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속으로' 달갑지 않은 일진그룹 속사정

신흥 재벌의 남모를 고민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일진그룹이 공식적인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달라진 위상을 체감할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대기업으로 인정받는 대가로,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자산 규모를 축소시켜 대기업집단에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이 뒤따르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일부로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76개 그룹을 ‘공시대상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47개 그룹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통상 그룹별 자산총액 합계액은 재계 순위를 정하는 기준점이 된다.

어느새
키운 몸집

공정위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 매년 5월 기업집단에 속하는 국내 회사들의 직전 사업연도 자산총액 합계액이 5조원 이상이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기업집단 현황 등 공시 의무가 뒤따른다.

대기업집단 명단에서 사라지거나, 신규 지정된 그룹은 관심의 대상이다.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된 곳은 ▲IMM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금융 ▲대우건설 등 3개다.

IMM인베스트먼트와 한국투자금융의 대기업집단 제외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사모펀드(PEF) 전업 집단, 금융·보험사와 PEF 관련 회사만으로 구성된 그룹을 대기업집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조치다.


대우건설은 중흥건설에 흡수되면서 명단에서 사라졌다.

반면 신규 지정된 기업은 8곳이다. 이 항목에는 ▲두나무(44위) ▲크래프톤(59위) ▲보성(70위) ▲KG(71위) ▲일진(73위) ▲OK금융그룹(74위) ▲신영(75위) ▲농심(76위) 등이 포함됐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이 바로 ‘일진그룹’이다. 그간 대기업집단 지정 가능성에 그리 언급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1968년 설립된 일진그룹은 전력 인프라·IT·소재·부품·건축·조명·의료 등을 영위하는 기업집단이다. 창업주인 허진규 회장이 서울 노량진 실개천 집 마당에 세운 알루미늄 주물공장 ‘일진금속공업’이 그룹의 모태다.

일진그룹의 대기업 지정은 현금성 자산 증가·회사 신설 등이 작용한 결과다. 공정위에 따르면 일진그룹 자산총액은 5조2710억원이고, 부채비율은 38.8%에 그친다. 부채비율만 놓고 보면 내실이 탄탄한 편이다. 

계열사는 38곳을 두고 있다. 주요 계열사는 ▲일진전기 ▲일진머티리얼즈 ▲일진다이아몬드 ▲일진디스플레이 ▲일진제강 ▲일진하이솔루스 ▲일진에스앤티 등이다. 이들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 소재 제조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가 핵심 캐시카우, 일진에스앤티는 미래먹거리를 책임지는 계열사로 부각되고 있다.

대다수 계열사는 일진홀딩스 휘하에 놓여 있다. 일진홀딩스는 전력기기 제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지주회사다. 일진그룹은 2008년 일진전기와 일진다이아몬드 투자 부문을 합쳐 지주회사인 일진홀딩스를 출범시킨 바 있다.

강화된 위상…5조 넘긴 몸집
눈치 볼 일 많아진 찐 현실


허 회장 일가는 일진홀딩스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그룹 전체를 통솔한다. 다만 오너 일가 구성원이 직접 보유한 일진홀딩스 지분율은 30%를 겨우 넘기는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기준 일진홀딩스 최대주주는 지분 29.1%를 확보한 허 회장의 장남인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이다. 허 회장의 부인 김향식씨가 0.8%, 장녀 허세경씨와 차녀 허승은씨는 0.3%씩 보유 중이다.

대신 허 부회장의 개인회사가 부족한 지배력을 보충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일신홀딩스 2대주주는 지분 24.6%를 보유한 일신파트너스다. 허 부회장이 일진파트너스 지분 전량을 보유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허 부회장을 축으로 하는 승계 작업이 완료됐음을 알 수 있다.

일신파트너스가 일신홀딩스의 2대주주로 등극한 건 허 회장 덕분이었다. 허 회장은 2013년 11월 본인 소유의 일진홀딩스 지분 15.3%(753만5897주)를 일진파트너스에 넘겼다. 그 결과 2013년 3분기 기준 9.4%(462만2432주)에 불과했던 일진파트너스의 일진홀딩스 지분율은 순식간에 24.6%로 높아졌다.

그러나 모든 계열사가 허 부회장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는 건 아니다. 특히 핵심 계열사로 꼽히는 일진머티리얼즈와 일진디스플레이의 경우 허 부회장의 동생인 허재명 사장의 입김이 작용하는 곳이다.

허 사장은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2011년 상장된 일진머티리얼즈는 IT 제품과 2차전지용 일렉포일은 물론 2차전지의 음극활물질 등을 양산하면서 급성장했다.

일진디스플레이의 경우 허 회장이 지분 25.1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하지만 2016년 일진머티리얼즈가 일진디스플레이 지분을 매입,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허 사장의 영향력이 커졌다. 허 사장 측이 보유한 지분의 합산은 15%를 초과한다.

이런 이유로 재계에서는 지주사 밖에 있는 일진머티리얼즈와 일진디스플레이 등을 중심으로 향후 계열분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점치고 있다. 장남의 경영권 승계가 확실해지면, 허 회장의 나머지 자식은 계열사를 떼어내 독립경영을 택할 거란 분석이다. 

승계 끝내고
남은 수순은?

계열분리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각종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열분리를 통해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고 이를 통해 대기업에 대한 제한 규정을 피하는 게 현 체제를 고수하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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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가 스스로 입국한 지 이틀 만에 구속됐다. 도주의 우려가 크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경찰은 약 2년간 황하나의 해외 이동 경로를 추적해 왔다. 지난해에는 은거하던 장소를 특정했다. 일부러 검거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유다. 정보기관 안팎에서는 그간 황하나가 경찰에 마약 관련 정보를 제공해 왔다고 보고 있다. 황하나는 지난해 초 돌연 태국으로 출국했다가 육로를 통해 캄보디아로 밀입국했다. 경찰은 공식적인 입국 기록이 없었기에 국내로 데려오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황하나가 어떤 범죄에 연루됐는지 행적만 추적할 수 있었다. 은신처 알고도… 경기 과천경찰서가 황하나를 추적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23년부터다. 같은 해 황하나가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지인 2명과 필로폰을 매수해 투약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과천경찰서는 그의 해외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압박감을 느낀 황하나는 2023년 12월 갑작스레 태국으로 출국했다. 황하나는 당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인터폴 청색수배 대상이 된 황하나는 육로를 통해 캄보디아로 밀입국했다. <일요시사> 취재와 정보기관이 파악한 내용을 종합하면, 황하나는 망고·태자 단지 배트남계 보이스피싱 조직 간부 또는 자금 세탁범들과 어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캄보디아 카르텔에 20~30대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해 성접대를 강요한 원정 성매매 알선 의혹을 받는다. 지난 24일 오전 2시 황하나는 캄보디아 프놈펜 태초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대한항공 항공기에 탑승했다. 경찰은 캄보디아로 건너가 현지 영사와 협의를 거쳐 항공기 내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5시간 후 과천경찰서 수사관들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한 황하나를 압송했다. 황하나는 “해외로 수차례 한국 여성들을 불러들인 이유가 무엇이냐?” “마약 유통과 투약 혐의를 인정하느냐?” “자진해서 입국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일요시사>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황하나의 성매매 알선 의혹을 들여다보지 않던 과천경찰서는 갑자기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본래 황하나의 성매매 알선 의혹은 다른 청에서 내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과천경찰서는 황하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관련 의혹을 캐물을 방침이다. 태국·캄보디아 전전…갑자기 자진 입국 밀입국 이후 1년 넘게 고급 호텔서 생활 황하나는 이달 초 경찰 측에 자진 입국 의사를 밝혔다. 2년 가까이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 갑자기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출산한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입국했다는 게 황하나의 입장이다. 그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캄보디아에서 출산한 아이를 제대로 책임지고 싶어 스스로 귀국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마약 투약 혐의도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이 없고 지인에게 투약해준 적도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수원지법 안양지원 서효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황하나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며 수사를 피해 온 점과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보기관은 황하나가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입국했다는 주장에 대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캄보디아에 밀입국한 정황이 있고 1년 넘게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갈 정도로 자본적 여유가 충분했다는 게 근거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최소한 아이를 키우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생활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더 나은 환경일 순 있겠지만, 황하나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현재 아이의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거나 캄보디아에서 끼니를 굶을 정도로 생활력이 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하나의 자진 입국이 과천경찰서와의 사전 조율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황하나가 이달 초 과천경찰서 측에 변호사를 통해 자진 입국 의견을 전달하긴 했으나 이전부터 그가 수사기관의 ‘야당’ 역할을 해왔다는 게 골자다. 정보기관 “아이 때문에? 신빙성 부족” 마약 정보 제공 ‘플리바기닝’ 노리나 실제 황하나는 경찰 측과 직접 연락하거나 측근을 통해 특정 인물들에 대해 ‘마약을 투약했다’ ‘한국으로 유통하는 것 같다’는 등의 정보를 전달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곧 황하나에 대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플리바기닝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공범에 대해 증언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구형량을 낮춰주거나 불기소 처분하는 것을 일컫는다.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도 수사 과정에서 협상의 일종인 ‘플리바기닝’을 피의자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이미 검거한 마약사범을 통해 상위 공급책을 잡으려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은 지난 10년간 플리바기닝 제도화를 추진했지만,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막혀 추진하지 못했다. 추적이 어렵고, 증거 확보가 어려운 범죄가 늘고 있어 플리바기닝 공식 제도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플리바기닝은 수사기관의 오랜 관행이다. 마약범을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허위 진술이 내재돼있을 가능성이 있어 간혹 마약범에게 억울한 혐의가 추가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황하나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캄보디아 당국에 황하나의 위치를 파악했으니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도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이유 경찰 관계자는 “황하나가 밀입국했기 때문에 캄보디아 입국 기록이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캄보디아에 있으니 잡아달라고 할 수 없었고 거주지를 특정한 이후 협조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며 “캄보디아 당국이 한국 경찰에 비협조하는 일이 빈번한 건 사실이지 않나”고 반문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황하나 측과 연락했던 건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설득의 과정이었다”며 “일부 마약 관련 정보를 들은 경찰도 있겠지만 황하나를 비호해 온 것처럼 보인다는 건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