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 정조준’ 추미애 법무부장관 딜레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3.23 10:30:40
  • 호수 12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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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전관들의 목에 칼을 댔다. 법무부가 법조계 전관 특혜 근절 방안을 발표한 것. 법조계에서는 당장 ‘헉’ 하고 장탄식이 나온다. 이번 발표 내용이 전례 없는 ‘고강도’기 때문이다. 전관들을 겨냥한 칼은 곧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 향할 전망이다.
 

▲ 악수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장관 ⓒ청와대

법무부(장관 추미애)는 지난 17일 ‘법조계 전관 특혜 근절 방안’을 발표했다. 부제는 ‘수임·변론부터 수사 절차, 사후 감시 등 모든 단계 개선 추진’이다. <일요시사>가 당일 입수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법무부는 ‘법조계 전관특혜 근절 전담팀(TF)’을 구성했다. 이후 학계·대한변호사협회·대검찰청 등과 논의해 이번 방안을 발표했다.

법무부 발표
전관에 철퇴

자료에는 사건 수임·변론 단계부터 수사 단계, 징계 단계 등 단계별 방안이 담겼다. 핵심은 수임 제한 기간 연장이다. 법무부는 검찰·법원 출신의 전관 변호사의 수임 제한 기간을 현행 1년서 3년으로 늘릴 방침이다. 이를 위해 변호사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대상인 고위직 출신 전관이 대상이다. 검사장과 고법 부장판사, 치안감 이상 경찰 고위직, 1급 이상 공무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법무부의 방안대로 변호사법이 시행된다면, 고위직 출신 전관들은 퇴직 전 3년 동안 근무한 기관의 사건을 퇴직 후 3년 동안 수임하지 못한다.  

기관 업무를 기준으로 취업 심사를 받는 대상자는 수임 제한 기간이 2년으로 늘어난다. 지검 차장검사, 지법 수석부장판사, 2급 이상 공무원 등이 대상자다. 현행 변호사법은 이들의 수임 제한 기간을 1년으로 규정한다. 


이는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행 변호사법은 퇴직 전 1년, 퇴직 후 1년이 수임 제한 기간이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 기간(3년, 2년)보다 짧다. 법무부는 이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몰래 변론’에 대해 철퇴를 가할 계획이다. 몰래변론은 선임계 없이 피의자를 돕는 행위를 뜻한다. 변호사 중 일부는 조세포탈을 목적으로 몰래 변론을 해왔다. 

전관 특혜 근절 TF 구성
수임제한 1년→3년 늘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정운호 게이트’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을 몰래 변론한 검찰 고위직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수사검사, 결재검사와 학연·지연·친분 등과 관계된 전관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꾸려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법무부는 조세포탈 등의 목적으로 몰래 변론한 경우, 처벌을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한다. 또 정당한 이유 없는 단순 몰래 변론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규정을 신설한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

법무부는 검찰·법원서 재직했을 당시 처리했던 사건을 퇴직 후 변호사로서 수임한 경우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일 계획이다.

‘전화 변론’ 역시 금지된다. 전화 변론은 몰래 변론의 대표적 수단으로 사용돼왔다. 지난해 4월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몰래 변론’ 사례를 조사한 바 있는데, 조사 결과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 중 다수가 전화 변론을 통해 검찰 수사 실무자나 지휘 라인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수사 중인 검사와 사건과 관련해 직접 통화할 수 있어 전화 변론은 전관 변호사의 ‘특혜’로 통한다.


이에 법무부는 전화 변론 자체를 금지할 계획이다. 단, 주임검사의 요청이나 긴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검찰 내 상급자를 상대로 한 변론 역시 원칙적으로는 금지할 계획이지만, 절차 위반 등 부당한 검찰권 행사를 바로잡을 때에 한해 변론이 가능하도록 열어둔다. 그 외 변론은 서면으로 주임검사에게 제출하도록 한다. 주임검사에게 직접 전달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몰래 변론
막을까?

‘법조브로커’ 퇴출도 선포했다. 변호사, 법무사의 법률서비스 업무에 대해 중개를 해주는 알선업자가 바로 법조브로커다. 우리나라는 변호사와 법무사만이 유료로 알선할 수 있으며, 비법률가의 알선은 불법이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비법률가가 수익 사업을 위해 법률사무를 알선·중개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동안 법조브로커로 인한 피해 사례가 꾸준히 도마 위에 올라왔다. 최근에는 ‘여순사건’(10·19사건) 당시 희생당한 민간인 희생자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후 유족들에게 접근해 보상을 받게 해주겠다는 법조브로커가 등장해 우려를 낳았다. 

지난해 3월에는 개인회생 사건을 수임한 법조브로커가 적발됐다. 해당 브로커에게는 변호사나 법무사 자격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 2017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무자격으로 188건의 개인회생 사건을 수임, 수임료 총 3억6500만원을 부당하게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재판·수사 공무원의 변호사 알선 행위는 그 심각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법조브로커로부터 수사 무마를 대가로 뒷돈을 받아 실형을 선고 받은 검찰·경찰 간부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법무부는 처벌을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범위도 확대된다. 사건을 수임할 목적으로 변호사들이 수사·재판기관 인사와의 인맥을 선전하는 행위는 금지다.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법무부는 금지 대상을 수사·재판기관뿐 아니라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조사기관으로까지 확대한다.

일단 법무부는 실태 조사부터 나선다. 이를 위해 각 검찰청의 감찰담당 검사가 맡는 행동강령책임관을 ‘전관특혜방지 담당책임관’으로 지정, 업무를 맡겼다. 또 법조비리 신고센터를 만들어 상시 운영한다.

21대 국회
입법 목표

TF 팀장을 맡은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내에 위치한 법무부 대변인실 사무실 의정관서 브리핑을 열고 “사건 수임 단계부터 징계·제재 단계까지 아우르는 대책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뒀다”며 “한쪽을 규제하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커지는 ‘풍선 효과’를 막기 위해 촘촘하게 연결된 특혜 근절 방안들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이번 방안은 단계별로 진행된다. 첫 번째가 수사 단계서의 전관 특혜 근절이다. 법무부 훈령이나 대검 예규 개정으로도 시행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수임 제한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 등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변호사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아 이번 20대 국회에선 개정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법무부는 21대 국회 입법을 목표로 한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반부패정책협의회서 전관 특혜에 대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공정 영역”으로 지목했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역시 해당 자리에 참석했다. 윤 총장은 협의회 참석 이후 대한변협과 관련 논의를 이어가는 등 전관 특혜 근절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전관 특혜 근절의 종착지는 공수처다. 수임 제한 기간을 연장하는 등 변호사법이 21대 국회서 개정되면, 법무부는 이에 준용해 공수처 관련 전관특혜를 근절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할 방침이다. 

공수처, 전관의 온상지?
준비단장이 부른 논란

법조계 안팎에서는 공수처가 ‘전관의 온상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발단이었다. 남기명 공수처 준비단장이 부른 전관예우 논란이다.

앞서 남 단장은 공수처가 출범하기 전 한 시중은행의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시중은행의 사외이사직은 ‘전관들의 놀이터’란 지적을 받는 자리로 시중은행은 그간 정권과 닿아 있는 주요 인사들을 자신들의 사외이사로 들여 이득을 취해왔다.

논란이 일자 남 단장은 지난 10일, 이사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남 단장은 당시 “공수처 준비단장 자리의 무거움을 느끼며 재직 중에는 단장 외의 어떤 직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번 켜진 불씨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공수처가 가진 특수성·희소성으로 인해 전관 특혜에 쉽게 노출될 것이라는 우려다.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25명이다. 

공수처 검사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변호사 자격 10년 이상 보유 ▲수사와 재판 또는 수사처 규칙이 정한 조사 업무 경력이 5년 이상이어야 하며 현직 검사도 공수처 검사에 지원할 수 있다.

해당 법률이 정한 공수처 검사의 임기는 3년이다. 여기에 3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이는 3년의 임기를 채우면 특수수사 전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수수사 전관의 몸값은 일반수사보다 약 2배가량 높다. 즉 공수처 경험만으로도 대형로펌 등에서 모셔 가려는 전관 변호사가 될 수 있다.

3년이면
몸값 뛰어

법조계에선 공수처 준비단이 먼저 관련 내규부터 만들어 공수처 검사의 전관 특혜를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21대 총선이 열리지도 않은 시점서 법 개정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내규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0일 공수처 준비단 첫 자문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주요 의제를 자문위원회에 설명하고 법령 등을 정비하는 자리다. 그러나 공수처의 전관 특혜를 방지하기 위한 법령 논의는 당시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공수처 준비단은 오는 7월15일까지 공수처 설립을 마쳐야 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와대-검찰 갈등 재점화?

청와대-검찰 간 갈등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건’ 수사가 본격적으로 청와대를 겨냥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라임 사건은 전직 청와대 행정관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사안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검찰은 라임 관련 펀드 투자금을 집중적으로 유치한 A씨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출신 전직 청와대 행정관이 문제 해결에 개입했다”는 취지로 말한 녹음파일을 확보했다. 

또 검찰은 라임 투자 피해자 측으로부터 전직 청와대 행정관의 관여 의혹이 언급된 녹취록 등도 제출받아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녹취에는 전직 청와대 행정관이 라임 펀드의 자산 매각 계획, 금감원 조사 무마 등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지난 16일 돌연 사의를 표명하자, 일각에선 라임 사건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6일은 라임 사건에 전직 청와대 행정관이 연루됐다는 의혹 보도가 쏟아지던 시점이다.

라임 사건은 전직 청와대 행정관이 청와대 재직 당시 일어난 사안으로 만약 지금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청와대의 공직기강 시스템에 대한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청와대는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나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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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