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단국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3.07 14:59:07
  • 호수 13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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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한 듯’ 박사가 석사 꺼 베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대학원생에게 논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대학원 과정 자체가 논문을 향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단국대학교에서 논문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논문은 해외 학술지에도 게재되기도 했다. 

논문 표절은 학자들에게 치명적인 오명이다. 과거 고위공직자와 사회 유명 인사들의 잇따른 논문 표절이 사회적 눈총을 받기도 했다. 

국제 학술지
보란듯 게재

지난해 5월 단국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던 A씨의 논문 ‘폴리에틸렌이민 변형 그래핀 산화물과 심바스타틴(Sim)이 뮤린 골수유래 중간엽 줄기세포의 골생성 분화에 미치는 영향(Enhanced Effect of Polyethyleneimine-Modified Graphene Oxide and Simvastatin on Osteogenic Differentiation of Murine Bone Marrow-Derived Mesenchymal Stem Cells)’이 게재됐다. 

A씨와 지도교수 B씨가 함께 연구하고 작성한 이 논문은 4개월 뒤 국제 전문학술지 <바이오메디신(Biomedicines) >저널에 게재되기도 했다. <바이오메디신>은 의학과 약리학 연구 분야 국제 학술지다.

하지만 이 논문이 3년 전 발표한 석사 논문을 베꼈다는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는 “A씨의 논문이 2018년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C씨 졸업 논문과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했다. 국제 학술지에 실린 눈문이 석사 졸업 논문과 주제, 실험 결과 등 똑같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B씨는 실험을 열심히 한 C씨의 공을 A씨에게 몰아준 것으로 보인다. A씨의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면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A씨가 직접 실험한 게 아닌 3년 전 C씨가 한 실험을 그대로 베꼈다”고 말했다. 

2018년 C씨의 석사학위 논문 ‘조직 재생을 위한 탄소 기반 그래핀 약물 전달체 평가 및 연구’를 살펴봤다. 논문 도입부에 따르면 그래핀 옥사이드(GO)는 음전하를 띄고 양전하의 약물만 전달해줄 수 있어 한계가 있다. 많은 양의 양전하를 가지고 있는 폴리에틸렌이민(PEI)을 활용해 GO를 양전하로 변형시켜 한계점을 돌파했다. 

GO-PEI를 음전하인 Sim 농도를 통해 샘플을 정하고 골 분화를 확인했다. 실험 결과 0.25㎛, 0.5 ㎛에서 가장 높은 골분화를 나타냈다. GO와 PEI는 골 재생 약물 전달체로 뼈가 재생되는 데 있어 효과적이라는 결론도 나왔다.

주제, 실험 결과 등 유사한 수준
윤리위원회 표절·부정행위 인정

A씨의 논문 요약본을 살펴보면 ‘이번 연구에서 골 재생의 새로운 치료제 후보인 Sim과 GO를 결합해 골재생에 효과적인 복합물질을 제조했다’며 ‘Sim과 안정적이고 균질한 복합체를 만들기 위해 PEI로 GO를 변형하고 독성 테스트를 사용해 변형 효과를 분석했다. 효과적인 두 물질인 GO와 Sim의 조합에 의해 기대되는 골형성 분화 가능성을 중간엽 줄기세포에서도 평가했다’고 돼있다. 

두 개의 논문은 유사성을 띤다. 음전하를 띄고 있는 GO에다가 PEI와 Sim을 결합시킨 후 골 재생 약물 전달체로 활용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실험 결과 데이터가 동일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FT-IR 실험 데이터 표는 거의 유사하다. ARS 데이터는 그래프의 색깔과 재료의 표기명만 달랐을 뿐 오차 막대는 똑같다. RUNX2 데이터에서도 그래프 모두 동일한 모양이다. OPN 데이터는 그래프 색깔만 다를 뿐 막대그래프가 유사하고 OCN데이터는 똑같은 데이터의 색깔과 날짜만 다를 뿐이었다. 


결국 신고가 접수된 단국대 윤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해당 논문에 대해 ‘연구윤리 규정 제3조 제1항 제3호 표절, 제4호 ’부당한 논문저자의 표시‘에 해당하므로 연구부정행위로 판정했다. B씨가 이의신청까지 했지만 기각 처리됐다. 

유사한 두 논문의 저자는 다른 사람이지만 지도교수는 동일 인물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B씨는 “연구윤리위원회에서 해당 논문은 법적인 저작권 문제는 없지만 윤리상 표절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국문 학위 논문 내용을 국제과학 학술지에 제출할 때 저자를 인용하면 좋겠다는 권장사항이 있다. 권장사항을 지키지 않아 윤리상 표절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사한
데이터

이어 “참고로 2021년 논문의 저자 A씨와 2018년 논문의 저자 C씨는 둘이 원래 친한 사이였다. 2018년 A씨는 C씨의 졸업 논문을 준비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됐다”며 “학생 2명과 지도교수인 나와 셋이 머리를 맞대 같이 연구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C씨가 개인사로  적극적인 참여가 어렵다고 판단해 저자에다가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윤리 규정을 확인한 뒤 저자 자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C씨는 논문 자료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논문 초안도 작성하지 않아 자격이 안 됐다”고 언급했다. 

그는 “과거 C씨 국문 학위논문도 A씨가 절반 이상 참여했고 그 자료를 다시 A씨 논문에 가져온 것이다. C씨 스스로 원해서 이름을 뺀 것인데 표절이라고 하니 매우 당황스럽고 억울하다”고 해명했다. 

B씨 주장대로라면 A씨와 C씨는 상부상조하는 사이이며 C씨는 저자 자격이 되지 않아 이름을 스스로 이름을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 윤리 규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탓에 A씨와 B씨는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이 됐고 C씨는 피해자가 된 셈이다. 

착오로 표절이 됐다고 주장하는 B씨와 달리 상반되는 증언도 나왔다. 평소 B씨가 석사의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고 박사만 특혜를 준다는 주장이다.

다른 학생 D씨는 “문제가 된 논문 저자에 C씨 이름이 없어 문제가 됐다. 종종 국내 논문을 인용해 논문을 작성하는 사례가 있다. 그렇게 되면 원저자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 해당 교수(B씨)는 연구에 기여한 석사의 이름을 잘 넣어주지 않고 박사만 넣어주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사 위해
석사 참아라?

이어 “논문 저자가 1명과 2명은 확연히 다르다. 1명일 경우에는 공을 더 인정받고 저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도 지금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논문 자료를 준비하는 데 기여한 석사 입장에서도 억울하지만 지도교수에게 따지기도 힘든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학생도 “대학원 분위기상 교수들의 석·박사 차별은 학생들이 느낄 수 있다. 석사는 다른 학교로 떠날 사람들이지만 박사는 최소 5년은 같이 있는 데다가 박사로 졸업을 하게 되면 교수들에게 실적이 되고 영예가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논문은 이달 중으로 논문 철회 요청이 될 예정이다. 해외 학회지에 실려 논문 철회 요청을 통해 논문이 삭제되기 때문이다. 이후 해당 교수의 논문 점수도 정정된다. 

단국대학교 홍보팀 관계자는 “문제가 된 논문은 저자 표시 위반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수의 징계 절차는 답보 상태다. 해당 교수는 논문 표절 건 말고 대학원생 인건비 유용건이 걸려있는 상태다”라며 “현재 경찰이 재수사를 하고 있어 교무처에서는 논문 표절 건만 가지고 징계위원회를 열지, 인건비 유용건 결과까지 기다린 뒤 같이 교원 인사위원회(인사위)를 열지 심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인사위서 특정인의 징계 수위를 정할 때 여러 항목이 있어도 단건으로 징계위원회를 열면 징계 수위는 낮아진다. 반면 여러 항목을 같이 하면 수위가 높아지는 등 중징계로 처벌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각 대학 인사위는 징계 수위를 고려해 처리한다. 

해당 논문 철회 요청 예정
인건비 횡령까지 수사 중

B씨는 논문 표절 말고도 인건비 횡령 의혹을 받고 있다. 연구실에서 일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인건비의 절반 이상을 반납하게 한 뒤 B씨가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연구실 학생들이 받는 1인 인건비에서 40만원을 제외한 채 나머지 돈을 연구실 장에게 돈을 반납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건비 유용 의혹을 제기한 학생은 “지난해 대학교에다가 인건비 횡령 신고를 했지만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이유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교수가 자진신고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정상 참작이 되지 않을까 해서 재신고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학교 측에서 보상금 2000만원을 제시하며 좋게 끝내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상금을 받을 생각도 없어 무리한 금액인 1억원을 제시했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지금 다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횡령한 인건비 관련해 검찰에서 조사가 진행돼 11월 무혐의가 나왔다. 하지만 검찰에서 재수사를 요청해 경찰이 수사 중이다.

또 다른 학생은 “학생 인건비를 횡령했던 것은 사실이다. 학생들이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며 “예를 들어 학생 1인이 받아야 할 돈이 180만원이면 온전히 사용해야 하는데, 40만원만 들어왔고 나머지 돈은 연구실 대표 학생에게 돌려줘야 했다. 학생들이 모은 인건비를 교수(B씨)가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의혹에 대해 B씨는 “대학원에는 인건비 공동모금이라고 있다. 일부 돈을 모아 등록금으로 사용한다거나 학생들끼리 야근할 때 야식을 시켜먹는 등의 용도로 알고 있다”며 “그 돈이 얼만큼 모인지도, 어떻게 사용된지도 모른다. 학생들끼리 돈을 모았는데도 규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생들이 돈을 사용했지만(내가) 연구책임자라는 이유로 책임을 물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공동모금
진실공방

이어 “내가 돈을 사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에 지난해 자진신고를 했다. 나는 떳떳했기 때문이다. 이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다시 재조사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해 돈을 모았던 것인데 내가 잘못된 사람이 비춰지는 게 너무 당황스럽고 억울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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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