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영국 ‘골프 박물관’을 가다

인류가 골프를 시작한 이래 600여년이 흘렀지만 다행스럽게도 수백년 전의 여러 유물이 현존해 있다. 골프 관련 골동품을 보려면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이 ‘브리티시골프뮤지엄’이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시 올드코스 1번 홀에 인접한 영국 골프 박물관, 2층 건물로 조성된 이곳 1층에는 기념품점과 박물관이, 2층에는 카페겸 식당이 들어서 있다. 박물관의 입구와 통로, 천정 높이가 그다지 넓고 높지 않아 답답한 기분이 들지만 그 안에 진열돼 있는 골프 골동품들은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일목요연

오래전 조우하기로 했던 박물관장인 ‘안젤라 하우’와 필자는 144회 디 오픈이 치러지는 2015년에야 비로소 이곳 박물관 입구에서 만났다. 필자가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하기로 했던지 어언 5년이 흘렀던가. “약속을 한 뒤로 너무 늦게 찾아 미안하다”는 필자의 사과에 손사래를 치면서 안젤라 관장은 필자를 곧바로 박물관으로 안내했다.

골퍼라면 한 번쯤은 와서 봐야 할 순수한 의무이자 명제라고 생각하고 있던 곳에 첫발을 내디뎠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두컴컴한 조명 속에서 벽에 그려진 수백년 전 골프 치는 올드코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책에서만 접하던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300년 전 골프채 8자루도 진열장 안에서 고풍스러운 빛을 발하고 있다. 사진으로만 봤던 최초의 골프 트로피로 영 톰 모리스가 영구 소장했던 모로코산 붉은 가죽벨트 또한 주인의 사진과 함께 가지런히 진열장 안에 보관돼있다.


옆에는 올드코스 내에서 공방을 차려놓고 골프채를 만들던 톰 모리스의 공방 사진도 함께 진열돼있다.

진열대 꽉 채운 트로피
영국 위대한 3인방 흔적

톰 모리스보다 앞선 그의 스승이자 골프의 신으로 불렸던 알렌 로버트슨의 실제 크기 밀랍 인형도 인상적이다. 그 방 안에서 알렌이 페더리공을 만드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새의 깃털까지도 그대로 책상에 널어놓았다.

가죽볼을 만드는 역사의 마지막 장인이었던 그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21세기의 우리와 함께하는 느낌일 정도로 생생하다.

로얄 퍼스골프동우회의 1825년 실버컵이 말 그대로 은색으로 하얗게 자태를 빛내는가 하면 셀 수도 없는 많은 영국의 트로피가 빛을 발하고 있다. 1754년 일명 22인의 세인트앤드루스 젠틀맨들이 개최한 최초의 골프대회 트로피인 ‘실버클럽’도 비록 복사본이긴 하지만 위용을 보이고 있다.

옆에는 영국의 위대한 3인방이 사용했던 골프채, 공, 총 16번의 디 오픈 우승에 대한 기록이 여러 사진과 함께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맞은편에는 사람 실물 크기의 밀랍 인형 여러 개가 공방 속에서 클럽을 제조하는 모습도 재현해 놓아 수백년 전 히코리 클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만들어놓았다.

박물관에는 유난히 많은 트로피가 전시돼 있다. 1983년, 1985년, 1987년, 1989년 등 2년마다 개최되는 라이더컵의 우승 트로피를 모두 전시하면서 유럽인들의 자랑스러움을 대변해주고 있다. 트로피 중에서 가장 압권은 디 오픈 트로피 원본인 클라렛 저그로, 박물관 내의 어떤 트로피보다 더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고 있다.


3단 받침대에는 제1회 대회부터의 우승자 이름이 적혀 있다. 맨 밑단에서부터 순서대로 트로피를 감싸면서 스코어까지 함께 맨 윗부분의 3단에까지 빼곡히 새겨져 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이 크라렛 저그 이상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영국 아마추어 대회의 트로피 역시 이 박물관의 최고 보물 중 하나로 꼽힌다.

골프 역사 총망라 성지
300년 전 골프채 전시

트로피 위에 동상처럼 고고하게 빚어놓은 영국 골프의 아버지 올드 톰 모리스는 한 뼘 정도의 작은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내뿜는 카리스마로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오래전 영국에서만 우승자들에게 수여했던 금으로 된 골프 메달들 역시 황금빛을 반짝이며 가지런히 진열돼있다.

이 가운데 로얄 메달에는 1837년 국왕 윌리엄 4세가 ‘로얄 앤드 앤션’ 골프클럽에 이 메달을 수여한다고 부연돼 있다. 좁고 어두운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하나뿐인 골프 유물들을 전시해 골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유적지일 수밖에 없다.

스코틀랜드의 골프 유적은 박물관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올드코스에서 해안길을 따라 도보로 20여 분 정도 떨어진 곳에 다다르면 세인트앤드루스 공동묘지가 나온다. 도시 한복판에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지만, 올드코스 방문객 중 많은 사람이 이곳을 방문한다.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골퍼들의 무덤이 이곳에 있어서 이 공동묘지는 세인트앤드루스의 골프 유적지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700년도 더 된 13세기경 세인트앤드루스 카톨릭 사원이었던 이곳은 당시로서는 도시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정면의 높은 돌담 한쪽 벽만 남아 있다.

그들 방문객들이 묘지 입구에서 반대편 쪽의 벽면에 위치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 묻힌 영령들의 곁을 지나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중앙에 위치한 화장터를 바라보며 기꺼이 풀밭을 따라 걷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벽면에 도달하면 이내 수백년된 돌담 안에 양각된 하얀색의 동상이 나타난다. 24세에 요절한 영 톰 모리스의 모습이다. 아래쪽 바닥에는 그의 아버지이며 영국 골프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올드 톰 모리스의 무덤도 나란히 있다.

이외에도 그 옆쪽에는 모리스 가족들의 묘지가 나란히 조성돼있다. 세인트앤드루스 사람들이 두고두고 모리스 집안을 존경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공동묘지가 더 경외스러운 것은 모리스 부자 이외에 또다른 골프의 영령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영국에서 19세기 골프의 신으로 불렸던 알렌 로버트슨이 묻혀 있다. 입구에서 모리스 가족의 영전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주변의 비석보다는 좀 크다 싶을 정도로만 위치해 있기에, 방문객들은 이를 놓치기 일쑤다.

분명 비석의 앞쪽에는 알렌의 얼굴 동상과 뒷면에는 골프채를 ‘X’자로 새겨 넣었음에도 말이다. 골프의 역사를 잘 모르고 모리스 정도만 들었던 여행객들은 하얀 벽면이 눈에 들어오는 관계로 정작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가장 중요한 알렌의 무덤은 놓치는 듯하다.

눈부신 광채


단지 모리스보다 앞선 세대의 골퍼로 세상을 떠나서 당시 사람들이 무덤을 왜소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비석에 새겨져 있는 ‘많은 존경을 받던 스코틀랜드의 특별한 챔피언이 잠들다’라는 문구는 분명 사람들이 그를 골프의 신으로 존경함을 대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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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