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내년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문재인정부 임기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부동산 문제가 차기 정부를 결정짓는 선거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대장동 사건이 블랙홀처럼 다른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키워드가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바로 ‘특검’이다.
정당의 존립 목표는 정권 창출로 귀결된다. 이 같은 목표 의식은 대형 선거 때 두드러진다. 특히 대선 때는 사활을 걸고 정권교체와 정권 연장의 기로에서 대결을 펼친다. 하루에도 몇 개씩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에 희비가 엇갈리고, 쏟아지는 의혹에 노심초사한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결과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대선 때마다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부동산
블랙홀
실제 대선 때마다 판을 뒤흔드는 화두가 등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17대 대선에서는 BBK 주가조작 사건이, 현 정부가 탄생한 20대 대선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최대 화두였다. 의혹은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국민의 뇌리에 박힌다. 그리고 선거날, 투표의 순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에서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그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커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터져 나온 대장동 사건은 말 그대로 대선판을 잠식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3주간 진행된 문재인정부 마지막 국감에서조차 최대 화두는 대장동 사건이었다.
대장동 사건은 성남시가 대장동 인근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점화됐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업체들이 ‘성남의뜰’ ‘화천대유’ ‘천화동인’ 등이다. 각각 대장동 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의 자회사다. 당시 성남시장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였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210번지 일원에 5903세대의 공동주택 등을 신축하기 위한 92만㎡(약 28만평)의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과 이에 연계해 구 시가지에 위치한 수정구 신흥동의 구 제1공단 5만6000㎡(약 1만7000평) 부지를 공원화하는 사업이 결합된 1조5000억원 규모의 민관공동 도시개발사업이다.
민관공동개발 방식으로 진행된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성남시는 5503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환수했다. 문제는 민간사업자들이 챙긴 수천억원 수준의 개발이익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사업자들은 출자금의 수천배에 달하는 배당이익을 챙겼다.
천문학적인 돈이 민간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련 업체들에 대한 특혜 의혹이 나왔다.
국민 70% 대장동 사건 특검 찬성
이재명·민주당은 반대 의견 고수
화천대유는 성남의뜰에 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성남의뜰이 지난 3년 동안 전체 주주에게 배당한 금액은 5903억원. 이 중 68%인 4040억원이 화천대유로 흘러들어갔다. 화천대유와 천하동인 1~7호의 개인투자자 7명이 대장동 개발사업에 투자한 돈은 3억5000만원으로, 8개사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7%다.
이들이 전체 배당금의 70%에 가까운 돈을 받은 셈이다. 여기에 화천대유와 천하동인 관련자들의 면면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대장동 사건은 게이트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특히 핵심은 이 지사의 연루 여부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지사가 대장동 사건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이미 대장동 사건을 ‘이재명 게이트’로 명명하고 공세를 벌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과 이 지사는 ‘국민의힘 게이트로’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지사가 이번 국감에 두 차례에 걸쳐 출석했을 때도 대장동 사건이 가장 큰 논란이었다.
이 과정에서 ‘특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장동 사건이 불거진 직후부터 야당을 중심으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여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특검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특검을 불러내는 모양새다. 특별검사제도는 고위공직자의 비리 또는 위법 혐의가 발견됐을 때 그 수사와 기소를 정규 검사가 아닌 독립된 변호사에게 담당하게 하는 제도다. 정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검사를 배제하자는 취지다.
검찰 수사
못 믿는다
수사 자체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때 활발하게 언급된다.
대장동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 요구는 주로 야당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최근 여당 측에서도 특검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기상의 문제일 뿐 대장동 사건은 결국 특검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장동 사건과 특검이 한 덩어리로 묶이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검찰이 대장동 사건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남욱 변호사를 석방하자 엉터리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특검 도입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SNS에서 “남 변호사가 입국 즉시 공항에서 체포된 만큼 구속영장이 바로 청구돼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순리를 검찰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 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일을 일사불란하게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을 보면 ‘그분’이 세긴 센 모양이다. 꼬리 자르기 수사를 반복하는 검찰로는 진실규명이 불가능하다”며 특검 도입에 대해 언급했다. 검찰의 남 변호사 석방을 두고 야권 대선후보들 사이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권 원로로 꼽히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대장동 사건 특검 도입에 대해 “결국은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 전 사무총장은 지난 19일 KBS 라디오에서 “지금부터 바로 특검에 수사를 맡기자고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단은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면서 “이 결과를 지켜보고 난 연후에 결과 발표에 대해서 국민과 야당이 ‘못 믿겠다, 특검하자’고 하면 그때는 거부할 명분이 약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과 이 지사가 특검 도입에 줄곧 반대 입장을 내온 상황에서 친노무현계 여권 원로가 ‘특검 불가피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결과 따라
대선 바뀐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18일, CBS 라디오에서 “지금 검찰, 경찰 수사를 해야 될 단계고,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데 특검해서 대선 내내 검찰이 선거를 하도록 하면 안 되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 지사도 경기도 국감에 출석해 “검경 합동수사본부 등을 만들어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국민 여론은 특검 도입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다. 케이스탯리서치가 <주간조선> 의뢰로 지난 11~12일 전국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는 대장동 사건에 대해 특검·국정조사를 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은 특검이 대장동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1%에 그쳤다. 국민의힘 지지층 중 96%가,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에서도 75%가 특검·국정조사에 찬성했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과반인 54%가 찬성 입장을 내놨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3.1%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일각에서는 특검 도입 이후를 보고 있다. 특검이 대장동 사건을 맡게 되면 여당 대선후보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해진다. 이때 특검이 어떤 결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내년 대선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에겐 면죄부가, 누군가에게 쐐기가 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장동 사건은 유력 대선후보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고, 대선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다는 점 등에서 17대 대선 당시 BBK 주가조작 사건과 비견된다. BBK 주가조작 사건은 1999년 설립된 투자자문회사 BBK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으로, 이 전 대통령이 개입돼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그해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BBK에 거액을 투자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이 불거진 것.
BBK 사건 때는 면죄부
국정 농단 사건은 철퇴
검찰은 BBK 주가조작 사건을 조사한 이후 이 전 대통령을 불기소 처분했다. 이 전 대통령의 사업파트너로 지목된 김경준 전 BBK 대표는 특경법상 횡령,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최종 수사 결과 이 전 대통령을 도곡동 땅과 다스, BBK 실소유자로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은 대선 이틀 전 이 전 대통령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이때 출범한 정호영 특검팀은 이 전 대통령의 취임 사흘 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호영 특검팀은 도곡동 땅이 “이상은씨 것이 맞다”고 결론내렸다. 검찰 조사에서는 도곡동 땅의 소유주가 제3자일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검찰 수사 결과를 완전히 뒤엎은 정호영 특검팀은 이 전 대통령에 완벽한 면죄부를 주기에 이른다. 그리고 13년 후인 지난해 대법원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17년형의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인정했다.
2018년 정호영 특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반대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처벌까지 이어진 사례가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맡은 박영수 특검팀이다. 2016년 11월 박영수 전 특검은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 특검으로 임명됐다. 박영수 특검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당시 수사팀장)을 비롯해 파견검사 20명, 수사관 40명 등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졌다.
이들은 국정 농단 사건을 파헤쳐 수사 대상에 오른 50여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징역 22년, 최순실씨 징역 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징역 2년6개월 등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박영수 전 특검은 가짜 수산업자 사건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데 이어, 대장동 사건 등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남은 5개월
끝까지 간다
대장동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 요구는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 지사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요인으로 대장동 사건이 꼽히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에서도 특검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대장동 사건과 특검, 두 키워드가 5개월 남은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