모바일 채팅 앱에서 만난 중국인에게 2억5000만원을 사기당한 E씨도 있다. E씨가 사기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피해액이 바이낸스와 후오비 글로벌로 빠져나갔다.

E씨의 사건을 접수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들 거래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해외 거래소라 한국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활용해 거래소에 등록된 신원 정보 협조를 요구한 것이다. 아이쉐어즈 사칭 사기로 코인 셜록에 접수된 국내 피해자들의 신고 건수는 77건에 이른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전망된다.

날뛰어도
잡기 어려워

하진규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변호사는 “로맨스 스캠이 대부분 해외 앱과 대포통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범을 잡기는 어렵다”며 “인스타그램처럼 유명한 앱을 사용해도 가짜 계정인 탓에 본범을 잡는 것은 보이스피싱과 마찬가지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현금 인출책이나 대포통장 계좌주들은 사기 방조 혐의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할 순 있다”고 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찰청-인터폴 로맨스 스캠 합동단속

경찰청은 지난 7월부터 10월 말까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함께 경제범죄 3차 합동단속을 추진한다고 지난 7월4일 밝혔다.

한국 경찰은 보이스피싱 등 초국경 경제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3월 인터폴에 3년간 17억원을 펀딩했고 매년 합동단속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두 차례 합동단속으로 경찰청에 관련 범죄자 86명을 송환했으며, 범죄 수익 23억원을 동결했다.

이번 합동단속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11개국, 유럽 8개국, 아프리카 4개국, 미주 2개국 등 총 25개국이 참여한다.

단속 대상 범죄는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사기 ▲몸캠피싱 ▲자금세탁 등이다. 참가국들은 사건정보와 수법을 공유하고, 해외거점 콜센터를 합동단속한다.

또 주요 피의자를 합동단속하고 강제송환하며, 범죄 수익을 동결·환수하게 된다.

경찰청은 “국가수사본부 및 각국 인터폴 등과 협업해 보이스피싱 등 주요 경제범죄 피의자를 검거하고 범죄자금을 동결하는 등 단속성과를 최대화하겠다”고 밝혔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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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이 지핀 노태우 비자금 수사 키포인트

노소영이 지핀 노태우 비자금 수사 키포인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이하 환수위) 등이 노태우 일가 세무조사에 관해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과정서 불거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 메모 사건에 관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검사 유민종)는 지난달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아들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을 고발한 5·18기념재단 관계자를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세기의 이혼 흑역사 불러 재단이 지난 10월14일 범죄수익은닉규제법·조세범 처벌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지 한 달여 만에 본격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노태우 일가를 둘러싼 부정 은닉재산 의혹 등 실체 규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 규모는 약 4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추징된 금액은 2628억원에 그친다. 재단 측은 지난 10월14일 대검찰청에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소송 항소심 과정서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김 여사의 ‘선경 300억’ 관련 메모에 기재된 전체 금액이 904억원이라면서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은닉한 비자금이 127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와 노 관장, 노 원장을 조세범처벌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원순석 5·18재단 이사장은 고발 당시 “올바른 정의와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 고발장을 접수하게 됐다. 피의 대가로 권력을 장악해 부정부패를 통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습해 자식들에게 넘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904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차명으로 보관하거나 대여금, 투자금 형식의 채권, 금고 등에 은닉해 국가에 환수당하지 않으려 과세 관청에 신고하지 않았고 이를 통해 상속세도 포탈했다”며 “상속세 포탈 금액이 연간 5억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처벌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단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유산이 연희동 자택이 유일하다고 하는 등 추징 이후 부정 축재한 은닉재산이 없는 듯이 가장해 왔으나 재판 과정서 904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차명으로 보관하거나 대여금 및 투자금 형식의 채권, 금고 등에 은닉해 왔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은닉재산에 대해 최근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 과정서 피고발인인 김 여사가 2000~2001년까지 약 21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차명으로 불법 보관하다가 다시 한번 보험금으로 납입해 자금을 세탁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비자금 4600억” 정재계 증언 이어져 5·18 관계자 고발로 부인·남매 소환 재단 측은 추징금 완납 이후에도 비자금 관련 뇌물죄 수사 및 추징이 어렵다는 사실을 이용해 그동안 은닉했던 불법 비자금 총 152억원을 피고발인 노 원장 명의로 공익법인에 기부해(동아시아문화센터 147억원, 노태우 재단 5억원) 다시 한번 자금을 세탁하고 자녀에게 불법 증여한 것도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한 1991년 메모와 약속어음을 근거로 비자금이 SK 측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봤다. 김 여사의 메모에 ‘선경 300억’이라고 적혀 있었고, 선경건설 명의로 발행된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증거로 내세웠다. 이후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300억원이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 쪽으로 흘러 들어가 그룹의 종잣돈이 됐다고 판단했다. 또 이 자금이 당시 태평양증권(현 SK증권) 인수 등에 쓰였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노 관장의 ‘내조 기여’가 2심 재판 과정서 과다하게 부풀려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 회장 측도 지난 8월 상고이유서를 제출하며 이 부분에 대한 여러 오류를 문제 삼았다. 노태우정부 시절 경제수석,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매체를 통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서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의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의 노후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태우 자금 문제를 관리하는 이원조씨가 있는데 사돈 기업에 통치 자금 이야기를 해 (선경서 노태우 측에)꾸준히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고 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씨는 5·6공 시절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다.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모아 전달한 혐의로 대법원서 징역 2년6개월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준 돈? 받은 돈! 실제 어음 발행일은 노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1992년 12월로 알려졌다. 선경건설이 당시 발행한 50억원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은 1995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와 재판에선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번 이혼소송 과정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이나 ‘비자금’이 SK의 성장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판결했다. 노 관장 측 역시 같은 맥락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노 관장 측의 기여도가 크다고 보고, 최 회장이 1조380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 측은 항소심 판결에 즉각 반발했고, 최근 상고심 시작에 앞서 500여쪽에 달하는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상고이유서에 따르면 다양한 쟁점 가운데 핵심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및 후광 등은 SK그룹의 성장 과정에 오히려 손해가 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은 반박했다. 그는 진술서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선경건설의 약속어음은 태평양증권 인수와는 무관하고, ‘받았다’는 의미인 차용증은 ‘주겠다’는 의미의 약속어음이라며 노 관장 측 주장에 반박했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의 전언과도 일치된다. 손 명예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며 “정권 말이 되니 퇴임 후에도 지속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해 어음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노 관장이 법원에 제출하면서 확인된 김 여사의 비자금 메모, 지난 2007~2008년 적발했지만 덮은 214억원+α, 지난 2016~2021년까지 동생 노재헌이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로 기부된 147억, 2023년 노태우센터로 출연된 5억 등 노태우 일가의 불법 비자금 은닉, 돈세탁, 불법증여는 현재진행형이다. 검찰은 고발 내용과 경위 등을 확인하는 한편 조사 내용을 토대로 노 관장 등 노태우 일가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심우정 검찰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서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은닉 관련 직접 수사 의지를 피력한 만큼 실체 규명에 속도가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후 자금 시드머니 정재계는 물론 시민단체서도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수사가 한 달이 지나도 진척이 없자 환수위는 지난 22일에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 수사 촉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환수위는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이 진행 중인 ‘노태우 위인화 사업’에 “적게는 수억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자금이 들어간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수위 역시 노 관장 등을 범죄수익은닉 및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이어 “노 관장은 노 전 대통령 범죄수익의 은닉과 증식을 도모한 가족공범이기 때문에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환수위는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노태우 일가가 해외서 굴리는 자금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추가 고발도 예고했다. 또 환수위는 지난달 25일 열린 <만화로 읽는 인물이야기, 대통령 노태우> 출판기념회에 사용된 비용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서도 노 관장이 직접 불법 비자금이 있다고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노 관장을 직접 소환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노소영 관장은 불법 비자금 관련 논란이 불거진 이후로도 국정감사에 불참하는 등 전혀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행사에는 참석하고 있다”며 “불법 비자금에 대해 떳떳하다면 직접 설명하고, 조사에도 철저하게 임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300억 메모’꺼낸 노 관장 자충수 “네오트라이톤 뒤져야” 의혹 제기 정치권서도 ‘노태우 비자금’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지난달 8일, 노태우 일가의 은닉 자금은 김옥숙 여사의 904억원을 비롯해 차명으로 보관한 210억원 규모의 보험금, 동아시아문화센터 기부금 147억원 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도 지난달 24일 “노재헌 원장 측근의 명의로 설립된 네오트라이톤이 부동산 분양 및 임대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이 회사가 운영되는 데 있어 비자금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달 8일 법무부 국정감사서 ‘6공화국 비자금’과 관련해 “(전체 비자금 추정 규모 대비)일부만 환수되고 1400억원이 붕 뜬 상태였는데, 최근 소송서 밝혀진 904억 메모, 152억 기부금 등 비자금 은닉 정황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며 “불법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할 방안을 마련해 종합감사까지 보고할 것”을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주문한 바 있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노태우 일가 관련 자금 흐름을 국세청 홈택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살펴보는 과정서 노태우 일가가 최대주주인 회사를 발견했다. 노 원장의 최측근 명의로 설립된 부동산 임대·매매업을 영위하는 ㈜네오트라이톤이라는 회사를 파악하게 됐다. 노 원장은 네오트라이톤의 지분 60%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것으로 확인됐다. 네오트라이톤에는 최초 설립 이사부터 전·현직 임원 등에 노 원장의 측근이 다수 포함돼있었다. 언론을 통해 노재헌 원장과 홍콩서 페이퍼컴퍼니 설립 의혹을 받는 김정환씨, 그리고 비자금 세탁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노 원장의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의 과거 이사장인 채현종씨도 포함돼있다.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 개정 전 마지막으로 공시된 ‘네오트라이톤 2017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노 원장을 포함한 총 2~3인의 주주단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무이자·무담보 형식으로 회사에 대여해 줬다. 네오트라이톤은 현재 자본금이 1660만원에 불과한데 주주와 은행의 차입금으로 토지 구매, 건물 건설, 분양 및 임대 등을 통해 수익을 내는 사업 구조다. 불똥 튄 남동생 김 의원은 “노태우 일가는 비자금 일부만 추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납부 여력이 없다며 사돈과 친척을 통해 추징금을 대납시켰다고 하는데, 이후 어머니 김옥숙씨는 아들 공익법인에 147억을 출연했다”며 “노태우 일가의 자금 출처와 흐름이 비정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노재헌 원장은 지난달 16일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서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를 통해 비자금을 세탁하고 부동산 투자에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