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약왕’ 박왕열 수감 필리핀 교도소 가보니…

“데려가라, 한국서 처벌받고 싶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한민국의 마약청정국 지위를 되찾겠다.” 마약범죄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밝힌 대검찰청의 입장이다. 검찰이 칼을 빼들었으나 마약사범은 오히려 늘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 마약사범들은 대마초, LSD, 코카인, 필로폰 등을 투약하거나 유통한다. 특히 매년 동남아시아로부터 수십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이 들어오고 있다.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불린 텔레그램 닉네임 ‘전세계’ 박왕열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수년간 수십억 상당의 필로폰을 국내에 유통해왔다.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범인인 박왕열은 필리핀에서 거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참치 유통 등의 사업을 하던 인물로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박왕열의 마약 조직인 ‘전세계 그룹’이 약 50억 상당의 마약을 팔아왔다고 결론냈다. 최근 <일요시사>는 필리핀 현지 취재를 통해 박왕열이 메트로 마닐라 문틴루파에 있는 뉴빌리비드 교도소(NBP)에 수감된 사실을 확인했다.

상당한
영향력

NBP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에 위치한다. 수감자의 43%가 살인 및 신체적 상해 관련 범죄로 수감돼있다. 특히 연쇄살인범과 마약계 거물 등도 포함돼있다. 이들 대부분이 20년형 이상을 선고받은 재범 범죄자들이다. 이외에도 20년 미만의 복역자를 수용하는 중간 보안시설, 형기를 마치기 직전이나 70세 이상 고령자 및 아보 교도소를 수용하는 최소 보안시설 등 3개 구역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11월 기준 수용된 인원은 29000여명이다. 이상적 수용인원이 65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 과밀화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0명도 되지 않는 필리핀 법무부 산하 수정국 간수들이 낮 동안 출입문을 통제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처에 나서지 않는다.

NBP는 일반적인 감옥과는 다르게 재소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고립된 범죄자 마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현지 교민들은 NBP 재소자가 돈만 있으면 내부에서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2014년 NBP를 급습한 필리핀 수사기관은 마약은 물론 140만 페소(3354만4000원) 상당의 현금과 스트립바, 최고급 욕조, 에어컨 시설 등을 발견했다.

마약·납치조직 등 강력 범죄조직 두목들이 사용하는 ‘교도소 단지 빌라’에는 몰래 들어오는 스트립 댄서를 위해 전용 무대와 드럼, 기타 등을 갖춘 소형 콘서트 무대도 발견됐다. 고급 주류 등이 가득 들어찬 방에서는 로렉스, 파텍필립 시계와 루이뷔통 지갑 등 고가 명품과 달러화 뭉치까지 들어 있었다. 욕실 바닥과 벽은 대리석으로 치장됐고 고급 욕조에는 평면 TV까지 설치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NBP는 마약 밀매 교도소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9년 당국 묵인하에 지어졌던 가건물에서 마약과 흉기는 물론 TV, 전기 프라이팬, 아이스크림 제조기 등 가전제품과 현금 뭉치, 자위 도구, 건설장비 등이 트럭 짐칸을 가득 채울 만큼 발견됐다.

재소자들은 밀반입한 물품 사용을 숨기려 불법 구조물들을 지었고 영향력 있는 재소자들이 교도소 직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무려 NBP 직원 353명이 직위해제됐다.

마닐라 외곽 악명 높은 ‘NBP’ 투옥 확인
징역 60년 선고 후 불법무기 소지 재판 중

2016년 10월에는 NBP에서 북한산(産) 마약이 거래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마약 유통을 담당한 장기수 제이비 서배스천은 필리핀 하원이 개최한 청문회에서 NBP에 들어오던 마약의 60~70%가 북한에서 온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교도소 내에 있는 중국인 범죄조직이 외부 중국 조직과 연계해 마약을 교도소 안에 들여와 판다고도 언급했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 내 마약 사용이 확산하면서 이외에도 북한산 마약이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로 밀수출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 2015년에도 한 영국인이 북한산 히로뽕을 태국과 필리핀을 거쳐 미국으로 반입하려다 적발된 바 있다. 미 국무부가 2016년 발표한 ‘2016 국제 마약통제전략보고서’에도 지난 1970년대부터 2004년까지 북한 관리들이 마약 밀매에 관여한 사건들이 있었다.

박왕열은 2016년 필리핀에서 3명의 한국인을 살해한 후 필리핀 현지 경찰에 체포됐지만 두 번이나 탈옥에 성공했고, 2019년 말 자취를 감췄었다. 전세계 그룹이라는 마약 조직은 국내에도 수십명의 총책과 판매책이 활동했다. 경찰에 이미 붙잡힌 전세계 그룹 관련자만 20명이 넘는다.

경남지방경찰청 수사로 전세계 그룹이 유통한 마약의 규모는 확인된 것만 50억원 정도다. 하지만 적발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법무부는 뒤늦게 검거된 박왕열의 국내 송환을 추진했으나, 그가 필리핀 대법원에서 살인 혐의로 최근 장기 6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NBP 내부에서 박왕열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NBP 직원 대부분이 그를 알았고 마약·살인 전과가 있는 거물급 재소자들과 인맥을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소자 43%
살인·마약범

마닐라의 한 모처에서 만난 NBP 관계자는 “NBP는 악명 높은 교도소다. 내부에서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는 사람보다 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아 얼른 치우지 않으면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필리핀에서도 유명한 마약 거물급 인사들이 박왕열을 알고 있다. 그가 탈옥에 두 번 성공했어도 여기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세 번째 탈옥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걱정되는 게 있다면 돈의 유혹에 넘어가는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재소자들이 NBP 직원들에게 로비와 스폰 등을 통해 탈옥을 시도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필리핀은 사법 관리와 체계가 선진국에 비해 허술한 편에 속한다. NBP와 같은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정당국 관계자들은 한 달에 20000~30000페소(한국 돈으로 50~60만원) 밖에 벌지 못한다.

그러나 징역 2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재소자 중 마약 조직 보스급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NBP 직원들이 버는 돈의 10배가 넘는 금액으로 로비를 일삼는다. 이 같은 로비 행위가 수년간 이뤄지다 보니 매년 NBP에서 비위행위로 직위가 해제되는 직원들도 있다.

경찰이 파악한 박왕열의 마약 유통 규모가 50억원인 만큼 NBP에서 로비 행위를 일삼는 데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재판을 받는 박왕열이 사선 변호사를 선임한 사실도 확인했다.

필리핀의 한 현지 교민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붙잡힌 이후로 돈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사선 변호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필리핀에서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상당히 많은 돈이 든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현지 교민들은 유통과 카지노 사업에 실패했던 박왕열이 상당한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건 마약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죽지 않은 존재감 과시
거물급 재소자들과 친분

박왕열이 지난 2020년 초까지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 전국으로 유통하며 매달 최대 1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동남아에서 보낸 마약은 국제택배, 인편 등을 통해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특히 퀵서비스나 고속버스 수화물 등을 이용,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지역에 있는 중간판매책들에게 전달됐다. 이후 중간판매책들은 서울과 대구, 울산, 포항, 김해, 양산, 부산, 대전, 논산, 수원, 의정부 등 여러 곳에 마약이 뿌려졌다.

<뉴스타파>는 한 마약범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왕열이 한 달에 유통하는 필로폰이 약 60kg이라는 증언을 확보하기도 했다. 과거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다른 마약범도 박왕열이 한 달에 30kg이 넘는 마약을 유통한다고 주장했다.

필로폰은 나라마다 도매가가 다르다. 한국은 타국보다 도매가가 수십배 높은 편이라 마약 유통 경유지로 악용된다. 앞서 국정원과 경찰은 끈질긴 추적 끝에 2018년 8월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던 마약사범을 체포했고, A씨가 거주하던 서울 소재 임대주택에서 필로폰 90kg(시가 3000억원 상당, 300만명 동시 투약분)을 압수했다.

조사 결과 A씨가 국내에 밀반입한 필로폰은 총 112kg이었고, 이 중 22kg은 일본 야쿠자 조직을 통해 국내 마약 조직에 판매됐다. 국정원과 경찰은 판매된 필로폰의 유통경로를 추적해, 국내 마약 조직인 대구 거점 ‘성일파’ 총책 등 9명을 추가 검거했다.

감방 내부
VIP 대접?

국정원은 일본 야쿠자·대만 삼합회 등 국제 범죄조직들이 한국 마약 시장을 고수익 사업으로 인식하고, 국내 마약 밀반입·유통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한 마약류는 1295kg으로, 2020년 321kg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154kg의 마약을 적발했던 2017년과 비교하면 8배 이상 폭증했다. 통상 필로폰의 1회 투약량은 0.03g이다. 쉽게 말해 430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뜻이다.

박왕열이 판매했던 필로폰은 당시 시가로 1g에 60만원 가까이 됐다. 한 달에 유통한 마약이 최소 30kg이라고 가정한다면 약 200억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이다. 수수료를 뗀 마약 판매 수익률이 절반이라고 해도 박왕열의 손에 들어가는 자금은 한 달에 최소 50억원이 넘는다.

<일요시사>는 박왕열과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필리핀 마닐라 NBP를 찾아 접견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NBP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박왕열은 교도소에서 거물급으로 분류된다. 지금도 여전히 로비하고 마약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접견 요청은 본인이 거부하면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왕열은)차라리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 (박왕열에게 직접)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데려가라, 한국에서 처벌을 받고 싶다고 전해 들었다”고 알렸다.

경찰은 마약범죄 수사에 위장 수사기법 도입을 검토 중이다. 경찰청은 최근 도박과 함께 마약범죄 위장 수사 법제화를 위한 판례와 해외 사례, 부작용, 법령 등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9월24일 개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 가능한 위장 수사의 범위를 넓히는 조치다.

마약 유통 수익 수백억대…사선 변호인 선임
마피아 인맥 통해 여전히 판매망 관리 의혹도

윤희근 경찰청장은 취임 후 일선에 배포한 ‘23대 경찰청장 전략과제 및 주요 정책과제’ 문건에서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한 위장 수사를 마약류 및 불법 도박 수사에도 확대 적용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지난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위장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한 적은 없고, 성범죄 때문에 도입됐는데 마약도 한 번 해보면 어떠냐는 의견 제시로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라며 “실무에서는 오히려 수사를 어렵게 한다는 우려도 있어 말 그대로 검토단계”라고 한발 물러섰다.

경찰청은 영화 <신세계>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마이 네임>처럼 마약 조직에 일원으로 잠입해 수사하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본다. 우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부 위장 수사를 법제화하는 정도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도 경찰은 일반인인 척 마약상에 접근해 범행 현장을 잡는 기회 제공형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현재 진행 중인 위장 수사 법제화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청장이 취임 이후 언급한 마약범죄 위장 수사 필요성은 이전부터 꾸준히 언급돼왔다. 유통 과정이 지능·고도화돼 검거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유통경로 인터넷·SNS와 다크 웹·가상자산을 이용한 사례는 각각 2544명과 832명이다.

다만 단순히 검거 건수 증감 통계만으로 범죄가 팽배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마약범죄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경찰 간부는 “수사팀이 열심히 하면 건수가 많아지는 것일 뿐 만연하다고 볼 수 없고, 줄어든다고 일을 안 한다고 비판받을 사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더커버 수사
검토 나선 경찰

그러나 판매책 검거는 두드러지게 감소해 지능·고도·익명화되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실이 경찰청 등에서 받은 서울지역 마약사범 검거 인원에 따르면 2019년 951명으로, 2020년에는 668명이 검거됐다. 지난해 420명으로 감소했고, 올해 상반기는 164명이다.


필리핀 마닐라 = 오혁진 기자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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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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