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모두가 사랑한 국민MC 송해

34년 잡은 마이크 놓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송해. 꾸준함과 일요일의 상징과도 같은 남자다. 그가 힘차게 외치는 “전국~”을 들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노래자랑!”으로 화답했다. 그의 능수능란한 진행과 격의 없는 소통을 곁들인 <전국 노래자랑>은 지난 34년간 온 국민의 성원을 받는 ‘축제’였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슬픔에 잠겼다.

송해의 본명은 송복희다. 고향은 이북인 황해도 재령군이다.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끼 많은 개구쟁이로 유명했다고 한다. 가족은 부모님과 형, 여동생이 있었다. 형이 아버지와 갈등을 빚다 집을 나간 후로는 넷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실향민 출신
코미디언으로

22세 때 1949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더는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송해는 전쟁 초기에는 가족들과 고향에 머물렀다. 당시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1·4 후퇴 때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다가 영영 이별하게 됐다. 북한 인민군의 진격하면서 재령에서 해주, 해주에서 연평도로 피란을 이어갔다. 연평도에서는 미 군함 빅토리아호를 타고 부산까지 갔다. 이때 바다 위에서 바다 해(海)를 예명이자 아호로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부산항에 도착한 뒤에는 군에 입대했던 그는 통신병으로 복무했고, 1953년 7월27일 휴전 메시지를 직접 타전했다. 그는 그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최근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군 선임이 혼자였던 그에게 여동생을 소개해줬다. 송해가 첫눈에 반했다는 이가 바로 그의 부인 석옥이씨였다.


군 제대 이후에는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본인 회고에 따르면 악단 공연을 진행하는 동시에 입담을 살려 분위기도 띄웠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은 것이다. TV 방송을 시작한 후에는 여러 방송사를 넘나들면서 조연급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KBS에서 가장 오래 활동했다. 

송해는 선배인 박시명과 콤비를 이뤄 만담을 선보이기도 했고, 콤비를 하지 않을 때는 똑똑한 고학력자를 풍자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그의 강점으로는 능수능란한 화술과 진행 능력이 꼽힌다. 발음도 정확했던 그는 라디오 진행자 자리까지 꿰찼다.

송해는 동양방송의 아침 생활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면서 운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때 <가로수를 누비며>가 처음 시도했던, 운전자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해 이들의 제보를 적극 활용하는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교통방송에서 활용되고 있다.

송해는 17년 동안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다가 1986년 갑작스레 하차했다. 당시 20세 아들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잃은 충격으로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예순을 바라보던 때 생긴 비극이었다.

그는 생전에 기억이 사무쳐서, 아들이 사고를 당했던 한남대교(당시 제3한강교) 근처로는 절대 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88년 마음을 추스르고 맡은 복귀작이 KBS 1TV <전국 노래자랑>이다.

지난 8일 자택서 별세… 향년 95세
<전국…> 재개 앞두고… 애도 물결


전국 각 지방을 돌면서 주민이 참여하는 순회공연 형식인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 최장수 TV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송해 역시 <전국노래자랑>을 34년 동안 진행하면서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최장수·최고령 진행자 기록을 새로 썼다.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이외에도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까지 함께 보유하고 있다. 잠시 프로그램을 떠났다가 시청자 반발로 복귀했던 1994년 10월부터 계산하더라도 27년을 훌쩍 넘긴다. 

기나긴 세월 동안 프로그램을 맡아오면서 그는 <전국 노래자랑> 그 자체가 됐다. 시작을 알리는 “전국~”과 오프닝 반주 뒤의 “전국에 계신 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 속에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그리고 해외 자원봉사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푸른 대해를 가르는 외양 선원 여러분, 원양 선원 여러분, 모든 항공인 여러분, 대한민국 국군 장병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더불어 오늘 이곳 (지명)을 가득 메워주신 시민 여러분, 이 고장을 방문하신 관광객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전국 노래자랑> 사회 담당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라는 고정 멘트는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전국 노래자랑>은 매번 다른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나오다 보니 돌발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때마다 송해는 능수능란한 진행 능력과 관록으로 위기를 무난하게 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참가자들과 정겹게 만담을 나누고, 가수 출신인 만큼 가끔 노래도 부르는 등 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모습들 덕분에 송해는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참가자들에게 여전히 ‘오빠’로 불렸다. 훈장 수여도 이어졌다. 송해는 2001년 화관문화훈장, 2014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별세 이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됐다.

그는 생전에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생애 마지막 <전국 노래자랑>을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이나 해주시에서 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파란만장 인생
그리운 고향

송해는 2003년 <전국 노래자랑> 특집 방송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이때 북측 담당 안내원과 친해져서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뒤풀이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와중에, 안내원이 재령을 코앞에 두고 가지 못한 송해에게 “이젠 거기 가봤자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며 위로를 보냈다.

이를 오해한 송해는 “월남한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죽은 것이냐”고 물었다. 안내원은 “그 말이 아니라 52년의 세월 동안 모든 것이 다 달라졌다”며 “송해가 알던 재령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고 설명했다.

송해는 그제야 자신이 월남한 지 52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울러 생전에 다시는 어머니를 뵐 수 없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고향 방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2019년 MBN에서 방영한 특집 프로그램 <송해야 고향 가자>에서 남북체육교류협회의 남북 응원단으로 합류해 고향 방문을 타진했다. 하지만 방송 당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남북체육교류협회 경기가 연기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에는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끝내 송해의 고향 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2018년 1월20일,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아내를 지병으로 떠나보냈다. 부부가 같이 입원했는데, 아내는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송해는 발인식에서 “붙잡으면 무슨 소용 있나. 조금 먼저 갈 따름”이라며 “열심히 애들 보살필 테니까 마음 놓고”라고 애통한 심경을 전했다.

이후 코로나 유행으로 <전국 노래자랑>의 현장 촬영이 무기한 중단됐다. 많은 이가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던 도중, 그는 지난해 9월 유튜브 <근황올림픽> 채널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 그는 “예전보다 7kg 정도 살이 빠졌다”며 야윈 모습으로 등장해 우려를 자아냈다. 영상에서는 주로 영화 <송해 1927>을 홍보했다.

지난 1월31일에는 KBS 2TV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가 방영됐다. 송해 작고 후에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무대였다. 트로트 가수 정동원이 어린 송해 역을, 국악인 박애리가 어머니 역을 맡았다.

이들이 함흥부두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연기할 때, 송해를 비롯한 여러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됐다.
무대 말미에는 송해가 직접 무대에 올라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계신다”며 “꿈에서는 한 번도 오시지 않으시는 어머니께 불효의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께 한 곡 올리겠다”며 <비 내리는 고모령>을 목놓아 불렀다.

그는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지난 3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고령 감염에 건강을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걱정이 무색하도록 4월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녹화에 참여하며 MC 활동을 재개했다.

안타까운 작고
수많은 일화들


그런데 지난달 14일 오후, 건강 이상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흘 뒤에는 그가 스스로 <전국 노래자랑> 제작진에게 “더이상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이번 달 초 <전국 노래자랑> 현장 촬영이 재개됐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불참 사유는 장거리 이동과 촬영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못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그보다 열흘쯤 전인 지난달 23일 <기네스북> 수상 당시에도 상당히 수척한 모습을 보여 우려를 샀다. 

결국 그는 지난 8일 오전 자택에서 노환으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가 식사하러 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보이지 않자, 인근에 사는 딸이 자택으로 찾아갔다가 자택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해 신고했다. 소방당국은 오전 8시19분쯤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 직함 아래 3일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위원장은 엄영수 코미디언협회장이 맡았으며, 코미디언 석현·김학래·이용식·최양락·유재석·강호동·이수근·김구라·김성규 KBS 희극인실장·고명환 MBC 희극인실장·정삼식 SBS 희극인실장 등이 장례위원을 맡았다. 

이외에도 많은 연예계·정계 인사의 추모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훈장 추서와 함께 애도의 뜻을 전했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해외 일정 중에도 추모 화환을 보냈다. 

KBS는 송해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전국 노래자랑> 녹화 방송 복귀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샀다. 대신 KBS는 송해 별세에 맞춰 지난 8일 밤 10시에 송해 추모 특집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방영했다. 이어 12일에 방송되는 <전국 노래자랑>도 송해 선생 추모 특집으로 편성했다.

송해의 장지는 아내의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모처다. 그는 생전에 “석 여사(아내)의 묘지 곁에 영면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능수능란한 진행 격의 없는 소통
스타? 소탈한 생활에 국민들 감동

그는 오랜 시간 활동하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특히 생전에 자동차·휴대전화·큐 카드 등 3가지를 갖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큐 카드를 들지 않았던 것은 교감과 소통을 위해서였다. 그는 앞서 “촬영이 있는 곳을 전날에 미리 내려간다”며 “그 동네 목욕탕에서 주민들과 함께 목욕하면서 교감을 나눈다”고 밝힐 만큼 관객과의 교감을 중요시했다. 

연예계의 유명한 주당인 만큼, 술에 대한 일화도 다양하다. <퀴즈쇼 사총사>에 출연했을 때, 그는 자신의 주량이 소주 다섯잔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 노래자랑>의 김인협 악단장이 옆에서 이를 소주 5‘병’이라고 정정해 웃음을 자아냈다.

애주가인 그는 생전 단골 국밥집에서 우거지국과 곁들여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송해는 생전 장수 비결로 우거지국을 꼽았다.

가수 출신인 점을 살려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생애 첫 콘서트 당시 그의 나이는 84세였다. 그는 2011년 추석을 목표로 단독 콘서트를 준비했다. 목표대로 성공리에 서울 공연을 마친 뒤, 10월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진행했다.

그는 2010년대 들어서면서 광고에도 간간이 출연했다. 후배 코미디언인 강호동과 함께 이가탄 CF를 찍었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IBK기업은행 홍보대사에 위촉돼 광고에 특별 출연했다.

기업은행은 일명 ‘송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 노년층에게 ‘IBK기업은행에 기업이 아닌 개인이 예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것만으로도 막대한 규모의 예금이 유입됐다. 찾아온 고객 중에는 직접적으로 ‘송해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는 사람이 상당수였다는 후문이다.

이는 노년층 사이에서 그의 입지가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로 남았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혈혈단신의 실향민이 국내 최장수 MC가 되기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꾸준함, 그리고 소탈한 생활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줬다. 그는 이제 떠났지만, 그의 꾸준한 열정이 담긴 “전국~”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국 노래자랑’ 후임 MC 누구?

송해가 영면에 들면서 KBS는 <전국 노래자랑> 후임자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송해가 34년간 진행해온 프로그램인 만큼, 누가 맡더라도 그 빈자리가 커 보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 방송사의 고민은 계속 깊어질 전망이다.

송해 생전에도 <전국 노래자랑> 후임자 선정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송해는 평소 후임 MC 선정을 자신의 ‘숙제’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송해가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언급한 후임자 후보군은 이상벽·이상용·임백천·이택림·고 허참 등이다.

여기에 이호섭 작곡가도 후보로 언급된다.

그는 송해가 건강 이상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대체 MC를 맡아 안정적인 진행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KBS는 우선 <전국 노래자랑>의 12일 방송분을 송해 추모 특집으로 꾸미고, 이후 방송 방향은 내부 논의를 거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송해의 후임자는 빠르면 오는 19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