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당연한 나라' 그리는 최재형의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기성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선거가 거듭될수록 커지고 있다. ‘그 나물의 그 밥’이라는 말이 선거철마다 되풀이된다. 역설적으로 정치 신인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폭발하는 시기도 바로 선거철이다. <일요시사>가 ‘신인 정치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만났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선거 때 두드러진다. 특히 대선 때는 후보의 자질과 비전에 대한 검증이 국민의 주요 관심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17대 대선에서는 ‘경제’가, 바로 지난 대선에서는 ‘도덕성’이 대선판을 관통한 키워드였다.

5개월 남은
20대 대선

변화무쌍한 국민의 선택 기준은 그동안 정치와는 인연이 없던 인물을 대선주자로 만들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대선 출마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고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이 최 전 원장을 정치권으로 불러들였다. 

최 전 원장은 1956년 경남 진해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1986년 사법고시(23회)에 합격한 후 같은 해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법조생활을 시작했다. 대전지방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두 아들을 입양한 가족사와 고등학교 때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친구(강명훈 변호사)를 매일 업어 등·하교 시킨 일화 등의 미담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최 전 원장은 부인 이소연씨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은 뒤 2000년과 2006년에 작은 아들과 큰아들을 입양했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와 감사위원 제청 등을 두고 문재인정부와 대립하면서다. 당시 그는 김오수 검찰총장(당시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하라는 청와대 요구를 두 번이나 거부했다. 

지난 7월15일 최 전 원장은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6월26일 감사원장직 사퇴 후 17일 만이었다. 이날 그는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인 정권교체를 이루는 중심은 역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입당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정권교체 이후에 우리 국민의 삶이 이전보다는 더 나아지는 게 중요하다”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들이 이제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앞으로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고위공직자
야당 대선후보로 탈바꿈

그로부터 3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최 전 원장이 보여준 정치 행보는 독특한 구석이 있다.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강조하고, 불필요한 논란에 말 얹기를 자제한다. 한 번이라도 더 국민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대선 예비후보로선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다. 

‘미담제조기’ ‘선비’ 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최 전 원장의 현재 행보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깨끗하고 진솔한,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후보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다른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한 것. 

최 전 원장의 시도는 뚜렷한 장단점을 보였다. ‘도덕성’이라는 국민이 정치인에 요구하는 만고불변의 덕목을 충족시키는 대신 스킨십에 있어서 약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지지율이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 전 원장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정신없이 달려온 3개월이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정치 현장에 적응해가고 있다. 후회하는 일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지만 제대로 된 정치인이 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음은 최 전 원장과의 일문일답.

-감사원장직을 내려놓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다양한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평생 걷지 않은 길,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정권교체에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았습니다. 

-문재인정부의 고위 관료가 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는 점에서 많은 해석이 나왔습니다.

▲문재인정부는 나라의 근본인 법치를 붕괴시켰고, 헌법정신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었습니다. 이념에 치우친 실험적인 경제정책을 거듭해 벼락거지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고, 비합리적인 방역대책으로 수많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일으켜야 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해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평생 법관
정치 신인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존과 번영의 리더십입니다. 분열돼있는 나라를 치유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기성 정치인과 다르며 현재 대한민국 정치가 겪고 있는 정치적 내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대결과 증오가 아닌 화합과 치유를 통한 공존과 그 공존의 기반 위에 선진화의 길, 번영의 길을 함께 할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후보라고 보시는지요.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할 국민 눈높이에 가장 부합되는 후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제와 이념적 측면에서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심화된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을 통합할 유일한 후보입니다. 통합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고 발전시킬 수 있는 후보이기도 합니다.

막말과 가족 비리 등 구설에 오를 일이 없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후보라고 자신합니다. 도덕성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덕성이 없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인 정치인으로서 다른 대선 후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깨끗하고 진솔하며 과거에 대한 빚이 없는 유일한 후보입니다. 또 표가 떨어질까 봐 선뜻 말하기 어려운,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정치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께서도 곧 저의 정직과 소신, 결단력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문재인정부에서 공직자로 일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을 듯합니다.

▲문재인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강행’ ‘조국 감싸기’ 등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절차적 정당성과 법치를 무시한 채 국민 편가르기에만 급급했습니다. 또 북한이 연일 핵미사일 실험을 하고 있음에도 종전선언만 주창하고, 민간대북지원사업이라는 미명하에 100억원이라는 혈세를 퍼주겠다면서 국가 안보는 뒷전으로 두고 있습니다. 

-문재인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점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윤석열 후보는 작년부터 문재인정부의 탄압에 외롭게 맞서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개인적 문제를 넘어 조국으로 상징되는 위선과 ‘내로남불’을 밝혀낸 수사를 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합니다. 다만 그가 적폐 청산 수사를 주도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상처를 입힌 것도 사실입니다. 무리한 검찰권 행사로 여권의 검찰개혁 드라이브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도덕성 우위
할 말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비교해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평생 법관, 감사원장으로 살아오면서 법과 원칙을 지켰고, 국정 전반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른 어떤 후보보다 법치를 회복하고 국정 여러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지도자, 믿고 따를 수 있는 반듯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제 삶이 그러한 국민의 요구, 희망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쪽 같은 이미지’가 국민 소통에 있어 오히려 친근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해 국민과의 대면 접촉이 어려운 점이 아쉽습니다. 국민과 만나서 환담하는 자체가 즐겁고, 그분들의 애환을 들으면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어떻게 그려 드려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마음은 정말 따뜻한 사람인데, 국민의 목소리에 너무 경청만 하다보니 친근감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 듯해 안타깝습니다.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전투력은 평소에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싸워야 할 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싸워야 할 때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전투는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문재인정부과 싸워서 성과를 낸 후보가 이 중에 누가 있습니까.  

-정책 구상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국민과 대한민국의 발전입니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 혈세를 정치권이 쌈짓돈처럼 사용하지 않고 국민의 이익으로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상속세 폐지를 제안한 것은 문재인정부서 급등한 집값으로 인해 고통 받을 중산층과 최고 60%까지 상속세를 내야 하는 기업인들이 기업을 팔거나 폐업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친근감·전투력 부족 지적에
“곧 진가 드러날 것” 자신감

가덕도 신공항도 표에 눈이 멀어 절차적 정당성 없이 정치적으로 결정된 국책사업이었다고 판단합니다. 국민 혈세가 이렇게 쓰여도 되는 지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치 입문 당시 ‘변화와 공존’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제는 공존을 바탕으로 번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경제와 이념적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도 많이 심화되면서 국민통합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공존’과 ‘번영’은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됐습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기반을 닦고 함께 선진화의 길, 번영의 길로 나가야 합니다. 갈등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돼서 만들고 싶은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요. 

▲불공정과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는 현재 집단적 우울증에 빠져있습니다. 이제는 정직한 것, 공정한 것,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것, 이런 당연한 것이 다시 당연하게 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게 제가 꿈꾸는 대한민국입니다. 

최 전 원장의 등을 지탱하는 건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의 모습이다.

그는 “강성 노조의 횡포에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택배 대리점주의 비극, 자신이 살던 원룸까지 처분하면서 직원들을 살리려 했지만 절망한 마포 맥주집 사장님 등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살려야겠다는 신념이 더욱 강해졌다”고 강조했다. 

정치 경력 3개월의 최 전 원장은 정치인으로서 미래를 향해 계속 비전을 제시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공직자로서 바라보던 정치권에 막상 몸담으니 단 한 마디의 실수에도 야수처럼 달려들고 오직 정쟁만을 일삼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 고통
해소하겠다

당장 사흘 앞으로 다가온 2차 컷오프, 최종 후보 경선, 대선까지 최 전 원장 앞에 놓인 산은 험난하고 거대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TV토론회를 통해 기성 정치인들처럼 싸움으로 일관하지 않고, 오직 최재형만이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비전과 정책을 잘 설명하겠다”며 “국민과 공감을 통해 지지율을 올려가겠다. 4인이 남은 이후부터 최재형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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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