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 표류하는 박순애 교육부 장관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이대로 침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부부처에서 장관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장관의 성향, 가치관, 이력 등은 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장관의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역으로 말하면 장관에게 흠결이 발견되면 부처의 동력도 떨어진다는 뜻이다. 

지난 1월7일 윤석열 대통령(당시 대선후보)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언급했다. 당내 갈등으로 하락세를 타던 지지율이 ‘7글자’ 공약에 반등하기 시작했다. 여가부 폐지와 존치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교육부도
개혁 대상?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부부처는 폐지될 수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전한 윤 대통령은 내친 김에 ‘교육부 폐지’도 언급했다. 이 또한 당선인 시절부터 나온 이야기다. 여가부에 가려졌을 뿐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교육부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교육부 폐지설, 축소설, 통폐합설 등이 흘러 나왔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교육부의 기능 축소, 폐지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3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전국 학생과 교사, 학부모 92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 분야 정부 조직개편 교육주체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1월5일부터 14일까지 열흘간 진행된 조사에서 교육부 폐지나 기능 축소에 반대한다고 답한 비율은 65.6%에 달했다.


학부모 응답층에서 69.2%로 평균을 웃돌았고, 교원(63.3%), 학생(52.1%) 순으로 나타났다. 

가라앉는 듯했던 논란은 지난달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 재점화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7일 국무회의에서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며 “그런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질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교육부에 강력히 주문했다”고 전했다. 

앞서 5월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윤 대통령은 3대 개혁 현안으로 연금, 노동과 함께 교육을 꼽았다. 윤 대통령은 “우리 학생들에게 기술 진보 수준에 맞는 교육을 공정하게 제공하려면 교육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연금 개혁, 노동 개혁, 교육개혁은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인철 후보자 이어 두 번째
청문회 안 거치고 임명 강행

대통령이 직접 교육개혁에 대해 말한 만큼 교육부 내부의 조직 개편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또 대통령의 철학에 발맞출 교육부 장관으로 어떤 인물이 지명될지를 두고 관심이 집중됐다. 문제는 장관 후보자 지명, 임명 과정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13일 윤석열정부의 초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김인철 전 한국외대 총장을 지명했다. 그러면서 “교육현장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정책에 개혁적인 목소리를 낸 교육자”라고 소개했다. 


이어 “교육부 개혁과 고등교육 혁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청년세대에게 공정한 교육의 기회와 교육의 다양성을 설계해나갈 적임자”라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김 전 총장이 줄곧 ‘대학 자율화’에 대해 소리 내온 만큼 대학을 둘러싼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김 전 총장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논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진사퇴 형식으로 낙마했다. 윤정부 장관 후보자 가운데 첫 낙마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김 전 총장은 부인과 두 자녀가 장학금을 수령하는 과정에서 ‘남편‧아빠 찬스’를 썼다는 의혹을 받았고, 법인카드 쪼개기 의혹, 성폭력 교수 옹호 논란도 불거졌다. 여기에 술집에서 접대를 받으면서 논문을 심사했다는 의혹도 더해졌다.  

김 전 총장은 지난 5월3일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마지막 봉사를 통해 되돌려드리고 싶지만 많이 부족했다. 어떤 해명도 변명도 하지 않겠다”며 “모두 저의 불찰이고 잘못”이라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김 전 총장이 지명 20일 만에 후보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윤정부의 고심도 깊어졌다. 

윤정부 내각
첫 낙마자?

이후 윤 대통령은 같은 달 26일 새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박순애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현 교육부 장관)를 지명했다. 그러면서 “공공행정 전문가로서 교육행정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윤정부의 교육 분야 핵심 국정과제 실현을 이끌어줄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박 전 교수가 행정 전문가인 만큼 교육부 내부의 폭넓은 조직 개편이 점쳐졌다. 

하지만 박 장관 역시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특히 음주운전 등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의혹이라 여론도 부정적으로 흘렀다. 박 장관의 음주운전 전력은 인사청문회 요청안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2001년 12월 음주운전 당시 박 장관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기준(0.1%)의 2.5배(0.251%)를 웃돌았다.

논문과 관련한 연구 부정 의혹도 불거졌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박 장관에 대한 지명철회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  장관과 함께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임명 강행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장관(당시 후보자)은 자기 논문표절과 연구실적 부풀리기, 제자 논문 가로채기 등 각종 연구윤리를 위반했다”며 “본인 연구용역에 남편을 포함했다는 의혹도 나왔다”고 지적했다.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사퇴한 데 반해 박 장관은 교육부 수장 자리에 올랐다. 여야의 국회 정상화 합의해도 박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뉴스토마토>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박 장관의 임명 강행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국민 10명 중 7명(68.7%)은 부정적으로 답했다. 


교육계도
반발 크다

문제는 박 장관을 둘러싼 논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추가 논란이 불거지면서 장관은 물론 교육부, 나아가 윤정부의 국정동력까지 흔들리는 모양새다. 가뜩이나 국정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름을 붓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은 박 장관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민주당 서동용 의원은 박 장관의 자녀가 입시 컨설팅 학원에서 생활기록부 첨삭 등의 불법 컨설팅을 받았다는 의혹을 던졌다. 박 장관은 “저는 (컨설팅 학원에)간 기억이 없고 바빠서 애들 학원을 챙긴 적이 없었다”며 “자녀에게 확인해보니 컨설팅을 받았다곤 밝혔으나 별 것 없었다고 했다. 알려진 내용도 본인 교과 내용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논문 중복 게재가 확인돼 한국행정학회(2011년)와 한국정치학회(2012년)에서 잇달아 ‘투고 금지’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언론에서 제기된 논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구윤리위원회가 확립되지 이전의 논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답변을 회피하거나 관행으로 치부하는 등 박 장관의 태도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박 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교육부가 지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계도 반발하면서 정책 추진의 동력이 힘을 잃고 있다. 여기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서울교사노동조합(서울교사노조) 등 교원단체가 박 장관의 임명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전교조는 “(박 장관은)자질 논란으로 이미 지도력을 상실했다”며 “음주운전 혐의와 이에 따른 선고유예에 대한 해명 없는 사과, 제자 논문 가로채기 및 논문 중복 게재 의혹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한 윤리 불감증, 교수 재직 시 조교에 대한 갑질 논란까지 박 장관의 이력이 됐다”고 비판했다. 

도덕성·비전문성 논란
산적한 현안 해결할까?

보수적 성향을 띠는 교총에서도 아쉬운 목소리가 나왔다. 교총은 입장문에서 “임명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청문 절차 부재로 교육에 대한 소신, 비전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너무 아쉽다”며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직무에 임해달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박 장관의 도덕성뿐만 아니라 비전문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장관은 그동안 “비전문가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교육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 

그러면서 “제가 교육현장에 뛰어든 지가 20년이 넘었다”며 “교육에 대한 제 생각이나 정책에 대해 표명하지 않았을 뿐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충분히 교육부와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경험이 있다”고 피력했다. 

우려 속에 취임한 박 장관은 취임식에서 “제가 적절한 사람인지 우려되는 지점이 있는 건 알고 있다. 국민이 보는 눈높이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과감한 교육개혁을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대학 규제를 풀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여기에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방안도 내놓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박 장관 앞에는 자율형 사립고 존치,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교육교부금 문제 등 교육계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떨어진 학생의 기초학력 저하도 화두로 떠올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 교육감이 크게 약진했지만 여전히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진보 교육감과의 의견 조율도 필요하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뇌관으로 여겨진다. 대학 등록금은 2009년 ‘반값 등록금’ 도입 이후 사실상 동결됐다. 그동안 교육계는 등록금 인상을 강하게 요구해왔다. 이 문제는 일단 박 장관이 브레이크를 건 상태다. 박 장관은 “등록금 인상은 당장은 없는 걸로 안다”며 “다만 사립대에 과중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대학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형태로 갈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내부 직원도
말 안 듣는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박순애호’가 표류할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장관이 도덕성, 비전문성 논란에 휘말리면서 조직 장악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정책을 펼치고 진행해가는 과정에서 장관의 역할이 중요한데, 개인적인 논란으로 인해 시작도 전에 동력을 잃고 있다는 반응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고 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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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