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배구계 학폭 막전막후

때리고 괴롭히고 사람 좋은 척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칼로 협박하고, 중요 부위를 발로 찼다. 공이 아닌 사람을 때렸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꿈은 포기했다. 피해자들은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를 평생 지울 수 없다. 
 

▲ 학폭 논란의 중심에 선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소속의 이재영·이다영 자매

연예계를 강타했던 학폭(학교 폭력) 논란은 배구계로도 크게 번졌다. 배구계는 연속된 학폭 폭로 글로 혼란에 빠졌다. 프로 배구선수 이다영·이재영 자매, 송명근, 심경섭은 학폭 가해자로 논란에 휩싸였다. SNS를 통해 자필 사과문을 올리고 피해자에게 사과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난 16일 이다영·이재영 자매는 소속팀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부터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송명근, 심경섭은 잔여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네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스타 선수
과거에 발목

스타 배구선수 이다영의 개인 SNS에서부터 시작됐다. 불화설이 일었다. 이다영은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말로 주어 없이 누군가를 저격했는데, 대상은 바로 전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월드스타 김연경이었다. 이후 배구 관계자들의 말을 통해 이다영과 불화를 겪고 있는 선수가 김연경이라는 게 밝혀졌다. 

논란이 식지 않을 무렵 이다영·이재영의 학폭 폭로 글이 한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고교 시절 이다영, 이재영과 함께 선수생활을 했다는 피해자들은 함께 찍었던 단체 사진과 함께 피해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시킨 것을 하지 않자 칼로 위협했다’ ‘운동할 때 기합을 넣지 않는다며 전체를 때렸다’ 등 피해 사례는 21가지에 달했다. 


이다영·이재영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렇게 자필로 전한다”며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의 고통이 너무 컸던 탓일까. 두 사람의 사과는 피해자의 마음을 녹이지 못했다. 피해자는 허무하며, 그들의 사과에 진정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심경을 전했다. 여론은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피해자의 발언에 공감했다. 대중의 분노는 더 커졌다.

그 결과 이다영과 이재영의 소속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이들에게 남은 잔여 연봉 미지급(이다영 연봉= 6억원, 이재영 연봉= 4억원)과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자격 박탈 징계를 내렸다. 

맞아가면서 배워야 한다?
스포츠계 만연한 손찌검

남자 선수들도 학폭 논란에 휩싸였다. OK금융그룹 읏맨 소속 에이스 송명근과 심경섭, 배홍희(2015년 은퇴) 선수가 이번에 지목된 당사자다.

지난 13일 오전 한 커뮤니티에 학교 폭력 폭로 글이 올라왔다. 피해자는 학창시절 세 선수와 같이 배구를 했다. “폭력은 세월이 흘러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피해 내용을 게시했다.

피해자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며 “선배들은 후배들을 불러 노래를 시켰다. 노래를 하라며 욕설과 폭행을 했다. 중요 부위를 맞아 잘못됨을 느낀 피해자는 이날 저녁 응급실에 실려 가 고환 봉합 수술을 받았다. 가해자들은 폭행을 가하고도 사과는커녕 피해자의 고환이 터졌다며 놀렸다”고 밝혔다.


해당 게시물은 순식간에 일파만파 퍼졌다. 많은 언론이 보도했고 여론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학폭 논란이 일자 시인하고 잔여경기 출전을 포기한 송명근 선수 ⓒKOVO

논란이 일자 송명근은 곧바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자신은 학교 폭력 가해자가 맞다며 모든 사실을 인정한다.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하고 나쁜 행동이었는지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며 가해자임을 시인했다. 

피해자는 소속팀과 송명근의 사과문을 접한 뒤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양심이 있고 생각이 있다면 본인도 사과했다고 인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글을 게시했다. 송명근과 심경섭은 잔여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달했다. 배구협회로는 이다영·이재영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이어진
폭행사건

과거에도 배구계는 폭력으로 몸살을 앓았다. 무려 국가대표 선수가 훈련 도중 심한 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다. 피해자는 뛰어난 공격수로 인정받은 박철우, 가해자는 이상렬 현 KB손해보험의 감독이다. 박철우의 얼굴과 배에 피멍이 들었다. 이 감독은 2009년 국가대표 코치 시절 박철우를 폭행해 무기한 자격정지를 받았다.

이 감독은 박철우를 구타한 이유로 “요즘 젊은 선수들은 대표팀 코치를 무시한다. 이번 일도 선수가 대드는 바람에 이성을 잃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의 말은 배구계를 향한 수많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박철우는 국가대표팀에서 하차했다. 결국, 이 감독은 한국배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자격정지를 받았다. 

언론이 잠잠해졌을 무렵 이 감독은 2년 만에 경기운영위원으로 복귀했다. 대학 배구 지도자와 해설위원을 거쳐 2020년 KB손해보험 감독이 됐다. 이 감독의 과거 발언은 운동을 하며 폭행하는 것이 당연하냐는 비판의 화살로 돌아왔다.

과거부터 배구계는 이슈가 돼야 조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이슈가 논란이 되지 않았다면 배구계는 이후로도 또 다른 이다영·이재영을 양성했을 것이다. 관행이라 불렸던 폭행은 오랜 시간 끊어지지 않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 심경섭 선수 ⓒKOVO

피해자들이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꿈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폭 사건은 아마추어, 프로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드리워져 있다. 

꿈을 위해 뛰던 선수들이 운동을 포기한 뒤에야 규정은 신설된다. 스포츠협회와 연맹, 국회는 선수들을 잃고 난 뒤에 징계나 규정을 신설했다. 현재 스포츠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력을 관리하겠다는 새 장치만 생겼을 뿐, 학폭과 관련한 통합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비단 이는 단순한 배구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감독이 선수에
선배가 후배에

일각에선 종목별로 서로 다른 협회, 연맹의 규정을 통합된 규정으로 관리·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 언론에까지 보도됐을 만큼, 배구계 학폭 논란은 크고 거세다. 영국 신문 <데일리 메일>은 “한국은 스포츠 강국이지만, 스포츠계에선 여전히 신체적·언어적 폭력이 만연하다”고 보도했다.

배구계를 포함해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망신이 크다. 여론은 “무기한이면 결국에는 돌아온다는 것 아니냐”는 반응과 “강력한 선례를 남겨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며 한국배구연맹(KOVO)의 결정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학폭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비판 여론도 많다. 

지난 16일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오마이뉴스> 의뢰) 학폭 선수 국가대표 자격 박탈 관련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일벌백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나왔다. 여론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며 많은 비판을 쏟아냈다.
 

▲ 이다영·이재영 선수의 자필 사과문 ⓒSNS

신무철 한국배구연맹(KOVO) 사무총장은 “관련 규정은 신설 직후 효력을 가지게 된다. 가해 사실이 밝혀진 선수들에겐 관련 징계를 내리기 어렵다. 이미 4명의 선수는 중징계를 받았다”고 적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신설 조항은, 학교 폭력에 연루된 선수는 프로입문 전 신인 드래프트 참여에 제한을 두겠다는 내용이다. 아마추어, 선수의 폭력 이력을 확인해 학폭과 관련한 서약서를 받는다. 만약 서약서 내용이 허위사실로 확인될 경우 영구제명 등 중징계를 내릴 수 있는 조항이다.

“일벌백계 필요” 수 차례 지적
 시간 지나도 바뀌지 않는 현실


문재인 대통령은 배구계 학폭 논란이 커지자 지난 17일, 황희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식에서 “체육 분야는 국민에게 많은 자긍심을 심어줬으나, 그늘에선 폭력이나 체벌, 성추행 문제 등 스포츠 인권 문제가 제기돼왔다”며 재발방지 및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불거진 프로 스포츠 선수 학폭 사건과 관련해 학폭이나 (성)폭력 등 인권침해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 경우에는 국가대표 선발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문제는 선수 스스로 폭력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898명의 응답자는 신체폭력을 경험한 뒤 느낀 감정을 묻는 질문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폭력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확인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선수 스스로도 인지하고 악의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없었다.

지난해 8월 통과해 2차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이 지난 19일부터 시행됐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스포츠윤리센터 권한 및 기능 강화와 훈련시설 영상정보처리기기(CCTV) 설치, 실업팀 표준계약서 도입 등을 포함한 내용이다.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강력한 처벌로
 재발 방지해야”

제도와 선수 자체의 의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학교 폭력은 한 인간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피해자들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호소한다. 배구계로 번진 학폭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새로운 규정과 징계로 배구계의 오래된 악습 및 관행을 끊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가 주목된다. 


<ckcjfd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어느 야구선수의 고백
“학교 폭력은 일상”

비단 배구계뿐만 아니다. 스포츠계는 종목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폭력이 만연했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선수로 활동했던 A씨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학교 폭력은 일상다반사”라며 운동부의 현실을 털어놓았다. 얼차려와 폭력은 생활의 일부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우나에서 얼차려를 받고 씻기 전 양말을 벗기라고 시켰다. 나는 야구부에 1년 늦게 들어갔다. 선배와 동갑이었는데 선배라는 이유로 선배들이 자신의 빨래와 청소를 시켰다. 처음에는 ‘더 잘하라고 그런 거겠지’ ‘운동은 원래 맞으면서 하는 거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들 역시 한때는 피해자였다. 보상심리가 작용했다. “나도 당했으니까 너도 당해봐라”라는 심리다.

관리자들은 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감싸 안는 태도를 보였다. 

“누군가 용기를 내 피해자를 도와주려 하면 죄인 취급을 받았다. 문제가 되면 가해자까지 다 같이 불러놓고 조사했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학교는 무조건 덮으려 한다. 감독은 입을 닫았다. 세상에 알려지면 운동부는 해체수순을 밟는다.”

그런 이유로 A씨는 “용기를 내고 싶어도 나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봐 무섭고 두려워 참았다. 하고 싶은 것은 운동뿐이었는데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선수들이 이루고 싶은 목표와 운동에만 집중했으면 한다. 나는 운동을 포기했지만 현재 운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 운동을 해 나갈 선수들은 폭력 속에서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피해를 방지하려면 강력한 처벌과 규정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을 관리하는 어른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잘못된 관행과 악행을 선수들 역시 스스로 끊으려 하지 않으면 스포츠계의 학교 폭력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선수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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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