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삼성가 3세’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 59년 인생사

버려진 금수저, 외롭게 떠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이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재계 조문행렬이 이어졌고, 특히 범 삼성가에서 이 전 부회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챙겼다. 사촌동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출장 중 조화를 보냈다. ‘비운의 삼성가 3세’로 알려진 이 전 부회장의 생애는 어땠을까.

지난 11일 별세한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은 미국 LA에서 거주하다 지난해 귀국한 이후 우울증, 고관절 수술, 체중 감소 등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룹 승계 
경쟁서 밀려

재계에서는 잇딴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범 삼성가에서 이 전 부회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범 삼성가 친인척 중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가장 먼저 장례식장을 찾았다. 부인 한지희씨와 장례식장을 찾은 정 부회장은 “재관 형님은 저와 추억이 많은 형이고 존경하는 분”이라며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돼 참담하고 황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네덜란드 출장 관계로 빈소에 방문하지 않고 조화를 보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손경식 CJ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도 모두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 등은 직접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문했다. 

이 전 부회장의 조문에 범 삼성가가 집결하면서 2세들의 승계 다툼 봉합 후 본격적인 화해모드로 접어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우울증 시달리다 별세… 정확한 사인은 불명
‘범 삼성가’애도…유럽 출장 간 이재용 조화

이 전 부회장은 삼성가 3세로,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 회장의 장남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새한그룹은 창업주 고 이창희 회장이 과거 삼성그룹 승계 경쟁에서 밀려났던 만큼 ‘비운의 삼성가’로 언급된다. 

이창희 회장은 1964년 일본 와세다대 졸업 후 삼성그룹에 입사해 한국비료 이사, 제일모직 이사, 삼성물산 이사 등을 거쳤다. 하지만 1996년 사카린밀수사건으로 수감되면서 아버지이자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삼성가를 떠난 이창희 회장은 1973년 미국 마그네틱미디어(Magnetic Media)와 합작으로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를 설립했다. 1977년 새한전자를 인수하고 1979년 마그네틱미디어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플로피디스크 등 기록매체 중심의 사업으로 단장하며 새한미디어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회장님 눈 밖에
가까스로 성장

1985년 당시 공기업이었던 한국종합화학으로부터 충주 비료공장을 인수했고 옥사이드공장으로 재구축해 화학사업에 뛰어들었다. 1989년 새한이동통신을 세워 무선호출 사업에, 1994년 황성통운 인수로 물류업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며 재계에서 꽤 영향력 있는 사업가로 인정받았다. 

이 전 부회장이 새한그룹의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은 1991년부터다. 이창희 회장이 혈액암 판정 4개월 만에 58세 일기로 사망하자 그의 아내인 이영자씨가 회장으로, 이 전 부회장은 새한미디어 부사장직에 올랐다. 

199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제일합섬을 넘겨받은 새한미디어는 1997년 조사화합 및 새 영문 CI를 선포하며 새한그룹을 출범시켰다. 이듬해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며 재계 서열 20위권까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87년 미국 터프츠대를 졸업한 그는 씨티은행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1990년 새한미디어 이사를 맡아 오너 경영인 대열에 합류했다. 모친 이영자씨가 새한그룹 회장을 맡아왔지만 대표이사로서 경영 일선을 지휘한 것은 이 전 부회장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당시 이미 쇠퇴하고 있던 비디오테이프와 섬유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며 경영난에 휩싸였다. 새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1조원이 넘는 시설투자에 나섰다가 경기 침체로 금융비용이 크게 늘어나자 1999년 섬유·필름 부문을 분리해 일본 도레이(TORAY)와 합작법인 도레이새한을 세워 다각적인 기업 경영에 나섰다. 

고군분투
결국 부도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결국 2000년 계열사 전체가 워크아웃(Workout)에 들어갔다. 이 전 부회장은 작은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지원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이 다른 곳보다 먼저 자금 회수를 하는 바람에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당시 이재관 부회장은 이태원동 자택을 포함해 247억원 상당의 개인 자산을 회사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결국 새한그룹 경영에서 완전 손을 뗐다. 새한이 그룹 형태를 갖추고 아들 형제가 경영을 맡은 지 5년 만이었다.

(주)새한(구 제일합섬)은 웅진그룹에 넘어가면서 웅진케미칼로, 도레이새한은 도레이첨단소재로, 새한미디어는 코스모스신소재로 사명을 바꿨다. 

새한 오너 형제들의 불운은 그룹 해체와 경영권 상실로 끝나지 않았다. 이 전 부회장은 워크아웃 직전 분식회계를 통해 대규모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200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실형을 받았다. 이재찬 사장은 연예·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을 갖고 ‘디지털미디어’라는 계열사를 통해 드라마·음반 제작 사업을 벌였으나 회사 경영권을 잃었다. 

재계서열 20위 등극…잇단 실패 나락으로
모임·대외활동 자제…지금까지 운둔생활


이 전 부회장이 언론에 노출된 것은 2010년 동생 이재찬 사장의 사망 소식 때문이었다. 이 전 부회장의 구속과 동생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며 ‘비운의 삼성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재찬 사장 사망 당시 이건희 회장 부부와 이재용 당시 부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등은 싱가포르 출장으로 국내에 없었다. 

동생 사망 이후 이 전 부회장이 공식적인 목소리를 낸 것은 삼성가의 상속 소송이 불거졌던 2012년이다. 당시 이재찬 사장의 유족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소송을 냈는데 이 전 부회장 측은 “과거 상속 문제가 전부 정리됐기 때문에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소송이나 기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률 대리인을 통해 입장을 표시했다.

해당 사건 후 이 전 부회장은 2015년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별세 당시 빈소를 찾은 것 외엔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워크아웃 뒤 국내·외를 왔다 갔다 했다는 것만 풍문으로 들었다”며 “그 이후 사업이나 대외활동 없이 조용히 지냈던 것으로만 안다”고 말했다.

새한 해체 후
대외활동 접어

이들 형제는 새한그룹이 해체된 뒤 삼성·CJ·신세계·한솔 등 범 삼성가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가족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ktikt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