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으로 본 사형 딜레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8.01 10:32:19
  • 호수 13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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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죽여야 끝나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형(師兄). 수형자의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다. 한국은 사형제도가 형사법 체계상 존재하지만, 1997년 12월30일 23명의 사형 집행이 시행된 이후 이뤄지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사형제도 폐지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시작은 김대중정부때부터였지만,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찬반의 목소리에서 가장 큰 쟁점은 ‘오판’의 가능성이다.

지난 14일 헌법재판소 공개 법정에 사형제도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헌법소원 청구인 측과 존치 입장에 선 법무부는 헌법의 원리와 사형제도의 역할 등을 놓고 맞섰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은 2018년 부모를 살해한 A씨다. 

59명의 사형수

A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1심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한국천주교주 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A씨와 함께 2019년 사형제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청구인 측은 “생명은 절대적 가치며 법적 평가를 통해 박탈할 수 없다. 사형제도보다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절대적 종신형 등으로도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 사회 보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범죄 예방에 따른 공익의 실현 대상은 무고한 일반 국민의 생명이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흉악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사형 선고·집행이 이뤄지는 것이라면 사형제가 달성하는 공익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만큼의 범죄 억지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사형제도가 다시 부활하면 어떻게 될까. 지난 17일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판결이 확정돼 국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모두 59명이다. 그러나 ‘사형제는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도 이미 내려진 처벌의 종류를 재심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이 가운데 5명뿐이다.

따라서 이번 헌법소원을 통해 사형제도의 효력이 사라지면 이들 5명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되고, 나머지 사형수는 장기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2007년 연쇄살인사건의 오모씨 ▲2009년 영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모씨 ▲2011년 해병대 총격사건의 김모 상병 ▲2014년 대구에서 전 연인의 부모를 살해한 장모씨 ▲2014년 22사단 GOP 총기난사사건의 임모 병장 등 5명이 헌재의 두 번째 합헌 결정 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형제 필요하다” 의견 70% 넘어
법관 35% “한 번 이상 오판 경험”

사형제도 존치·폐지에 대해 국민 여론은 어떨까. 지난해 9월 시행된 ‘사형 집행 필요성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에는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70.2%였다. 사형 집행이 필요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19.1%였고, 10.4%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는 비중이 3배 이상 높은 것이다.

여론조사를 진행한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과거에는 인권이 중시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흉악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불안감을 야기하는 흉악범죄자들이 더 이상 사회에 나오면 안 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국민이 범죄자들을 세금으로 관리한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는 쉽게 결정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법관이 하는 재판에 오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 인권 옹호 한국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법관 중 35%가 한 번 이상의 오판 경험을 갖고 있었다.

법관이 기계가 아닌 이상, 아무리 신중하고 객관적인 판결이어도 오판의 위험성은 늘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민 의식조사에서도 사법제도에서 오판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이 일반 국민 전체의 93%였다. 특히 시민단체·국회의원·언론인·교정위원 등의 90% 이상은 사법 판단에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오판 가능성 때문에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도 62.4%나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오판으로 인한 사형 집행 시 생명을 회복할 수 없고 무고하게 사망한 생명의 가치는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강조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의 오판 사건 중에는 대표적으로 ‘인혁당 사건’이 있다. 당시 사회가 전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과도한 사형 대상 규정 ▲오판과 사형을 남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대한민국의 옛 정보기관)에 의해 도예종 등의 인물이 기소돼 사형이 선고된 사건이다. 1964년 제1차 사건에서는 반공법, 1974년 제2차 사건에서는 국가보안법·대통령 긴급조치 4호 위반 등에 따라 기소됐다.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같은 해 5월9일에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파기해,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도예종과 양춘우 외에도 박현채를 비롯한 6명에게 징역 1년, 나머지 사람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인혁당 사건’ 무고한 생명 희생
“범죄를 막는다는 증거도 없어”

비상보통군법 회의 제1심판부는 이 중 여정남에 대해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내란 선동 ▲반공법 위반 ▲뇌물 공여 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비성보통군법 회의 제2심판부는 도예종·김용원·이수병·하재완·서도원·송상진·우홍선 등에게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1974년 7월11일과 7월13일에 재심 대상 판결에 의해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1975년 4월8일 대법원은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불과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이들은 사형 집행 전 상고를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에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 이유인 ▲헌법 위반 ▲법률 위반 내지 법리 오해 ▲비공개 재판의 위법성 ▲공판심리 절차상 위법 ▲증거조사 절차의 위법 ▲채증법칙 위배 ▲이유 불비의 위법 ▲양형 부당 ▲변호인 접견권 및 교통권의 금지 등에 대해 전부 이유 없음으로 상고를 기각해 각 재심 대상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변호인들의 기억에 따르면 공소장과 판결문은 날짜만 다르고 나머지 내용은 모두 같으며 판결문도 1심에서 3심까지 변동이 없었다고 한다.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는 이 사건을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 유족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사형이 집행된 여정남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 유예 2년, 피고인들에 대해 반공법 위반의 점은 무죄, 그리고 공소사실 중 피고인들에 대한 대통령긴급조치 위반은 각 면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로 오판으로 희생된 피고인들이 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사형제도에 대해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반대 의견을 비췄다.

이 교수는 “우선 사형제도가 범죄를 막는다는 효과 자체가 과학적 증거로 연구되지 않았다. 연구하는 것도 어려운 분야고, 측정하기도 어렵다. 여론조사 결과 사형 집행 필요성이 높게 나오는 것은 국민들은 잠재적 피해자라고 생각하니 사형제도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도부터

이어 “과학수사가 증진돼 오판 가능성이 낮아졌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다.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그러나 폐지되려면 미국처럼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같은 제도를 만들고 폐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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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