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특별진단' 복수의 시대를 말하다 - 사회심리학자 박지선 교수

우리는 왜 사이코패스에 열광하는가?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되면 언론에서는 그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에 대해 연일 초점을 맞춘다. 주목도를 높여 대중의 공분을 사기 충분하지만, 범죄자가 사이코패스라는 게 사건 해결을 위하거나 피해를 복구하는 데는 관계가 없다.

TV를 틀면 거의 모든 채널에서 범죄 관련 이야기들이 무수히 나온다. 우리는 과거 사건을 통해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는 비극임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범죄 소재는 대중의 분노를 사기 충분한 아이템이다.  

좋은 
방송 소재

대중은 범죄 소재에 열광한다. 드라마, 영화, 예능을 불문하고 범죄가 주제가 되면 시청자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사법 시스템 불신으로 탄생한 사적 복수라는 소재를 활용해 직접 단죄에 나서는 드라마나 영화는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인다. 실제로는 하기 힘든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나 통쾌한 복수를 통해 드라마 속에서 나마 문제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복수를 하는 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진 않다. 실제 벌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대부분 범죄자와 마찬가지로 법을 어겨가며 복수에 몰두한다. 묘사 역시 자세하다. 그래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건을 되짚는 예능들 역시 호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언론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와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를 하며 시청자들이 피해자가 겪었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모습도 보인다. 

사건과 관계없이 그들의 성향만 집중
해결·피해 복구 전혀 도움 되지 않아

전문가들이 패널로 등장해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풀어내며 해당 사건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범죄자들은 하나 같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는 인물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도 범죄자 보도는 하루에 몇 번씩 쏟아져 나온다. 범죄자가 포토라인에 서는 날이면 수많은 플래시를 터뜨리며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그러나 실제 사건과 관계없는 그들의 성향과 말 한 마디에 주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N번방 사건의 조주빈은 "멈출 수 없던 악마의 삶을 멈춰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모습으로 대중의 분노를 샀다.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역시 경찰에게 "잠시 팔을 놔 달라"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김태현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언론은 김태현의 말을 연일 보도했다. 

범죄자 성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에 연일 보도하는 행태가 만연하다. 


범죄자의 극악무도한 행동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범죄 성향과 수법을 분석하면 미래에 있을 범죄에 대해 충분히 대비가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플래시 따라
대중의 분노

하지만 언론에서 범죄자만 주목한다면 대중의 분노는 그 순간에만 발현되기 십상이다. 범죄자의 자세한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요시사>는 tvN <알쓸범잡>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 출연 중인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박지선 교수와 함께 범죄 소재 프로그램들이 시사하는 바와 앞으로 언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짚어봤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범죄 소재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에 범죄 관련 프로그램들이 주목받는 기저에는, 범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도 범죄가 발생할 수 있고, 나도 범죄 피해를 겪을 수 있다는 불안이 깔려 있다고 본다. 즉,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 또 그것을 피하기 어렵다는 두려움과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 소재 프로그램들의 과거 사건 조명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어떤 점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사람들이 자극적인 범죄 소재에 주목하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들을 관심 있게 시청한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물론 존재하지만, 실제로 방송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범죄를 흥미 위주의 소재로 소비하기보다는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약자에 대한 폭력에 함께 분노하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알쓸범잡> 같은 프로그램에서 과거 발생한 범죄를 되짚어 본다는 바가 의미하는 것은?

▲<알쓸범잡>과 같은 프로그램에서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범죄 사건을 통해서 거울처럼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이런 범죄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부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데 사람들 모두가 각각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에 주목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범죄자를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아닌, 우리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 그들로 분리시켜 생각하고 싶어 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평범한 이웃들 가운데 범죄자가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심각한 불안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를 구분 지으려고 하는 이유는?

▲우리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범죄자들을 사이코패스, 반사회성 성격 장애자와 같은 개별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평범한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이질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언론에서는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임을 강조하는데.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에서 해당 범죄자에게 사이코패스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에 주목하는 경향을 반영하는 동시에 불필요하게 언론에서 이를 부추기는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특정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실제로 사건의 해결이나 피해 회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개의 언론 매체에서 범죄사건에 대한 기사가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사이코패스냐 아니냐에 대한 상당 부분 불필요한 논쟁을 언론에서 반복 재생산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자 자체에 대해 집중하는데.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범죄자라는 개인에 과도하게 주목하고, 범죄가 발생한 공간이나 장소, 환경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범죄에 대한 분노는 오롯이 범죄자 개인으로만 집중됐다가 시간이 흐르면 연소되고, 이 같은 범죄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기 않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개선이나 환경적 변화는 간과되기 쉽다. 

-현재 출연 중인 예능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알쓸범잡>에서 다룬 부산 김길태 살인사건에서는 범죄 사건 그 자체뿐만 아니라 범죄 발생 장소의 CCTV 설치 현황 등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자 했다. 특히, 지역별 경제적 수준에 따라 CCTV 설치 등 범죄 예방을 위한시설과 환경에서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빈부의 격차가 곧 안전의 격차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모두와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알쓸범잡>에서 말하고자 하는 범죄자들의 실체는.

▲연쇄살인범 정두영과 정남규에 대해 <알쓸범잡>에서 다룬 것은 미디어에서 연쇄살인범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범죄자라고 직시하기보다는, ‘악마’나 ‘괴물’, ‘희대의 살인마’ 등과 같이 ‘거대한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격한 피해자는 대부분 약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범행에 마치 어떤 명분이 있는 것처럼 정당화하려는 연쇄살인범들의 행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범죄 아이템에 주목 이유는?
결국 잊혀지는 경우 다반사

정남규가 쓴 편지에 대해 시간을 들여 문장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것은 편지에 드러난 자기모순과 열등감, 범행에 대한 그들만의 정당화 기제에 대해 여과 없이 들여다보고, 이들이 그야말로 비겁한 범죄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함께 직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스토킹범죄 처벌법이 통과했는데 <알쓸범잡>에서도 다뤘다.

▲22년 만에 통과된 스토킹처벌법에서 스토킹을 명백히 범죄로 규정한 점과 함께 살인 등 더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짚어보고, 스토킹이 피해자 및 그 가족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쓸범잡>에서 포토라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그간 반복적으로 제기돼온 이른바 ‘포토라인’에서의 범죄자들의 행태에 대해 짚어보고 싶었다. ‘포토라인’은 범죄자 본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진심으로 잘못을 빌고 본인의 행동이 사회 구성원들에 끼친 충격과 사회에 미친 해악에 대해 반성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수의 범죄자들이 이와는 동떨어진 행태를 반복적으로 보인 바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최근 미디어에서 사적 보복에 관한 내용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사람들의 법 감정과 실제 양형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하고 있음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법치주의 국가에서 범죄로 규정하는 사적 보복행위가 묘사되는 것은 일정 부분 이 같은 양형에 대한 불만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앞으로 범죄를 소재로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 언론에서 주의할 점은?

▲사적 제재는 엄연한 범죄 행위이므로, 앞으로 범죄를 소재로 한 대중 매체뿐만 아니라 범죄 관련 언론 보도에 있어서도 범죄자를 영웅시하거나 사적 제재를 부추기는 내용은 지양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ckcjfdo@ilyosisa.co.kr>


[박지선 교수는?]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및 석사
▲리버풀 대학교 수사심리학 석사
▲John Jay College of Criminal Justice CUNY 심리학 박사
▲전 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
▲현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


<기사 속 기사> 10년간 연쇄살인 없지만…
"현실적인 입·사법 필요"

2009년 강호순이 체포된 이후로 한국사회에는 연쇄살인범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대부분 그날 바로 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출소 이후 강력범죄에 연루된 범죄자들에게는 전자발찌를 채워 재범률 역시 크게 줄었다.

권일용 전 프로파일러는 CCTV 등의 보급화로 사회 안전망들이 발달해 살인을 예방, 차단이 가능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형량이 줄은 측면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범죄자의 재범 우려가 높다면 전문가들의 판단 하에 예전의 잣대를 적용하기보다는 현실화된 입법, 사법 시스템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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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