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운전' 아워홈 후계자의 일탈 나비효과

하나 보면 열 안다고…다 된 밥에 코 빠뜨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이 보복운전으로 인해 뭇매를 맞고 있다. 보복운전으로 차량을 파손하고, 상대 운전자를 다치게 한 혐의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도덕성에 큰 흠집이 생겨버렸다. 결과적으로 구 부회장의 일탈 행동은 엄청난 나비효과로 되돌아왔다. 동생에게 경영권을 빼앗기게 된 배경이 된 것이다.

구본성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의 보복운전 행각이 뒤늦게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은 특수재물손괴와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된 구 부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구 부회장은 지난 3월 재판에 넘겨졌고, 변론은 지난 5월13일 마무리된 상태였다.

욱하는 성격
민망한 추태

구 부회장은 지난해 9월5일 서울시 강남구 학동사거리 인근에서 보복 운전을 감행했다. 압구정로데오역 방향으로 자신의 BMW X5 차량을 몰던 중 40대 남성의 벤츠 차량이 차선을 바꿔 자신의 차 앞에 끼어들자 홧김에 저지른 일이었다.

구 부회장은 순간적으로 격분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A씨의 차를 앞지른 뒤 급정거했고, 이 과정에서 A씨 차의 전면이 구 부회장 차의 후면과 충돌했다. A씨는 추돌사고로 인해 400만원에 가까운 차량 수리비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놀랍게도 구 부회장은 사고 직후 도주를 감행했다. 구 부회장의 차를 뒤쫓은 A씨는 차에서 내려 “경찰에 신고했으니 도망가지 마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구 부회장은 차를 몰고 A씨에게 돌진했다.


놀란 A씨가 손으로 막았지만, 구 부회장은 계속해서 차를 움직였고, 결국 A씨는 허리·어깨 등을 다쳤다.

추월했다고 홧김에 상해까지
반성문 내고 솜방망이 처벌

검찰은 지난달 13일 결심공판에서 구 부회장에 징역 10개월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기존 판례에 비춰보면 재판부가 구 부회장에 징역형을 선고해도 큰 무리는 없었다. 차량 손괴 이후 상대 운전자에게 가해한 정황이 드러났고, 보복할 의도를 갖고 자동차를 이용해 피해자의 신체를 상해한 혐의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수상해죄는 벌금형이 규정돼있지 않고 법정형 자체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정해져 있다. 또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 피해자와 합의를 한다고 형사 책임을 피할 수도 없다. 특수손괴죄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선고된다.

다만 법원은 우발적인 범행이라는 점을 감안해 구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해 정도가 크지 않고 구 부회장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은 점 등을 양형 참작 사유로 삼았다. 구 부회장 변호인은 재판부에 지난달 25일 반성문을 제출한 바 있다.

또다시
남매의 난?

공교롭게도 구 부회장의 일탈 행동은 아워홈 경영권의 향방을 완전히 뒤바꿨다. 앙숙인 막냇동생 구지은 전 캘리스코 대표가 아워홈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양상이다.


구 부회장과 구 전 대표는 2015년부터 경영권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겪었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슬하에 구 부회장, 구명진씨, 구미현씨, 구 전 대표 등 1남3녀를 뒀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들 가운데 아워홈 경영에 참여한 것은 구 부회장과 구 전 대표 뿐이었다.

특히 구 전 대표는 일찌감치 아워홈의 후계자 1순위로 꼽혀왔다. 구 전 대표는 2004년 아워홈 외식사업부 상무로 경영 일선에 모습을 드러냈고, 2015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만 해도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범LG가의 가풍을 깨고 첫 여성 후계자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구 전 대표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임원들을 좌천, 업무배제, 해고했다는 논란에 휘말리면서 구 전 대표의 입지는 흔들렸다. 결국 구 전 대표는 2015년 7월 승진 5개월 만에 부사장을 내려놨다.

구 전 대표가 물러난 자리는 구 부회장이 채웠다. 구 부회장은 삼성경제연구소 등 외부에서 일하다 뒤늦게 아워홈 경영에 참여했고 대신 구 전 대표는 2016년에 캘리스코 대표로 부임했다. 

이후 남매는 수차례에 걸쳐 다툼을 벌였다. 구 전 대표는 2017년 서울중앙지법에 아워홈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요청하고 이사직 복귀를 시도했지만, 언니 구미현씨가 오빠의 손을 들어주면서 무산됐다.

반대 기류
깨진 독주

2019년 아워홈 정기주총에서는 구 부회장이 이사 보수 한도 증액과 아들 구재모씨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으나 이를 구 전 대표와 구명진씨가 반대했다. 이후 아워홈은 구 전 대표의 캘리스코에 식자재 공급 중단을 선언했고, 이로 인해 양사는 법정 다툼까지 벌였다.

지난해부터 양측의 갈등이 소강상태를 나타냈지만, 여전히 구 전 대표의 아워홈 복귀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자매가 합심할 경우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워홈의 주주구성을 살펴보면 지난해 6월 기준 구 부회장(38.56%), 구미현씨(19.28%), 구명진씨(19.60%), 구 전 대표(20.67%) 등 오너 일가 남매가 98.11%의 지분을 보유 중이었다. 남매 간 합종연횡에 따라 경영진 교체가 충분히 가능했던 셈이다.

이런 가운데 구 부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시점과 구 전 대표의 대표이사 사임이 맞물리자 구 전 대표가 아워홈으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구 전 대표는 구 부회장이 재판에 넘겨지기 직전인 지난 2월 캘리스코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예상은 머지않아 현실이 됐다.

지난 6월4일 아워홈은 이날 서울 모처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구지은 전 캘리스코 대표가 제안했던 신규이사 선임안, 보수총액 한도 제한안 등을 통과시켰다. 이번 주총은 아워홈 측과 구 전 대표 측이 개최 시기를 놓고 이견을 빚다 결국 법원 판단에 의해 소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참에 오빠에게 칼 겨눈 막내
동생들 합세…경영권 잃은 장남

세 자매는 이날 주주제안을 통해 선임된 신규 이사들을 앞세워 이사회를 장악했고, 구 부회장을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구 부회장을 대신해 구 전 대표가 아워홈의 대표이사에 올랐다. 경영권 다툼이 세 자매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구명진씨가 구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준 건 예정된 행보였다. 구명진씨의 경우 구 전 대표의 확실한 우호세력으로 분류돼왔다. 구명진씨는 구 전 대표가 캘리스코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직후인 지난 2월15일자로 신임 캘리스코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구명진씨는 그간 아워홈 관련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지 않던 인물이다. 캘리스코의 2대주주이자 등기이사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긴 했지만, 대외적인 경영 일선에서 활동한 건 아니었다.

지분 19.28%를 가지고 있던 장녀 구미현씨가 구 전 대표 손을 잡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구미현씨와 구명진씨가 구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면서 세 자매의 지분은 60%에 근접했고, 큰 무리 없이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구 부회장의 보복운전이 구미현씨가 구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구미현씨는 2017년 구 부회장과 구 전 대표 사이에서 경영권 다툼이 불거졌을 당시에는 구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구 부회장의 이번 보복운전 행위는 그냥 눈감아주기 힘든 사안이었다.

순식간에
날아간 왕관

재계에서는 향후 구 부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반격에 나설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단 구 부회장이 아워홈 사내이사에서 당장 물러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내이사의 해임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으로 3분의2 이상의 지분이 필요한데, 구 부회장의 지분이 38.56%로 3분의 1을 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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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