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좋은 소리 못 듣는 김진표 국회의장 후보

‘입조심’해야 협치 열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은 김진표 의원을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했다. 정치권 반응은 극과 극이다. “온화한 성품과 5선 의원으로 풍부한 경험을 가진 김 의원이 적임자”라는 환영과 “검수완박 꼼수 통과에 일조한 이가 의사봉을 잡느냐”는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여야의 원구성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김 의원은 갈등의 중심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

김 의원은 1947년 5월4일,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4살 때 6·25전쟁이 발발했다. 김 의원은 아버지와 함께 피란길에 올라 경기도 수원시로 향했다. 전쟁통에 생이별한 어머니와는 영영 이산가족이 됐다.

실향민에서 
정책통으로

수원에 정착한 김 의원은 그곳에서 10여년간 살았다. 서호초등학교에 이어 수원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로는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김 의원은 학업을 마치고 공직에 발을 들였다. 그는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20년간 재무 관련 부처에서 재경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김 의원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부터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극비리에 금융실명제 시행을 추진했다. 대통령비서실장도 모르게 일이 진행될 때, 김 의원을 비롯한 관료 몇 명만이 실무를 도맡았다. 금융실명제 안착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국민의정부 때는 재정경제부 차관·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국무조정실장 등을 줄줄이 역임했다. 그는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시절, 전 정권 때 도입한 금융실명제에 이은 부동산 실명제 도입 실무를 총괄했다. 차관 때는 경제성장률 10.1%를 달성하는 데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김 의원을 눈여겨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당시)에게 “김진표를 반드시 중용하라”고 조언한 일화는 유명하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때 김 의원은 신용카드 대란을 1년 만에 수습했고, 주 5일 근무제를 연착륙시켰다. 두 건 모두 시장에 타격을 줄만한 큰 사건이었지만, 큰 무리 없이 받아넘겼다는 평가다.

임무를 마친 김 의원은 본격적으로 정계진출을 타진했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장관 겸 교육부총리를 겸직했으며, 2007년에는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2008년 열린 18대 총선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2010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와의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본선행이 좌절됐다. 그래도 경선 과정에서 패배한 터라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듬해 5월에는 정세균 전 총리 등의 지원을 받아 원내대표에 당선돼 그해 말까지 임기를 이어갔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출마해 3선 고지를 밟았다. 


관료 출신 경제통…진보 정권 중용
5선 최고령 의원으로 국회의장 선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는 다시 경기도지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로소 본선행 티켓을 따냈지만, 거기까지였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열세를 보이며 선거기간 내내 패색이 짙었다. 김 의원은 출구조사에서 앞서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결국 새누리당 남경필 후보에게 1%p 차이로 석패했다.

같은 해 7월 열린 재보궐선거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박광온 의원을 지원해 당선에 기여했다. 이듬해 3월에는 문재인 당시 당 대표의 부름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자문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신설된 경기도 수원시 무 선거구에서 당선되며 원내로 복귀한다. 수원 정 선거구는 지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 의원에게 양보하고, 자신이 선거구를 옮겼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선거 공동대책위원장과 일자리위원장을 맡아 선거 승리에 일조했다. 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그는 위원장으로서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설계·발표했다.

특히 자신의 주전공인 경제 분야에서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성장 등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남 지사와의 경기도지사 선거 재대결 성사 여부에 정치권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불출마를 선언하고 같은 당의 전해철 후보를 지지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의 선택을 두고 경선까지 포함해서 두 번이나 패배한 전력에, 70대에 접어든 나이 탓에 재도전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경선을 통과해 이해찬·송영길과 당 대표직을 놓고 합을 나눴다. 결과는 최종 3위로 낙선이었다. 김 의원은 이해찬 전 대표에 의해 민주당의 경제자문기구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선임되며 아쉬움을 달랬다.

총리 내정설
시민단체 반발

그는 2019년 말 문재인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로 검토된 바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크게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소상공인연합회‧외식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들이 김 의원 지지 성명을 발표했으며, 일부 보수 정치인들 역시 찬성 의사를 밝혔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정권의 총리 후보자에 대해 진보층과 보수층 찬반 여론이 엇비슷한 진풍경이 연출됐다.

하지만 김 의원 내정설이 본격화되자 여러 시민단체의 반발이 이어졌다. 민주당 권리당원들 사이에서도 찬반 대립각이 점차 날카로워졌다. 결국 심상치 않은 기류를 인식한 김 의원이 직접 문 전 대통령을 만나 고사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의 대체자로는 정 전 총리가 낙점됐다.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는 단수공천을 받고 5선에 성공했다. 21대 총선의 최고령 당선자로 총선 직후 전반기 국회의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원내 최다 선수를 쌓은 박병석 전 국회의장과 최연장자 김 의원 간 경선이 결정됐다.

하지만 경선 닷새 전 김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전반기 국회의장직은 박 전 의장 몫이 됐다.

2020년 이낙연 대표 체제에서는 신설된 국가경제자문회의 초대 의장에 임명됐다. 지난해 이 대표가 대선 준비를 위해 당 대표직을 조기 사퇴한 뒤에는 후임 송영길 대표에 의해 부동산 특위위원장에 임명됐다. 여기서 김 의원은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을 주도했다.

지난 24일에는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우상호 의원을 누르고 공식 선출됐다. 민주당의 의석수를 고려했을 때, 김 의원이 본회의장의 의사봉을 잡을 것이 확실시된다.

한편 김 의원은 긴 정치 이력을 가진 만큼 숱한 논란을 몰고 다녔다. 대부분 실언에서 비롯된 구설수였다. 원내대표 시절인 2011년 “대통령은 카리스마가 있어야 국정이 안정적으로 간다”며 “카리스마가 있으면 (김대중 전)대통령 아들이 구속됐겠는가. 노 대통령은 퇴임 1년도 안 돼 저런 꼴을 당했고…”라고 발언했다.

이미 작고한 두 전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여론의 질타를 피해갈 수 없었다. 김 의원이 이들의 소속 당 원내대표라는 점, 이들의 국정운영에 동참했었다는 점 등을 들어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들끓었다.


당 대표 아닌 의장인데…
여 “중립성 없어” 반발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문재인은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 노 대통령을 수행할 때도 문 전 실장은 항상 뒤에 숨지 않았느냐”며 “문재인 전 실장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천성이 어디 가겠느냐”며 당시 떠오르던 ‘문재인 대망론’을 부정하는 발언을 남겼다.

이 발언은 그가 2019년 총리 하마평에 올랐을 때 회자되면서 진보층의 적극적 지지를 막는 걸림돌로 돌아왔다. 

김 의원은 제20대 총선 전인 2016년 2월13일, 이천 설봉산에서 조병돈 전 이천시장과 수원시 영통구 태장동 주민 등으로 이뤄진 산악회원 37명을 만난 자리에서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 의원은 불복했지만, 대법원까지 올라간 끝에 형이 확정됐다.

같은 해 3월 언론 인터뷰에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도 받았지만 이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의원은 인터뷰에서 당시 상대 당 후보로 출마를 준비하던 정미경 최고위원이 공군력 저하를 이유로 수원비행장 이전 사업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말실수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실언은 사회적 입지가 비교적 좁은 이들에게도 서슴없이 이어졌다.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12월13일 공개 기자회견 자리에서 동성애·동성결혼의 법제화에 절대 반대한다는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건의를 받고 “민주당은 개신교계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동성애·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발언했다.

당시 그는 민주당 종교특위 위원장이었다.

말실수 반복
갖은 논란도

이는 성소수자 인권을 인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이들 인권을 탄압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되며 각계각층의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통령의 입장과도 정면충돌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성소수자 인권단체 ‘무지개행동’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동성결혼·파트너십은 우리 사회에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가족의 형태”라며 “이들의 사회적 의무와 권리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2017년 9월21일 <제정임의 문답쇼>에 출연해 정치가를 꿈꾸는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는 욕심을 가지는데,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 정치는 생업이 아니다”라며 “이른 나이에 정치를 직업으로 하면 안 된다. 특히 젊은 나이에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뛰어드는 것은 가능하면 말리고 싶다”고 발언해 입길에 올랐다.

그는 이 발언으로 “청년 정치인 전체를 매도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청년들이 단지 돈과 명예·출세를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이유에서다.

2018년 당 대표 경선 때는 “당 대표가 되면 이재명을 출당시키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민주당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은 당시 ‘혜경궁 김씨 사건’과 ‘김부선 스캔들’로 여론의 거센 반발에 시달리고 있었다.

반면 같은 해 ‘드루킹 사건’ 피의자로 재판에 넘겨진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지지층을 늘리려 선거운동한 것”이라고 감쌌다.

두 사례 모두 당 지지세에 악영향을 미쳤음에도 상반된 반응이었다. ‘편 가르기’ ‘내부 총질’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각종 실언으로 수차례 도마 올라
강성 발언으로 중립성 의심 군불

지난달에는 검수완박 ‘꼼수’ 통과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 의원은 지난 4월 느닷없이 법제사법위원회에 배치됐다. ‘최다선·최고령 위원이 위원장을 맡는다’는 관례에 따른 조치였다. 당초 법사위 소속 최고령 의원은 69세인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었지만, 김 의원이 그 자리를 꿰찼다. 그러고는 최대 90일까지 숙의할 수 있는 법안을 단 20분 만에 통과시켰다.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고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야당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에 따라 2012년 통과됐다. 김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시절이었다. 자신이 주도해 만든 법을 스스로 깨부순 셈이다.

김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로 확정되자, 국민의힘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예상된 수순이었다. 특히 여당 측은 김 의원의 국회의장 후보 선출 소감을 문제삼았다. 그는 소감을 발표하면서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 당적을 졸업하는 날까지 선당후사의 자세로 민주당 동지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으로서 엄격한 중립성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김 의원의 소감은 의장으로서의 중립성을 해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가 됐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양금희 중앙선대위원회 대변인은 “민주당의 당 대표가 아닌 국회의장 후보를 선출하는 자리에서 후반기 국회 역시 일방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선전포고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국회의장의 자리는 민주당의 피를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피로서 이뤄낸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자리”라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김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의장 출마 선언 당시에도 중립성을 의심받는 메시지를 낸 바 있다. 이날 그는 “불통과 독선의 ‘검찰공화국’으로 폭주하는 윤석열정부의 ‘불도저’식 국정운영을 막아내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민주당 당적을 강조한 발언이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여당의 반발을 부를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당 내부서도 
우려 목소리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막상 취임하면 본연의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당내의 대표적인 중도 성향 인사인 만큼, 능수능란하게 여야 중재를 이끌 수 있다는 얘기다. 풍부한 의정 경험은 덤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구시대적 면모는 접어두고,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만이 발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 역시 국회의장의 입에서 차별과 갈등 대신, 화합과 관록의 언어가 나오길 고대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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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