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이냐 공천이냐 ‘이재명발’ 민주당 분당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국내 헌정사상 분당을 통해 성공한 정치세력은 드물었다. 기존 당에 ‘배신’했다는 이미지는 정치인들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독립한 당은 유권자들에게 인지도가 낮아 자주 홀대받는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은 ‘웬만하면’ 분당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본인의 공천권이 불투명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배신 이미지와 정치적 명분은 본인의 공천 앞에서 매우 사소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비명(비 이재명)계 진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의 당선 뉴스가 전해지면서다. 지난 27일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 최종 발표 현장에서 이재명 후보는 ‘당 대표 당선인’으로 호명됐다. 그의 이름이 호명되자 친명(친 이재명)계 의원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고, 비명계 의원들의 얼굴엔 썩은 미소가 번졌다. 

꽃놀이패
쥐고 골탕?

당 대표뿐만 아니라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친명계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민주당 지도부 자리 대부분을 가져오게된 친명계는 이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꽃놀이패’를 손에 쥐게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비명계다. 지난 대통령 경선 과정에서부터 친명계와 갈등을 빚어온 이들은 이 대표의 보궐선거 출마와 당 대표 출마 때도 지속해서 싸웠다.

계속 싸우긴 했지만, 계속해서 패배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표의 앞길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 대표는 보궐선거는 물론, 당 대표 선거마저도 승리했다. 자연스레 외로운 싸움을 하던 그를 지켜온 친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 당선의 ‘공신’으로 떠올랐고, 출마를 반대했던 의원들은 ‘역적’으로 몰릴 위기에 놓였다. 

후자 쪽은 정세균계와 친문(친 문재인)계 의원들로 당초 이들 좌장격 의원들은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며 이 대표에 대한 압박을 시도했다. 당내 계파 싸움이 치열하니 양 계파에서 후보를 아예 내지 말자며 설득에 나선 것이다. 시작은 홍영표 의원이었다.


지난 6월24일 충남의 한 리조트에서 민주당은 워크숍을 연 바 있다. 당시 친문계 의원들은 하나둘 이 대표에게 찾아가 불출마할 것을 요구했다. 홍 의원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연 이재명 후보나 내가 출마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우리가 판단해 보자고 (이 의원에게)이야기했다”고 말했다.

후에 홍 의원은 불출마를 실천했고,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던 또 다른 의원인 전해철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친문계에서는 최종적으로 아무 후보도 내지 않았다. 

두 의원이 불출마로 이 대표를 막으려 했다면, 설훈 의원은 직접 출마해 그의 당권 도전을 막으려 했다. 설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출마의 이유를 ‘분당될까 봐’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분당은 막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의원이 대표가 되면 분당의 위험성이 커진다”며 “지금도 이 의원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강성 팬덤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고 있다. 이 의원이 대표가 된다면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설 의원 말대로 이 대표의 강성 팬덤은 비명계 의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이들은 문자폭탄과 팩스 돌리기, 댓글 테러 등의 수단으로 이 대표를 견제하는 세력을 공격했다.

강성 팬덤의 공격을 경험한 한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는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안 쓰이기도 하고 반반이다. 그러나 의원실 직원들이 힘들어 할 때는 조금 위축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친명계 의원들 중심으로 지도부 완전 장악
안 그래도 힘들었는데…설 자리 없는 비명계


이 대표의 팬덤이 의원들의 언로를 막고 있다는 지적에는 민주당 내 대부분의 인사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 대표의 강성 팬덤은 친문 의원들의 지지자들과 본질적으로 결합할 수 없는 세력이다. 이들은 ‘개혁’을 위해서 이 대표가 필요하고, 친문 의원들은 구태 세력이라 생각해 적으로 인식한다.

‘구태’에 ‘적’이 돼버린 친문 의원들은 어떤 행보를 해도 이 대표의 팬들에게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출마를 말린 것은 친문계 좌장들뿐만 아니다. 지난 6월22일 재선 의원 34인은 비공개 간담회 후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 발표를 맡은 송갑석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가 계파 간 세력 싸움이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분들은 전당대회에 나서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입장문에 구체적으로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당시 언론은 친문의 핵심인 홍영표·전해철 의원 및 86세대의 대표 격인 이인영 의원 등과 함께 이 대표에 대한 불출마 요구로 풀이했다. 

이렇게 많은 반대를 이겨내고 나온 이 대표에게 이제 칼자루가 쥐어졌다. 공천권이라는 칼이다. 대표가 된 이 의원은 친명계로 가득찬 최고위원들과 함께 본인의 입맛대로 민주당을 구성할 권리가 생겼다.

<일요시사>가 만난 민주당 인사 대부분 이 대표가 ‘뒤끝’이 있는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겉으로는 통합을 외치지만 결국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의원들을 ‘용서하지 않을’ 성격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한 비명계 의원실의 보좌관은 “이 의원은 대선 때 적극적으로 도왔던 의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지역구를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딱히 비명계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대표가 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일요시사>에 귀띔했다. 

그러나 분당의 가능성은 낮게 봤다. 이 대표의 ‘견제 행보’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분당까지 가기에는 동력도, 명분도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게다가 기존 정당을 이탈한 정치세력이 국민들에게 사랑받기란 쉽지도 않다.

그간 국내 헌정 역사에는 이해관계가 틀어져 분당한 사례가 수차례 있었다. 

방아쇠
당기나

3당 합당 당시 쪼개졌던 민주당이 그랬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의 열린우리당이 그랬으며 2009년 친이(친 이명박)계의 공천 학살로 떨어져 나왔던 ‘친박연대’가 있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새누리당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다.

그간 정당 역사상 분당에는 ‘명분’과 ‘리더’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보통 분당한 정당은 성공을 이루진 못했지만 몇몇 성공적인 사례가 있다. 신한국당에서 쪼개져 나왔던 ‘한나라당’이 대표적이다.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YS의 영향력 아래에서 자연스레 상도동계 의원들 또한 신한국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심판하고 금융실명제 등을 실시해 인기가 높았던 YS 덕분에 신한국당의 상도동계 의원들은 당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이들의 영화는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며 끝이 났다.

국가가 부도나며 생활에 큰 타격을 입자 국민들이 비난의 화살을 일제히 대통령에게 돌렸기 때문이다. 이때 YS는 역대 정부 중 가장 심한 레임덕을 앓았다고 평가받는다.

대통령의 추락과 함께 신한국당 내부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상도동계 의원들이 중심이 된 지도부는 힘을 잃어갔고, 다음 총선에 대한 대비도 전무한 상태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신한국당 내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던 이 전 총재는 YS의 인기가 떨어지자 보수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의 슬로건도 ‘삼김 청산’이었고, YS를 포함한 기존의 ‘구태 보수’를 개혁하자는 뜻을 신한국당과 유권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썩소와 
박수갈채


이런 강력한 리더가 등장하자 ‘신한국당 분당설’이 점차 힘을 받게 된다. YS의 영향력이 강한 당을 해체하고 이 전 총재를 중심으로 새판을 그리자는 전략이 의원들에게 먹혀들어 갔다.

당시 보수당에 몸담던 의원들 또한 본인의 다음 공천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천 자체도 받기 힘들뿐더러 공천을 받는다하더라도 인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신한국당을 국민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 전 총재는 결국 ‘한나라당’을 창당하게 된다.

그가 창당한 한나라당은 한국 역사상 가장 큰 전성기를 누린 보수정당으로 회자되고 있다. 지금의 국민의힘 역시 이때 이 전 총재가 창당한 한나라당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창당을 단행하며 YS 계파인 상도동계를 적으로 돌리고 강경보수 세력인 공화계, 민정계와 손을 잡았다.

이런 탓에 기존의 기치였던 ‘보수 개혁’에 대한 명분은 약해졌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승승장구했다. 4회 지방선거와 17대 총선, 그리고 4년 뒤 18대 총선까지 한나라당은 내리 3연승을 기록했다. 한때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지지율과 30~40%가량 꾸준히 차이를 벌리며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한나라당은 보수의 염원으로 여겨졌던 정권교체도 이뤄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내리 패하며 10년간 정권을 잃은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내세우며 정권을 되찾아오려 노력했다.

당장 리더 있어야 하는데…
이낙연 전 대표 귀국 주목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선거 구호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 갔고 경제위기와 북핵 문제 등이 겹치며 보수정당이 호재를 탔다. 결국 이 후보는 당시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정권을 보수 지지자들에게 돌려줬다.

이는 한나라당의 성공적인 분당 사례로 남아있다. 당시 성공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당을 가능케 했던 것은 역시 이회창의 ‘존재감’과 다음 총선에 대한 의원들의 ‘두려움’이었다.

현재 민주당은 현재 공천 학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자 공격을 한번이라도 받은 친문 의원은 본인이 ‘개혁 대상’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고, 대립각을 깊게 세운 의원들은 ‘확신’하고 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았던 의원이 대다수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분당을 이끌 ‘이회창’과 같은 리더는 찾아볼 수 없다. 친문계의 리더라고 인식되는 이낙연 전 대표는 현재 미국에 가 있고 정세균 전 총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분당을 이끌만한 리더들이 모두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이 전 대표가 분당의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 이사장의 임기는 2025년까지여서 2024년 총선 전에 분당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 전 대표의 귀국 시점은 내년으로 잡혀 있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세력 싸움이 한창일 무렵, 이 전 대표의 복귀가 예정돼있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은 세가 약해진 조직이지만 분명한 리더 한 명이 나타날 경우,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며 “이낙연 전 대표가 됐든, 다른 새로운 리더가 됐든 공천 학살이 일어나는 시점이 분당의 시점이 될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의 말대로 비명계는 상황을 뒤집을만한 힘이 다분하다. 민주당 내 헤게모니를 차지한 기간이 무척 길었던 점이 있고, 아직도 민주당 의원의 과반 이상이 비명계로 분류돼있기 때문이다.

모델은 
한나라당?

민주당은 그동안 네 번이나 분당을 경험한 바 있다. 그때마다 진보정당의 입지는 줄었고 선거에서 늘 불리한 조건으로 보수정당을 상대해야만 했다. 이 대표는 본인이 민주당의 리더가 되면 그간의 계파 갈등을 모두 청산하고 의원들을 하나로 품을 것이라고 수차례 공언해왔다. 이제 그 ‘말’을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국민의힘 분당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전면전 선포로 일각에서 국민의힘 측에도 분당설이 제기된 바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말, 권성동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간의 사적 대화가 언론 카메라에 공개되며 한차례 고역을 치룬 바 있다.

유출된 문자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권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전했다.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고 잠행을 이어가던 이 전 대표는 해당 문자가 보도되자마자 잠행을 깨고 다시 내부 총질을 시작했다.

지난 22일에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탄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을 행해 ‘이XX 저XX’하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려고 부단히 뛰었던 제 심정이 진정한 선당후사”라며 장제원, 권성동 등 윤핵관을 향해 다음 총선에서 험지로 출마해 당선해오라는 주문을 했다. 그것이 자신과 국민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선당후사라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대통령과 윤핵관들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왔다.

국민의힘에서 입지가 좁아진 이 전 대표가 본인 중심의 새로운 보수정당을 출범시켜 아예 새 판을 짤 것이라는 분석 아래서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측근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며 “이미 한 번 새 보수정당을 출범했다가 망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확실시 되자 유승민·장제원 의원 등과 함께 바른정당을 만들어 새 정치를 꿈꿨던 바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바른정당을 외면했다. 기존 보수 지지층은 여전히 새누리당을 더 지지했고, 중도 지지층은 더불어민주당으로 급격히 쏠려갔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분당이 불가능한 또 다른 이유로 이 전 대표의 ‘리더십 상실’을 들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국민의힘 내부 당심은 이 전 대표에게 좋지 못한 상태다.

이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물러간 후 ‘이핵관’이라 불렸던 그의 세력이 와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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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