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VS 동교동계 대리전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6.29 11:55:29
  • 호수 12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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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질긴 악연’ 다시 세게 붙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의 난’이 점입가경이다. 사건은 법적분쟁으로 번진 데 이어 ‘계파 대리전’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친노 대 동교동계의 대결이다. 이들의 악연은 18년 전 대북송금 사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요시사>는 현재진행형인 두 계파의 질긴 악연을 추적했다. 
 

▲ 재산 상속 관련 기자회견 갖는 조순열 변호사 ⓒ문병희 기자

DJ의 2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3남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홍걸 의원이 DJ와 이희호 여사 부부가 남긴 유산을 두고 법적분쟁을 벌이고 있다. 유산의 규모는 약 40억원, DJ의 서울 동교동 사저의 감정가액은 32억5000만원으로 추산되며, 여기에 노벨평화상 상금 8억원에 대한 분쟁도 진행 중이다.

법적분쟁
점입가경

사건은 지난해 6월 이 여사가 작고한 이후 시작됐다. 김 의원은 사저 명의를 자신의 명의로 변경하고, 이 여사가 은행에 예치했던 노벨평화상 상금을 찾아갔다. 

이처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 의원이 민법상 유일한 법정상속인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먼저 사망한 경우, 친모의 아들이 상속인으로 인정된다. DJ는 이전 부인과의 사이서 1남 김홍일 전 의원과 2남 김 이사장을, 이전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이 여사와 재혼해 3남 김 의원을 낳았다. 

김 이사장은 이 여사가 생전에 작성한 유언장대로 김 의원이 따르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 여사가 40억원 상당의 유산(사저·상금)을 대통령 기념사업에 쓰고, 이 과정서 나오는 금전적 이득은 세 형제가 나누라고 유언했다는 것. 


이에 김 이사장이 속한 김대중기념사업회는 김 의원이 사저를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 법원은 지난 1월 인용 결정을 내렸다. 김 의원은 이에 반발해 ‘가처분 이의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김 이사장은 노벨평화상 상금에 대해서도 재단에 귀속시키라는 요구를 김 의원에게 하고 있다.

사태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10일, 이 여사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두 사람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 의원은 최근 이 여사의 유언장을 공개하며 김 이사장의 요구가 터무니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 유언장에는 ▲노벨평화상 상금을 DJ기념사업을 위해 사용할 것 ▲사저를 DJ기념관으로 사용하고, 그 소유권을 김 의원에게 귀속시키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단, 사저를 매각한다면, 대금의 3분의 1을 김 이사장이 이사로 있는 김대중기념사업회를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대금을 3형제가 3분의 1씩 나누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연일 진실공방 ‘40억 누구에게?’
‘홍업-동교동’ ‘홍걸-친노’ 구도

김 의원의 법률대리인인 조순열 변호사는 지난 23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의원은 이희호 여사의 친자로서, 이 여사가 남긴 모든 재산을 상속 받을 유일한 합법적 상속인 지위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언장은 서거 3년 전 작성됐으나, 후속 절차를 밟지 않아 법적으로 무효가 됐다”면서도 “법적 효력을 떠나 여사님의 유지가 담겼다고 판단해 김 의원은 그 유지를 받들 것”이라고 전했다. 

김 이사장은 김 의원이 공개한 유언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발했다. 그는 지난 24일 입장문을 통해 “김 의원 측은 기자회견서 그동안 자신이 주장했던 이 여사 유언장 관련 내용이 거짓임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쏘아붙였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고 이희호 여사

김 이사장은 6가지 이유를 들어 기자회견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여사가 ‘사저를 소유권 상속인인 김 의원에게 귀속하도록 했다’는 문구는 유언장 내용에 없는 것으로 조작됐다는 것 ▲김 이사장이 사저 재산을 탐낸다는 김 의원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 ▲유언장을 공증하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3형제가 유언장 내용에 따르겠다는 합의서에 인감도장을 찍었다는 것 ▲노벨평화상 상금은 상속세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총선 전 김 의원은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두 번이나 찾아가 이 여사의 유언장대로 집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법원에 제출한 가처분 이의신청서에는 권 이사장이 고령이라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해 김 의원 자신이 경고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 ▲김 의원이 ‘김대중·이희호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유언을 이행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는 자신이 거짓말한 일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들의 난은 주변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김 의원은 지난 23일 인터뷰서 “내 형님(김 이사장)을 누가 옆에서 부추기지 않았다면, 저러지 않을 것이다. 계속 옆에서 이간질하고 분란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의혹을 제시했다. 

유언장 공개
과연 진실은?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아들의 난이 친노-동교동계 사이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김 의원의 친노, 김 이사장의 동교동계가 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시선이다. 

김 의원은 김대중·이희호 기념관 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회에는 한완상 전 부총리, 함세웅 신부, 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유시춘 EBS 이사장의 합류가 확정됐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합류에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 부총리는 DJ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DJ정부서 부총리를 지낸 그는 이후 노무현 대통령후보 사회담당 고문으로 활동했다. 진보진영 재야 원로인 함 신부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동지’로 불린다. 허 이사장은 참여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위원과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누나인 유시춘 이사장도 친노로 분류된다. 

김 의원은 지난 23일 인터뷰서 “아버지(DJ)와 노 전 대통령과 모두 인연이 있는 원로 10명 정도를 자문위원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김 이사장 측은 결이 다소 다르다. 동교동계가 주축이다. 김 이사장의 김대중기념사업회는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인 윤철상·전갑길 전 의원 등도 동교동계다.
 

▲ 권노갑 대표

김 의원은 권노갑 이사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김 의원 측 조 변호사는 23일 기자회견서 “권 이사장은 지난 총선을 앞둔 4월1일 내용증명을 보내와 4월6일까지 상속 재산을 이전시키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기자회견과 소송에 돌입해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했다”며 “당시 비례대표로 출마한 김 의원에게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선거에 타격을 주겠다는 명백한 위협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이사장은 김 의원이 DJ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제쳐두고 자기 마음대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맞선다. 

친노와 동교동계는 질긴 악연을 자랑한다. 시간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DJ의 직계 정치세력인 동교동계는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민주당 전신)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인제 최고위원을 지원했다. 


또 동교동계인 한화갑 대표는 직접 경선에 출마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과 대선후보를 놓고 한판 대결을 펼쳤지만, 결과는 노사모의 지원을 받은 노 전 대통령의 승리로 돌아갔다. 갈등의 불씨가 켜진 것이다. 

2002년
시작돼…

당권은 동교동계가 쥐고 있었다. 친노는 민주당 내 비주류였다.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 새천년민주당이 참패, 노무현 당시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동교동계는 ‘대선 후보 교체론’을 꺼내들어 두 계파의 사이는 더욱 틀어졌다. 동교동계는 이후 대선서 노무현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등 앙금을 보였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참여정부가 출범하자 두 계파의 갈등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친노는 신당창당 수준의 과감한 정치 개혁을 주장했다. 당내 주류였던 동교동계는 이에 크게 반발했다. 

이후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 특검으로 넘어가면서 두 계파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해당 사건은 DJ정부 때인 2002년 국정감사서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에 의해 처음 불거졌다.

한나라당은 즉각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됐다. 민주당은 2003년 3월 한나라당이 발의한 특검법안을 수정한다는 전제로 수용하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만약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자체적으로 수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지만, 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민주당은 일단 특검법 공포를 거부해주면 여야 협의를 거쳐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었고, 한나라당은 일단 수용해 공포하면 다시 법률을 개정해 조사 범위의 한계를 두도록 하겠다는 주장”이라며 “결국 제한적으로 특검을 하자는 데 양당 지도부의 의견이 일치해 공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이희호 여사 1주기 참석한 김홍걸·김홍업씨

이에 동교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계파 수장인 DJ는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DJ 측근들은 DJ가 병원에 입원한 이유에 대해 ‘화병’ 때문이라고 전했다. 권 이사장 등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은 수사 과정서 구속됐다. 대북송금 특검 사태는 동교동계가 본격적으로 반노무현계(이하 반노)로 분류되기 시작한 계기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붙어
열린우리당 사태 때도…

‘열린우리당 사태’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2003년 11월 친노는 민주당을 구태의연한 정치세력으로 몰면서 한나라당 개혁파들을 끌어 모아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동교동계 중심인 민주당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과 연합해 노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그러나 탄핵은 이뤄지지 않았고, 탄핵 역풍으로 인해 민주당과 동교동계는 17대 총선서 참패했다. 

앙금은 계속됐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동교동계는 국민의당에 대거 합류했다. 앞서 2016년 1월 동교동계는 민주당을 대거 탈당, 친노와의 불편한 동거를 청산했다. 

열린우리당 사태는 친노가 동교동계와 결별한 것이라면, 동교동계의 국민의당 합류는 동교동계가 먼저 친노를 떠났다는 차이가 있다. 이는 호남 세력이 민주당을 떠나는 결과를 불러왔고, 친노가 주류가 된 민주당은 20대 총선서 호남 참패를 맞았다. 동교동계의 정치적 뿌리는 호남이다.

권 이사장은 당시 민주당을 탈당하는 과정서 “더 이상 (민주당에)희망이 없다는 확신과 양심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당시 대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권 이사장이 당내 분란 해결을 위해 문 대표의 2선 후퇴를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문 대표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탈당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며 “60년 정통 야당을 지키고 바로 세우기 위해 좀 더 애를 써주실 수는 없었는지 실로 아쉽고 안타깝다”고 섭섭함을 표현했다.

지난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동교동계는 다시 민주당 복당를 선언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불허했다. 동교동계가 복당하려는 이유는 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으로 읽힌다. 

풀리지 않는
갈등의 연속

이 위원장은 정치부 기자 시절 동교동계를 출입하며 DJ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국회의원이 된 그는 열린우리당 사태 때도 동교동계가 주축인 민주당에 남았다. 이 위원장이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이유다. 동교동계는 여전히 이 위원장을 돕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DJ 아들의 난에 이은 친노-동교동계 사이의 또 다른 대리전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위원장은 현재 당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만약 친노가 뿌리인 친문서 당권 후보를 낸다면, 두 계파는 대결을 피할 수 없다. 친노 대 동교동계의 대결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제의 2003년’ 이전 동교동계는?

동교동계는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계파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망명과 가택연금 등을 당하던 시절, 동교동계는 군사정권의 회유와 억압에도 동교동을 떠나지 않고 DJ 곁을 지켰다.

또 동교동계는 군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1984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상도동계와 손을 잡고 민주화추진협의회라는 단체를 결성,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동교동계가 겪은 정치적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DJ가 1992년 대선에서 낙선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민주당에 합류했다. 이후 1995년 7월 DJ가 정계복귀를 선언, 동교동계는 민주당을 탈당해 DJ가 만든 새정치국민회에 합류했다.

동교동계의 전성기는 짧았다. 1997년 대선에서 DJ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동교동계는 당정을 아우르는 정권의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곧 좌장인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당시 소장파 의원들의 정풍운동으로 정계 일선서 물러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DJ의 퇴임으로 동교동계의 세는 급속도로 약화됐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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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