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악연’ 이해찬-김종인 대선 대리전

‘파이널 라운드’ 리모컨 들고 붙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30년 악연의 마침표가 찍힐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와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재격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것도 대선에서 말이다. 직접 칼을 맞대는 건 아니다. 한 발짝 물러나 대리인을 앞세우는 식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와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영원한 숙적’으로 불린다. 질기고 질긴 악연은 33년 전 시작됐다.

아주 아주
질긴 인연

지난 1988년 13대 총선 당시 김 전 위원장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다. 11·12대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던 그였지만 공교롭게도 고배를 마셨다. 그의 질주를 멈춘 건 무명 정치인 이 전 대표. 평화민주당 소속이었던 그는 4.06%포인트 차로 김 전 위원장을 꺾으며 관악에 깃발을 꽂았다.

붗꽃은 2016년 다시 튀겼다. 민주당 비대위원장이었던 김 전 위원장은 이 전 대표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반발한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을 탈당했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보란 듯이 세종시에 당선됐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는 사령관급으로 맞붙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이 전 대표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4·7 재보선 승리를 장담했지만 민주당은 참패했다. 반면 김 전 위원장은 선거 승리를 거머쥐었을 뿐 아니라, 국민의힘이 내년 대선에서 반전을 꾀할 만한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평가까지 받아냈다.

영원한 숙적으로 불리는 두 정계 거물. 엎치락뒤치락 치고받았던 이들의 대결은 한 차례 더 이뤄질 전망이다. 무대는 오는 2022년 대선이다.

이 전 대표나 김 전 위원장이 대선 출사표를 던질 가능성은 미미하다. 대신 지난해 총선에서 선거판을 지휘했던 것처럼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만큼 대리전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우선 이 전 대표는 정계은퇴를 선언한지 오래다. 그는 지난해 8월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현역에서 은퇴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 어떤 직도 맡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전 대표의 영향력이 건재하다고 입을 모은다. 왜 일까?

주고받으며 아웅다웅…정치 라이벌
내년 대선 두 거물 막후 역할 주목

시선은 민주당 차기 지도부로 향한다. 지난 16일 민주당 원내대표로 윤호중 의원이 선출됐다. 그는 재적 의원 174명 중 169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104표를 획득했다. 여기에 이 전 대표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전해진다.

윤 원내대표는 ‘강성 친문’으로 분류되지만 그 이전에 ‘이해찬의 복심’ ‘이해찬계 친문’으로 불린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당 대표를 지냈던 시절,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그래서인지 이 전 대표 측근들이 윤 의원의 원내대표 선거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표도 원내대표 선거 판세 등을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그의 당선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는 2일 실시되는 전당대회도 비슷한 맥락이다. 향후 이 전 대표가 발휘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결정되는 순간이라는 시각이다.

이 전 대표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우원식·홍영표 의원의 후원회장이다. 물론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이 전 대표의 영향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일례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국회의원 수십명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다만 우·홍 의원 모두 이 전 대표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하는 점을 미뤄볼 때, 그가 표심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요인이자 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 의원은 지난 19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전 대표가)이번에 당 대표 후보 후원회장도 맡아주셨다”며 “이 전 대표가 저를 지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전 대표가 ‘당 대표는 듬직한 사람, 곰 같은 사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당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제대로 할 사람이 돼야 한다’고 얘기했다”며 “제 별명이 곰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신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차기 민주당 지도부는 내년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친 이해찬계’인 윤 의원이다. 차기 당 대표까지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 당선된다면, 그의 존재감은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바꿔 이야기하면 이 전 대표의 영향력이 차기 대선 후보에게 닿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전당대회에서 ‘20년 집권론’을 펼친 데 이어 지난달 18일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에 이은 네 번째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며 의중을 드러낸 바 있다. 그가 내년 대선에서 ‘킹메이커’로 나설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상왕
킹메이커

다만 이 전 대표의 역할론이 과대평가됐다는 해석도 있다. 이 전 대표는 정계은퇴 이후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협회의 사무실이 여의도인 만큼 이 전 대표와 민주당 의원 간 교류가 비교적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부풀려졌다는 분석이다.

또 이 전 대표가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 ‘거의 이겼다’는 등의 선거 메시지를 던졌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반면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6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재보선 승리를 쟁취한 국민의힘은 정권 탈환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그만큼 김 전 위원장에게 국민의힘은 마음이 쓰이는 당으로 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재보선 종료와 동시에 임기를 끝마친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내 당권 경쟁을 두고 ‘아사리판’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을 두고 양당 지도부가 ‘작당’을 벌이고 있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러면서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시작은 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과의 회동이었다. 앞서 금 전 의원은 국민의힘 입당설을 부정하면서 ‘윤 전 총장이 들어 올 수 있는 당을 창당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자 김 전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이 금 전 의원의 신당으로 가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제3지대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김종인-금태섭’을 기반으로 하는 3지대에 ‘윤석열’이라는 대어가 들어오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금 전 의원과의 면담 이후 기자들과 만나 “3지대는 없다” “정치할 생각이 없다” “역할은 없다”며 선을 재차 그었다.

눈길이 가는 건 ‘금 전 의원이 창당한다면 도와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금 전 의원이 당을 만들지 안 만들지는 내가 모른다”며 말을 아꼈다는 사실이다. 결국 금 전 의원의 창당  시점과 윤 전 총장의 합류 여부에 따라 김 위원장이 운신의 폭을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러브콜
화답할까

실제로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을 향해 메시지를 꾸준히 던지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에 대해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 “지금 시대정신인 공정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며 호평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윤 전 총장의 거취에 대해 “지금 (정돈되지 않은)국민의힘에 들어가 흙탕물에서 같이 놀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백조가 오리밭에 가면 오리가 돼버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국민의힘에는 들어가지 말고, 내 쪽으로 와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윤 전 총장의 영입에 성공한다면, 내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을 제치고 상당한 역할을 소화해낼 것이라고 점친다.

그래서일까. 국민의힘은 김 전 위원장과 윤 전 총장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윤 전 총장은 우리 당에 들어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지난 22일 “정무 감각이 있다면 (윤 전 총장이)제3지대에 머무르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지난 20일 “당 밖에 있는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에 대한 입당 불가론은 유력 대권 후보와 제1야당을 이간질하려는 유치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라며 김 전 위원장을 저격했다. 

김 전 위원장은 여야를 넘나드는 킹메이커로 유명하다. 2002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김 전 위원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2012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일조한 바 있다.

종합해보면, 이 전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은 각자의 방식대로 대선 후보를 내세워 내년 대선에서 대리전을 치를 것으로 분석된다. 이 전 대표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만큼 물밑에서, 김 전 위원장은 거취에 따라 지원 방식이 결정될 전망이다.

이-이재명, 나쁘지 않은 분위기
김-윤석열, 손잡을 수 있을까

차기 대권 선호도 여론조사는 최근까지 2강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윤 전 총장이다.

지난 22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합동 조사한 4월 3주차 전국지표조사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에 따르면 이 지사가 25%, 윤 전 총장 22%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당장 놓고 봤을 때, 차기 대선주자들과 킹메이커의 궁합은 어떨까. 우선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지난 2018년 이 지사는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친문 진영 내에서도 이 지사를 손절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하지만 이 전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이 지사에 대한 징계를 따로 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해찬-이재명 연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달 24일 ‘최근 이 전 대표와 개인적으로 만난 일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식사를 한 번 했다”면서도 “현재 선거나 정치구도에 관한 것 때문은 아니고 당을 위해 고생하신 대선배와 오랜만에 사적으로 식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이 지사에 대해 “그동안 여러 차례 혹독한 검증을 받았다”며 “현재 지지도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다.

둘의 연대 가능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오는 5월 말 ‘2021 DMZ 포럼’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DMZ포럼은 이 전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북아평화경제협회와 경기연구원이 주관해왔다. 이 전 대표가 이 지사에 대한 지원 사격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이 지사는 지난해 DMZ포럼에서도 이 전 대표에게 포럼 공동 주최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한 바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을 언급하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연대 가능성
궁합은 과연?

마크롱 대통령은 중도 신당인 앙마르슈를 만들어 정권을 잡았고, 거대 양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은 붕괴됐다. 이후 앙마르슈가 기존 정당을 흡수했다. 이처럼 김 전 위원장의 경우, 윤 전 총장의 화답 여부가 관건이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을 뺀 나머지 야권을 모조리 비판하면서 윤 전 총장과 본인 중심의 야권 정계개편을 노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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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