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관심사' <전국노래자랑> 송해 후임 하마평

전설의 자리 누가 물려받을까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일요일 정오가 되면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경쾌한 BGM이 들려왔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에 어김없이 찾아왔던 주말의 풍경이다. KBS1 <전국노래자랑>의 정겨운 멜로디는 노곤한 몸조차도 일깨우는 묘한 자극이 있다. 조부모와 함께 산다면 다른 건 몰라도 일요일 낮 12시 채널은 무조건 KBS1에 고정된다. 이 시대 어른들에겐 놓칠 수 없는 추억이자 라이브 노래방이다. 그 중심에 무려 32년간 무대를 이끈 95세 송해가 있다.

1927년생,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방송인 송해를 KBS1 <전국노래자랑>에서 만나면, 호칭은 나이를 불문하고 오빠다. 여드름이 봉긋봉긋 솟아있는 10대 여중·여고생조차 증조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인 그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다. 가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오빠보다 빈도수가 적다. 

1988년
전설의 서막

누구 앞에서도 강력한 친화력으로 쉽게 마음을 여는 송해의 포용력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가히 ‘국민 오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존재다. 

1955년 ‘창공악극단’으로 데뷔해 올해 방송 경력 68년 차에 접어든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의 인연은 1988년도로 올라간다. 1987년 사고로 아들을 잃고 마음 앓이를 심하게 하던 차에, 그의 아픔을 알고 있던 한 PD가 “전국을 유람하면서 아픔을 치유하자”며 송해를 <전국노래자랑>의 MC로 이끌었다. 

송해는 힘겨운 상황에 놓인 자신을 배려한 PD의 말에 감동하고 제안을 받아들인다. 전설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됐다. 1988년 5월부터 MC를 맡은 송해는 <전국노래자랑> 다섯 번째 MC로 발탁돼 전국의 끼와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한 회당 2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는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인간군상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다양한 개개인의 색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존재가 송해였다. 출연자들은 송해에 기대 자신이 가진 흥과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기본적으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얼굴을 내비쳤다. 한이 서린 트로트는 물론 칼군무를 맞춘 10대도 있었고, ‘쿵따리 샤바라’ ‘잘못된 만남’과 같은 빠른 노래의 랩을 멋지게 구사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때론 감동을 주다 못해 가수로서의 새로운 삶을 도모한 이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연어장인’으로 불리는 가수 이정권이다. 그는 <전국노래자랑>에서 강산에의 ‘거꾸로 올라가는 연어들처럼’을 완벽히 부르며 ‘연어장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이후 JTBC <팬텀싱어3>와 <싱어게인>에 출연하며 가수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무려 32년’ 행복 준 송해의 인생
그의 생각은? “후임 MC는 ○○○”

이외에 노래 실력은 아쉽지만, 누구보다도 재밌는 입담으로 현장을 시트콤처럼 만들어내는 출연자도 있었다. 송해의 기막힌 진행과 출연자의 인생이 녹아든 입담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젊은 세대마저도 흡수하는 코믹한 장면이 적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전국노래자랑>만 검색해도 눈을 사로잡는 명장면이 다수 올라와 있다.

노래는 뒷전이고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각종 특산물을 들고나와 송해의 입에 쑤셔 넣다시피 하는 이도 많았다.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온갖 특산물이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알려졌다. 그중 벌을 온몸에 휘두르고 등장한 출연자는 또 다른 전설로 회자된다.


이러한 다양한 군상과 기분 좋게 호흡을 맞추며 ‘무대 위의 서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송해다. 세대와 이념, 남녀, 지역 간의 갈등이 깊은 한국 사회지만, <전국노래자랑>에서는 동일한 흥을 내비친다. 송해의 포용력이 만들어내는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1994년 5월까지 6년 동안 MC를 맡은 송해는 잠시 김선동 아나운서에게 <전국노래자랑> 터줏대감 자리를 내준다. 하지만 불과 7개월이 지나지 않아, 다시 되찾는다. 후임 MC가 송해만큼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해 시청자들의 불만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송해는 26년 동안 <전국노래자랑>의 안주인으로서 일요일 낮을 책임졌다.

일요일
안주인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전국노래자랑>은 코로나19가 발발하면서 지난해부터 방송을 중단 중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호흡하는 <전국노래자랑>의 공간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송해가 방송에 나왔다.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을 통해서다. 오는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송해 1927>이 국내 영화제에 초청된 자리에서 잠시 시간을 내 근황을 들어본 것이다. 7kg가량 감량했다는 송해는 다소 낯선 이미지였다.

포털사이트에 이름만 올라와도 대중은 ‘혹시나 큰일이 생긴 것 아닐까’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고령인 터라, 살이 빠진 모습조차 생경한 느낌이 든다. 비록 외형은 생소했지만, 타인을 존중하며 인간적이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그는 그대로였다.

이날 화제가 된 부분은 후임 MC를 거론한 대목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KBS 아나운서 출신인 이상벽에게 후임을 넘겨준다고 했지만, 말뿐일 뿐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았던 것 속내가 슬며시 드러냈다.

여전히 건강이 정정해 방송 활동을 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후임 MC가 거론되자 팬들은 재미 삼아 여러 인물을 내놓고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 그의 아름다운 퇴장을 기분 좋게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국노래자랑>이 끼 있는 일반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다 보니 MC는 친화력이 좋으며, 음악적인 끼와 재능이 다분하고 순간적인 센스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결점이 있으면, 프로그램의 맛이 살아나지 않을 수 있다. 워낙 탄탄한 선배가 있었다 보니 ‘독이 든 성배’가 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인지 이미 국내에서 재능이 검증된 톱 MC들이 거론된다. 대표적으로 이수근, 장윤정, 강호동이다. 송해는 2010년 KBS2 <승승장구>에 출연해 이수근을 차기 MC로 거론한 적이 있다. 짜고 칠 수 없는 출연자들의 돌발적인 행동이 잦은 이 프로그램을 재치 있게 넘어갈 수 있는 인물로 이수근을 꼽은 것. 

적합한
인재는?


방송계의 레전드나 다름없는 이수근은 진행은 물론 기본적으로 음악적인 이해가 높은 개그맨이다. KBS2 <개그콘서트>의 여러 코너를 진행하며, 국내 수많은 음악을 섭렵했고, 순발력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당시 이수근은 “송해 선생님을 잇기 위해 이름도 ‘이해’로 미리 지어놨다”고 말해 웃음을 일으킨 적 있다. 아울러 본성이 매우 선하다는 점과 어른들과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가장 많은 호감을 얻고 있다.

트로트의 전설인 장윤정도 <전국노래자랑>과 제법 잘 어울리는 가수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다. 엄청난 행사 활동을 통해 팬들과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것이 훈련된 가수다. 

<전국노래자랑>이 콘서트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콘서트 경험이 많은 장윤정에게는 매우 익숙한 환경일 수 있다. SBS <도전천곡>을 진행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 인지도나 정통성 면에서 가장 적합하다.

<전국노래자랑>과 비슷한 포맷인 SBS <스타킹>을 흥행으로 이끈 강호동도 빠질 수 없다. 흥이 넘치는 <전국노래자랑>에 강호동의 에너지는 필수 조건에 가깝다. 기합 한 번만 넣어도 분위기가 확 바뀌는 그의 에너지는 새로운 <전국노래자랑>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준다.

또 어르신들도 좋아하는 예능인인 데다, 누구를 만나도 쉽게 대화를 끌어내는 친화력 또한 그가 가진 장점이다. 네임 브랜드가 강력한 MC라는 점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진화하는 데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이수근, 장윤정, 강호동…누가 좋을까?
김성주, 김신영, 붐…잘 어울릴 이미지

‘오디션 장인’이라고 불리는 김성주도 <전국노래자랑> 후임 MC에 언급되는 방송인이다. M.net <슈퍼스타K>와 TV조선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MBC <복면가왕>의 전문 MC인 그에게 <전국노래자랑>의 포맷은 매우 친숙하다. 

깔끔한 진행은 물론 돌발상황을 완벽하게 처리한 경험도 있어, 대중이 신뢰하는 MC다. 다만 유머 코드에 있어서는 비교적 화력이 약한 면이 있다. 다양한 출연자의 독특한 행동에 웃음을 끌어내는 진행을 할지는 미지수지만, 그럼에도 매우 유력한 인물이다.

개그우먼 김신영도 <전국노래자랑>과 잘 어울린다. 국내 연예인 중 흥이 넘치는 스타로 이수근에 버금가는 순간 센스를 지니고 있다. 아울러 개인기도 상당하며, 콩트 능력도 탁월하다.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라디오 DJ로서 활약하며, 대화를 이끌어내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오디션 진행 경험이 없음에도, 누구와 만나도 쉽게 다양한 웃음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전국노래자랑>의 후임 MC가 붐이 된다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색감은 훨씬 더 젊어질 가능성이 높다. 트렌드에 민감한 붐이 MC가 된다면, 과거의 추억을 즐기는 어른들조차도 젊은 세대의 감각을 받아들일 수 있다.

TV조선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 학당> 등에 출연하며 나이가 많은 세대에 이미 친숙할 뿐 아니라, 그들을 상대로도 유쾌한 웃음을 만들어낸 바 있다. 여러 사람이 있을 때보다 단독 MC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특히 능력을 발휘하는 붐이야말로 <전국노래자랑>과 가장 알맞은 방송인일 수 있다.

이수근부터 시작해 붐까지,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거론되더라도 <전국노래자랑>의 안주인은 송해다. 아무리 진행이 뛰어나고 감각적인 입담을 구사한다 하더라도 ‘디 오리지널’인 송해의 업적을 뛰어넘기란 쉽지 않을 듯 보인다.

다시 돌아와 
신나는 무대를

코로나 확진자가 일일 2000명을 넘나들고 있어 <전국노래자랑>의 흥겨운 무대를 다시 만날 날을 쉽게 기약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와 신나는 춤사위와 웃음을 들려주길 고대하는 이가 적지 않다. 다시 그의 밝은 미소를 볼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희망한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해 1927>은 어떤 영화?
무대 뒤 국민MC의 진짜 얼굴

송해의 95년 인생에 담긴 희로애락을 그린 영화 <송해 1927>이 오는 11월 개봉을 확정지었다.

<송해 1927>은 한평생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송해의 무대 뒤 진짜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최고령 현역 연예인 송해의 무대 아래 숨겨진 라이프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는다.

이 영화는 <마담 B> <뷰티풀 데이즈> <파이터> 등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인물을 깊이 있게 조명한 윤재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약 33년간 KBS1 <전국노래자랑> MC를 통해 온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MC’인 시대의 아이콘이 된 송해를 다룬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화려한 무대 뒤 진솔한 모습과 가슴 아픈 가족사 등 지금껏 공개된 적 없던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진솔한 송해와 가슴 아픈 가족사
각종 영화제 초청, 뜨거운 반응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송해 1927>은 이후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3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18회 EBS국제다큐영화제,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 등에 공식 초청됐다.

지난 12일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오픈시네마 부문에 초청돼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모았다. 

티저 포스터는 송해의 유쾌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병뚜껑을 눈에 붙이고, 벨트를 색소폰처럼 입에 문 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대 위 언제나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국민들의 말 상대가 됐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송해의 화려한 무대 뒤, 진솔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송해 1927>은 오는 11월 개봉해 관객과 만난다.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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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