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합니다" 전 대구시 부시장 김연창 옥중 인터뷰

“수사와 판결, 잘 짜인 코미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김연창 전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대법원 선고를 앞둔 그는 <일요시사>로 두 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1일과 2일 <일요시사>로 편지가 도착했다. 각각 30장, 14장 분량인 편지는 김연창 전 대구시 경제부시장이 자필로 작성한 것. 김 전 부시장은 재임 기간 중 지인으로부터 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돼 수감 중이다. 편지에서 그는 시종일관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코미디’라 표현하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부시장서
영어의 몸

국정원 출신의 김 전 부시장은 2011~2018년 대구시 부시장으로 재임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재임 기간 중인 2015년 김 전 부시장이 지인 조모씨로부터 받은 1억원과 2016년 조씨가 지불한 김 전 부시장 부부의 동유럽 여행비용 948만원이다.

검찰은 1억948만원이 조씨가 추진하던 사업을 도운 대가로 김 전 부시장이 받은 뇌물이라고 봤다.

지난 2월10일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상윤)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부시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억1000만원, 추징금 1억948만원을 선고했다. 


김 전 부시장은 자신의 동서를 조씨 관련 회사 직원으로 취업시킨 혐의(제3자 뇌물수수),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도 받았다. 당시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그는 선고 직후 법정 구속됐다. 지난 8월 항소심에서도 법원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 전 부시장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조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은 맞지만 업무 대가성은 없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1억원과 여행비용 대납은 망해가는 조씨의 사업을 도운 것에 대한 그의 성의 표시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1심과 항소심에서 돈의 성격이 대가가 아니라 감사의 뜻이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김 전 부시장이 1986년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의 전신) 대구지부에서 근무할 당시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함께 밥도 먹고 가족끼리 여행도 가는 등 절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93년 김 전 부시장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두 사람은 15년 넘게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시기는 2010년, 김 전 부시장이 인천국제도시개발 대표로 재직할 무렵이었다. 조씨가 경북 청송에서 풍력발전사업을 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김 전 부시장이 연락한 게 계기가 됐다. 2009년부터 면봉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조씨는 자금난으로 도산 직전에 몰린 상태였다. 

김 전 부시장은 친구 엄모씨로부터 5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조씨는 김 전 부시장이 조달한 돈으로 청송면봉산풍력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조씨와 엄씨가 49%씩, 김 전 부시장이 2%의 지분을 갖는 등 세 사람은 사업파트너가 됐다.

뇌물 혐의로 5년형 선고
법원 ‘업무 대가성’ 인정


대표이사는 김 전 부시장이 맡았다. 이후 2013년 대림산업으로부터 26억원의 투자를 받는 등 면봉산풍력은 안정 상태에 접어들었다. 

김 전 부시장에 따르면 조씨는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망했다. 언제라도 신세를 갚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또 회사 가치가 60억원 정도로 평가되자 김 전 부시장에게 5억원을 정산해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2014년 김 전 부시장이 서울의 단독주택을 헐고 빌라건물을 신축한다고 했을 때도 조씨는 건축비 전액을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전 부시장이 대구시 부시장으로 임명되면서 조씨의 공언이 실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조씨가 2015년 연료전지 발전사업에 뜻을 보였다. 김 전 부시장이 대구의 미래먹거리 사업의 하나로 에너지사업을 선정해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적극 추진하고 있던 때였다. 연료전지 발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로부터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대구시)의 의견 회신이 필요했다. 

조씨는 대구그린연료전지라는 회사에서 1억5000만원에 발전사업 허가신청 용역을 받았다. 2015년 8월31일 대구그린연료전지는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5년 9월24일 김 전 부시장은 조씨로부터 자신의 동서 서모씨 명의로 만든 예금통장을 건네받았다.

계좌에는 1억원이 들어 있었다. 

김 전 부시장에 따르면 조씨는 통장과 비밀번호를 주면서 “전에 말한 돈이다. 보태 써라”라고 말했다. 김 전 부시장은 이 돈이 앞서 조씨가 말한 “신세를 갚겠다” “건축비를 다 대주겠다”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 여겼다고 전했다.

자신의 직무와 대가관계에 있다는 점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생각은 달랐다. 검찰은 조씨가 발전사업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김 전 부시장이 대구시 부시장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실제 행사했다고 봤다. 발전사업 허가 과정에서 필요한 지방정부 의견에 긍정적으로 답하도록 김 전 부시장이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본 것이다.

도산 직전 회사
투자 유치 회생

이후 조씨가 발전소 사업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유관회의를 개최하는 등 도움을 줬다고 판단했다. 연료전지 발전사업의 성패는 사업부지 확보에서 갈리는데, 조씨가 이에 어려움을 겪자 김 전 부시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달성2차산업단지 내 대상 부지를 사업부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했다는 판단이다.


또 2016년 5월 김 전 부시장 부부가 조씨 부부와 동유럽 여행을 다녀올 당시 조씨가 지불한 여행비용도 연료전지 발전사업과 관계있다고 봤다. 조씨는 당시 김 전 부시장 부부의 여행비용 948만원 등 총 1896만원을 모두 지불했다.

검찰은 이 모든 것이 발전사업 허가를 받고 사업부지를 확보하는 데 김 전 부시장이 ‘힘을 써준’ 대가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돈을 받는 과정에서 동서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점 ▲경북 청송군 의원에게 뇌물을 준 의혹으로 조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1억원을 되돌려줬다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자 다시 받고, 또 문제가 되자 돌려준 점 ▲김 전 부시장의 부인이 여러 은행을 돌아다니며 소액으로 돈을 인출한 점 등이 김 전 부시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결정적인 건 조씨의 증언이었다. 조씨는 검찰 수사와 법정 증언에서 김 전 부시장에 돈을 준 이유로 면봉산 풍력사업과 연료전지 발전사업 두 가지를 모두 언급했다. 1억원과 여행비용 948만원은 풍력사업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김 전 부시장 측의 주장에 배치되는 진술이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조씨는 ‘피고인(김 전 부시장)에게 이 사건 금품을 공여한 것은 청송풍력사업을 할 때부터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대구연료전지 발전사업 허가를 받는 데 도움을 받은 것도 있었는데, 마침 피고인이 서울에 있는 집을 공사한다고 해서 인사치레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돈을 제공했다. 피고인 부부의 여행비를 대납한 것도 그렇고, 청송풍력도 그렇고, 대구 연료전지도 그렇고, 피고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뇌물 수수의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모두 인정할 수 있다. 금품수수 당시 상황과 맡은 직무, 액수 등에 비출 때 피고인은 대구시 경제부시장으로서 공정성, 불가매수성 등을 훼손했다”며 “일체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어 그에 상응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장기간 공무원으로서 성실히 근무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배경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 전 부시장과 변호인단은 검찰 수사 과정, 법원의 판단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차명계좌는
재산등록 때문

김 전 부시장은 편지에서 “조씨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모든 돈은 풍력(사업)에 대한 저의 공로와 고마움(풍력 성공)에 대한 보답이라고 진술했는데, 검찰은 풍력(청송)으로는 내 직무와 관련이 없으니까, 조씨가 대구에서 시도한 연료전지 사업 때문에 준 것으로 엮은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씨의 진술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강요와 회유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수감 중이던 조씨가 면회 온 가족과 친구들에게 “(검찰이)가족을 구속시키겠다고 해서 그렇게 말했다” “가장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는 것.

당시 조씨의 회사에는 그의 가족들이 임원으로 등기돼있었다. 해당 내용이 담긴 녹취록은 법원에 증거로 제출됐다.

법정에서 김 전 부시장 측 변호사가 “연료전지가 없었다면 풍력만으로 돈을 주었겠느냐”는 질문에 조씨가 “네”라고 대답하고 “풍력은 없는데 연료전지만 있었어도 돈을 주었겠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것도 근거로 삼았다.

검찰이 가족을 언급하면서 조씨에게 압박을 가해 자신을 엮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연료전지 발전 허가 프로세스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밀어 붙였다고 설명했다.

김 전 부시장은 “검찰은 연료전지 발전사업 허가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사업자들에게 들어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원자력이나 석탄발전의 경우 사업 허가 과정에서 민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의견이 매우 중요할 수 있으나 연료전지는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에서도 적극 지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반대 의견이 나올 수 없다”며 “실제 20년 동안 김천시 한 곳을 제외하고(연료전지 발전사업 허가에 대한) 지방정부의 반대 의견은 없었다”고 피력했다. 

조씨의 사업부지 확보 과정에서 도움을 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행정 지원’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김 전 부시장은 “검찰은 내가 조씨로부터 돈을 받은 시점에 사업부지 관련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그 당시에 부지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어떻게 알았겠나”라고 항변했다. 

“조씨 진술, 검찰 강압과 회유 때문에…”
“풍력사업 성공에 대한 감사 표시일 뿐”

그는 “조씨의 역할은 발전사업 허가를 위해 대구그린연료전지로부터 용역을 받은 정도일 뿐”이라며 “1억5000만원을 용역비로 받은 사람이 상식적으로 1억원을 뇌물로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조씨가 실제 회사 대표에게 어떤 언질도,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또 뇌물을 줬다 하더라도 자신이 아닌 허가권자인 산자부 쪽에 줘야지 왜 지방정부에 로비를 했겠느냐는 입장이다. 

또 돈을 동서 명의의 계좌로 받은 부분은 “조씨가 공직에 있는 나를 배려해 재산등록 때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해명했다. 김 전 부시장의 부인이 소액으로 여러 차례 돈을 인출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씨가 통장을 건네주는 과정에서 ‘공인인증서’를 주지 않아 ATM으로 인출해 (아내의)통장으로 옮겨 건축비로 사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김 전 부시장은 “만약 이것이 범죄와 관련된 돈이었다면 범죄 은닉이 아니라 내가 범인이라고 확인시켜주는 ‘범죄 확인’ 행위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자신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짜 맞춘 내용을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분노했다.  

특히 김 전 부시장의 변호인은 ‘상고 이유서에서 1억원이 정당한 것이라면 수수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일련의 행동(돈을 송금했다가 재송금하는)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피고인의 일부 의심스러운 행동은 곤경에 처한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결단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임의성 없는 조씨의 진술을 증거로 삼은 점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과한 증명이 없는 조씨의 수사기관 전문진술을 증거로 삼은 점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를 위반한 점 ▲대가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점 ▲행위책임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넘어 증거의 증명력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점 등을 들어 원심판결을 파기해 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다. 

그러면서 재판부에서 판결할 때 풍력발전 사업과 연료전지 사업이 혼재돼있는 경우인데, 각각 분리해 선고한 것이 아니고 한꺼번에 선고한 부분은 채증법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부시장은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단 한 순간, 단 한 번도 스스로 죄가 있다고 받아들인 적이 없다”며 “다 죽어가는 친구를 도와준 것, 사업이 성공했음에도 그 어떠한 대가도 요구할 줄 모르는, 대가는커녕 보유한 법정 지분조차 어떻게 해줄 것이냐고 물어보지도 못하는 바보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거나 가담한다는 것은 내 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래서 당당했는데 ‘뇌물죄’라는 혐의를 받게 된 순간 그 처참함과 비참함은 죽음 그 이상이었다. 나의 무너진 명예와 자존감, 가족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또 나 같은 피해자를 더 만들지 않기 위해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도와 줬을 뿐”
“인정 못 해”

이어 “국가 권력의 범죄 조작 행위는 오히려 법을 어기고 범죄 행위를 하는 일반 범죄보다 더 엄중히 처벌해야 하고 또 제도적으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책을 통해, 각계각층에 호소, 탄원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검찰의 이 같은 행위를 단절시키는 데 끝까지 싸우겠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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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