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골프 용어의 유래

버디, 파…스코어 명칭은 언제부터?

골퍼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스코어 용어들의 흥미로운 유래를 알아본다. ‘파(Par)’는 1870년 영국에서 처음 사용됐다. 골프 소설가인 A.H. 돌먼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묘사하기 위해 프로골퍼인 데이빗 스타라와 제임스 앤더슨에게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을 하려면 몇 타를 쳐야 하냐”고 물었다.
 

두 프로는 “완벽한 플레이는 12홀이 한 라운드인 프레스트윅골프장에서 49타를 치면 된다”고 했다. 당시 디 오픈은 1960년부터 12년간 프레스트윅골프장에서만 개최되고 있었다. 돌먼은 그의 저서에서 ‘12홀에서, 49타를 기준으로 하여 이를 파라고 기술했다. 그해 영 톰 모리스 주니어가 12홀씩 3라운드를 돌며 총 36홀에서 149타로 우승하자, 돌먼은 ‘한 라운드 49타, 총 147타를 기준으로 2타를 더 쳤기 때문에 2오버파가 된다’라고 기록했다.

흥미로운 유래

파의 개념은 20세기로 넘어 오면서도 어떤 규정이 정해진 바가 없어서 영국에서조차 여러 가지로 불렸다. 정작 파의 정확한 개념은 1911년 미국골프협회에 의해 통일됐다. 협회는 325야드 이내를 파3, 425야드까지는 파4, 그 이상에서 600야드까지는 파5라고 정하고, 파4에서의 4타를 파라고 명했다. 

이에 영국은 왜 미국이 명칭을 함부로 정하느냐며 괜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1914년 영국의 한 잡지가 미국의 규정을 따르자고 의견을 내놓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파의 명칭에 대한 제정은 뒷전으로 밀렸다. 1925년에 가서야 영국골프협회가 파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사용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보기(Bogey)’라는 단어 역시 처음에는 영국에서 사용됐다. 1890년대 로더햄골프장 책임자였던 브라운 박사는 숫자의 개념을 통일하면서 당시 쓰이고 있던 파의 용어 대신 “프로골퍼가 한 홀에서 치는 평균 타수를 그라운드 스코어”라고 정의했다. 
 


어느 날 한 대회에서 찰스 월먼이라는 백작이 브라운 박사에게 “당신의 클럽 선수들은 골프를 잘 치는 보기맨입니다”라고 추켜세웠다. 보기맨이란 단어는 당시 영국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하던 노래 가사에서 “보기맨이 오기 전에 서두르세요”라는 구절에 사용되던 단어였다. 

보기맨은 ‘앙증맞고 못생긴 작은 마귀나 유령’을 뜻했고, 골프에서는 스윙을 하는 모습을 빗대어 ‘보기맨과 플레이를 한다’라고도 인식되던 중이었다. 그렇게 영국에서는 어느 순간에 보기맨이 골프에 적용되면서 파를 뜻하는 평균 타수의 의미로 불린 것이다. 

현재도 영국의 일부에서는 동네 대회에서 우승자를 ‘보기맨 대령’이라고 부르는데, 이때의 보기는 파가 아닌 파4에서 적절한 평균 타수라는 의미였다. 초기에는 그렇게 파를 의미하던 보기라는 명칭이 1911년 미국골프협회에 의해 스트로크 플레이 방식이 만들어지면서, 정해진 상태에서 파보다 한 타 더 친 숫자를 의미하는 현재의 1오버파를 뜻하는 보기로 정해졌다.

미국서 정립된 ‘파’ 개념
노래 가사서 파생된 ‘보기’

‘버디’는 대신 미국에서 유래됐다. 영어의 뜻 그대로 새를 의미하는 버드에서 유래됐는데, 속설로 떠도는 ‘새가 볼을 물어다 홀컵에 집어넣어 버디가 됐다’는 잘못된 유래이다. 미국의 속어 중에서 아주 기분 좋은 일로 소리를 지를 때 ‘What a heck of bird’라는 말이 있다. 

1899년 뉴저지주의 아틀란틱시티 골프장에서 스미스 형제와 조지 클럼프가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클럼프는 훗날 유명 골프장이 된 파인밸리를 만든 설계사였다. 골프를 치던 중 2번홀 페어웨이에서 스미스가 친 세컨샷이 그린에 올라 핀 옆에 거의 붙자, 스미스가 “야, 이거 죽이는데 (That’s a bird of shot)”라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이내 스미스는 탭 인으로 홀을 마무리했다. 파4에서 3타 만에 홀 아웃을 한 것이었다. 일행 중 누구든 파보다 한타 적게 치면 내기의 2배를 받기로 돼 있었다. 일행은 당장 한 타 줄인 명칭을 버디라 불렀다. 그렇게 시작된 버디라는 단어는 자연스레 1언더파를 치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이글(Eagle)’과 ‘알바트로스(Albatros)’는 새의 이름이다. 이글은 말 그대로 독수리의 뜻이고, 알바트로스는 북극의 절벽에 둥지를 틀고 떼로 모여 사는, 일반인들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무리새를 일컫는다. 이 특정한 새들의 이름이 골프에 응용된 것은 보기, 파, 버디에 비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규정의 홀에서 2타, 3타를 줄인 스코어이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글은 버디를 유래시킨 스미스형제와 클림프에 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1899년 아틀란틱시티 골프장에서 명명했던 버디의 명칭에 이어, 이들은 파4와 파5에서 2타를 줄이면 어떤 명칭을 붙일까를 고민했다. 일반 새보다는 크고 멋있어야 한다는데 착안해,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를 떠올렸고 곧 바로 2타를 줄이는 스코어는 이글로 명명키로 했다.

새 의미하는 ‘버드’
‘이글’‘알바트로스’는?

알바트로스는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문헌이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극지방의 희귀한 새여서 이글보다 한 타 더 줄인, 극히 드문 스코어인 -3에 적당한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5에서 2타 만에 홀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던 시절인 20년대 초반, 알바트로스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사건이 1935년에 일어났다. 무대는 조지아주의 어거스타에서 행해진 마스터즈의 전신인 제2회 오거스타내셔녈 인비테이션대회. 마지막 4라운드에서 당대의 우상인 진 사라센은 3홀만 남긴 상황에서 1위에게 3타나 뒤지고 있었다. 

우연히 붙인 이름

15번홀 파5에서 4번 우드를 꺼내든 그는 회심의 세컨 샷을 날렸고, 볼은 그린에 한번 튕긴 채 홀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까지 이런 경우는 더블이글로 불렸지만, 특별히 그날부터 사람들에 의해 알바트로스로 명명됐고, 언론과 갤러리들에 의해 전해지면서 지금까지 유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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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