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방위 금품 살포' 의혹 수산업자 김씨

사기 친 검은돈으로 재벌 행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중견급 검사와 서장급 경찰, 유력 신문사 논설위원, 방송사 앵커. 한 사업가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인물의 면면이다. 이들에게 금품을 바친 사업가는 과거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는가 하면, 현재는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상습사기범을 둘러싼 ‘검·경·언’ 게이트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나 기타 정치 권력과 관련된 대형 비리 의혹사건을 두고 게이트라고 한다. 1972년 6월 발생한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 Affair)에서 유래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은 재선을 위해 비밀 공작반을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투시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되며 하야했다. 당시 ‘게이트’라는 용어는 워터게이트 빌딩에서 따온 것이다. 

드러나는
유착 관계

이후 국내에서는 정치 권력과 관련돼 일어나는 대형 스캔들을 말할 때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인다. 박동선이 미국 의회에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알려진 이 사건은 ‘코리아게이트’라고 불린다. 이후에도 이용호, 정현준, 진승현 등 게이트라는 이름의 여러 비리 의혹이 있었다. 

그리고 2021년 7월, 현직 부장검사와 경찰 고위 인사, 유력 언론인들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는 수산업자 김모(43)씨 사건이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이다. 김씨는 검·경·언의 유력인사들과 유착 관계였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김씨가 정치권 인사들과의 인맥을 과시하며 수 백억원대 사기행각도 벌인 것으로 밝혀져 경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검 영장전담검사는 지난달 서울남부지검 소속 이모 부장검사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경찰이 수산업자 김씨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 혐의를 조사하다 김씨의 휴대전화에서 이 부장검사의 문자메시지를 발견해 증거로 제출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부장검사가 김씨에게 보낸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를 금품수수 정황을 뒷받침하는 물증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니 이 부장검사가 금품을 받은 정황이 뚜렷했다는 것.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검찰 내부의 목소리다. 

이 부장검사는 2019년 8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대구지검 포항지청에서 근무하면서 김씨를 알게 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 초반에는 이 부장검사에 대한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되자 명품 시계, 고가의 식품, 자녀의 학원비 등 2000~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씨가 선물했다고 밝힌 시계는 ‘IWC’로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스위스 명품 브랜드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경찰의 압수수색 이틀 뒤 고검검사급 검사(차장·부장검사) 인사에서 이 부장검사를 부부장검사로 강등 발령했다. 법무부와 대검은 경찰의 수사 상황을 지켜본 뒤 이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부장검사는 경찰 수사에 따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경찰이 이 부장검사가 받은 금품의 대가성을 확인한다면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전환해 공수처에 이첩할 것으로 보인다. 검사의 뇌물 혐의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와 달리 공수처법이 규정하는 고위공직자범죄에 해당해서다.

‘뇌물 고리’ 검·경·언 강타
거물 정치인 연루설도 돌아

다만 현시점에서는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할 근거가 불명확하다. 경찰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최대한 수사를 진행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경찰로서는 사건이 공수처로 이첩될 경우 성과가 공수처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첩시키지 않고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이었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도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수사 대상에 올라 파문이 일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이 전 논설위원에게 고가의 골프채를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전 논설위원은 윤 전 총장 측 대변인에 선임되고 열흘 뒤인 지난달 20일 돌연 사임했다. 이를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나왔다. 당시 그는 사퇴 이유를 “일신상의 이유로 직을 내려놓는다”고만 밝혔다.

현재까지 이 전 논설위원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다. 또 엄성섭 TV조선 앵커와 일간지 기자 2명의 금품수수 혐의도 포착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엄 앵커는 중고차를 두 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30일부터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이 자리는 이상목 앵커가 대신 맡아 진행했다. 그는 2017년 4월부터 전날까지 해당 방송을 해 왔다.

엄 앵커는 개인 유튜브 ‘엄튜브’ 커뮤니티에도 “오늘 방송은 쉬어가게 됐다”고만 간략히 밝혔다. MBC에 따르면 엄 앵커는 기자들의 전화에 묵묵부답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산하의 언론인이 뇌물 금품 사건에 연루된 것에 언론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이 전 논설위원과 엄 앵커의 입건 사실을 다루지 않고 있어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1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논평을 내고 “<조선일보> 그룹에서 언론인의 비리 사건이 5년간 3차례 있었지만 제대로된 처벌을 받지 않았고 스스로 면죄부를 줘왔다”며 “이번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다 거짓”
가짜 경력


<조선일보> 소속원들이 뇌물을 받은 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송희영 주필은 기사 청탁 대가로 대우조선해양에서 금품·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표를 냈고, 이듬해 기소됐다. 2019년 언론사 간부들이 기업 로비스트인 홍보대행사 대표와 기사를 대가로 금품·향응·자녀취업 등 부정한 청탁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난 ‘박수환 문자 사건’에 부장급 이상 8명이 연루됐다.

민언련은 “<조선일보>의 반복된 악의적 보도 행태를 비롯해 기자 등 언론인 일탈과 불법행위 연루 등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인 비리와 불법에 관대한 구시대적 관행이 낳은 적폐의 결과”라고 짚었다.

김씨로부터 금품수수 의혹을 받은 건 경찰도 예외가 아니었다. 금품수수 관련 내사를 받던 배 총경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경찰은 증거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이들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금품의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이 확인되면 이 부장검사에겐 뇌물수수 혐의를, 민간인인 언론인에겐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일 검찰 등에 따르면 김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마치 자신이 1000억원 상당의 유산을 상속받았고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항 일대에서 어선 수십대로 사업을 하며 인근 풀빌라, 고가의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재력을 과시했다.


그는 “선박 운용사업에 투자하면 선주가 되게 해주겠다” “선동 오징어 매매사업에 투자하면 수개월 안에 3~4배로 수익을 벌게 해주겠다”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았다. 2018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7명의 피해자로부터 받은 돈이 116억원에 달했다. 

그는 여러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았지만, 수산업체로 소개한 회사 주소는 그가 어릴 적 살았던 포항 구룡포읍 빈집으로 드러났다.

100억원대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는 실제로 자신의 정관계 인맥을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렇게 쌓은 인맥과 대외활동 경력을 바탕으로 수차례 대담한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김씨는 서울과 대구, 포항 등을 오가면서 피해자들을 만나 사기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한 피해자는 김씨가 어선을 정박해놨다는 구룡포항에서 김씨를 직접 만난 뒤 투자하기도 했다. 이 피해자는 34회에 걸쳐 86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보냈다.

유령직 6개
행적 보니…

피해자 가운데는 김무성 전 국회의원의 형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 고향인 포항 구룡포리 주민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오징어를 말려 팔던 것을 보고, 김씨가 가짜 수산물업체를 차려 사기를 친 것 같다”고 전했다.

김씨의 사기 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김씨는 법률사무소 사무장 등으로 신분을 속이고 사기 행각을 벌여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후 안동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17년 12월 특별사면되기도 했다.

평소 자신을 1000억원대 유산을 상속받은 재력가·사회활동가로 꾸며 정계·언론계 등 인맥을 과시한 김씨는 특정 인사와 안면을 트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다른 고위층 인사를 소개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믿음의 벨트’를 이용한 것.

김씨는 이렇게 속아 넘긴 유력인들에게 활발한 로비활동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돈을 받은 혐의를 받는 이들은 검찰과 경찰, 언론 등 전방위적이다.

지난해 김씨가 3대3 농구 사업을 하는 A 사단법인 생활체육단체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여야 인사들이 축사를 보냈다. 취임식에는 이 전 논설위원과 엄 앵커도 참석했으며, 엄 앵커는 축사를 하기도 했다.

당시 엄 앵커는 “김 회장 취임 이전과 김 회장 치임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감히 단언 말씀드립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A 법인은 지난해 5월 김씨가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고 밝혔으나, 법인등기부등본에는 김씨가 등재돼있지 않았으며, A 단체의 활동도 미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 단체의 임원은 2019년에 만들어진 이후 김씨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수산물 업체 대표, 인터넷언론사 부회장, 한국언론재단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상임위원, 유니세프 경북지회 후원회장, 한국다문화가족협회 대구경북후원회장, 몽골스포츠교류재단 상임부회장 등을 맡은 것으로 언론에 소개됐다.

전방위 로비 ‘게이트’로 번지나
휴대폰 상납 리스트 확보 수사 중

하지만 모두 등기 임원이 아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단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한국언론재단과 유니세프, 한국다문화가족협회 관계자들은 모두 “김씨가 속했다는 관련 위원회·단체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언론계·정계·체육계 등 인사들과 교류한 정황이 나오면서 금품수수 의혹이 어디까지 확산될지에도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갑작스러운 금품 수수 사건에 정치권에도 불똥이 튀었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 난감한 입장이다. 이 전 논설위원이 대변인을 맡았다가 열흘 만에 사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30일 오전 10시50분경 대선 출마 선언 후 첫날 일정으로 국회 소통관 기자실을 찾아 기자실마다 돌며 기자들과 인사했다. 

윤 전 총장은 기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소통관 프레스라운지(간이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약식 간담회를 통해 언론의 협조를 부탁하는 인사말을 했다. 

이날 윤 전 총장은 “이동훈 대변인이 사퇴한 배경이 부장검사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돼있기 때문이 아니냐, 금품 수사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를 알고 있었느냐. 이것이 사퇴의 배경이 된 게 맞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본인의 신상에 대한 개인 문제이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뭐 거기에 대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며 “본인의 신상 문제라서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두겠다고 해서 서로 간에 양해했다”고 답했다.

“사전에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냐” “사퇴 전에 모르셨다는 것이냐” “이 전 대변인이 사퇴 전에 이 사실을 보고했느냐” 등의 질의가 이어졌으나,  윤 전 총장은 아무런 답변하지 않은 채 프레스라운지에서 빠져나왔다. 

취재진이 재차 “사퇴할 때 이 전 대변인이 총장께 말씀드렸냐”고 물었지만 “본인의 개인 신상에 관한 거니까”라는 말만 반복하고 입을 닫았다. 취재진은 윤 전 총장을 따라다니면서 “인사 실패라는 평가는 어떻게 보느냐, 처음 열흘밖에 안 된 상태에서 그만둔 것은 인사 실패 아니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윤 전 총장은 대선 행보 첫날부터 삐끄덕했다는 평가다. 본인 의혹에 대한 질문 세례를 받았으나 속 시원히 답변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는 데 정치권의 공세도 이어지고 있다.

불똥 튄 
정치권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기자회견장 브리핑을 통해 “국민에게 자신의 말을 전한 사람의 범죄 의혹에 대해서 무작정 몰랐다는 말로 넘어가는 것은 부족하다”며 “유력 대권주자의 인사 문제는 주요한 지도자의 덕목으로 일컬어진다. 이동훈 전 대변인의 금품수수 관련 보도로 인해 국민은 윤석열 캠프에 대한 신뢰도 의혹의 눈초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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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