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김병준 불편한 동행 막전막후

한 집에 두 주인? 등지고 딴살림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악연의 두 인물이 결국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만났다. 현재는 김병준 국민의힘 상임위원장이 한 발 물러났지만, 여전히 두 인물 사이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선대위 수장들의 갈등이 ‘윤석열 리스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 합류가 쉽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의 존재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대선후보 사이에서도 연일 갈등이 촉발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말만 원팀?
독자 행보

현재는 이 대표와 윤 후보가 울산에서 긴급 회동을 가진 이후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됐다. 결국 합류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던 김 총괄위원장마저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완성형 선대위가 출항을 시작했다. 

두 인물은 이미 과거에도 갈등을 겪은 바 있다. 김 상임위원장은 과거 김 총괄위원장이 동화은행 비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것을 언급하면서 김 총괄위원장을 자극했다. 

김 총괄위원장 역시 김 상임위원장을 두고 “하류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해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갔다. 이 대표도 두 인물 간 갈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풀어야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에서도 두 위원장을 두고 “악연 중의 악연”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들의 갈등은 선대위 구성 과정부터 여실히 드러났는데, 김 총괄위원장은 선대위 합류 조건으로 ‘전권’을 요구했다. 

대선 본선에서 중도층과 국민의힘 지지에 미약한 층을 공략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내다봐서다. 이에 김 총괄위원장은 중도층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인사의 배제를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김 총괄위원장의 합류는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김 총괄위원장은 김 상임위원장이 선대위를 지휘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윤 후보는 오히려 김 총괄위원장을 압박하고 나섰다. 

윤 후보가 김 상임위원장의 선대위 합류를 원하는 이유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좋은 관계를 이어와서다. 정책적인 부분에서도 김 상임위원장의 의견에 대해 대부분 높은 평가를 내렸다. 

이를 두고 김 총괄위원장이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윤 후보는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김 총괄위원장 역시 선대위 합류를 잠정 보류하겠다고 밝히면서 적지 않은 내홍을 겪었다. 

윤 후보는 김 총괄위원장의 합류 가능성이 낮아지자 김 상임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이는 등 맞불을 놨다.

국힘 선대위 투톱 날선 신경전
과거부터 이어져온 앙숙 관계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선대위 구성에 있어 혼란을 낳는 결과로 돌아왔다. 심지어 윤 후보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갈등 당사자인 김 상임위원장 사퇴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 대표와 윤 후보 간 갈등이 폭발하면서 선대위의 공식적인 출범 시기도 점차 늦어졌다. 

당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윤 후보가 직접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윤 후보는 직접 나서 이 대표와의 갈등을 봉합한 데 이어, 김 총괄위원장에게 도와달라고 긴급 요청했고 지난 4일 결국 김 총괄위원장이 극적으로 합류했다. 

당사자 간 갈등이 봉합되자 이번에는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김 총괄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장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매끄럽지 않았던 게 결국 갈등의 씨앗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김 총괄위원장이 김 상임위원장의 합류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총괄위원장은 당장 자신의 세를 넓혀가는 모양새다. 선대위 합류 직후 그가 선대위에 합류시킨 대표적 인물은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태근 전 국민의힘 의원이다. 이들은 모두 친 김종인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금 전 의원은 선대위에서 전략기획실장을 맡고, 정 전 의원은 정무대응실장직을 맡았다. 또 선대위 조직 구성상 김 총괄위원장 휘하에 상임선대위원장, 공동선대위원장이 위치해 있다. 상임이라는 비율을 따져보면 공동선대위원장은 네임밸류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노선 차이

사실상 실제 선거는 각 총괄상황본부의 역할이 큰 편이다. 현재 총괄상황본부장직에는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맡는데, 임 전 실장도 김종인계로 분류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이들 인사들의 임명을 통해 사실상 선대위를 김종인계 인물들로 채운 셈이다. 이런 탓에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 패싱에 이어 ‘김병준 패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만일 임 총괄본부장이 원톱인 김 총괄위원장에게만 지휘를 받게 될 경우 실제로 패싱 논란이 생길 여지는 충분하다. 그동안 김 총괄위원장이 공동상임위원장직을 반대해온 만큼 김 상임위원장의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도 정책 등에 있어 이념 차이를 드러내는 등 두 인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계속되고 있다. 김 총괄위원장은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필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반면 김 상임위원장은 선대위 출범식에서도 국가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으며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고 자유주의 체제의 확장을 제시했다. 사실상 선대위의 원톱과 투톱의 관점부터 간극이 벌어져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 총괄위원장은 “그 사람(김 상임위원장)이 이야기하는 것일 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불쾌한 심정을 표출했다. 이어 “현 시점에선 자유주의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국민을 보호하는 데 무책임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자유주의 경제학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김 상임위원장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일각에선 그동안 내재돼있던 갈등이 선대위 출범과 동시에 물밀듯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터지는 건
시간 문제?

심지어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이 선대위 출범식에 불참하면서 논란은 더욱 격화됐다. 이런 탓에 정치권에서는 김 총괄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장 등이 구성한 인사들의 화학적 결합이 제대로 이뤄지겠냐는 지적도 잇따른다. 

한 발 물러난 쪽은 김 상임위원장으로 그는 “김 총괄위원장과 갈등은 없다”고 밝혔다. 김 상임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총괄위원장이 저격하면 맞겠다”며 몸을 낮췄다. 김 총괄위원장 역시 갈등설에 대해 “그런 적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과 함께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두 인물의 갈등설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민주당 박찬길 대변인은 “두 사람이 가진 관점의 대립이 격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의힘 윤희석 전 윤석열 대선캠프 공보특보는 갈등설에 대해 “사람과의 갈등이 아니라 방향성에 대한 의견 차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발언은 ‘노선 차이’에 대해서는 인정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선대위의 방향성을 둘러싼 두 위원장의 갈등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추후 선대위를 둘러싼 리스크가 또다시 불거질 수 있는 셈이다. 두 인물의 갈등이 연일 이어질 경우, 당 자체가 양쪽으로 나뉘어 갈라설 수도 있다. 

김 총괄, 세 넓히며 입지 다지기
김 상임, 낮은 자세로 일보 후퇴

다만 두 인물이 갈등설을 부인하고, 갈등의 고리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쉽게 봉합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존재한다. 또 얼마 전 윤 후보와 이 대표 간의 갈등이 터진 것에 비해 아직까지는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방향성으로부터 촉발된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두 인물의 갈등 해결을 위해 윤 후보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서 윤 후보는 이 대표와의 갈등 당시에도 발빠르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리더십 부재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런 와중에 김 총괄위원장의 합류로 윤 후보의 존재감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실제로 이미 지난 8일 김 총괄위원장과 윤 후보의 의견이 서로 부딪혔다.

김 총괄위원장은 “민주당, 정의당을 가리지 않고, 발탁해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 정부를 제시한 셈이다. 앞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통합 정부를 강조해왔는데 정권이 바뀌더라도 소수 여당이 되는 구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후보는 “국민 통합”이라는 입장만 내놨다. 

일각에선 김 총괄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장이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윤 후보마저 갈등에 가세한다면 선대위가 또 다시 내홍의 길로 접을 들수 있는 만큼 사전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의식하듯 윤 후보는 발빠르게 갈등 봉합에 나섰다. 윤 후보는 “가장 필요한 부분은 단합”이라며 “생각이 달라도 정권교체만 생각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조율을 통해 합치된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질기고 질긴 
인연과 악연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전히 우려가 나온다. 갈등이 봉합된지 얼마 되지 않아 내부에서도 갈등설이 수면 위로 떠올라서다.

한 정치 전문가는 “출범하면서부터 메시지 차이가 존재한다”며 “윤 후보가 직접 나서 두 인물의 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며 “김 총괄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장이 방향성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보여야 선대위도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톱의 실수?

국민의힘 선대위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됐다가 7시간 만에 임명이 철회된 함익병 원장을 추천한 인물이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함 원장이 국민의힘 선대위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서민을 대변했기 때문이라는 게 선대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함 원장의 과거 발언이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옹호해 논란을 빚고, 여성 차별적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또 과거 민주당 선대위에서도 해당 인터뷰 발언들이 논란돼 임명이 철회됐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선대위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인선했다는 비판이 연일 쏟아졌다.

이에 대해 현재까지 선대위 핵심인사들의 사과는 없는 상태다.

앞서 김 총괄위원장은 “실수만 하지 않으면 패배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

 

<기사 속 기사> 김종인의 초강수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등판 직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향해 대선을 포기하라며 저격에 나섰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측은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현재 안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사이에서 당락을 가를 수 있는 캐스팅 보터로 불린다.

이 때문에 대선이 다가오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는 안 대표와 단일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서는 단일화 국면에서 윤 후보가 안 대표에게 끌려 다니는 것을 우려한 김 총괄위원장이 이런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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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