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네 번째 한국인 추기경 유흥식 대주교

  • 오혁진 기자 ohj0001@nate.com
  • 등록 2022.06.07 12:59:59
  • 호수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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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업무 추진력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한국 가톨릭교회 제4대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을 역임한 유흥식 신부가 네 번째 추기경에 임명됐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지 약 11개월 만이다. 그는 국내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이명박(MB) 정부 당시 4대강을 반대했다. 세월호 참사 현장도 방문해 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왔다.

유흥식 신임 추기경은 1951년 11월17일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났다.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생후 6개월에 한국전쟁을 맞았다. 젖먹이 시절 아버지를 잃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3남매를 혼자서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유 추기경이 기댈 곳은 성당뿐이었다.

가난했던 과거
수녀님 권유로…

유 추기경은 학창시절 다니던 성당에서 그에게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수녀님의 권유로 신부의 삶을 꿈꿨다. 논산 대건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인 16세 때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에는 오스트리아 부인회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이 귀한 돈을 멀리 있는 분들이 보내주셨는데 내가 보답할 길은 다시 성당에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때부터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유 추기경은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생이 되기로 결심을 굳혔지만,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집안의 반대를 고려해 집에는 일반대학교(연세대)에 시험 본다고 하고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유 추기경은 1979년 12월8일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1983년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주교좌 대흥동본당 수석 보좌신부, 솔뫼성지 피정의 집 관장, 대전가톨릭교육회관 관장, 대전교구 사목국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98년 12월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됐다.

2003년 6월2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됐으며, 그해 8월19일 주교로 서품됐다. 교구장 경갑룡 주교의 사임에 따라 2005년 4월1일 교구장직을 승계 받아 4월6일 대전교구 교구장 주교로 착좌했다.

2014년 8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를 주최한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많은 활동을 한 유 추기경의 세례명은 ‘라자로’다. 음력 생일과 일치하는 성인을 찾다 명명하게 됐다. ‘라자로’는 생전에 거지였다가 천국에 가서 부활해 예수의 친구가 됐던 인물이다.

유 추기경은 교황청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전 세계 50만명에 달하는 사제·부제의 직무·생활을 관장하는 업무를 무난하게 잘 수행해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동안 줄곧 이탈리아 출신 장관이 도맡아온 일을 아시아 출신 성직자가 넘겨받은 데 대해 교황청 안팎에서 일부 우려도 있었으나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불필요하고 잘못된 업무 관행을 개선하고 조직을 능률적으로 탈바꿈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취임 직후 장관실을 모든 직원에게 개방하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한 것도 교황청 관행상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탁월한 업무 추진력에 더해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으로 성 내 직원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추기경은 한국 인권과 환경, 종교 간 평화를 위해 노력한 종교인이자 개혁파로 평가받는다. ‘쌍용차’ ‘위안부’ ‘사형제’ ‘4대강 사업’ 문제를 두고 진보적, 전향적으로 사목 활동을 벌였다.


4대강·위안부 합의 비판 등 사회 문제 지적
프란치스코 교황 동행해 세월호 유가족 만나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안내를 책임지고 이끌면서 세월호 참사 유족과 만날 때도 동행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 방문을 앞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교황 방문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큰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교황의 삶 자체가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천주교 13만936인 선언’에도 참여했다.

2010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 때 낸 메시지에서 유 추기경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당시 간디의 무덤 입구에 새겨진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의 사회악’을 인용하면서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하고 답답해져 온다”고 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정의평화위원회는 2016년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타결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인권을 경제와 외교 논리로 환치한 결과물”이라며 “이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당시 정평위는 “정의를 향한 외침과 인권 보호는 교회의 기본 임무”라고 했다.

노동자와 농민도 만났다. 2015년 11월엔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농민 고 백남기씨를 당시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병문안했다. 이들은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했다. 2014년 12월엔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과 김정우 전 지부장을 만나 위로했다.

당시 두 사람 동료인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70m 굴뚝 위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2009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는데, 여러 병으로 고생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찾아 격려의 말과 기부금을 전하기도 했다.

인권과 환경
종교간 평화

2015년 대전교구장으로 일할 때는 국회의원들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사형제 폐지를 위한 특별법 공동 발의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당시 유 추기경은 “‘보복과 응징’으로 죄인의 생명을 죽이는 것보다 ‘반성과 용서, 사랑과 체계적인 교화’를 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진정한 의미에서 바로잡고 치유하는 길이며 인간에 대한 진정한 희망과 신뢰를 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가 많은 반대 여론에도 정치 지도자들의 소신 있는 결단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선례도 제시했다.

2010년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수도자 5005인 선언문’에 주교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부처님오신날엔 사찰을 찾는 등 종교 간 대화·평화를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쳤다.

유 추기경은 2015년에도 MB의 4대강 비판을 이어갔다. 유 추기경이 위원장으로 있던 주교회의 정평위는 2015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정기총회에서 “하느님은 항상 용서해준다. 사람은 가끔 용서해주지만 자연은 용서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으로, 환경 파괴와 자연재해를 우려하는 학계의 견해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채 국민적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용과 절차면에서 정당성이 결여되고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이제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을 통해 재조정돼야 할 불의한 사업”이라며 “교회의 ‘4대강 사업’ 반대가 참된 가치를 바탕으로 복음화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교회 본연에 해당함을 다시 확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회는 온전한 생태계 회복을 위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기초로 한 ‘공동선’의 가치를 독려하고 이를 위한 토론의 장에 동참할 것”이라며 “또 쓰고 버리는 낭비의 문화에서 벗어나 공동체적이고 생태적인 생활방식을 정착시켜 구체적인 정책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 추기경은 2016년 1월 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복지시설 ‘나눔의 집’을 위로 방문하고,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 잇단 비판
행동하는 개혁파

앞서 유 추기경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판했다.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왜 졸속으로 이렇게 했는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천주교주교회의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피해 당사자인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강력 질타하면서 전면 재협상을 촉구한 바 있다.

천주교주교회의 산하 공식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는 당시 “‘모든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에 10억엔을 책정한다는 등의 합의문은, 모든 것에 선행돼야 하는 가장 소중하며 보편적인 기본권을 한일 양국의 현안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와 외교의 논리만으로 환치시킨 결과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합의문의 여러 내용은 일본이 저지른 조직적 범죄인 종군위안부에 대한 진상과 책임 규명의 노력을 소홀히 하게 만듦으로써 피해 당사자인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종교계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원인무효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천주교가 처음으로 유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천주교주교회의 정평위는 이외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성명을 통해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박근혜정부의 퇴행성을 비판해왔다.

북한과의 친선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 문재인정부에서 유 추기경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 북한을 포함한 저개발국 지원에 남다른 열정과 관심을 두고 실천했다.

대전교구장으로 봉직하던 2020년 말, 전 세계 교구 중 처음으로 저개발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을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백신 나눔 운동은 이후 한국 천주교 교구 전체로 확대됐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일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아 직접 한국 교계에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북한 사정에 가장 정통한 성직자로도 꼽힌다. 한국 천주교 본산인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장(2014∼2018년)으로 있을 때는 교황청 산하 비정부기구(NGO)인 국제 카리타스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며 대북 지원사업의 가교 역할을 했다. 2005년 9월 북한을 찾아 ‘씨감자 무균 종자 배양 시설’ 축복식을 하는 등 2009년까지 네 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유 추기경은 최근까지도 교황청의 북한 방문을 추진하던 인물이다. 유 추기경은 지난해 10월 바티칸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북 가능성에 대해 “지금으로선 상대방(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라며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고 가능하면 (상호)관계에서 상대가 대답을 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차원에서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말뿐인 ‘교황 방북 플랜’ 실행·추진력 커져
거칠어진 북 도발 잠재우는 해결사 역할 하나

교황은 4년 전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교황 초청 의사를 전했을 때도 수락 의사를 표한 적이 있다. 당시 유 추기경은 교황이 북한의 초청장이 오면 방북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지 묻는 말에 “제가 말씀을 드릴 처지는 아니다”면서도 “정부도 그렇지만 교황청도 여러 가지 길을 통해 교황님이 북한에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서 노력하고 있다. 때가 맞아야 한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황청은 지난해 북한과 직접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교황청 자선단체인 ‘산에지디오’ 경로를 통해 북한과 의견 교환 및 만남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다.

앞서 2019년 2월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열린 산에지디오 창립 51주년 기념미사와 리셉션에 김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참석해 교황청 관계자들과 만났다. 2018년 12월에는 임팔리아초 산테지디오 회장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제일 먼저 북한과 수교한 나라다. 친북 (성향의)의원들도 있어 그 사람들이 가끔 북한을 가기도 한다”면서 향후 의원들과 만나 북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천주교계에서는 유 추기경 임명이 북한과 중국 관계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문정부에서부터 추진되던 교황의 북한 방문 현실화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의지가 지금도 확고하지만, 방북 현실화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방북이 성사된 적이 없고, 현재도 교황청과 북한 간 직접적인 외교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어 북한의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

2018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개최되는 등 한반도 해빙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열리는 듯했으나 다음 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며 모든 실무 작업이 중단됐다.

천주교 측에서는 교황의 방북이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작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교황은 테러와 전쟁 위험 등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천주교 역사상 최초로 이라크를 순방했다. 당시 교황은 “희망이 증오보다 더 강력하며 평화가 전쟁보다 더 위력적”이라며서 전쟁을 이기는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경색된 남북
돌파구 작용?

교황의 의지가 확고해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북한 측은 교황의 방북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만약 교황 방북이 성사되면 향후 경색된 남북, 북미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천주교 2인자’ 어떤 의미?

추기경은 천주교계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종신직이다.

특히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교황 선종 시 신임 교황을 선출하는 등 교황청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콘클라베’에서 투표할 수 있다.

유흥식 추기경 임명은 지난해 6월11일 주교에서 대주교에 서임됨과 동시에 바티칸 교황청의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될 때 예견된 바 있다.

성직자성 장관은 대주교보다 높은 추기경 직책으로 분류돼 재임 기간에 추기경에 서임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장관 임명 당시부터 뒤따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 추기경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2013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갔다.

교황은 이듬해 방한해 유흥식 주교가 교구장으로 있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 임명은 한국이 사실상 동아시아 선교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배려한 조치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국천주교계가 교황 선출 등 최고의사 결정 기구인 ‘콘클라베(Conclave)’에서 2표를 행사하는 영향력을 얻게 됐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천주교는 고 김수환 스테파노(1922∼2009)·정진석 니콜라오(1931∼2021) 추기경과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배출한 바 있지만, 선배 추기경이 80세를 넘겨 콘클라베에서 1표밖에 행사하지 못했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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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