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소녀 티 벗은 '소시 출신' 권유리

물오른 연기력 ‘배우를 훔치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유리는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로 가수가 된 지 15년 차다. 소녀시대의 일원으로 한류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정점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별의 빛이 영원하지는 않은 법. 결국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유리는 10년 전부터 배우의 문을 두드렸다. 혼자만의 힘으로 배우에 도전했지만, 그 빛의 힘은 가수로서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했다. 얼마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했을까. 배우가 된 지 10년, 드디어 오랜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초등학생 5학년, 12세 어린 소녀는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이 된다. 먹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과의 대화도, 심지어 고된 훈련에 대한 어리광마저 사치일 정도로 고되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사 연습생
어리광도 사치

국내 아이돌 업계에서, 아울러 한국에서 아이돌을 가장 잘 기획하는 회사에서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상상조차 어려운 경쟁을 뚫을 순 없다. 아무리 예쁘고 누구나 혹할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 해도 ‘1만 시간의 법칙’에 상응하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태우고 발화하는 별처럼, 대중의 눈에 보이는 연예계 스타들은 각고의 고통을 견뎌내야만 카메라 앞에서 미소 지을 수 있다. 무대에 서는 꿈을 꾸고 있던 15세 유리도 혹독한 트레이닝과 다투고 이겨냈다. 그리고 누군가는 수능을 준비하던 19세에 소녀시대로 한국 가요계에 혜성처럼 입성한다.

데뷔곡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다시 만난 세계’ ‘Kissing you(키싱 유)’ ‘소원을 말해봐’ ‘Oh!’(오!) ‘Run Devil Run’(런 데빌 런) 등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권을 뒤흔드는 명곡과 함께 우뚝 선다. 


SES와 핑클에 이어 그야말로 아이돌 2세대의 최정점에 있었다. 누구도 쉽게 경험하지 못할 위치를 10년간 고수했다. 올라가기보다 어렵다는 1위 유지를 10년 넘게 했다. 그 안에서 유리도 20대를 거치며 성장통을 겪었다.

아무리 최정점에 있다고 하더라도 소녀시대가 평생 먹거리를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아이돌의 생명이 그리 길지 않아서다. 새로운 얼굴을 원하는 대중의 욕망을 소녀시대가 전부 채워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남녀를 막론하고 7년이면 뿔뿔이 흩어지는 ‘7년 차 징크스’를 못 넘기는 아이돌이 허다하지 않은가.

그마저도 극복한 소녀시대지만, 결국 멤버 개개인은 솔로든 예능이든 연기든 다음 행선지가 필요했다. 

연습생에게 연기도 가르친다는 SM엔터테인먼트의 트레이닝을 받은 그는 자연스럽게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한다. 스타라고 해서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KBS2 <스타 인생극장>에서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학업에 열중하다 못해 교수에게 칭찬받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소녀시대 내에서 솔로 활동을 하기도 했고, 각종 예능에서 매력을 뽐낸 그다. 팬들로부터 끼를 잘 부린다고 해 ‘깝율’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건강미 있는 몸매로 섹시함을 과시하면서 ‘율란하다’는 신조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여러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했지만, 유리의 마음은 연기자로 향하고 있었다. 연극의 메카인 혜화동을 오고 가며 봤던 연극에 자극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했고, 언젠가 연기자로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영과 무술, 승마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키웠다. 

MBN 드라마 <보쌈> 화인옹주 열연
시청률 9.8% 주역 ‘그 유리 맞아?’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12년 SBS <패션왕>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섰다. 이전에도 작게나마 연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정극은 처음이었다. 데뷔 치고 혹평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소녀시대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있는 결과였다.

그래도 꾸준히 연기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 

영화 <노브레싱>을 비롯해 웹드라마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 OCN <동네의 영웅>, SBS <피고인>, MBC <대장금이 보고 있다>, 넷플릭스 <마음의 소리 리부트2> 웹드라마 <이별유예, 일주일> 등 여러 분야에서 꾸준히 연기 경험을 쌓았다.

작품 활동에 비해 대중의 각인이 된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연기자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만이 그를 위로했을 뿐이다.

배우가 된 지 10년, 권유리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MBN <보쌈: 운명을 훔치다>(이하 <보쌈>)를 통해서다. 여배우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권석장 PD의 작품이다. 

<파스타>의 공효진, <마이 프린세스>의 김태희, <골든타임> 황정음, <미스코리아> 이연희 등 다소 모호한 평가를 받고 있던 연기자들이 권석장 PD의 손을 거쳐 배우로 거듭났다. 그를 거친 배우들은 연기력이 날로 성장했다. 여배우의 연기력 논란은 권 PD의 작품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듯 여배우에 대한 특별한 안목을 가진 권 PD는 권유리를 선택했다. 후궁의 딸 옹주에서 이름 모를 시정잡배에게 보쌈을 당한 뒤 온갖 고초를 겪었음에도,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능동적으로 삶을 대하는 수경의 얼굴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이라 해도 무방한 가요계에서 꿋꿋하게 버틴 삶이 거장의 눈에 비췄나 보다. 

대본을 읽고 수경의 삶에 감동한 권유리는 장면마다 진심으로 연기했다. 글을 보고 느낀 감동을 시청자들도 느꼈으면 하는 욕망이 작동했다. 

거장 눈에 띈
단단한 내공

“처음에 대본을 읽고 갖은 고초와 고난 앞에 반응하는 수경의 방식이 매력적이었어요. 당당하고 카리스마 있을뿐더러 위엄도 있었죠. 삶에 있어서 능동적인 부분에 매료됐어요. 수경을 닮고 싶었어요. 권유리가 수경이라는 사람을 거울삼아 극대화해서 표현할 수 있을까에 고민했어요.”

워낙 오랜 기간 인기 연예인으로서 살아가다 보니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하기보단 주위의 시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익숙했을 테다. 법은 물론이고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것에 누구보다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 그를 조여왔을 수 있다. 그런 권유리에게 수경이란 인물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보쌈>에서 수경은 광해군(김태우 분)과 후궁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화인옹주다. 궁에서 지내던 시절부터 이대엽(신현수 분)을 좋아했으나, 시아버지 이이첨(이재용 분)과 광해군의 정치적 밀약으로 그의 형과 혼약을 맺는다. 그 혼약이 기구한 삶의 시발점이 된다. 신혼 첫날밤도 치르기도 전에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조선의 건달이나 다름없는 바우(정일우 분)가 다른 여인 대신 실수로 화인옹주를 보쌈한다. 바우를 설득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어쩐 일인지 바우는 약속을 어긴다. 진실을 추궁하자 돌아온 대답은 “이미 당신은 죽었다”는 것. 

화인옹주가 없어지자 이이첨은 장례를 치른다.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반정을 노리는 그에게 화인옹주는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경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때부터 평생 겪어보지 못한 고초에 시달린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희생을 통해 이겨낸다. <보쌈>은 이때부터 수경의 성장 드라마로 변주한다.

“제가 수경이 매력 있고 멋지다고 생각한 지점은 수경이라는 인물이 타고난 성품이 정말 좋아서예요. 옹주임에도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수직적이지 않고, 주위를 다 돌봐요. 자신보다 주위에 있는 사람의 안위를 더 걱정해주는 올곧은 성품이죠. 마음도 따뜻하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늘 멋있게 이겨내요. 이타적인 방식으로요. 그렇다고 불의 앞에서 결코 주눅 들지도 않아요. 당차고 할 말도 다 하고요. 원수나 다름없는 좌의정과 다시 만난 장면에서 심리적 복수를 하는데요. 개인적으론 가장 통쾌했어요. 예의를 갖추면서 싸우는 모습이 단단하게 느껴졌어요.”

배려와 희생
쏟아진 호평


수경은 왕가의 출신으로 늘 용모를 단정히 할 뿐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중심이 명확한 여인이다. 아무리 자신을 괴롭히는 이가 있다 해도 마음으로 먼저 이해하려 한다. 불의에는 분명히 맞선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조선시대의 인격화’라는 피드백을 남기기도 했다. 조선시대가 사람이 됐다면 수경이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극 중에 그런 대사가 있어요. ‘내가 죽어 없어져야 모든 이가 편해진다’라고요. 온 나라의 국민과 나라가 편해질 수 있다면 죽음도 각오하는 여자예요. ‘내가 과연 저 정도의 대사를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그렇게 단단한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이 작품이 끝날 무렵엔 수경이 내 안에 들어와 있기를 희망했어요.”

캐릭터와 그 인물은 연기한 배우의 능력치를 수치화해서 비교할 수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수경을 훌륭히 표현해냈다. 권유리에게도 수경이 가진 단단한 내공이 없었다면, 부족한 부분이 아마 시청자의 눈에 다 드러나지 않았을까. 배우를 두고 인물을 담는 그릇이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니 말이다.

호평이 쏟아지는 건 수경을 담는 그릇으로 권유리의 마음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저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수경이 옹주였던만큼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았을 거예요. 누구보다 빨리 성숙해져야 했겠죠. 저 역시도 소녀시대 활동을 하면서 단체생활을 했어요. 열두 살부터 연습생이었고, 열아홉에 데뷔하면서 작은 사회를 또래보다 빨리 경험했어요. 15년 넘게 팀원들과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고요. 수경이가 감내해야 했던 것들을 저도 소녀시대 경험을 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서로서로 배려해줘야만 밸런스를 잡는다는 걸 비교적 어린 나이에 터득했거든요. 그런 지점이 수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매 순간 당당하고 멋진 옹주, 닮고 싶다”
“고통 감내하며 연기, 궁금한 배우되겠다”

아이돌로서의 탄탄해진 마음의 힘과 배우로서 능력을 키우고자 한 노력이 대중의 마음에도 스며들었다. 매력적인 인물을 훌륭히 표현한 결과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내가 알던 유리가 맞냐”면서 연기력을 극찬하는 시청자들이 생겨났다.

뼈가 부서져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한 노력이 감동으로 전달된 덕이다. 0%대 시청률을 전전하던 MBN 드라마는 9.8%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냈다. MBN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보쌈> 같은 좋은 작품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결과까지 좋아서 정말 기뻐요. 좋은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에게도 좋은 의미의 자극이 됐어요. 사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어요. 첫 촬영까지 하루에도 5번은 고민했어요. ‘괜한 도전을 한 게 아닐까?’하고요. 그래도 용기 내서 도전했는데, ‘연기 잘 한다’는 피드백을 받다 보니까 계속 더 용기를 내서 성장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대중에 배우로서 진정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고호의 별의 빛나는 밤에> 조수원 PD를 비롯해 그의 능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관계자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연기에 도전 중인 소녀시대 멤버들은 언제나 그를 응원했다. 주위의 응원과 스스로 일궈낸 성취가 자신감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수경이라는 캐릭터가 저한테 준 긍정적인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이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나면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수경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다가 바우를 만나고 비로소 수경이라는 주체적인 사람으로 거듭나잖아요. 연기하면서 ‘나 역시 수경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성찰을 했어요. 수경처럼 용감해지려고 늘 굳게 각오를 했어요. 그런 면에서 성장한 것 같아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호령한 권유리는 여전히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수려한 미모는 주인공을 하기에 손색없으며, 연기력도 충분히 갖춰졌다. <보쌈>에서의 활약상 이후 수많은 제작자가 그와 파트너가 되고 싶다며 손을 내밀고 있다.

거듭한 성찰
커다란 성장

“데뷔할 때만 해도 대사가 많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고 연기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이제는 인물에 대한 공감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고요. <보쌈> 이후에 감사하게도 많은 작품 제안이 들어왔어요. 머지않은 시일 내에 작품으로 만나면 좋겠어요. 언제나 그랬듯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연기할 생각이에요. 늘 다른 매력을 보이는, 그래서 많은 사람이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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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