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네 번째 한국인 추기경 유흥식 대주교

  • 오혁진 기자 ohj0001@nate.com
  • 등록 2022.06.07 12:59:59
  • 호수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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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업무 추진력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한국 가톨릭교회 제4대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을 역임한 유흥식 신부가 네 번째 추기경에 임명됐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지 약 11개월 만이다. 그는 국내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이명박(MB) 정부 당시 4대강을 반대했다. 세월호 참사 현장도 방문해 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왔다.

유흥식 신임 추기경은 1951년 11월17일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났다.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생후 6개월에 한국전쟁을 맞았다. 젖먹이 시절 아버지를 잃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3남매를 혼자서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유 추기경이 기댈 곳은 성당뿐이었다.

가난했던 과거
수녀님 권유로…

유 추기경은 학창시절 다니던 성당에서 그에게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수녀님의 권유로 신부의 삶을 꿈꿨다. 논산 대건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인 16세 때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에는 오스트리아 부인회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이 귀한 돈을 멀리 있는 분들이 보내주셨는데 내가 보답할 길은 다시 성당에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때부터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유 추기경은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생이 되기로 결심을 굳혔지만,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집안의 반대를 고려해 집에는 일반대학교(연세대)에 시험 본다고 하고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유 추기경은 1979년 12월8일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1983년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주교좌 대흥동본당 수석 보좌신부, 솔뫼성지 피정의 집 관장, 대전가톨릭교육회관 관장, 대전교구 사목국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98년 12월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됐다.

2003년 6월2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됐으며, 그해 8월19일 주교로 서품됐다. 교구장 경갑룡 주교의 사임에 따라 2005년 4월1일 교구장직을 승계 받아 4월6일 대전교구 교구장 주교로 착좌했다.

2014년 8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를 주최한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많은 활동을 한 유 추기경의 세례명은 ‘라자로’다. 음력 생일과 일치하는 성인을 찾다 명명하게 됐다. ‘라자로’는 생전에 거지였다가 천국에 가서 부활해 예수의 친구가 됐던 인물이다.

유 추기경은 교황청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전 세계 50만명에 달하는 사제·부제의 직무·생활을 관장하는 업무를 무난하게 잘 수행해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동안 줄곧 이탈리아 출신 장관이 도맡아온 일을 아시아 출신 성직자가 넘겨받은 데 대해 교황청 안팎에서 일부 우려도 있었으나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불필요하고 잘못된 업무 관행을 개선하고 조직을 능률적으로 탈바꿈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취임 직후 장관실을 모든 직원에게 개방하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한 것도 교황청 관행상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탁월한 업무 추진력에 더해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으로 성 내 직원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추기경은 한국 인권과 환경, 종교 간 평화를 위해 노력한 종교인이자 개혁파로 평가받는다. ‘쌍용차’ ‘위안부’ ‘사형제’ ‘4대강 사업’ 문제를 두고 진보적, 전향적으로 사목 활동을 벌였다.


4대강·위안부 합의 비판 등 사회 문제 지적
프란치스코 교황 동행해 세월호 유가족 만나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안내를 책임지고 이끌면서 세월호 참사 유족과 만날 때도 동행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 방문을 앞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교황 방문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큰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교황의 삶 자체가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천주교 13만936인 선언’에도 참여했다.

2010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 때 낸 메시지에서 유 추기경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당시 간디의 무덤 입구에 새겨진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의 사회악’을 인용하면서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하고 답답해져 온다”고 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정의평화위원회는 2016년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타결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인권을 경제와 외교 논리로 환치한 결과물”이라며 “이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당시 정평위는 “정의를 향한 외침과 인권 보호는 교회의 기본 임무”라고 했다.

노동자와 농민도 만났다. 2015년 11월엔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농민 고 백남기씨를 당시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병문안했다. 이들은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했다. 2014년 12월엔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과 김정우 전 지부장을 만나 위로했다.

당시 두 사람 동료인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70m 굴뚝 위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2009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는데, 여러 병으로 고생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찾아 격려의 말과 기부금을 전하기도 했다.

인권과 환경
종교간 평화

2015년 대전교구장으로 일할 때는 국회의원들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사형제 폐지를 위한 특별법 공동 발의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당시 유 추기경은 “‘보복과 응징’으로 죄인의 생명을 죽이는 것보다 ‘반성과 용서, 사랑과 체계적인 교화’를 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진정한 의미에서 바로잡고 치유하는 길이며 인간에 대한 진정한 희망과 신뢰를 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가 많은 반대 여론에도 정치 지도자들의 소신 있는 결단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선례도 제시했다.

2010년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수도자 5005인 선언문’에 주교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부처님오신날엔 사찰을 찾는 등 종교 간 대화·평화를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쳤다.

유 추기경은 2015년에도 MB의 4대강 비판을 이어갔다. 유 추기경이 위원장으로 있던 주교회의 정평위는 2015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정기총회에서 “하느님은 항상 용서해준다. 사람은 가끔 용서해주지만 자연은 용서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으로, 환경 파괴와 자연재해를 우려하는 학계의 견해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채 국민적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용과 절차면에서 정당성이 결여되고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이제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을 통해 재조정돼야 할 불의한 사업”이라며 “교회의 ‘4대강 사업’ 반대가 참된 가치를 바탕으로 복음화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교회 본연에 해당함을 다시 확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회는 온전한 생태계 회복을 위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기초로 한 ‘공동선’의 가치를 독려하고 이를 위한 토론의 장에 동참할 것”이라며 “또 쓰고 버리는 낭비의 문화에서 벗어나 공동체적이고 생태적인 생활방식을 정착시켜 구체적인 정책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 추기경은 2016년 1월 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복지시설 ‘나눔의 집’을 위로 방문하고,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 잇단 비판
행동하는 개혁파

앞서 유 추기경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판했다.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왜 졸속으로 이렇게 했는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천주교주교회의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피해 당사자인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강력 질타하면서 전면 재협상을 촉구한 바 있다.

천주교주교회의 산하 공식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는 당시 “‘모든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에 10억엔을 책정한다는 등의 합의문은, 모든 것에 선행돼야 하는 가장 소중하며 보편적인 기본권을 한일 양국의 현안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와 외교의 논리만으로 환치시킨 결과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합의문의 여러 내용은 일본이 저지른 조직적 범죄인 종군위안부에 대한 진상과 책임 규명의 노력을 소홀히 하게 만듦으로써 피해 당사자인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종교계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원인무효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천주교가 처음으로 유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천주교주교회의 정평위는 이외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성명을 통해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박근혜정부의 퇴행성을 비판해왔다.

북한과의 친선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 문재인정부에서 유 추기경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 북한을 포함한 저개발국 지원에 남다른 열정과 관심을 두고 실천했다.

대전교구장으로 봉직하던 2020년 말, 전 세계 교구 중 처음으로 저개발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을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백신 나눔 운동은 이후 한국 천주교 교구 전체로 확대됐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일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아 직접 한국 교계에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북한 사정에 가장 정통한 성직자로도 꼽힌다. 한국 천주교 본산인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장(2014∼2018년)으로 있을 때는 교황청 산하 비정부기구(NGO)인 국제 카리타스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며 대북 지원사업의 가교 역할을 했다. 2005년 9월 북한을 찾아 ‘씨감자 무균 종자 배양 시설’ 축복식을 하는 등 2009년까지 네 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유 추기경은 최근까지도 교황청의 북한 방문을 추진하던 인물이다. 유 추기경은 지난해 10월 바티칸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북 가능성에 대해 “지금으로선 상대방(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라며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고 가능하면 (상호)관계에서 상대가 대답을 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차원에서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말뿐인 ‘교황 방북 플랜’ 실행·추진력 커져
거칠어진 북 도발 잠재우는 해결사 역할 하나

교황은 4년 전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교황 초청 의사를 전했을 때도 수락 의사를 표한 적이 있다. 당시 유 추기경은 교황이 북한의 초청장이 오면 방북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지 묻는 말에 “제가 말씀을 드릴 처지는 아니다”면서도 “정부도 그렇지만 교황청도 여러 가지 길을 통해 교황님이 북한에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서 노력하고 있다. 때가 맞아야 한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황청은 지난해 북한과 직접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교황청 자선단체인 ‘산에지디오’ 경로를 통해 북한과 의견 교환 및 만남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다.

앞서 2019년 2월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열린 산에지디오 창립 51주년 기념미사와 리셉션에 김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참석해 교황청 관계자들과 만났다. 2018년 12월에는 임팔리아초 산테지디오 회장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제일 먼저 북한과 수교한 나라다. 친북 (성향의)의원들도 있어 그 사람들이 가끔 북한을 가기도 한다”면서 향후 의원들과 만나 북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천주교계에서는 유 추기경 임명이 북한과 중국 관계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문정부에서부터 추진되던 교황의 북한 방문 현실화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의지가 지금도 확고하지만, 방북 현실화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방북이 성사된 적이 없고, 현재도 교황청과 북한 간 직접적인 외교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어 북한의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

2018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개최되는 등 한반도 해빙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열리는 듯했으나 다음 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며 모든 실무 작업이 중단됐다.

천주교 측에서는 교황의 방북이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작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교황은 테러와 전쟁 위험 등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천주교 역사상 최초로 이라크를 순방했다. 당시 교황은 “희망이 증오보다 더 강력하며 평화가 전쟁보다 더 위력적”이라며서 전쟁을 이기는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경색된 남북
돌파구 작용?

교황의 의지가 확고해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북한 측은 교황의 방북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만약 교황 방북이 성사되면 향후 경색된 남북, 북미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천주교 2인자’ 어떤 의미?

추기경은 천주교계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종신직이다.

특히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교황 선종 시 신임 교황을 선출하는 등 교황청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콘클라베’에서 투표할 수 있다.

유흥식 추기경 임명은 지난해 6월11일 주교에서 대주교에 서임됨과 동시에 바티칸 교황청의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될 때 예견된 바 있다.

성직자성 장관은 대주교보다 높은 추기경 직책으로 분류돼 재임 기간에 추기경에 서임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장관 임명 당시부터 뒤따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 추기경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2013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갔다.

교황은 이듬해 방한해 유흥식 주교가 교구장으로 있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 임명은 한국이 사실상 동아시아 선교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배려한 조치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국천주교계가 교황 선출 등 최고의사 결정 기구인 ‘콘클라베(Conclave)’에서 2표를 행사하는 영향력을 얻게 됐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천주교는 고 김수환 스테파노(1922∼2009)·정진석 니콜라오(1931∼2021) 추기경과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배출한 바 있지만, 선배 추기경이 80세를 넘겨 콘클라베에서 1표밖에 행사하지 못했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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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