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입수> 쟁골마을 이웃전쟁 로얄패밀리 반격 소장 공개

냉기 감도는 강남 대모산 자락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서울 강남구 일대에 위치한 부촌 쟁골마을 주민들의 갑질 논란이 한창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전직 장관 댁과 중견기업 회장 댁이 앞장서 갖은 횡포를 부렸다는 것. <일요시사>는 이들에게 돌아간 공사방해금지 청구 소장을 단독 입수했다.

노무현정부의 정보통신부 J 전 장관과 수산그룹 C 회장 가족들이 공사방해금지 청구 소송에 휘말렸다. 건물 신축 공사를 막지 말라는 게 해당 소의 취지다. 최근 한 언론 보도로 인해 공사를 방해한 불특정 다수가 이들인 것으로 드러나자, 변호인 측은 신원미상이었던 소송 당사자를 이들로 정정했다.

한적한 마을
고위직 갑질?

해당 공사는 서울 강남 대모산 자락에 위치한 쟁골마을에서 진행 중이다. 도심과 자연의 정취를 누릴 수 있는 서울 내 보기 드문 지역으로 시세는 20억원대 후반에 형성돼있다. 총 50여채의 주택으로 이뤄진 작은 마을에 사회 각계각층의 고위직 인사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은 이렇다. 30년 전 쟁골마을 부지를 매입한 노씨 가족은 노후를 보낼 주택 마련을 위해 2019년 건물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40평짜리 땅에 20평대 주택을 짓고자 했다.

그러자 쟁골마을 주민들은 “우리 마을엔 최소 100여평 대지에 60~90평 건물이 대부분인데 겨우 40평도 안 되는 땅에 건축하겠다니 어이없는 무임승차”라고 주장했다. 최고급 주택지의 재산적 가치의 하락을 우려하는 지역 이기주의적 입장도 함께 내세웠다.


공사방해는 실체 미상의 쟁골마을운영위원회(이하 마을운영위)를 주축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공사 현장 진입로를 수십대의 차량을 동원해 막았다. 공사 철근을 밟거나, 공사 차량을 몸으로 막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노씨의 남편이 마을위원장 H씨의 후진 차량에 부딪히는 사고도 발생했다.

인부들은 결국 100kg에 달하는 철근을 산길로 우회해 오르는 방법을 택했지만, 이 산길마저 막혀 버렸다. 노씨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이웃이 될 사이기에 참아야 했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전 장관·그룹 회장 가족 상대
공사방해금지 청구 소송 제기

노씨는 공사를 방해하는 주민들과 각종 소송전을 벌였다. 방해물 제거 및 통행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2019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하지만 공사를 막는 이들의 신분을 확인할 길이 없어 소송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방해 차량 조회에만 몇 달이 걸리는 지경이었다.

지난한 소송에 지친 노씨는 3개월이 지난 12월에 소송을 취하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경찰마저 무력했다. 노씨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현행범을 체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이들의 신원 파악도 하지 않았다.

결국 노씨는 지난해 8월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노씨의 변호인 측은 어쩔 수 없이 피고 당사자를 ‘성명불상자 다수’로 두고 소송을 진행했다. 피고인이 특정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수사당국 협조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주민들의 횡포가 계속되자, 지난해 9월 노씨는 진입로를 막고 있는 주민을 업무방해로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후 수서경찰서는 수사중지 처분을 내렸다. 공사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사진만으로 피의자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다는 게 수사당국의 주장이었다.

지난 4월 노씨는 공사를 막던 이들이 전직 장관 댁과 중견 기업 회장 댁이라는 사실을  MBC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됐다. 이들은 현장에 자주 나와 적극적으로 공사를 막았던 인물들이었다. 

특히 J 전 장관의 아내 K씨는 현장에 자주 나와 악질적인 행패를 부렸다. 공사를 진행하는 노씨를 향해 인신공격 등을 일삼고, 인부들을 몸으로 막는 행위에도 서슴없었다. 공사 진입로를 막는 데 이들의 회사차량까지 동원된 사실까지 확인됐다.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무능한 경찰
무기한 연기

노씨는 “장관 아내라는 사실을 듣고 믿지 못할 정도였다”며 그의 언행을 회상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의 ‘몰상식함’이라는 세간의 비판도 들끓었다.

충격적인 대목은 마을위원장 H씨와 K씨가 공사를 진행하는 노씨 가족의 신상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K씨는 공사 현장에서 노씨 가족들을 일일이 지목하며, 남편의 학력과 직업까지 모두 외우고 있었다. K씨의 남편은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던 고위직 인사다. 노씨로서는 당연히 공포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MBC 보도 이후 노씨 변호인 측은 공사방해금지 소송의 당사자 표시 정정 신청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성명불상자’로만 남았던 이들의 신분이 특정됐기 때문이다. 전 장관 J씨와 아내 K씨, J씨의 자녀들, 수산그룹 회장 C씨와 그의 아내 A씨가 포함됐다.

제기된 소에 따르면 마을위원회는 노씨 가족과 공사 계약을 맺었던 구씨로부터 유치권을 일임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유치권 행사의 일환으로 주민들의 건물 점유는 정당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노씨는 구씨에게 공사계약에 따른 공사대금을 7200만원을 모두 지급했다.

오히려 주민들의 공사방해 행위로 구씨가 현장을 떠나는 바람에 건물이 완공되지 못한 상태다.

노씨는 이들에게 공사를 재개해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구씨는 그대로 잠적해버렸다. 따라서 구씨는 물론이고 주민들에게도 공사와 관련된 유치권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노씨 변호인 측의 주장이다.

주민들은 왜 이렇게까지 할까. 이는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신청인은 J 전 장관 아내 K씨와 수산 그룹 회장 아내 A씨다. 노씨가 지으려는 대지 바로 맞은 편에는 이들의 대저택이 자리 잡고 있다.

12억이나
기부채납?


<일요시사>가 입수한 신청서에 따르면 K씨와 A씨는 이들의 저택은 ‘정남쪽 방향이 대모산 산자락을 향할 수 있도록 대지가 조성돼, 풍수학적으로나 실질적인 채광으로 볼 때에도 쟁골마을 으뜸’이라며 ‘다른 대지보다 수억원 이상의 프리미엄을 주고 이들이 이 대지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K씨와 A씨는 대모산 자락 아랫부분을 남향으로 바라보도록 집을 설계 및 신축했고, 통유리 베란다에 테라스까지 설치했다. 쟁골마을이 개발제한구역이어서 주변에 어떤 건축물도 들어설 수 없다는 기대감으로 집을 설계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노씨의 건물이 완공되면 이들이 대모산 자락을 바라볼 수 없어 ‘참을 수 없는 조망의 피해’와 ‘사생활 침해’로 인해 ‘압박감 및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고도 적었다.

반면 노씨는 보유한 땅에 정당하게 건축 허가된 땅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입장이다. 노씨 아버지는 30년 전 해당 일대를 매입했다. 2017년 노씨는 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구청은 신축이 가능하지만 1986년 건축물이 멸실될 때 이축(건물 따위를 옮겨 짓거나 세움)이 이뤄졌다고 보고 허가를 반려했다.

개발제한구역법에 따라 건물을 철거하고 다른 곳에 이축하면 기존 토지에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행정심판에서도 허가가 기각되자 노씨는 행정소송을 냈고 결국 승소했다. 이를 토대로 2018년 건축허가를 재신청했고, 이듬해 강남구청이 건축을 허가했다. 법원의 판결을 구청이 따른 것이다.


신축 막는 불특정다수로 표기
신원 미상서 당사자로 정정

하지만 주민들은 노씨와 구청 사이의 커넥션을 의심했다. 불법 허가라는 이유로 용역 직원까지 동원해 공사를 중단시켰다. 강남구청 관계자들은 “주민들이 근거 없이 구청 공무원을 신고해 애꿎은 피해를 봤다”고 입장을 전했다.

지난해 마을위원회가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건축허가처분취소는 각하 판결이 났다. 노씨가 제기한 공사방해금지가처분은 인용됐다. 하지만 주민들의 횡포가 계속되면서, 노씨의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주민들은 노씨 가족들에게 입주하려면 12억5000만원을 기부채납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주민들이 지구 형성 당시 법에 따라 기부채납을 했고, 도로와 상수도 등의 인프라를 갖췄으므로 신축 건축주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쟁골마을을 위해 과거 기부채납했던 이들은 일대를 다 떠났다. 원주민은 10여채 언저리인 상황. 심지어 J 전 장관 역시 2017년에 새로 들어와 건물을 신축하면서 기부채납은 하지 않았다.

노씨 측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일반 시민이 12억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노씨는 공사 불발로 하루에 2000만원가량 손해를 봤다. 토지를 담보로 공사대금을 대출받아 이자까지 매달 꼬박꼬박 나가고 있다.

민사 승소로 배상을 받는다 해도 피해액의 일부일 뿐이다.

노씨 변호인 측은 “공사를 막는 이들에 대한 형사고소도 진행되고 있다. 건물을 못 짓게 하면서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은 업무방해, 기부채납을 강요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공동강요, 공동공갈 범죄에 저촉될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와 관련해 마을위원장 H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공사방해는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다.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구씨로부터 유치권을 위임받았고, 구씨와 연락이 되고 있다. 노씨 개인정보는 뒤를 캐서 알게 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J 전 장관의 소 제기와 관련해선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다 밝히겠다”고 전했다. C 회장 회사 측은 “회장님 개인적 사정이어서 답을 드릴 수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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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