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특집인터뷰① 대선판 씹어먹은 '무야홍' 홍준표

“윤석열 의혹, 당이 나서지 마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정치권에 ‘홍준표 돌풍’이 불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바짝 붙은 무서운 기세에 야권의 대선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요시사>는 추석특집으로 그의 상승세를 집중 조명했다.

26년 정치 인생. 그의 예상대로였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은 추석 전후로 윤석열 전 총장을 앞서는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 현상)’를 약속했고, 그 약속은 현실이 됐다.

홍 의원은 ‘무야홍(무조건 야권후보는 홍준표)’ ‘돌돌홍(돌고 돌아 홍준표)’ 등의 신조어를 남기며 남다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선거는 기세라고 했다. 2021년 추석은 홍 의원이 역전극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홍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고발 사주 의혹’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는 윤 전 총장을 두고 “후보가 확정되고 난 뒤에 그 후보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면 (당이)막는 것이지, 경선 기간 중 특정후보를 위해 당이 나서는 것은 난센스”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떠밀려 나온 사람과 다르다”며 관록에 걸맞은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홍 의원과의 일문일답.

-‘대선 재수생’이다. 20대 대선에 출마를 선택한 이유는.

▲무상 포퓰리즘이 판치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 오늘만 살 것처럼 거위의 배를 가르고, 청년과 미래세대에게 빚더미를 물려주는 퍼주기 대한민국이 돼서는 안 된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이 나라를 바로잡아 정상 국가로 만들고자 한다. 선진국 시대를 열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는 나라,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평가는. 

▲문정부는 5년 동안 대한민국이 70년간 이뤄놨던 모든 체제를 허물어뜨렸다.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대북 정책이 모두 그렇다. 나라를 정상 국가로 만들고, 선진국 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정권은 교체돼야 한다. 그리고 선진국 시대의 원년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에 걸맞은 국정 대개혁이 시급하다.

-최근 홍 의원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확장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실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2040세대 지지층이 돌아섰다. 우리 당은 지금까지 5060세대와 영남을 지지 기반으로 선거를 치러왔다. 하지만 저는 전략을 달리 했다. 반대 진영, 젊은 층과 소통하기 위해 2년 이상 노력했다. 26년간 정치하면서 이미 털릴 건 다 털렸다. 이제 더 털릴 것이 없는 ‘무결점’ 후보기도 하다.

-추석 전에 ‘골든크로스’를 장담했다.

▲이미 ‘골든크로스’가 일어난 여론조사 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골든크로스를 추석 전후로 예상했는데 조금 일찍 왔다. 현재 추세라면 추석 이후 윤 전 검찰총장을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30세대의 지지율이 눈에 띈다. 


 ▲2030세대는 문정부에서 꿈을 잃은 계층이 됐다. 그 꿈을 다시 꾸게 해줄 사람을 찾다 보니 정책적인 측면이나 비전을 가진 사람이 저 홍준표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유튜브 채널인 홍카콜라TV에서 청년 콘서트, 직장인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제 생각을 적극적으로 알려왔다. 그러다 보니 2030세대에서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이라는 신조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무야홍의 뜻이 ‘무적 야권후보 홍준표’로 바뀌었다.

-이들을 공략할 관련된 공약도 준비했나.

▲공정한 제도 아래서 실력으로 클 수 있도록 입시 제도를 혁파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로스쿨, 의전원, 국립외교원 등 음서제도를 폐지한 후 사법고시, 외무고시를 부활시킬 것이다. 모병제와 지원병제 전환 검토 등 군 공약들도 준비돼있다. 서민 자녀들이 계층 간 도약할 수 있도록 희망의 사다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호남 지역에서도 지지율 두각을 보인다. 일각에서는 ‘역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오는데.

▲역선택 때문이 아니라 지역 맞춤 정책 때문이다. 광주 전남에서는 무안국제공항을 관문공항으로 만들어 이 일대에 첨단산업을 유치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전북에서는 이 지역의 희망인 새만금사업을 민간 주도의 홍콩식 개발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제시했다. 

무서운 상승세 호남·청년 사로잡다
‘윤 또 이겼다’ 대역전극 판도 급변

-호남 지역과의 인연도 회자되고 있다.

▲1980년 6월부터 1년간 전북 부안에서 군 복무를 했다. ‘전북 사위’(홍 의원의 부인 이순삼씨는 고향이 전북 부안)라는 별명도 알려져 있다. 또 광주지검 검사(1991년 3월~1992년 7월) 시절 조폭 소탕에 나선 일화도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광주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호남 분들이 우리 당에는 거부감이 있어도 저에게는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야권 후보가 된다면 이번 대선에서 호남 득표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

-대선후보로 나서면서 7대 국정개혁 과제를 발표했다. 

▲지난달 17일 출마선언을 통해 G7 선진국 시대를 위한 국가 정상화와 국정 대개혁의 7대 과제를 발표했다. 정치 행정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자 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천명하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선진국형 경제시스템을 갖출 것이다.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다. 세금 나눠먹기인 공무원과 공공 부문 일자리가 아니라 민간 일자리 창출에 우선 순위를 두겠다. 문정부에서 무너진 공정을 바로 세우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아울러 선진국 사법 체계 구축과 외교 안보 기조를 확 바꾸겠다.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경제를 활성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문정부가 코로나19 방역 ‘쇼’를 하면서 국민과 자영업자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을 옥죄인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이제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경제 주체들이 다 무너지고 있다. 이걸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업이 제일 우선시 돼야 한다고 본다.

-지역구의원, 경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공약은.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하늘’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바로 4대 관문공항이다. 1960~1970년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고속도로였다면 21세기 경제발전 원동력은 하늘이다. 수도권은 인천공항으로 가고, 광주·전남은 무안, 부산·울산·경남은 가덕으로, 충청과 대구·경북은 묶어서 TK 신공항으로 가야 한다.

현재 여객과 물류 98%가 인천공항으로 나간다. 그렇다 보니 수도권 집중 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 4대 관문공항을 만들어 지역 균형발전을 꾀하고자 한다. 4대 관문공항으로 대한민국 산업을 재배치할 것이다. 

-예상되는 효과는.    

▲공항을 만들면 인프라가 갖춰진다. 기업이 지방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권역별 관문공항 주변에 첨단 기업들이 모이면 산업 재배치를 유도할 수 있다. 공항 근처는 저렴한 공장 부지니 부담도 없다. 유럽 직항로 등을 이용해 물류 부담 없이 신속하게 수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기업이 모이면 근로자들이 모이고, 지역대학과 해당 기업의 산학 연계를 도모할 수 있다. 자연스레 지역 인재들이 서울로 떠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대권후보로서 본인의 경쟁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야 후보를 통틀어서 국정 경험이 가장 풍부하다. 나라를 통치할 준비가 돼있다. 지난 4년 동안 내 나라를 선진국 시대의 원년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정책 등 모든 면을 준비했다. 저의 국정철학과 국가운영의 기본 이념은 좌우 이념을 넘어선 국익 우선주의다.

국익 우선과 국민 중심의 나라 경영으로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것이다. 전 국민통합을 이뤄 선진국 시대를 열 수 있는 검증된 든든한 후보다. 갑자기 떠밀려 나온 사람하고는 다르다고 감히 자부한다.    

-이준석 대표가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당 대표’에 당선됐다. 

▲지난 번 당 대표 경선에서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중 이 대표를 지지한 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선거함을 열어보니 이 대표가 당선됐다. MZ세대의 반란이었고, 이 반란으로 출발해 나중에 60대 이상까지도 따라오게 만들었다. 

-이 대표에 대한 평가는.

▲30대 후반의 젊은 당 대표이자 정치 경력도 10년 밖에 되지 않은 이 대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논하는 것은 구시대의 잣대라고 본다. 당원들과 국민들이 젊은 당 대표를 만든 것은 우리 당에게 젊은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당 대표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 대표의 방식으로 장을 이끌어 나가는 게 오히려 정권 재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발 사주 의혹 “당이 나서는 건 난센스” 
보수의 노무현 “난 털릴 것 없는 무결점”

-여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윤 전 총장에 대한 평가는.

▲상대 후보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26년간 검찰 사무를 하신 분이 날치기 공부를 해서 대통령 업무를 맡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최근 정치권에 터진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건에 대한 의견은.

▲이 의혹을 두고 어느 후보의 유불리를 떠나서 당에 무슨 피해가 올까, 우리 당이 휩쓸려 들어가는 경우가 생길까 걱정이다. 특정 후보와 관련된 사건에 당이 휩쓸리면 곤란하다. 당이 적절히 잘 대처해야 한다. 후보 진영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이 나설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후보가 확정되고 난 후에 그 후보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면 당이 막는 것이지, 경선 기간 중 특정 후보를 위해 당이 나서는 것은 난센스다. 후보 개인 진영의 문제니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고, 김웅 의원을 통해 진실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이 되려면 최소한의 인성과 자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분이 뱉어 놓은 말들을 보면 인성과 자질에 문제가 좀 있다. 수신제가(修身齊家)가 안 되는데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가 되겠는가. 특히 무상 포퓰리즘과 똑같은 기본 시리즈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것을 보고 ‘경기도의 차베스’라는 생각이 든다.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에게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선수가 심판을 따르라고 할 때는 심판의 공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심판이 특정 선수의 편을 들고 있을 때 다른 선수들이 할 일은 그 심판을 기피하거나 그 경기를 보이콧 할 수 있다. 공정성만 회복하면 그 누구도 심판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이미 끝난 게임의 룰을 다시 특정 선수를 위해 고치겠다고 하는 심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나.  

-최근 화두가 된 언론중재법에 대한 입장은.

▲청와대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악, 중단해주십시오’라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까지 했다. 민주당 대선을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안전을 위해서라도 언론 악법을 중단해야 할 때다. 언론중재법에서 논의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원래 영미법 계통에서 통용되는 손해배상 제도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륙법 계통에서는 맞지 않다. 지난 2010년 재벌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거나 침탈할 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발의해 도입한 적이 있다. 이런 제도를 언론에 적용시킨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봉쇄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적극 반대한다. 

-윤희숙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확산되면서 대권후보들 역시 부동산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 대선주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대선주자 모두 부동산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다. 대권후보들은 당연히 부동산 검증을 거쳐야 한다.

-봉하마을에서 ‘2002년 노무현처럼’이라는 문장을 방명록에 남겼다. 홍 의원님께 노 전 대통령의 의미는.

▲진보에 노무현이 있었다면 보수에는 홍준표가 있다.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 국회의원들이 곁에 없어도 뚜벅뚜벅 내 길을 갈 것이다. 당원과 국민만 보고 묵묵히 내 길을 갈 것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그 같은 문장을 남겼다.

-추석을 맞이해 <일요시사> 구독자 분들에게 덕담 부탁드린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국민들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위기에 아주 강합니다. 머지않아 이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민족 대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일요시사> 구독자 여러분들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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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