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아놀드 파머 - 잭 니컬라우스 숙명의 대결

‘킹’이라 불린 아놀드 파머와 ‘황금곰’ 잭 니컬라우스의 숙명 같은 첫 대결은 언제였을까. 1962년 US오픈이 열리고 있는 필라델피아의 오크몬드 골프장. 아놀드가 독주하리란 예상과 달리 처음부터 물고 늘어진 선수는 오하이오 출신의 신참내기 잭 니컬라우스였다.

당시 잭은 프로 데뷔 1년차였던 22살 청년이었다. 17차례의 PGA 대회를 치르면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무명의 선수이기도 했다. 반면 아놀드는 이미 5번의 메이저를 포함해 33차례나 우승한 천하무적이었다. 아놀드는 잘 생기고 군살 없는 몸매를 지녔지만, 잭은 ‘처비 보이(Chubby Boy)’라 불리는 뚱보였다.

이변 연출

아놀드의 팬들이 니컬라우스를 그냥 둘 리 없었다. 아놀드와 잭이 처음부터 한 조를 이루자 “오하이오 뚱보야 물러가라”며 살기 어린 독설을 퍼부었다.

잭이 버디라도 했다가는 거의 폭동이라도 일으킬 만큼의 거센 야유와 방해가 극에 달했다. 추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아놀드는 1, 2회전에서 잭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마지막 3, 4회전을 치르는 토요일. 계속되는 야유에도 불구하고 잭은 아놀드에게 한 타 만 뒤져있었다. 이 한 점이 잭을 앞 조에서 출발할 수 있게 해 다행히 정면 대결을 피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아놀드의 팬들은 앞 조에서 출발한 잭마저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오히려 편을 나누어 일련의 무리들은 잭의 라운딩에 투입됐다. 하지만 잭은 야유가 심하면 심할수록 평정심을 찾고 아놀드보다 더 잘 치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은 오후 4시를 가리키며 4회전에 돌입하고 있었다. 앞 조의 잭이 13번 홀에 다다르면서 어느새 아놀드와 공동 선두로 나서자 아놀드의 부대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잭이 퍼팅을 하려고 자세를 잡으면 주변의 땅이 흔들릴 정도로 발을 굴러댔다. 잭의 퍼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잭은 필사적으로 평정을 찾으려 노력했다.

반세기 함께 한 위대한 두 전설
‘킹’ 겨냥한 신출내기 ‘황금곰’

14번 홀을 걸어가며 잭은 2년 전 아놀드가 US오픈에서 우승할 당시를 떠올렸다. 아깝게 잭은 2위에 머물렀고, 이번에는 달라야 했다.

잭은 조용히 아놀드의 목줄을 죄기 시작했다. 아놀드의 추종자들이 그를 방해하면 할수록 잭은 골프채를 불끈 쥐었다. 이번에도 기세에 눌려 우승을 헌납해 줄 수는 없었다.

잭은 어린 나이 답지 않게 평정을 찾고 있었다. 오히려 다급한 쪽은 뒷 조의 아놀드였다. 어느덧 18번 홀을 먼저 끝낸 잭이 283타로 선두에 올라있었다. 아놀드와 공동 선두에 오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뒤이어 아놀드가 18번 홀 티박스에 섰다. 잘 맞은 드라이버에 이어 4번 아이언으로 한 세컨샷도 그린에 올렸다.

볼은 홀 컵 3미터 정도에 붙었다. 아놀드가 버디를 잡으면 한 타 차로 승리였다. 마지막 그린 주변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모든 아놀드의 군대들은 눈을 감았다.


왕으로 군림하는 아놀드의 독주를 막으려는 어린 신출내기가 벌인 쿠데타의 전조였을까. 신중한 자세로 퍼터를 떠난 아놀드의 볼이 홀 컵으로 향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의 염원을 뒤로한 채 볼은 애석하게 홀 컵을 스치듯 지나치고 말았다.

결국 두 사람은 동타를 기록했고, 일요일에 두 사람만의 연장 18홀을 치러야 했다. 일요일 오전 경기 개시 전에 아놀드는 잭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 여기 와 있네” 잭이 즉시 받아쳤다. “그렇게 높게 평가해줘 고맙소”

연장 18홀은 예상과 달리 잭이 주도했다. 결국 오하이오의 뚱보 잭은 아놀드의 홈구장에서 아놀드의 군대를 모두 몰살시키며 총사령관 아놀드를 3타 차로 따돌리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아놀드의 군대는 충격 그 자체였다. 필드에 모인 그들 모두 넋이 나갔다. 어떤 이들은 풀밭에 앉아 울기도 했다. 잭은 아놀드를 보기 좋게 이겼을 뿐 아니라, 첫 우승을 메이저에서 기록했다.

홈그라운드에서 천추의 한을 남긴 아놀드는 7월에 열린 디 오픈 2연패로 어느 정도 잭에 대한 상처는 만회했다. 4월의 마스터즈에서 우승을 하면서 최고 절정기에 있었던 아놀드가 만약 잭에게 US오픈을 뺏기지 않았더라면 바비 존스의 뒤를 이어 62년에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고 훗날의 골프 역사가들은 회고하고 있다.

2016년 고인이 된 아놀드는 평소 1962년의 US오픈을 가장 아쉬워했다고 한다. 아놀드에게는 다른 골퍼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팬 모임인 일명 ‘오빠부대’가 있었다. ‘아놀드의 군대’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그룹은 아놀드 파머를 신봉하는 골수팬들로, 아놀드의 애칭인 아니를 총사령관처럼 추대하는 절대 추종자들이었다.

그만큼 아니는 1950~1960년대 골프계의 아이콘이었다. 동네 아저씨같은 푸근함과 미소를 띠고, 시가를 문채 우스꽝스러운 스윙을 할 때면 아가씨들은 열광하며 쓰러졌다.

그는 1950년대 중반 텔레비전을 통해 사람들의 안방으로 서슴없이 들어온 국민스타였다.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TV를 켰으며 아니를 ‘골프의 왕’이라 불렀다.

오빠부대 이겨낸 오하이오 뚱보
‘보이지 않는 벽’ 만들어진 계기

‘강철왕’ 카네기를 연상시키는 강철 도시의 명성을 지닌 펜실바니아주의 피츠버그시. 1962년 6월의 일요일 오전 스틸 노동자 4명이 알레게니강을 따라 28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1958년형 쉐볼레의 라디오에서 지직거리며 흘러나오는 음악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신곡 ‘굿 럭 참( Good Luck Charm)’이었다.

골프광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물러가고 케네디 대통령이 집권한 지 6개월여가 지난 때였다. ‘아니의 군대(Arnie’s Army)’를 자칭하는 이들 노동자들은 오크몬드 골프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아니의 군대로 분류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4명의 강철 노동자들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US오픈 결승에 오른 아놀드를 응원하러 가는 길이었다.

당시에는 3, 4회전이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36홀로 치러졌던 관계로 US오픈 연장 18홀은 일요일에 진행됐다. 1962년 US오픈이 열린 오크몬드 골프장은 아니의 집에서 40여 분이면 닿을 피츠버그 인근의 골프장으로, 그는 이미 십여 차례 이상이나 이곳에서 골프를 친 경험이 있는, 홈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수만의 골수팬들까지 자발적으로 동원됐으니, 아놀드의 팬들에게 그와 대적하는 선수들은 모두 적군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아놀드를 이기면 안됐다. 오직 아놀드만 우승을 해야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놀드는 절대 질 수 없는 신과도 같은 존재로 부상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연장전에서 아놀드는 막강한 추종자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잭에게 패했지만, 그들의 충성은 상대인 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였다.

숨막힌 경쟁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 골프의 양대 산맥으로 지낸 두 사람이었지만 가슴에서 우러나는 사이로는 발전할 수 없었다. 1962년 아놀드의 군대가 보여 주었던 야유는 잭에게 많은 상처를 줬으며, 오랫동안 두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했다. 충성스러웠던 아놀드의 군대는 그들의 가슴속에 전설처럼 살다가 타계한 골프의 왕을 영원히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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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